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화 “Lovely Nail” (1)
11월
사람은 잊어가는 생물이다.
하지만 망각이라는 건 기억의 삭제가 아니다.
뇌리에 박힌 정보는 삭제되지 않아서, 떠올리면 복구되게 되어 있다.
즉 망각이라는 건 ‘기억’의 봉인이다.
추억으로 압축된 정보를 키워드로 복구시키면 되살아나.
단, 그 키워드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덮쳐올 경우, 트라우마라는 정보가 소생하니까 주의해야 한다.
잊히는 건 기억만이 아니다.
뇌만이 아니라 몸에 밴 ‘경험’이라는 게 있다.
경험하는 걸로 되풀이할 수 있게 되고, 경험을 쌓는 것이 뒤로 이어진다. 소위 말하는 레벨업이다.
사람은 잊는 생물이기에, 경험을 게을리 하면 바로 레벨다운 한다.
레벨 99까지 키운 캐릭터가 다음 작품에서 갑자기 레벨 1로 시작할 때는 자주 있잖아? 요는 그거다.
감을 되찾으려면 다시 경험할 수 밖에 없다.
한때 나도, 도시락 승부를 위해 빠졌던 기억을 되새겼다.
또한 새로운 정보도 터득해, 재경험하면서 씨름판에 올랐었다.
요리는 그나마 낫다. 간간히 나도 했었고, 지금은 이렇게 자주 주방에 서게 됐다.
뭐어, 그 때는 결국 져 버렸지만.
결론을 말하자. 나는 감기에 걸린 거다.
되돌아 보면 꽤 오랫동안 감기에 걸린 적이 없다보니, 자기 몸이 컨디션 불량을 외치는것도 깨닫지 못했다.
계절이 가을에서 겨울로 바뀌는 이 시기.
‘감기에 걸린다’는 경험을 잊어버렸기에, 예방을 소홀리한 결과다.
“나른해…….”
아무도 없는 방에서, 의미 없이 메아리치는 내 중얼임.
땀투성이가 된 옷은 바닥에 대충 벗어던지고, 두 벌째 티셔츠를 입는다.
감기에 걸렸을 때는 묘하게 피부가 민감해져서, 천이 등줄기에 스치는 것 만으로도 오싹한다.
시간은 점심.
사키와 사이카에게는 메일로 알려 두었다. 코마치도 알고 있으니까 학교 쪽은 괜찮겠지.
유키노시타의 연락처는 여전히 모르는데, 유이가하마에게라도 메일 보내두면 괜찮으려나?
일단 봉사부가 있고.
……이 시간이니 의미 없나.
솔직히 스마트폰 만지는 것도 귀찮다.
메일 내용을 생각할 기력도 안 생긴다.
오전 중에는 후딱 병원에서 진찰을 받아, 오래 된게 아니기에 영양 주사만 한 방 맞았다.
집에 돌아온 뒤로는 딱히 할 것도 안 떠올라서 쿠키 할머니의 생산율을 올리는데 힘썼다.
15분 뒤, 나카의 팬을 그만뒀다. 스트레스가 넘쳐서, 이불이라는 이름의 독으로 귀환.
실제론 식욕이 없는 건 아니지만……노곤함이 더 쎄다.
포기하는 건 내 전매특허.
점심식사는 포기하고 천장의 얼룩이라도 바라보자.
위를 향하자 호흡이 가쁘다.
코가 막혀서 숨이 괴롭다.
……아, 천장 얼룩 늘었다. 요괴 천장핥기라도 정착한 건가…….
……………
…………
………
……
…
감기에 걸려 병원에 가고, 옷을 갈아입은 뒤, 모포에 몸을 감쌌는데도 그리 잠이 안 오는 증상을 뭐라고 하려나?
잠 안 온다. 하지만 움직일 마음은 없다.
아, 나 생각해보면 언제나 움직이기 싫은 타입이었지.
하아……어차피 자다 깨면 또 갈아입어야 할 정도로 땀이 나고 있는데에…….
시계를 본다.
의외로 시간은 안 지났다. 것보다, 1시 반도 안 됐다.
학교는……이미 오후 수업중인가…….
아무것도 안 하면 정말로 시간이 가는게 느리게 느껴진다.
부우우웅……
응? 아아 핸드폰 진동음인가.
정말, 완전히 진동모드 끌 때가 없게 됐구나.
동아리 중에도 메일을 주고받게 되었으니까, 계속 진동모드로 두고 있지.
것보다, 깨달았을 땐 사키가 착신음을 바꿔놨고……왜 녀석 비밀번호 알고 있는 거야….
진동이 바로 멈췄으니, 이번에도 메일이겠지.
오늘 식사담방은 나였으니까 아마 코마치가 저녁 뭐로 할지 물어보는 거겠지.
아니 잠깐, 사키가 공들인 장난 메일을 보낸 걸지도 몰라.
혹시나 사이카가 나를 걱정해서 메일 해 준 걸지도 몰라. 그렇다면.
왠지 머리도 잘 안 도네……빨리 보면 괜찮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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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타이시
TITLE nontitle
형님, 히키가야에게서 들었습니다!
몸 어떻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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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보는게 나았을 걸!
하필이면 너냐!
아―정말 귀찮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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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하치만
TITLE Re
네 메일 봐서 악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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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타이시
TITLE Re2
여동생 이야기 신경 못쓰는 걸 보면,
정말 상태 나빠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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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한 단계 강해졌다?!
시원스럽게 무시한데다가 날카롭게 찔러오고선.
음, 뭐어, 성장의 증거로 인정해 주지.
……멍청한 생각밖에 안 떠오르는데.
부우웅…….
뭐야 타이시, 끈질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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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자이모쿠자
TITLE 하치에몽~!
나를 혼자 남겨두지 마!
오늘 육체 단련하다 자칫하면 할복할 뻔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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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그러고 보면 저번에 원고 약속 할 때 이 녀석에게서 메일 받게 설정 했구나…….
잊었었다……성가셔…….
마침 멍청한 생각을 되풀이하다 뇌가 딱 좋게 지쳤다.
이 녀석의 메일은 무시하고 후딱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