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연구소가 불타고 있었다.
수백명의 실험체들을 완벽하게 관리하던 거대한 연구소.
여태까지 동료라고 부르던 녀석들은 유언이라고 부를만한 것도 말하지 못한채 추한 단말마를 외치며 죽어가고 있었다.
"허억, 헉…"
그리고 그 불타는 연구소 안에서 한 어린 소녀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자신의 팔을 붙잡은채 필사적으로 뛰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건가요…?)
몇달전, 소녀는 레벨4로서 진화했다.
그것이 비록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만이 아닌, 다른 뛰어난 능력자의 사고패턴, 연산능력을 자신의 머릿속에 억지로 구겨넣은 결과라도.
동료들의 축복과 시기를 받으면서 소녀는 솔직하게 기뻐했었다.
그리고, 연구소가 습격받았다.
적들은 2~5m 크기의 파워드 슈트(구동갑옷)을 입고 있었다.
2m 정도의 작은 녀석부터, 5m 정도의 큰 녀석까지.
완벽하게 통솔된 부대가 학원도시제의 정체를 알수없는 파워드 슈트를 입고 능력자들을 사냥하고 있다.
이 실험에 참가한 녀석들의 레벨은 적어도 3 이상.
자연적으로 진화한 능력자가 아니라고는 하나, 레벨 4의 능력자는 기본적으로 군대를 상대할 수 있는 전략병기 취급을 받는다.
아무리 실전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라고 해도 파워드 슈트를 입은 군대는, 자신의 동료들을 문자 그대로 '박멸'하고 있었다.
"……"
소녀는 필사적으로 뛰면서도, 자신의 뛰어온 길을 살짝 쳐다봤다.
얼핏 봐도 단순한 용병이나 습격은 아니다.
의도적으로, 학원도시의 높은 분들이 '이곳은 필요없다' 라고 생각을 했는지, 아니면 이 비인도적인 실험의 증거를 세상에서 지우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저것들은 전문적으로 능력자를 사냥하기 위한 군대였다.
"으, 으앗!"
잠깐 시선을 돌린 탓이었을까, 소녀는 뭔가가 발에 걸려 자리에서 넘어졌다.
한심하게 아파하고 있을 틈은 없다고 생각한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자신도 모르게 움직임을 멈추는 수밖에 없었다.
그거야, 어제까지만 해도 같은 방에서 자고 같이 밥을 먹던 친구가 턱 아래가 완전히 날아간 모습으로 죽어있는 모습을 가까이서 봤으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우,우우우아아아아아아아아…"
완전히 패닉에 빠져서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마치 풍술사나 염동력을 가진 능력자가 자신의 다리를 구속한것처럼, 양발은 조금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순간 소녀의 옆에 있는 철로 된 벽이 깡!깡! 하는 소리와 함께 구부러지더니, 마치 공중에서 딱지를 던진것처럼 철로 된 벽이 재밌을 정도의 속도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온것은 2M 정도 되는 크기의 작은 파워드 슈트를 입은 군인. 하지만 어째서인지, 큰 녀석들과는 다르게 이런 소형 파워드 슈트를 입은 군인들은 1M 정도 크기의 칼을 들고 있었다.
학원도시의 무기에 단순한 칼이 있을리는 없다는 소녀의 생각대로. 순간 칼에서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칼이 좌우로 약간 흔들리는것 같았다.
공간이 찢어지는 듯한 이명음에 소녀는 무심결에 자신의 귀를 막았다.
그리고 파워드 슈트는 마치 머리로 생각하는게 아닌,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인 것처럼 말없이 그 칼로 소녀를 내리쳤다.
하지만 강력한 자석 두개를 서로 같은 극으로 붙인 것처럼 그 칼날은 소녀의 몸 3cm 정도 앞에서 밀려났다.
어처구니 없게도, 소녀는 순간 안심해버렸다.
이 녀석이 아니더라도 동료들을 학살하고 있는 파워드 슈트의 수는 많고, 자신의 팔에 있는 상처를 아무렇지도 않게 낸 거대한 녀석도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이 상황에서 도망칠 방법이 전혀 없는 상황에 안심한 그 순간, 뭔가 물컹 하는듯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에?"
소녀는 무심결에 소리를 내버렸다.
자신을 내려친 그대로, 마치 힘으로 눌러버린다는 듯이 칼날을 누르는 파워드 슈트.
그리고 어이가 없게도 자신의 최강의 방패가 조금씩, 조금씩 잘려나가고 있었다.
(뭐, 뭐? 내 오펜스 아머(질소장갑)이 뚫린다구요!?)
사실 생각해보면, 이것은 단단한 금고에 커다란 드릴을 넣고, '시간을 들여서 조그마한 구멍을 뚫는 작업'에 불과하다.
방어적인 능력 뿐만 아니라 공격적인 능력도 상당한 이 소녀가, 만일 공포에 사로잡힌 상황이 아니라면 상대를 무시하고 그 주먹으로 쳐날리면 될뿐이었지만 아직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다가 경험까지 부족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죽는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주 높은 곳에서 '아래를 보지 마라' 라고 해도 무심결에 아래를 보게 되는것처럼, 소녀는 무심결에 옆을 봤다.
그곳에는, 아래턱이 완전히 날아간 상태로 죽어있는 친구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히,히이이이이익…!"
죽는다.
나도 곧 '저것' 처럼 된다.
동시에 천천히지만 확실히 자신의 두개골을 노리는 형태로 내려오는 칼날을 눈앞 3cm 에서 정면으로 보는 소녀는 이미 공포만으로 죽을것 같았다.
아직 살아있는 자신을 원망하듯 쳐다보는 친구의 시체.
절대적이라고 까지 믿었던 자신의 능력이 파훼되고, 강제적으로 실험에 참가하게 되고 아무 이유도 없이 도륙당하는 삶.
그런 복잡한 것들이 각각의 패닉을 만들며 소녀의 머릿속에서 휘몰아쳤다.
"사,살려…"
4레벨(대능력자)인 자신도 이 모양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되는걸까?
하지만 그런 얼빠진 소리를 낸 순간, 콰직! 콰직! 하는 이상한 소리가 났다.
그것이 파워드 슈트의 오른팔에서 나는 소리라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그 팔은 마치 발로 밟은 캔음료처럼 조그마한 한 덩어리로 찌그러졌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파워드 슈트에서 남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비명소리를 묻어버릴 정도의, 콰직!콰직! 하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절대 말을 안하는 녀석들이었지만 무인의 군대는 아니다. 명백하게 학원도시가 개입한 일.
파워드 슈트의 오른팔이 찌그러진 결과, 자신을 노리던 칼이 바닥이 떨어졌다.
칼이 바닥에 떨어진 순간,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좌우로 튀기더니 쩍 하는 소리와 함께 연구소 바닥을 젤리처럼 자르는 모습이 보였다.
"애들 상대로 단분자 커터라니, 양심이 있는 놈들이야?"
소녀는 갑자기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흠칫 하며 고개를 돌렸다.
"어, 어떻게…"
그곳에는 유명한 소년이 서있었다.
하지만 소녀가 서있는 곳은 일직선의 통로.
앞뒤로 있는 긴 통로는 중간에 숨을곳도 없고, 방금까지 통로의 끝에도 보이지 않는 소년이 갑자기 나타났다는건 이상했다.
"설마…"
"쉿"
그렇게 말을 제지시키며 앞에 있는 파워드 슈트를 가르키는 소년의 시선을 따라가자, 이미 파워드 슈트의 양팔과 양다리는 이미 하나의 덩어리로 찌그러져 있었다.
마치 팔다리가 잘린듯한 모습이었지만, 그 끝에 구겨진 상태로 달린 덩어리를 보면 단순하게 잘린건 아니었다.
"저런 녀석을 통째로 찌그러트릴 위력은 없으니까. 전방향에서 누르는 힘을 몇개로 나눠서 부위별로 눌러버리면, 저런것 안에 숨어있으면 어떻게 할 방도가 없겠지"
그렇게 다시 콰직.콰직.콰직 하는 소리가 계속됐다.
5분정도 지났을까, 2M 의 파워드 슈트는 조악하게 압축한 철의 공이 됐다.
그 안에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지만, 철의 공 안에서 나와 바닥에 고인 피는 적어도 성인남성 한명분이었다.
"도청이라도 되면 말짱 도루묵이니까"
"……"
소녀는 이 소년을 알고있다.
자기 뿐만 아니라, 이 연구소에 있었던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몇일전 레벨 5(초능력자)로 진화한 소년.
버려지면서 이름만은 가지고 있었던 우리와는 다르게 이름도 없었다.
그저, '페이커(모조꾼)' 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뿐.
"테,텔레포트 인가요…? 하지만, 이 연구소에서 그 능력을 가진 녀석은 한명도…"
어느정도 공포에 의한 떨림이 멈춘 소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소녀의 말대로 이 연구소에 있는 수백명의 아이들중 공간이동 능력을 가진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다른 능력중에서도 그 정도로 희귀하고, 전략적 가치가 높은 능력을 개화한 녀석이 있다면 원하지 않아도 정보가 들어온다.
"최근에 실험에 참가했던 녀석이, 지금 겨우 개화해서 말이지. 우연찮게도 그게 텔레포트 더라고. 완전 럭키지"
"그 사람은…? 탈출했나요?"
"아니, 죽였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소년의 말에, 소녀는 꿀꺽. 하고 마른 침을 삼켰다.
"어떤 이유이든간에 저 녀석들은 우리 전부를 죽이려고 해. 보통 같았으면 이 연구소 통째로 폭발시키려고 했겠지만, 아무래도 그 정도 폭발을 견딜 녀석들은 이곳엔 많아도 너무 많거든"
그런 말을 하는 소년은 팔짱을 끼고, 진지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서 직접적인 구충작업을 시작한거야.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한명한명 자신의 손으로 숨통을 끊어버리는 거지. 하지만 이런 소동이 일어난다면, 텔레포트 능력자는 동료들을 데리고 탈출할거야. 사정거리를 감안해서 연구소 주위에 군대를 배치한다고 해도 사람을 눈에 띄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텔레포트 능력자가 진심으로 도주를 계속하면 잡기는 정말로 어려워. 그러니까 저 녀석들은 철저하게 조사를 했을거야. 텔레포트 능력자가 없다. 라고 판단했으니까 이대로 들어왔겠지"
그러니까.
"그러니까. 죽였어. 이 연구소에서 텔레포트 능력자는 없었던 거야"
"그럼… 왜 저를 구해줬나요?"
"어이어이, 거기서 왜 날 그런 눈으로 보는거야? 어쩔수 없는거야. 여기서 내가 살아남는 것도, 네가 살아남는 것도, 다 그 녀석의 희생이 전제조건 이라니까?"
"……"
"게다가,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난 네 목숨을 구해줬는데?"
분하지만, 확실히 그건 맞는 말이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녀석을 이용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죽인 녀석이지만, 이제와서 이 상황에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타인을 위해 은인에게 적대감을 뿜는것도 말이 안되는 소리다.
"뭐, 솔직히 선의만으로 구해준것도 아니지만"
"힛!"
그렇게 말하면서 소년은 소녀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네 능력도 훔쳐가야겠어. 질소장갑 이라니, 탐나잖아. 걱정마, 딱히 너한테 패널티가 있다던거 하는건 아니니까. 그리고 이곳에서 탈출도 시켜줄게. 나쁘지 않은 조건이지?"
"……"
정말로 소년을 믿어도 될까, 소녀는 불안한 마음에 망설였다.
하지만 페이커의 능력은 강제성. 서로의 합의하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여기서 동의를 하느냐 마느냐는 의미가 없었다.
소녀가 직접 자신의 혀를 깨물고 자살이라도 하지 않는한.
"반대쪽에서는 너랑 비슷한 능력을 가진 녀석이 파워드 슈트를 꼬챙이로 만들고 있길래 말이야. 별로 탐나는 능력도 아니고, 줄 생각도 없어보이길래 그냥 탈출시켜줬어"
…그 멍청한 여자도 탈출했나. 소녀는 조금 안심했다.
"좋아요. 어디까지나 구해주는 대가니까"
"아아 고맙구만"
그렇게 말한 소년은 '에… 근데 말이야' 라고 덧붙이며
"너, 이상한 버릇 같은건 없지?"
**
"우웅…"
"어이, 여보세요. 키누하타씨?"
"핫. 뭐, 뭐뭐뭔가요 하마즈라!"
"아니… 영화 끝났는데?"
"그아아아앗!? 설마 방금 잠든건가요!? 완전 기대하던 작가의 작품인데 잠들어 버리다니! 그건 그렇고 하마즈라는 왜 깨우지 않은거에요!?"
"나도 잤어"
"완전 죽어볼래요 이 멍청이가!?"
키누하타 사이아이의 취미는 영화감상이다. 그녀의 말투로 말하자면, 그것도 완전 구린 B급 영화의 감상.
오늘도 어김없이 키누하타는 새롭게 개봉하는 B급 영화의 팜플렛을 들고, 하마즈라를 평소의 큰길가에서 뒷길로 들어가, 좁은길로 다시 들어가고 들어가고 들어가면 나오는 영화관에 끌고갔다.
하마즈라도 이제는 완전히 단골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지만, 처음 키누하타와 왔을때 자기혼자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영화를 보는데 키누하타가 '아아, 완전 재미없어' 라고 말한 이후 충격을 받아 영화는 거의 보지 않는다.
"우우… 이 감독의 작품은 늦어도 다음달에 나온단 말이에요"
"한달마다 영화를 뽑는다고!?"
"뭐 어쩔 수 없죠. 다음달 영화를 기대합시다 하마즈라"
"게다가 회복도 빨라!? 너 완전 기대했다면서!?"
"시끄러워요 바보즈라. 같이 잤다면서 영화 끝날때나 깨우고 있고 완전 실망이에요"
그러자 하마즈라는 먹고 있던 팝콘의 마지막을 입에 탈탈 털어 넣으면서 말한다.
"(우물우물) 아니 너, 악몽이라도 꾸는 것처럼 표정이 안좋더만, 식은땀까지 흘리기에 깨운거야. 대체 무슨 꿈을 꿨길래 그래?"
"으음… 그런가요. 하마즈라는 악몽을 꾸고 있는 소녀의 얼굴을 완전 열심히 감상했다. 이말이군요"
"어째서 그런게 되는거야!?"
"타키츠보한테 완전 이를거에요"
"그,그것만은 좀…"
순식간에 당황해 허둥지둥 하는 하마즈라의 표정을 보고 키누하타는 재밌다는 듯이 쿡쿡. 하고 웃는다.
"그냥 조금. 완전 옛날 꿈을 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