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10권. 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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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지금 무척이나 당황스러워 하고 있다. 딱히 노트를 주인에게 돌려주지 못하기에 그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로 마음이 바뀌어서 노트를 가지려고 하는것도 아니지만… 나한테는 그런것보다 더 큰 문제라고 이건.
"어떻게 여는거야 이거?'
신기하게도 맨션의 입구에 있는 유리문이 열리지 않는 것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방법이 다르다고 할까, 손잡이의 윗쪽에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키패드같은 것이 있는데, 아무래도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열리는 시스템인것 같았다. 현관문도 아니고, 입구에서부터 이런게 달려 있다니, 적어도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인데. 부자는 다르구나 부자는……
「무슨 일입니까?」
그렇게 내가 유리문 앞에서 한참동안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자, 신기하게도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 그 목소리에 깜짝 놀라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는 나의 모습이 더 수상하게 느껴질테지만 말이다.
결국 '에? 에?' 같은 멍청한 소리를 내면서 바쁘게 고개를 돌리면서 찾은것은, 위에 있는 모서리에 달려있는 그럴듯한 카메라 모양의 CCTV 였다. 그리고 남성의 목소리도, 그 안에서 들리고 있었다.
「어떤 용무로 찾아오신겁니까?」
"네? 그, 네 저기…"
경비원으로 보이는 남성의 목소리는 분명히 '이 도둑놈!' 하는 듯한, 그런 위협이 담겨 있었다. 나름 잃어버린 물건을 주인에게 돌려주려는 선행을 하려는 것일 뿐인데, 괜시리 오해를 받아 경찰서를 가는건 사양이라고.
나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분명 입가가 떨리고 있었지만) 손에 들고 있는 노트를 CCTV에 들이밀며 말했다.
"방금 이 맨션에서 나오신 분이 물건을 떨어뜨리고 가서요"
「그럼, 제가 나가서 받겠습니다」
"아, 아뇨! 그냥 주인을 불러주시면 안되겠습니까?"
「………」
3초 정도, 경비원의 목소리가 멈췄다.
그렇다고 마이크를 끈것은 아니다. 뭔가 마이크를 켰을때의 치직- 치직-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이, 마이크를 켜둔 상태로 어떤 말을 할지 갈피를 못잡고 있는것 같았다.
그리고 거의 곧바로, 나는 방금 내가 한말이 어느 정도의 오해를 불러올 수 있을지 깨달았다. 자칫하면 성폭행범이라고 이거!!
"아, 아뇨 그런 이유가 아니라!"
나는 지금 마이크를 내리고 경찰서에 신고하고 있을법한 경비원에게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이 노트의 내용이 조금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를 자극하는 내용이라서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 주인도 엄청 당황스러울것 같아서!"
「…그럼 당신은 그 내용물을 보신거구요」
"………그건 저도 또 동류라…"
「네?」
뭔가 힘없이 하하… 웃으며 모든것을 포기한듯한 나의 표정을 봐서 그런걸까, 그 한마디로 완전히 적대적이었던 경비원의 목소리가 풀어졌다.
「뭐… 수상한 사람이긴 하지만, 일단 카나타씨에게 연락해보기로 하죠. 조금만 기다리세요. 도망치기라도 하면 바로 경찰에 연락할테니깐요」
"네, 넵…"
그렇게 3분쯤 기다렸을까, 삐삑!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유리문이 열렸다.
「카나타씨가 직접 감사인사를 하고 싶다고 하는군요. 303호실입니다」
"아, 네…"
나는 경비원의 목소리가 들리는 CCTV에 그렇게 대답을 하고, 꾸벅 고개를 숙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느정도 상상은 했지만, 맨션의 안은 내가 살고 있는 원룸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정도였다. 바닥에는 은은한 색깔의 대리석이 깔려져 있고, 매일 매일 청소를 하고 있는지 계단의 구석구석에는 먼지한톨 보이지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엘레베이터가 있다고!
나는 겨우 3층까지 가는데 엘레베이터를 잡기도 뭐하기에, 계단을 통해 3층으로 올라갔다. 아니 뭐, 정확히는 아까 그 경비원 아저씨가 엘레베이터 안에 있는 CCTV로 또 말을 걸을것 같아서 무서워서 그런거지만.
똑똑.
3층에 도착한 나는 바로 옆옆칸에 있는 303호실을 찾아 노크를 했다.
"열려있어~ 들어와~"
안에서 들리는 쾌활한 목소리. 나는 아무리 많아봤자 고등학생 정도 되는 여자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일단 노트를 돌려주고 쿠로네코에게 줄 싸인이라도 받아야 하기에 방 안으로는 들어가겠지만…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너무 경계심이 없는거 아닌가.
"들어갑니다"
어찌됐건 적어도 들어간다는 것을 알린후,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엄청나게 넓은 실내가 보였다. 아니 잠깐, 이게 맨션이라고? 무슨 도라에몽의 주머니도 아니고, 밖에서 볼땐 이 정도로 넓지는 않았던거 같았는데…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붉은빛이 감도는 갈색 머리를 허리까지 늘여뜨린 엄청나게 귀여운 미소녀가 양 손을 허리에 가져다 댄채 위풍당당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어서와"
"아 네… 저기, 이거 떨어뜨리고 가셔서요"
"아 그것보다, 나 기억 안나?"
"네?"
마치 노트는 어찌됐던 상관이 없다는 듯이 대답하는 미소녀. 기억이 안나냐고 물어봐도, 솔직히 기억이 안나는데…
"나는 너, 기억하고 있는데"
미소녀는 히히히. 하고 웃었다.
뭐라고 할까, 키는 초등학생 고학년이나, 아니면 중학생 정도로 보이고, 외모도 그 키에 맞게 무척이나 귀여워서 누가 보더라도 갓 중학교에 올라간 소녀로 볼것 같지만, 왠지 그 눈을 보니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끝부분이 약간 치켜올라간 눈. 흔히 말하는 여우눈이라고 하는 사나워 보이는 눈이지만, 왠지 모르게 힘을 풀고 있는듯한 눈이 묘하게 '세상 경험을 많이 해본 누님'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
"사오리의 친구지? 저번에 카페에서 봤었는데"
"아"
그렇게 듣고 보니, 생각이 나네.
쿠로네코와 연인이 되고, 헤어지고, 키리노 덕분에 모든것이 해결된후, 사오리와 만나서 사건의 진상을 이야기 했을때.
특이하게도 사오리가 그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는 반디나와 뱅글뱅글 안경, 줄무늬 티셔츠를 입지 않고 누가 봐도 귀족집 딸 같은 모습을 하고 왔을때, 사오리의 언니를 만났었다. 그때, 그 무리속에 있던 붉은색 여자애구나.
"카오리랑은 다르게, 사오리는 엄청 소심하거든"
"네 뭐, 그건 잘 알고 있어요"
"오호, 사오리가 직접 알려줬든, 아니면 눈치챘든, 그 아이의 본질을 파악했다면 좋은 친구겠네"
씨익. 웃으며 대답하는 미소녀. 아니 자꾸 미소녀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네. 어디보자. 으음, 분명 경비원이 말한 이름이…
"카나타씨였나요?"
"어라, 이름 알고 있었어?"
"밑에서 경비원하고 좀…"
"뭐, 나도 수상한 놈이라면서 사진을 보여주길래 들어오라고 한거니까"
"사진전송도 된다고!!?"
뭐 어떻게 되먹은 맨션이래!? 원래 다 이런가!?
"그것보다 너는 음…"
"코우사카 쿄우스케입니다"
"그럼 난 쿄우스케라고 부를테니까, 너도 카나타라고 불러"
"아… 괜찮은가요?"
"상관 없어~"
카타나는 그런, 조금은 맹해보이는 대답을 하면서 나에게 등을 보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 안절부절 하고 있으니, 카나타가 돌아왔다.
"응? 뭐해? 안들어오고"
"아, 네…"
조금은 커다란 쟁반에 여러가지 과자와 우유를 가져온 카나타는 그렇게 말하며, 거실에 있는 탁자 비슷한 것에 앉았다. 그리고 자신의 정면에 있는 앞자리에 컵을 내려놓는거로 봐서는 나보고 저기 앉으라는거 같긴 한데… 결국 눈치를 살피던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앉았다.
"손재주는 없어서, 딱히 해줄건 없네. 헤헤"
"고맙습니다. 아, 그것보다 이거"
"응?"
탁자 위에 노트를 올리자, 오독 하고 과자를 먹고 있던 카타나는 아주 조그맣게 '아 맞다' 라고 중얼거렸다. 내가 노트를 돌려주러 왔다고 말을 했을텐데, 벌써 까먹은 건가. 의외로 덜렁이 속성을 보유하고 있는것 같다.
"고마워~ 내 보물 1호를 잃어버릴뻔 했네"
"방금까지 까먹고 있었으면서 보물 1호라고 했어!!?"
"응?"
아차.나의 넘쳐나는 테클본능에, 순간적으로 자신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건 어쩔 수 없다고. 옆에서 누군가 테클을 걸어주지 않으면, 이 사람의 맹함은 의미가 없다고.
"아하하하하하, 재밌네 너"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살짝 눈물까지 흘리며 웃던 카나타는 그 노트의 앞을 살짝 어루만졌다. 매우 소중한 것을 만지는 듯한 그 행위에 나는 약간의 신성함까지 느끼며 그 이후의 테클을 하지는 못했다. 그러자, 카나타는 그 눈을 번뜩이더니,
"그래서, 안에 내용. 봤어?"
"아, 그……"
"괜찮아~ 딱히 숨기는 것도 아니고"
"봤어요…"
"흐응. 그래? 그럼 너도 동류?"
"동류라는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부녀자쪽은 아닙니다"
"우와, 너 여자애들한테 인기 많지?"
"어째서 이야기가 그쪽으로!!?"
조금 피곤해지는 스타일이다…… 문제는, 본인은 전혀 그런점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카나타는 과자를 입에 물고 양손등에 턱을 올려둔채 오독오독 씹으며 나를 쳐다봤다. 무언가 기대하는 듯한 그 눈빛에, 나는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
"혹시, 마스케라의 원작자에요?"
"응!"
우와, 대답빨라.
"너도 봤어?"
"네, 뭐…"
"어때 어때, 재밌어?"
"재밌냐. 라고 물어본다면, 확실히 재미는 있었어요. 내용이 너무 난해해서 그렇지"
"그거야 뭐, 장르가 중2병이라 어쩔 수 없어~"
"당연히 그 원작자도 엄청난 중2병일줄 알았는데요"
"후후후. 야마나시 감마는 그런 사람입니다~"
"…?"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카타나는 후후, 하고 웃더니,
"그럼, 노트를 찾아줬으니까 나한테 뭔가 바라는게 있겠지?"
"당연스럽게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곤란한데요"
"그거야, 세상은 등가교환이니까! 하나는 전부, 전부는 하나!"
"딱히 제 오른팔이 오토메일은 아닌데요"
"제, 제법이야…"
거기서 진짜로 감명받은듯한 눈을 하면, 진짜로 상처받습니다만.
후… 적어도 엄청 착한 사람이라는 것은 확실한것 같다. 일단 나는 남자고, 상대는 여자에 아무리 구면이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이 당연할텐데, 나를 배려해주기 위해서 이렇게 해주는거겠지. ………그게 아니라면, 진짜로 천연덜렁이가 되버리는 거지만.
본론이라고 할것도 안되지만, 나는 살짝 긴장의 끈을 놓고 대답했다.
"괜찮으면, 싸인 하나만 해주세요"
"응? 싸인? 너도 내 팬이야?"
"팬이라고 하면 팬이겠지만… 저보다 더 팬인 녀석이 있어서요"
"키리링쪽? 아니면 그 귀여운 나이트메어쪽?"
어라? 키리링?
"키리링이라니…? 동생이랑 아는 사이인가요?"
"아는 사이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는 아니겠지만, 꽤나 많이 봤었으니까"
내 여동생. 키리노가 키리링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것은 인터넷 속, 그것도, '오타쿠 소녀 모여라' 라는 카페에서 밖에 사용하지 않는다. 아직도 그 카페에서 활동하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 닉네임으로 부를만한 사람은 사오리 정도 밖에 없을텐데.
카나타는 그런 나의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봤는지, 씨익 웃으며,
"코미케때마다 부스에서 내 책을 사줬거든"
"키리노가 마스케라를 살리는 없을텐데… 그 녀석이 좋아하는건 메루루거든요"
"나도 메루루 좋아해~ 코미케때는 메루루로 동인지를 그리니까"
"아… 그런거라면…"
"물론 19금이지만"
"세상에, 설마 그게 당신 작품이었어!?"
그런거라면 설명이 되는군… 키리노가 사오리와 같이 부스를 소개시켜주며 책을 살때라면, 키리링이라는 닉네임을 들어본것도 설명이 된다.
"그래서? 그럼 역시 그 귀여운 나이트메어쪽?"
"아, 네"
"근데, 그냥 싸인 여러개 해주면 되는거 아니야?"
"………"
아니, 그런 방법이……
설마 나, 멍청한건가? 아니면 이 맹한 누님 때문에 천연이 감염되었다던가…
결국 빨개진 얼굴을 한 나를 내버려 둔채, 카나타는 자리에서 일어나 작업실로 보이는 방으로 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로 유명한 사람의 싸인이나 넣을법한 액자 비슷한 싸인지를 가져와서, 능숙하게 싸인을 넣고 마스케라의 케릭터까지 그리고 있었다.
"우음. 그러고 보니 이 근처에서 본적이 없던거 같은데, 이사왔어?"
"아, 이 옆 원룸에서 자취하게 됐어요"
"자취?"
쿠로네코의 닉네임과 이름이 써져있는 종이에 2등신의 귀여운 야마의 여왕을 다 그린 카나타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 시기에 자취면은 좀 애매한데"
"그건 확실히 그렇지만요"
"무슨 이유라도 있어? 뭐 보통은, 다 부모님 때문이겠지만"
"네 뭐… 그런 이유에요"
남에게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러자 카나타는 헤헤. 하고 웃더니,
"자랑은 아니지만, 우리 부모님은 엄청나게 사이가 안좋거든. 나도 그래서 자취를 시작해서 어느 정도 공감한다고 해야할까. 뭐 너는 다른 이유일수도 있지만 말이야"
"자취…?"
나는 맨션의 방 안을 한번 훑어보고,
"……이건 자취라기보다, 독립이 더 옳바른거 같은데요"
"그런가? 뭐 독립이라고 해도, 여동생이랑 같이 살고 있으니까. 으음… 그럼 자취도 맞지 않으려나"
헤헤. 하고 웃으면서 두번째 싸인지에 그림을 다 그린 카나타는 여동생 이야기를 꺼내서 그런지, 약간 시선을 올리고 무언가를 생각하는듯 했다.
"오늘 아침에는 깜빡하고 동생 푸딩을 먹었다가 엄청 혼났다니까~"
아, 내가 사는 원룸의 복도에서 보이던 그 피규어룸이 카나타네 집이었구나. 아마도 거긴 작업실이겠지. 엄청나게 많은 메루루와 마스케라의 피규어들도 그래서 있는거구나. 뭐라고 할까, 똑같은 피규어라고 하더라도 일반인이 아니라 원작자가 가지고 있다고 하니까 뭔가 꽤나 그럴듯해보이는게 신기한 기분이 든다. 졸렬하다고 하면 졸렬하겠지만.
"우리 동생은 '네 푸딩 먹었으니까' 하고 끝일텐데요 뭐"
"아하하하, 그거 심하네"
그렇게 세번째 싸인지에 그림을 다 그린 카나타는 '아 맞다' 하고 중얼거리더니,
"그러고 보니 슬슬 동생올때네. 오늘은 내가 식사당번인데"
카나타의 말을 듣고 시계를 보니, 의외로 저녁시간에 가까워졌다. 으음. 일단 집에 가서 카레라도 해먹어야겠다.
"그럼 저도 가볼게요"
"응응. 가끔이라도 좋으니까 사오리 소식좀 전해줘~ 바로 옆집이니까~"
"아, 네"
맨션에서 나와 원룸으로 올라가면서, 다음주에 마스케라의 원작자의 싸인을 받고 좋아할 쿠로네코나, 관심없는척 하면서도 좋아할 키리노를 상상하니 약간 흐뭇한 기분이 들은건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