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10권. 2화
그다지 할일이 없었던 나는 곧바로 아카기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덟번 정도 통화 연결음이 지나자 아카기 녀석이 전화를 받았다.
「오, 코우사카냐?」
"아아. 아카기. 지금 바쁘냐?"
「글쎄?」
기본적으로 남는게 시간인 녀석이 말은 잘하는군.
「조금만 기다려봐」
그렇게 말한 아카기 녀석은 전화기를 내려놓는가 싶더니, 우당탕! 하는 발소리가 들렸다. 어딘가로 급히 뛰어가는 듯한 발소리 같은데 으음… 이거 바쁜데 괜히 귀찮게 한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미안한 마음에 묵묵히 기다리고 있자, 2분 정도 지난후 아카기 녀석이 돌아왔다.
「지금은 괜찮을것 같다」
"중요한 일 있으면 내가 나중에 전화하고"
「응? 아니 별로 중요한 일은 없어」
"그럼 뭐 하고 왔는데?"
「우리 세나한테 30분 이내에 오빠랑 같이 놀 생각 없냐고 물어봤지. 동인지 작업 하느라 바쁘다고 하길래 온거야」
"난 요즘 네가 진짜 걱정된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여동생에 관련된 문제를 상담할 수 있을만한건 아카기 녀석 밖에 없다. 주위에 여동생을 가지고 있는 녀석 자체도 없긴 하지만, 녀석과 나는 여러모로 특수한 경우니깐 말이다.
둘다 엄청나게 잘나가는 여동생들이 심각한 오타쿠고, 그 오타쿠 동생들에게 이것 저것휘말리고 있는 오빠는 아마 지구상에 우리 둘 밖에 없겠지. 그런 공감대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차이점도 느껴졌다. 뭐, 한쪽이 여동생물 에로게임을 즐겨하고 한쪽은 리얼호모계를 좋아하는 부녀자라는 것은 사소한 차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직접 피부에 와닿는 차이점은 우리 남매와는 다르게 아카기 남매는 서로 사이가 좋다는 것 정도다.
오빠는 동생을 끔찍하게 아끼고 걱정하고, 동생은 오빠를 거의 완전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의지한다.
그게, 조금은 부러웠다.
직접 자기들이 '우리 사이 좋아요~' 라고 한것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그렇다는 것은 눈치채고 있었다. 아카기 녀석이 자기 동생이랑 똑같이 생긴 러브돌을 보고 넋이 나갔던거나, 밖에서 둘이 만나 영화를 보러 간다던가, 동생에게 줄 선물을 고른다던가.
뭐, 그 정도는 다른 남매들도 평범하게 하고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남매가 특수한 경우일 수도 있겠지. 그렇기에 확신하지는 못했다.
「요즘 우리 세나가 말이야~ 요리를 연습한다고 가끔 나한테 이것저것 요리를 해준다고. 그게 또 엄청 맛있어서 말이지?」
"분명 독 탔을거다. 호모가 되는 독이라던가"
「우하하하하! 질투하냐 코우사카!? 부럽냐 코우사카!? 혹시 네 여동생은 오빠한테 직접 요리해주거나 그런거 없냐?」
"크, 크윽…"
「세상에는 두 종류의 오빠가 있지!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여동생의 수제요리를 먹어본 오빠와, 그렇지 않은 오빠다! 너는 후자구나!」
얼마전 아카기 녀석과 '어느쪽 여동생이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지'에 대한 배틀을 했을때, 나는 남들에게는 보여주지 않으리라 숨겨놨었던 '키리노와 러브러브 투샷 스티커 사진' 까지 공개해 당연히 이길거라 생각했지만, 내 눈 앞에서 당당하게 아카기 녀석의 볼에 키스를 하는 세나를 보고 패배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키리노 녀석도 나름 셀카를 찍어 보낼 정도 였지만 그걸 이길 순 없는 노릇이었지…
뭐, 그 배틀에서 패배한것은 인정하겠지만 어느쪽 여동생이 더 귀여운가. 에 대해서는 당연히 패배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솔직히 객관적으로 보면 키리노가 훨씬 귀여우니까.
하여튼. 그때 확신했다. 이 녀석들은 정말로 사이 좋구나. 하고.
「아 맞다. 그래서 무슨 용건이었지?」
"뭐, 별건 아닌데"
그렇게 아카기 녀석에게 한참을 여동생 자랑을 듣고 있던 나는 슬슬 전화를 끊어버릴까- 하고 고민했지만, 장하게도 먼저 이야기를 끊어준것은 아카기 쪽이었다.
인내심의 한계가 왔기 때문일까, 나는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로 깊게 생각하지 않고 말을 꺼냈다.
"인생상담이 있어"
「엥? 인생상담?」
"…………크흠"
순간 얼굴이 빨개진 나는 목소리를 정돈하는 척 하면서 화제를 자연스럽게 돌렸다.
아무리 그래도 처음으로 떠오른 단어가 인생상담 이라니… 이거 키리노 녀석에게 너무 시달렸나 보군.
"너희 남매 사이, 너희 부모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냐?"
「뭐 그냥 친한 남매로 보시는데. 그게 왜?」
"내가 너희 부모님에게 오빠가 여동생이랑 똑같이 생긴 리얼돌을 사려고 했다. 라고 말해도 괜찮을 정도로?"
「그건 아닙니다요…」
나는 아주 잠시 이 녀석에게 말해도 되려나… 하고 고민했지만, 쓸데없는 고민이겠지.
"저번에 말 했던가? 우리 남매, 원래는 엄청나게 사이가 안좋았거든"
「그런거 치곤 여동생 자랑 엄청 하더만」
"너만하겠냐"
쓸데없이 테클이 많은 녀석이다 정말.
"그러다 뭐, 최근에 어떤 계기로 인해서 옛날보다는 사이가 좋아졌어. 그렇다고는 해도 그렇게 엄청 친한 관계도 아닌데 말이지"
「오우. 그래서?」
"엄청 사이가 안좋던 남매가 어느 순간 조금 친해지니까 그런 걸려나? 어머니가 오늘 말하시더라고, '너희들 너무 사이 좋은거 아니냐?' 라고 말이지"
「엥? 뭐야 그거, 설마 신성한 여동생을 불건전하게 바라본다던가 그런 내용?」
"그래서, 나와는 다르게 시스콘에다가 남매사이도 끈적한 너의 상황은 어떤지 물어보려고 전화한거지"
솔직히 도움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런 나의 생각은 읽은걸까, 갑자기 조용해진 아카기 녀석은 꿀꺽. 하고 침을 삼키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 에로게임 너무 많이 한거 아니냐?」
"………"
「아니면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다던가…」
"끊는다"
「아니아니아니아니! 끊지는 말고! 끊지 말아주세요! 네녀석이 뭔 짓을 할지 뻔히 보인다고!」
당장 세나한테 전화해서 유리카 백식건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눈치가 빠른 녀석이군…
전화 너머에서 헉헉 대며 당황하던 아카기 녀석은 내가 전화를 끊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만일 너라면 어떻게 했을까, 해서 전화한 거야"
「으음…」
아카기 녀석은 어울리지도 않게 깊게 생각하는것 같은 소리를 내더니,
「근데 너희 어머니가 진짜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거면 꽤 위험하지 않냐…?」
"그런가?"
「의심암귀라는 말도 있잖아. 의심이 의심을 낳아서, 마지막엔 여동생을 조교한 귀축강간마로 찍히는거 아니야?」
"어디보자 네 동생 전화번호가…"
「말이 심했습니다!!」
아주 방금까지는 이 고민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방금 아카기 녀석의 말을 듣고 심정이 변화했다.
듣고 보니 정말 그러네, 이거 위험한거 아닌가. 하고,
「세상에 있는 어느 오빠가 여동생을 그런 눈으로 보겠냐? 가족이니, 피가 섞여 있니 하는 이야기를 떠나서, 그렇게 오랫동안 자신이 보살펴준 동생을 그런 눈으로 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여동생은 오빠가 평생 걱정해야 하는 소중한 존재라고」
"참고로, 네가 좋아하는 여자의 이상형은?"
「세나같은 여자」
"이 녀석,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그러고 보니, 아카기 녀석과 그런 이야기를 한적이 있었다.
자신이 초등학생때, 아직 자신도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던 나이지만 아카기는 자신보다 더 어린 여동생을 여러모로 돌봐주었다고 한다. 동생이 생겼다는 것에 너무나도 기뻤다고 했다.
'결국 오빠가 할 일은 동생이 울지 않게 딸랑이를 흔드는 것 밖에 없다고' 였나? 녀석 치고는 꽤 멋진 말을 했던걸로 기억하는데.
"뭐 그래서, 그 오해를 푸는 방법이 문젠데"
「그거 그냥 집 나가면 되는거 아니야?」
"엉?"
아카기는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가출을 하라던가 그런건 아니고. 자취를 한다던가 해서 스스로 여동생에게 멀어지는걸 어머니에게 어필하면 오해도 풀릴거라 생각하는데」
별로 아카기 녀석에게 원하는 대답을 얻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꽤나 그럴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일단 자취를 하는게 옳은가 아닌가는 둘째 치더라도, 확실히 자취에 대해서는 흥미가 있었다. 남자라면 누구나 부모님의 간섭을 받지 않고 혼자 사는 것에 대해 흥미를 가져본 적이 있을 테니까.
자취, 말이지… 확실히 나쁘지는 않을것 같긴 한데 말이야. 괜찮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전화 너머에서 '오빠~' 하는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 세나왔다. 그럼 이만 끊을게. 나중에 보자 코우사카」
"오우"
그렇게 전화를 끊은 후, 나는 침대에 대자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자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