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 5화
일의 뒤처리에 대해 고민할 필요는 다행히도 없었다.
액셀러레이터를 공격하던 Equ.DarkMatter는 새로운 타겟인 컨트롤러를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다진 고기를 만든후 유해물질조차 나오지 않는 형태로 완벽하게 증발했고, 페이커가 처리하지 못한 슬라임은 페이커의 주먹에 날아간 붉은색 슈트를 입은 녀석의 머리를 주워온 액셀러레이터가 어떻게 조종하자 가면의 아래쪽에 있는 2장의 날개에서 발사된 물질에 의해 쌍소멸했다. 아마, 저 무기는 처음부터 폭주한 슬라임을 제거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것일 것이다.
전투가 일어난 장소가 병원이라는 것이 불행중 다행이었다.
페이커는 슬라임의 검은 가시에 꿰뚫려 왠지 모르게 출혈이 멈추지 않는 상처를 개구리를 닮은 의사에게 치료 받고 있었다.
"혈액의 응고를 저지시키는 성분이군. 이런건 처음보는데, 헤파린이나 히루딘도 아니고, 완전히 새로운 물질이야"
병실에 있는 처참한 시체를, 사람들에게 시켜 치우게 하면서 개구리를 닮은 의사는 말했다.
의사이면서, 동시에 과학자인 개구리를 닮은 의사는 페이커의 상처에 흥미를 가졌지만
"제 2위의 능력으로 만들어진 물질이니 연구를 해도 쓸모없어"
액셀러레이터는 개구리를 닮은 의사의 흥미를 쓸모없다. 라고 잘라버리며, 목에 있는 전극을 길게 잡아뺀다.
"2위… 확실히 다크매터(미원물질)라는 능력이었지. 흠. 아마, 일반적인 혈액응고제로는 안될듯 하군. 한시간 정도 걸릴테니, 수혈로 버티고 있어"
개구리를 닮은 의사가 병실에서 나가자, 둘만 있는 병실에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
액셀러레이터에게 물어보고 싶은건 산더미 만큼 많았다.
어째서 자신에게 미래예지와 같은 기묘한 능력이 생겼는가? 그것의 사용방법은? 단순히 스위치를 키는것만으로는 작동하지 않는다. 완전한, 미지의 능력.
아까부터 계속해서 그것에 대해 생각하였지만, 마땅히 정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 이 이상한 능력이 생기기 전과, 이 이상한 능력이 생기고 난 후의 차이점. 물어볼것도 없이, 눈앞에 있는 이 괴물의 퍼스널 리얼리티의 단편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물론,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페이커는 자신의 몸을 지킬 힘을 얻었다. 그것만은 다행. 이라고 페이커는 생각했지만…
그런 기쁨 말고도 동시에 가스불을 안끄고 나온것 처럼 찝찝한 기분이 가슴속에서 휘몰아쳤다. 단순히 다른 능력자의 퍼스널 리얼리티를 훔쳐, 그 퍼스널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타인의 초능력을 흉내내는 페이커에게 완전히 새로운 능력이 생겼다는 것이, 너무나도 의아했다.
(……어떠한 오류지?)
이치대로라면, 액셀러레이터의 능력. 즉, 벡터변환을 훔쳐왔어야 했다. 물론 훔쳐올 수 있었던건 퍼스널 리얼리티의 한조각. 1000분의 1도 안되는 조그마한 조각을 훔쳐왔다면 레벨 5(초능력)의 규모에서 레벨 2(경능력)의 규모로 까지 떨어진 능력. 예를들면 '자신이 던진 물건의 벡터를 가속시켜 조금 더 빠르게 한다' 의 정도밖에 안되는 능력이라도 생겼어야 한다.
(제 1위의 능력이 미래예지라고 생각한다면 간단해. 하지만, 길거리에 있는 점쟁이가 더 잘맞는다고 소문난 예언게 능력으로 벡터를 조종하는 효과를 발생시킬 수도 없겠고…)
액셀러레이터는 분명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그랬듯이, 간단히 알려줄 생각도 없을 것이다. 단순한 전투를 떠나서 사느냐 죽느냐, 승리하느냐 패배하느냐는 결국 소유하고 있는 정보에 따라 결정되니까.
페이커는 어쩔 수 없이 서로의 목적을 위해 액셀러레이터에게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 하얀색의 괴물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따분하다는 표정으로 파이프 의자에 앉아있는 액셀러레이터의 목에서 검은색의 와이어가 나와있었다. 그리고 그것의 끝부분이 콘센트에 들어가 있었다.
"…그거, 충전식이었어?"
단순히, 여러개의 배터리를 갈아끼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페이커는 실망했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무슨 남의 일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거냐"
"응?"
"너도 마찬가지다"
"…………"
"탈부착인 배터리를 빼는순간 네트워크의 백업은 사라지는 거야. 상식적으로 새것으로 갈아끼울수도 없어"
"하, 하긴…"
헤븐 캔슬러의 말대로, 자신은 배터리를 빼는 순간 뇌가 오버히트하여 죽어갈 것이다.
"능력을 사용했다면 여유가 될때마다 충전해둬. 한시간이면 충분하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페이커는 자신의 왼쪽 목에 달려있는 전극을 손으로 더듬는다.
생각보다 전선은 쉽게 뽑을 수 있었다. 고정되어 있는 핀을 옆으로 옮기자 전극의 아래쪽에서 와이어 같은 전선이 나왔다. 그 전선을 길게 늘려, 대충 콘센트에 넣으니 목에 조금 찌릿 하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다시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느낌. 머리속에 무언가 끊어진 선이 연결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당신이 다시 잠금장치를 설정한것 아니었어?"
붉은색 슈트를 입고 있는 녀석을 쓰러트린 직후 페이커는 능력을 사용할 수 없게됬다. 그것에 대해, 당연히 액셀러레이터가 다시 잠금장치를 설정한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원한다면 다시 설정해주지"
"……"
아무래도 단순하게 전지가 다 떨어진 모양이었다.
저 제 1위와는 다르게 24시간 동안 사용해도 괜찮다는 배터리가 30분만에 소모됐다는 것이다.
(사용 가능한 조건은 모르겠지만, 제 1위 만큼의 연산능력이 소모되는건가)
"쫄따구"
"그냥 페이커라고 불러주면 안될까. 뭣하면 6위라고 불러줘도 되는데"
액셀러레이터는 페이커의 의사는 어찌되든 좋다는 식으로
"일단, 네놈의 지인이라는 녀석부터 처리하도록 할까"
**
외견상으로는 12세 전후의 어린 소녀. 쿠로요루 우미도리는 카미조 토우마의 기숙사의 욕실에서 잠자고 있었다.
딱히 어둠에 관련되지 않은 일반인이라도, 그 소녀의 평소 눈매나 표정을 본다면, 뒷세계에 관련됐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의 살기를 내뿜는 소녀지만, 눈을 감고 '코오…' 하는 소리를 내며 자고 있을땐 그저 보통의 귀여운 소녀였다.
벌써 몇일이나 되는 긴 시간동안 욕실에 감금되어 있는 소녀가 안쓰러워서 그런건지, 욕조에는 푹신푹신한 이불이 있고 바닥에는 히터와 게임기, 잡지, 심지어는 TV조차 있었다. 뭐 사실, 그 이불만은 평소에 카미조가 욕실에 잘때 사용하던 것이지만.
딱히 이 기숙사방의 주인인 카미조 토우마가 이상한 성벽을 가지고 있어서 12세 전후의 어린 소녀를 감금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풀어주고 싶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위험인물. 무엇보다 다시 한번 소동을 일으켰을 경우 학원도시의 의해 제거되거나 그 1위에게 살해당하는게 걱정이었다. 딱히 카미조와는 상관이 없는 소녀라고 해도 왠지 모르게 자신 때문에 죽는것 같으니까.
게다가, 이 소녀를 어떻게 해야할지 당사자인 녀석들과 이야기 해도 명확한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띵동.
"네에 나가요"
초인종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기숙사방의 주인인 소년이 나가는 소리를 듣고, 쿠로요루는 잠에서 깼다.
잠시 눈을 뜬채 멍하니 있었던 쿠로요루지만, 완전히 욕실 생활에서 익숙해 진것인지 우웅… 하는 소리를 내며 욕조에서 몸을 뒤척였다.
그리고 찰칵. 하는 욕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여어 쿠로요루"
소년이 아닌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팟! 하고 이불을 차며 몸을 돌린 쿠로요루는 얼굴을 찡그리며
"…너가 여기엔 무슨일이지"
"아니, 별건 아니고…"
비교적 최근에 만난 소년. 자신의 계획을 실패할거라 경고하던 페이커는 붕대를 칭칭 매고 있는 양팔을 보여주며
"1위한테 져버렸엉☆"
"………"
그 이름대로, 아니, 어쩔 수 없이 남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페이커가 혀를 내밀며 말하는 모습을 보고, 쿠로요루는 못볼걸 봤다는 표정이 된다.
"네놈은 볼때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군"
"너도 알고 있잖아. 어쩔 수 없다는 것쯤은"
"그래서"
그런 자잘한 이야기는 필요 없다는듯. 쿠로요루는 페이커의 말을 자르며
"설마 너도 이곳에 감금된다… 하는 이야기는 아니겠지. 로리콘 변태랑 한방을 쓴다니, 죽어도 싫다고"
쿠로요루는 씨익 이를 보이고 웃으며 일부러 페이커가 기분 나빠할 말을 악의를 담아 말한다.
"그런건 아니야"
하지만 기분 나빠하거나 태클을 걸지도 않은 페이커는 사악- 하고 한기가 드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나도 살려면, 너를 처리해야 되거든"
"!!"
그리고 페이커는 그 오른손을 앞으로 뻗는다. 직접 손이 닿는 거리는 아니지만, 아마도 어떠한 능력의 전조겠지.
등줄기에 달리는 오한을 느끼며 쿠로요루는 자신의 봄버랜스(질소폭창)으로 반격하려고 한지만, 저항감을 느낀다.
포박용 줄이라기 보다, 이사를 할때 사용하는 듯한 얇은 줄이, 자신의 펑키한 옷차림에 묶여서 구속복으로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미조는 일부러 혼자서도 줄을 풀 수 있도록 느슨하게 묶어 배려를 해주었지만, 양팔을 못쓰는 상태에서 그 줄을 푸는데에는 아무래도 어느정도 시간이 걸린다.
(바, 방심했…!)
방심했다.
그 사람 좋아보이는 소년의 페이스에 말려들어 자신의 처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지금 자신은 목숨을 걸고 싸우던 적에 의해 감금이 된 상태. 그리고 필요 없어진 자신을 제거하기 위해 누군가가 들어올 수 있다는 것 정도는 당연했다.
그 일순간을 노려 추적자를 죽이고 탈출하는데에 신경을 써도 안될 상황에, 왠지 모르게 '도망가도 상관없다' 라는 식으로 대해주는 소년 때문에 평소의 감각이 마비된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상대는 6위의 레벨 5(초능력자). 파워드 슈트의 지원도, 수백개의 로봇팔도 없는 쿠로요루가 상대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었다.
새파랗게 된 얼굴로 당황한 쿠로요루를 보며 페이커는 손가락을 튕긴다.
욕실에 있는 얼마 안되는 공기가 흔들리는듯 하더니, 사악! 하고 무언가 베는 소리가 났다.
"……………………?"
살짝 눈물이 고인채 눈을 질끈 감은 쿠로요루는 아무리 기다려도 공기의 칼날이 자신을 두동강 내지 않자, 살짝 눈을 떴다. 거기엔
"풉…………………………………"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는 페이커가 있었다.
동시에 저항감이 사라졌다. 아까의 사악! 하는 소리는 쿠로요루를 구속하고 있는 얇은 줄을 자른것이었다.
잠시동안 상황을 이해 못한 쿠로요루에게, 페이커는 더이상 웃음을 찾기 힘든지
"푸하하하하하핫!! 나를 놀려먹으려고 하다니 백년은 이르다고! 로리콘 변태한테 낚이니까 어떠냐!!"
퍼어어어어엉! 하고 폭음이 발생했다.
"응?"
고개를 푹 하고 숙이고 있던 쿠로요루의 양손. 정확히는 쿠로요루가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그 양 손바닥에서 막대한 압력으로 모든것을 절단하는 질소의 창이 만들어지고
"뒈져버려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엇!!"
새빨간 얼굴로 전차를 앞뒤로 뚫을 수도 있다는 창을 그대로 찌른다.
하지만 그 봄버랜스(질소폭창)과는 상극인 키누하타의 오펜스 아머(질소장갑)를 사용하고 있는 페이커의 몸이 뚫릴 일은 없었다.
계속해서 질소의 창을 만들어, 그것을 투척하려고 한 쿠로요루였지만
"내 이럴줄 알았지!!"
그런 말을 하며 등장한 머리가 뾰족뾰족한 소년이 몸을 던져서 그 모든 이능을 지우는 기묘한 오른손으로 질소의 창을 막았다.
"너희들! 남의 기숙사를 전력으로 부수려고 하지마!"
공격성만이라면 최고라고 칭해지는 레벨 4(대능력자)와 학원도시에 7명 밖에 없는 레벨 5(초능력자)의 공격보다 기숙사의 수리비가 더 걱정인 소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