스토커 4화
이번에야 말로 집에 바로 돌아가야 겠다. 누군가가 또 나를 부른다고 해도 그냥 못들은척 하고 지나가버릴테다. 라고 생각하고 있자
"어? 오빠?"
각오한 직후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 목소리를 무시하는건 불가능 했다. 아키하바라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목소리.
"아, 아야세?"
역 근처도 아니고 아키하바라의 한복판. 즉, 모에산업의 중추가 되는 이곳에서 아야세가 있다는 것에 잠시 환청인건가, 하고 생각했지만 이어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실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넌 여기서 뭐 하는거야?"
한심하다는 목소리로 말하는건 나의 여동생 키리노. 라이트 브라운의 옅은 갈색머리. 언젠가 처음 쿠로네코와 사오리를 만났었던 정모에서 입고 간 그 패션이었다.
"아아. 아카기 녀석이랑 만났었거든. 그거보다 너희는 여기서 뭐하냐?"
나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ㅡ.ㅡ 모양으로 만들어 아야세를 쳐다봤다.
외모만 봐서는 내 취향에 제대로 스트레이트로 들어오는 청초한 이미지의 긴 흑발. 무릎까지 오는 검은 스타킹에 꽤 짧은 하늘거리는 검은색 치마. 팔이 다 드러나는 하얀색 반팔티에 파란색 캐미숄이라는 귀여운 옷을 입고 있었다.
저번에도 그랬었지만, 키리노와 아야세 같은 일반적인 '잘 노는 여자'의 패션은 아키하바라에서는 너무 튄다.
기본적으로 오타쿠의 성지인 이곳에서는 남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고, 가끔 보이는 여자도 모습만으로 오타쿠인걸 눈치챌 수 있는 정도의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키리노와 아야세의 외모에 저런 모델이나 입을법한(진짜로 모델이지만) 옷을 입고 있으면 아키하바라는 커녕 시부야 거리의 한복판 에서도 주목을 받는다.
그 증거로 지금도 실제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힐끗힐끗 이 빛나는 2인조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케부쿠로에 있는 부녀자의 성지인 '소녀들의 거리' 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그런 패션은 음… 쿠로네코의 말을 빌리자면 'TOP 를 분간해 스윗트 여자' 정도로 할 수 있겠다. 응? 소녀들의 거리를 어떻게 알고 있냐고? ……어쩌다 보니 알게 됬다고만 할게.
아야세는 그런 내 시선을 느꼈는지 아야세는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 아니에요! 이건 키리노가!"
"응? 아니긴 뭐가~? 아야세가 아키하바라에 관심이 있는 것 같기에 내가 이렇게 직접 에스코트 하고 있는데 뭐가 아니라는 걸까~?"
그렇게 당황하고 있는 아야세를 장난스럽게 놀리는 키리노.
분명 아야세가 키리노의 취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접근했다가 키리노의 추천으로 시스시스 전연령판을 접하게 되고, 거기에 키리노와 똑같튼 이미지인 린코 케릭터에 꽂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아야세 너 이제는-"
"그 이상 말하면 죽입니다"
"오,오우…"
동공에 광채를 잃은 아야세의 박력에 단숨에 꼬리를 내리자, 이번에는 마치 반격이라는 듯 아야세가 물었다.
"그럼 오빠야 말로 친구랑 아키하바라에는 무슨 일인가요?"
"응? 그냥 친구랑 놀러…"
"남정네 둘이 아키하바라면 두말할 것도 없지"
내가 대답하기를 마치 기다렸다는 듯. 키리노는 나의 말을 끊으며
"또 에로책이나 에로비디오라도 사러 왔을게 뻔해"
"……"
여동생에게 생활패턴을 파악당한 오빠라니, 죽고싶어지네 진짜
"엑, 진짜에요?"
아야세는 약간 질렸다는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에 아 그게…"
범인을 추궁하는 경찰처럼 팔짱을 끼고 나를 노려보는 키리노와 비슷한 분위기로 나를 추궁하는 아야세.
키리노는 그렇다 치고 왜 아야세 너까지 그러는 건데!? 대체 알수가 없다…
일분일초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나는 나중에서 생각해보면 가장 멍청한 판단을 했다.
"그, 그러니까 지금 나는 좀 바뻐서 말이야. 그럼 나중에!"
라며 몸을 회전시켜 빠른걸음으로 이 불편한 공기에서 벗어나려는 순간, 저항감을 느껴서 돌아보니 아야세가 내 손목을 잡고 있었다.
"도망치는 거에요…?"
꽈악. 하고 손목이 아플 정도로 강하게 힘을 주는 아야세
"도,도망치다니 뭐가?"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내가 얼마나 거짓말을 싫어하는지 오빠는 알고 있으면서… 일부런가요? 일부러 거짓말을 하는거에요…?"
아야세는 공허한 표정으로 마치 속삭이듯, 부드럽지만 공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종이백, 안에 뭐가 들어있어요…?"
"히, 히익!"
뭐, 뭐야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인데!? 데자뷰!? 데자뷰인겨!?
키리노한테만 집착하던 애가 갑자기 왜 이런데!!?
"키,키리노!?"
내가 그랬듯이, 이번에는 키리노가 나를 구해주겠지! 라며 끼기긱 기름을 안먹인 기계처럼 키리노 쪽으로 돌리니 키리노는 눈을 감은채로 양손을 맞대어 고개를 숙인, 즉 기도를 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번에 키리노 녀석이 완전히 패닉해서 이상한 행동을 한게 어느정도 이해가 됬다…는 것보다, 누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빠져나가야 되는건데!? 급속도로 속이 안좋아 지는 것을 느낄 정도니 얼굴은 필시 엄청 창백하겠지.
아야세는 그런 내 얼굴을 보면서 '후후…' 하고 웃더니
"농담이에요. 정말 오빠 놀리는건 빠져들것 같아"
라며 만족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네?"
이게 농담? 진짜? 레알? 이 정도의 살기가 농담? 그게 더 무서운데!?
나는 식은땀을 질질 흘리며 다시 아야세 뒤에 있는 키리노에게 시선을 주니, 키리노는 무언으로 어깨를 들썩거리며 쌤통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치만"
웃고 있던 아야세는 순간 싸늘한 목소리로
"거짓말은 안되요?"
라고 말했다.
"네, 넵… 에로책임다…"
……저번처럼 갑작스런 소나기가 내려서 분위기가 더 어두침침했으면 진짜… 상상만해도 무섭다…
"헤에… 어떤거에요?"
"아니 저… 그… 일단 저에게도 사생활이라는게…"
그러자 아야세는 시선을 옆으로 돌리면서, 약간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흐응… 여자친구가 있는데도 그런걸 보는구나…"
"응? 여자친구랑 이게 무슨 상관이 있… 아."
"?"
"아야세 변태! 치한! 가까이 오지 마!"
"무, 무슨 오해를 하는거에요!? 저, 저는 단지!"
"단지 뭐!?"
"이익…! 앗, 오빠 에로책 떨어진거 아니에요?"
"진짜!?"
키리노나 아야세한테 고스로리타 특집을 걸리면 진짜로 목숨을 걸어야 된다! 하고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그냥 평범한 전단지가 떨어져 있었다.
"키리노 가자!"
"어, 응?"
당황한 아야세의 목소리에 다시 고개를 돌리니, 아야세는 키리노의 손목을 잡고 같이 도망치고 있었다.
……………속였구나!?
어찌됬든, 아야세도 충분히 오타쿠 라고 부를 수 있는 레벨까지 올라갔구나…
왠지 모르게 아는 사람이 동류가 됬다는게 꽤 훈훈한 기분이 들었다. 응? 나? 언제부터 오타쿠인지 이제 기억도 안난다고…
그나저나 정말 오늘은 이래저래 엄청 바쁜 날이었다. 이제는 진짜로 집에 돌아갈거라고. 획득한 상품의 질을 확인할거라고.
그렇게 다시 집으로 가려고 하는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 액정에 적힌 이름도 보지 않고 나는 대충 전화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