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프레 대회 2화
"하아.. 하아.. 앞으로 평생 못웃을것 같아"
맛이 간 쿠로네코보다 일찍 정신을 차린건 키리노였다. 얼마나 웃었는지 얼굴에 송글송글 땀이 난 키리노는
만족한 표정으로 바닥에 대자로 누워서 말했다. 그 직후, 사오리의 품안에서 바둥바둥 거리던 쿠로네코가 '핫!' 하며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5초정도 상황을 살피더니 바닥에 누워있는 키리노에게 말했다.
"너.. 육상부면 평소에 복근단련 하지 않아? 그런 주제에 배가 땡겨서 못일어나다니 한심하네"
배가 땡겨서 못일어나던 거였어!? 나 그렇게 웃겼나!?
자기혐오의 느낌을 담아 키리노를 쳐다보니 키리노가 쿠로네코에게 말했다.
"윽..! 너야말로 그렇게 사오리한테 대롱대롱 매달린 상태로 이야기 해봤자 웃기기만 하잖아"
키리노는 직후 고개를 돌려 나를 보더니 "아 그래도 너만큼은 안웃기니까 걱정마" 라고 덧붙였다.
진짜 너무하네... 저렇게 까지 웃었으면 조금이라도 고맙게 생각하라고.
"이 덩치만 큰 여자가... 얼른 내려놔"
얼굴이 시뻘개진 쿠로네코가 재촉하자 사오리는 '핫핫' 웃으며 대인배답게 쿠로네코를 내려줬다. 귀엽다니까..
리액션이 너무 커서 따로 물어보지 않아도 되겠지만, 확실히 말로 듣는게 낫겠지. 양쪽다 진정된거 같으니 의견을 물어봤다.
"그래서, 어때? 내 코스프레"
"굉장히 잘 어울린다오! 입상은 따논 당상이오!"
사오리가 시원스럽게 말해줬다. 역시 이녀석은 좋은 녀석이야...
"응... 그 정도면 입상정도는 쉬울것 같네, 차라리 우승을 노려보는게 좋을지도.."
아직도 얼굴이 붉어진 상태로 쿠로네코가 말해줬다. 솔직히 내가 봐도 똑같긴 하거든. 그래도 불안했는데,
사오리랑 쿠로네코가 용기를 북돋아주니 마음이 편해졌다.
"..."
"비웃어도 되니까 너도 한마디 해봐. 따지고 보면 너희때문에 나가는거잖아"
키리노는 뭐가 불만인지 한참을 쭈뼛대더니
"잘..어울리긴 하네 뭐.."
"그래? 고맙다"
의외였다. 당연히 독설이 나올줄 알았는데... 그만큼 웃은게 미안한 마음이 든긴 한걸까
"그래서, 나도 조건이 있는데 말이야, 너희들의 승패조건은 내가 입상하느냐, 마느냐 잖아? 그러면 내가 우승을 하면 나도 너희들에게 벌칙을 주겠어"
"헤에.. 좋은 배짱인걸! 하지만 그럼 너가 우승을 못해도 패널티가 없으니, 우리도 이기는 쪽이 너한테도 벌칙을 주겠어. 이의 없지?"
"물론이다!"
후후. 원래 닮기도 했지만 이 의상 파워면 우승 가능성이 없지도 않다. 반드시 우승해서, 이 둘을 골탕먹일테니까!
나중가서 후회해도 늦었다 키리노! 이 오기는 너가 만든거니까!
"자자! 그럼 시간도 늦었고, 다다음주까지는 시간이 있으니 다음주에 다시 모이도록 합시다!"
"그러네. 나도 이만 가봐야겠어."
쿠로네코가 뭔가 내 눈치를 살피며 나가긴 했지만, 이런 이벤트가 발생한 직후니 뭐 아무래도 좋은거겠지.
"그럼 다음주에 봐. 바이바이~"
유쾌하게 쿠로네코와 사오리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키리노.
바닥에 누워있는 상태로 하지만 않았으면 완벽했을텐데.. 것보다 진짜 배가 땡겨서 못일어나는거야?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다다음주. 대회 당일날.
"막상 나오니까 떨리는데..."
지금 나는 참가자 부스에서 메이크업을 받고 있다. 남자가 화장을 한다는 것에 거부반응도 있었다. 당연히 화장은 처음하는거니...
그래도 메이크업을 해주는 누나분이 "무대에 올라가니까 당연히 해야지, 남들 다 하는건데" 라고 해주셔서 어떻게든 참고 받고있다.
"이정도 소재라면 내가 완벽히 재현해줄테니까!"
"하하.."
게다가 메이크업을 해주시는 누나분이 마스케라에 심취해있는 터라, 쓸데없는 장인정신을 발휘하고 있어서 얼굴이 따갑다...
"자 완성! 헤어랑 메이크업은 됬으니 렌즈만 끼면 완벽해! 으음 으음."
"아 감사합니다."
메이크업이 끝나고, 자신을 확인해보고 싶어도 어째서인지 이 부스에는 거울이 없다. 화장실이라도 가야되나...
렌즈는 쿠로네코가 가지고 있기도 하고, 이 누님이 콧바람을 훅훅내는게 부담스러워서 대기실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곧 여러 사람들 속에서 한 익숙한 모습들을 발견했다. 장난기가 발동되어, 제일 가까이 있던 키리노의 어깨를 톡톡 치고 말했다.
"내 이름은 싯코쿠. 타천의 나락에서 돌아온 어둠의 수호자!"
"..."
응? 뭐야 이 반응은. 셋다 벙쩌있는데.. 뻘쭘해서 가만히 있었더니 마치 시간이 멈춘듯 정적이 돌다가..
"핫! 선배?"
쿠로네코가 먼저 반응해줬다. 역시 내편은 쿠로네코밖에 없어. 음음.
"헉 뭐야너.. 너야?"
"오오 쿄우스케씨! 진짜 못알아봤소!"
... 반응으로 보건데, 진짜로 못알아본거 같다. 대기실에 있는 사람들의 수근거림을 잘 들어보니
'저기.. 싯코쿠야'
'거짓말! 장난아니다'
'3D? 홀로그램이야? 대박이다..'
여자들의 꺄꺄 하는소리가 들려왔다. 꽤나 좋은 기분인걸. 가족조차 못알아보다니 그 누님 떡칠을 한거구만
"훗.. 쿠로네코? 렌즈는 껴본적이 없어서 그런데 대신 껴줄수 있어?"
"어..응, 저, 저기 앉아봐.."
쿠로네코 말대로 한가한곳에 앉아서, 렌즈를 넣기 편하게 한쪽눈을 감고, 양손으로 반대쪽 눈을 벌렸다.
"괘..괜찮겠어 선배?"
"응? 뭐가?"
".. 아프면 말해"
쿠로네코의 걱정과는 다르게 전혀 아프지 않고, 안전히 양쪽다 렌즈를 장착했다.
렌즈는 커녕 안경도 껴본적 없는 나이기에, 눈을 감았을때의 렌즈의 이물감이 기분좋지는 않았다.
쿠로네코녀석, 잘도 이런걸 매일 끼고 다니는군. 그러고보니 출판사에 갔을때는 순식간에 빼내기도 했지.. 대단한걸
"자, 눈을 떠봐 선배"
당연하지만 빨간 렌즈를 꼇다고 세상이 빨갛게 보이지는 않는다. 전대물의 히어로들의 눈구멍이 ☆모양이나 ○모양이라고
시계가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것처럼. 하지만 내가 눈을 떳을때 가장 먼저 인지한 색깔은 빨간색이었다.
그리고 그 빨간색의 원인은, 성대하게 코피를 뿜고있는 쿠로네코였다.
"요즘들어 드는 생각인데, 너.. 케릭터 바뀌지 않았냐?"
그런 상황을 보면서 사오리는 언제나처럼 입을ω이렇게 하고 웃고 있었고, 키리노는 약간 얼굴을 붉힌채로
"...밥맛."
독설을 뱉고 있었다.
"참가번호 3번~ 마스케라의 '싯코쿠'를 코스프레하신 치바현의 쿄우님입니다! 마스케라의 팬인 여성분들은 긴장하시기 바랍니다!"
사회자의 멘트가 나오고 있고, 나는 저번주에 다같이 연습한 대사와 포즈를 떠올린다.
아아.. 힘들었었지. 저저번주에 처음 할때는, 키리노는 대폭소에 쿠로네코는 정신줄을 놔버렸고..
그래도 그 다음주에는 내성이 생겼는지 다들 진지하게 도와줬다. 사실 마스케라의 명장면 중에 가장 임팩트 있는걸 처음해서 그런거겠지만..
"좋아. 대사랑 포즈는 문제 없고.. 후. 역시 떨리는걸"
손바닥을 눈앞에 펼치자 부들부들 떨려왔다. 큰일이다. 개망신을 당한다는 공포보다, 우승을 못했을때 키리노나 쿠로네코의 벌칙쪽이
더 무서웠기 때문에, 어떻게든 떨림을 멈추려고 했지만 잘 안됬다.
'저 그... 굉장히 잘 어울리니까.. 최대한 당당하게 해. 코스플레이어쪽이 부끄러워서 쭈삣쭈삣하면 보는쪽이 더 창피하니까'
쿠로네코가 해줬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 내가 창피해하면 보는쪽이 더 오그라드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거짓말처럼 떨림이 멈췄다.
"그럼, 가볼까"
사회자의 긴 소개가 끝나고 무대에 올라간 후의 기억은 별로 없다.
처음엔 사람이 정말 많다는 생각을 했으나 바로 잊어버리고, 연습한대로 했다.
"크윽, 그런 비겁한 수를 쓰다니, 그렇게나 나를 다시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트리고 싶은가 퀸오브나이트메어!"
같은 느낌으로.
결론만 말하면 나는 우승하지 못했다.
만점에 가까운 498점이었지만, 코스프레 대회라고 했을때 가장 먼저 생각했어야할 두 인물이 있었다.
당신들이 상상하는게 맞다. 브리짓과 카나코를 제일먼저 생각하지 못한건 크나큰 실수였다.
카나코가 500점 만점, 브리짓이 499점으로 3위로 밀려났고, 어째서인지 이 대회는 1,2위만 상을 주니, 당연히 입상은 못했다.
뭐 상금정도는 나왔지만. 그래서 처음의 내기로 돌아가서 이야기 하자면 나와 쿠로네코가 패배하고 키리노가 승리했다.
다음주에 바로 쿠로네코가 메루루 코스프레를 하게 됬지만, 내가 야한 눈으로 쳐다본다는 이유로 벌칙은 취소. 한번밖에 보지 못했다. 제길.
물론 메루루 코스프레도 사오리가 준비했다. 역시나 쓸데없이 퀄리티가 높다...
대회가 끝나고 여러명의 여자에게 둘러쌓여 '메일주소 교환해요!' 같은 소리를 들었지만
분노한 키리노의 드롭킥에 맞아 날아가는 나를 보고 여자들이 도망간건 또 다른 이야기.
그리고 왠지 아무 불평없이 쿠로네코가 메루루 코스프레를 한건 의외였지만. 음. 승패에 관련된건 깔끔한걸까. 아무래도 유명한 게이머니까.
그리고 나는 지금-
"현현하라-! 케르베로스!"
"푸카하ㅏ함ㄴ하카카캌하카하카카캏하하!! 진짜 질리지가 않는다니까! ㅍ부하하ㅏ하하카하하하하하하하"
벌칙으로, 키리노가 원할때 의상을 입고 (사오리가 그냥 줬다) 초 진지한 표정으로 코스프레하고 있다.
뭐 나쁜 경험은 아니었고, 쿠로네코의 메루루 코스프레도 봤으니 그렇게 손해본 기분은 아니니깐
한편..
"언니, 코피나요. 괜찮아요?"
"응.. 괜찮아"
"와아- 싯코쿠다 맞죠 언니?"
"틀려, 이 남자는 쿄우스케. 오래전 내가 '검은짐승' 이었을 무렵, 반려가 될 예정이었던 남자란다."
2주차에 쿄우스케의 코스프레를 녹화한 쿠로네코가 승리감을 맛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