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문화 콘텐츠 사이트 삼천세계

Faker


원작 |

네 번째 이변 11화


**

시간으로 치자면 5분 정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동안 성인과 악마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다.

주위에 있는 다섯명의 아마쿠사식 멤버들은 전투에 참가하지도 못한채, 분한듯 그 교전을 지켜보고 있다.

타테미야도, 우시부카도, 코우야기도, 츠시마도, 이사하야도, 그 괴물중의 괴물인 후방의 아쿠아와 교전해 승리한 잔뼈가 굵어진 프로 전투원이지만, 그런 그들도 이런 양상의 전투는 목격한적이 없었다.

칸자키와 신부의 전투는, 칸자키와 후방의 아쿠아가 교전했을때 처럼 화려하지는 않다.

성인과 성인. 검과 메이스가 부딪히는 여파만으로 근처의 가로수를 날려버리고, 금속난간을 설탕 공예품처럼 찌그러트리고, 잔상마저 보이는 움직임으로 서로의 무기를 맞대고 고도의 마술을 사용하는 양상과는 달리, 혼자서 성인 다섯명을 죽인 괴물은 평범히, 불길한 마술을 사용할 뿐이다.

자신이 루시퍼의 힘을 휘두른다고 주장하는 동양인 신부는 성인처럼 음속을 넘는 스피드도, 그에 비례하는 괴력도, 성인급의 방대한 마력량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가지고 있는건 어떠한 마술이라도 지워버려, 동시에 그 제어권을 가져가는 악마의 왼손. 그리고, 강철과도 비슷한 강력한 육체만으로 성인을 압도하고 있다.

"칠섬!"

"무의미. 학습능력이 없는건가"

상대는 천사의 마술인 '일소'까지 쓰고, 마도서 '악마 숭배'를 완전히 해석했다는 괴물중의 ​괴​물​이​다​. ​

단순히 장난을 치고 있는거다. 라고, 츠시마는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일부러 칸자키를 상대로 봐주고 있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제길, 뭘 어떻게 해야하는 거야?"

양손도끼를 들고 있는 우시부카가 입에 고인 피를 뱉으며 말했다.

마술을 무효화하고, 무효화한 마술의 제어권을 뺏어 그대로 사용하는 상대에게 마술적인 공격을 하는것은 아군을 공격하는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공격의 효과가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그 공격은 자신들의 아군인 칸자키에게 돌아간다.

"우시부카씨의 도끼도 소용없으면 제 단검이나 츠시마씨의 세검으로도 무리에요"

마술적인 처리를 한 물리적인 공격에도 조금의 미동조차 보이지 않는 신부는 자신의 목적인 성인이 나타나자 아마쿠사식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듯 무시했다.

다수의 전투에 경험이 많은 아마쿠사식이지만, 철저하게 이쪽을 무시하는 상대로는 전투의 방해조차 할 수 없다.

"그럼, '강제전이' 술식으로 프리스티스를 다른곳으로 날려버리는건"

불가능해. 라고 교황 대리. 타테미야 사이지는 츠시마의 말을 끊으며,

"그건 '침입자'를 상대로만 쓸 수 있는 술식이야. 게다가 가능하다고 해도 25분 정도 후면 교토가 지도에서 사라진다. 눈속임인지 아닌지는 둘째 치더라도 프리스티스가 가만히 있을리가 없어"

"그럼, 이대로 구경만 하고 있으라는 건가요!?"

"…적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지"

"저기, 츠시마씨"

코우야기는 둘의 심각한 대화에 끼어들기가 미안한듯이 쭈뼛거리다가, 타이밍을 잡은듯 이야기를 걸었다.

"아까 츠시마씨가 공격받을때, 저 신부가 굉장히 동요한듯 했는데 무슨 일인가요?"

츠시마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것 같았던 신부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순간 약해질것같은 마음을 붙잡느라 고개를 흔들었다.

"저한테 '혜련이' 라고 했던것 같은데요"

"한국말인가요?"

"글쎄, 사람 이름인가?"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단 낫겠지"

초조한듯, 엄지손가락의 손톱을 물고 있는 타테미야가 말했다.

타테미야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다이얼을 눌러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이, 무사해?」

​네​세​사​리​우​스​(​필​요​악​의​ 교회)에 연결된 전화에서는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전투중이다. 시간이 없어. 간결하게 이야기 하지"

타테미야는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스테일에게 전했다.

악마의 상징. 신부의 왼손. 선악과. 그리고, 악마의 이야기를.

전화 너머에서 화륵, 조그마한 불꽃이 나는 소리가 나는듯 하더니 이내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일것이다.

깊게 한숨을 쉰 전화 너머의 남자. 스테일이 말했다.

「농담이지?」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만"

「천사라면 모를까, 본격적으로 마술이 발달한 중세시대부터 지금까지 악마는 한번도 관측된적이 없다고. 단순히 그럴듯한 모양새로 악마를 사칭하는것일 수도 있겠지만… 농담 치고는 앞뒤가 너무 딱 맞아 떨어지는군. 인류에게 마술을 전해준 타락천사라면, 모든 마술을 무효화하고 그 제어권을 가져오는것도 당연해. ………루시퍼. 그 말이 사실이라면 로마 교황청 꼭대기에 있는 십자가라도 가져와야 할텐데」

"시간이 없어. 악마의 '일소'는 30분도 안되서 교토를 지도에서 지워버릴거다. 네세사리우스 측에서의 지원은 없는거야?"

「동맹관계라는 이유로 학원도시에서 초능력자를 지원해준다고 하는군. 슬슬 도착할거라고 생각한다만」

"…카미조군의 오른손은 마술뿐만 아니라 초능력도 지웠다고"

「없는것보단 낫겠지. 그리고 카미조 토우마의 오른손과 저 악마의 왼손의 관계는 나도 궁금해 죽겠지만, 일단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도록 하지. 전투중일때 단순히 보고를 하러 전화를 한건 아닐테고, 물어볼게 있는거 아냐?」

타테미야는 츠시마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진지한 표정의 츠시마도 알았다는듯 고개를 끄덕이고, 그 핸드폰을 넘겨받았다.

"아마쿠사식 크리스트 처교의 츠시마입니다. 교전중, 신부가 신경쓰이는듯한 말을 해서요"

「결론만 말해」

"저를 보고 혜련이. 라고 말했어요. 무언가 굉장히, 당황한듯한 표정이어서…"

「…조금만 기다려봐」

전화 너머에서 챠략, 챠락 하면서 종이를 넘기는 듯한 소리가 났다.

계속해서 전화를 넘기면서도, 입에 물고 있는 니코틴을 크게 들이마신 스테일은 큰 한숨을 쉬었다.

「이혜련. 이현식의 딸이군. 츠시마라고 했지? 너랑 꼭 닮았군. 머리를 검은색으로 물들이고 얌전한 옷을 입는다면 말이지만」

"그럼 그 딸은"

「죽었어. 4년전에」

"……"

자신의 모습에서 딸의 모습을 떠올린걸까, 항상 겉으로는 강한척 하면서도 마음은 여린 츠시마는 울컥. 신부의 표정을 떠올리고 가슴이 찔려왔다.

「아니, 잠깐」

스테일은 긴장한듯한 목소리를 내더니, 전화 너머에서 무거운 책을 옮기는듯한 소리가 났다. 방대한양의 서류일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촤르륵 하고 서류를 둘러다보던 스테일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항상 불행해 불행해 라던 그 녀석이 본다면 기절하겠군. 그토록 신을 저주하던 이유가 이거였나」

이거 심하군, 하고 중얼거린 스테일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불쾌한것을 본것같은 기분나쁜 목소리였다.

「아내는 딸을 낳고 병사. 딸은 8살때 갑자기 온갖 저주와 불치병이 생겼고, 지극정성으로 딸을 보살펴 10년 후엔 기적적으로 완쾌, 인데. ………그 몇일 후 정신이상자들에게 납치당해 살해당했어. 게다가 그 스너프 필름이 신부에게 보내졌다고 하는군」

"스너프 필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츠시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봤지만, 스테일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 '그런건 알필요 없어' 하고 타테미야가 핸드폰을 뺏었다.

원하는 정보를 얻은 타테미야가 스테일에게 대충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자, 칸자키와 신부의 교전에서 이변이 발생했다.

**

전투는 화려하지 않다.

마술적 공격이라는 선택지가 사라진 칸자키는 계속해서 칠섬을 쏘아내고, 신부는 그것을 방어조차 하지 않는다.

성인 살해자의 전투방식은 기본적으로 마술에 대한 카운터.

만약 칸자키가 성인이라는 이점을 이용해 거대한 마술을 사용하는 전투방식을 즐겨 사용했다면, 그 제어권을 뺏긴 성인 살해자에게 일격에 패배했을 ​것​이​다​. ​

칸자키는 무의미한 공격을 계속 하면서도 고민하고 있었다.

(유섬을, 사용해야 하는건가요)

다각종교융합형인 아마쿠사식이기에 사용할 수 있는 칸자키의 필살기.

크리스트교 술식이 할 수 없는 일은 불교 술식으로, 불교 술식이 할 수 없는 일은 신도 술식으로, 신도 술식이 할 수 없는 일은 크리스트 술식으로.

극한의 극한까지 끈임없이 서로의 단점을 보강하여 성인의 한계조차 넘어버리는 유섬은 살아있는 천사마저 벨 수 있는 큰 기술이다.

당연히, 살아있는 사람에게 쓸 수 있을만한 기술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대략 20분 정도 후엔, 악마의 '일소'가 교토를 지울것이다.

(어쩔 수 없나요)

살짤 얼굴을 찡그린 칸자키가 검집에 검을 집어넣었다.

신부가 그 행동에 반응하기도 전, 칸자키의 검이 번뜩였다.

극한의 극한까지 술식은 신부의 왼손을 피해 마술의 효과가 줄어들지도 않은채 신부의 몸을 베었다.

"큭,"

지지지직, 종이가 찢어지는듯한 소리와 함께 신부가 작게 소리를 냈다.

아무리 강철같은 육체를 가지고 있는 신부라도, 천사마저 벨 수 있는 유섬은 견딜 수 없을것이다.

"이것이 30% 출력입니다. 항복하세요. 다음엔 진심으로 가겠습니다"

다시 검집에 검을 넣으며 자세를 잡은 칸자키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칠섬의 와이어와 폭발로 대부분이 타고 찢어져 있는 신부복의 너머, 유섬으로 인해 베여진 상처의 아래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비늘.

신부의 벗겨진 피부 아래에, 매우 촘촘하게 암청색의 비늘이 솟아 있었다.

물고기라기보단 마치 파충류의 비늘같았다. 칠섬을 비롯한, 다른 물리적인 공격을 막아내던 이상하리라만큼 높은 강도의 정체.

"뭐, 당신 설마"

로마 정교가 아무 이유 없이 마도서를 수집하고, 그 마도서를 평범한 사람이 읽지 못하게 하는것이 아니다.

마도서는 방법에 따라서 읽는자에게 커다란 힘을 선사하고, 옳은 방향의 힘을 다룰수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마도서에 적힌 이상식(異常識)과 위법칙(違法則)에 잡아먹히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정신의 붕괴. 그리고 나아가서는, 육체까지 변모한다.

"마도서를, 완벽하게 해독하지 못한건가요!"

사실 당연한 것이었다.

겨우 3년 동안 마도서를 완벽하게 해독하는것은 불가능하다. 그것도, 마도서 중에서 가장 독기가 강하다는 '악마 숭배'라면 더욱.

그가 원한건 힘. 다른 모든것을 포기하고, 인간으로서의 육체까지 포기하면서, 이런 끔찍한 부작용을 견디면서까지 원한건 단순한 힘일것이다.

"그렇게까지 자신을 몰아붙여서, 도대체 뭐가 목적인 겁니까! 아직 늦지 않았어요! 마도서의 힘을 포기하고 적절한 처치만 받으면"

"닥쳐!!!!"

가슴에서 피를 뚝뚝 흘리며 신부는 소리쳤다.

"의문. 성인 네놈은, 신을 믿나?"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그 잘난 신은 무엇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기아! 질병! 전쟁! 자연재해! 2000년동안 수많은 인간들의 절망을 먹고 자란 신이라는 작자는 대체 뭘 하고 있느냔 말이다! 태어날때부터 신을 닮은 자. 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장해없이 모든것이 잘 풀려나갔을 녀석들인 네놈들이, 진정한 절망을 알수있을거라 생각하나! 희망? 웃기지마!! 한줄기 희망을 잡고 어떻게든 기어올라간 절벽의 끝은 더욱 커다란 절망뿐이다!! 신이란 절대악이다. 대가를 받고 소원을 이루어주는 악마가 훨씬 깨끗해 보일 정도의 절대악이란 말이다!! 네놈들의 행복은 압도적으로 많은 타인의 불행위에서 이루어진다!!"

원망이 쏟아진다.

이 세상의 존재하는 모든 것을 원망하는듯한, 커다란 인간의 악의가 칸자키에게 쏟아진다.

지옥의 밑바닥을 핥은듯한 표정의 신부는 피눈물을 흘리며 저주하고 있다.

'절망'이라는 단어를 의인화한다면, 필시 이런 모습일 것이다.

직접적으로 자신을 향한 악의에 칸자키는 온몸의 솜털이 삐죽 스는 ​느​낌​이​었​다​. ​

피부는 경련하고 손은 떨렸다. 무언가의 정신적인 마술이 아닐까 의심조차 가는 악마의 절규는 철저하게 칸자키의 신념을 농락해간다.

"신앙이 부족하다며 나 자신을 원망했다! 가까스로 저주의 굴레에서 벗어난 딸을 토막내, 나에게 그 비디오를 보낸 정신이상자들을 원망했다! 세계를 원망했다! 나아가서는 신을 원망했다! 내가 대체 무엇을, 무엇을 잘못했단 말이냐. 무엇을 잘못했기에 신은 나에게 이런 저주를 내린 것이란 ​말​이​냐​!​!​" ​

신부는 말한다. 네놈이 원망스럽다고.

질량조차 느껴지는 악의에 칸자키는 말을 이을수가 없었다. 무심코, 한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신이 어째서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을것 같나. 생각해볼 필요도 없다! 선악과를 먹어 선(善)과 악(堊)을 구별할 수 있게 된 아담과 이브는 눈치챘겠지. 신이야말로 ​절​대​악​(​堊​)​이​라​고​!​!​ 그렇기에 신에게 저주를 받아 추방된것이다!"

쩌적, 쩌적, 신부의 얼굴가죽이 조금 벗겨졌다.

벗겨진 왼쪽 얼굴에는 입이 귀까지 찢어져 ​있​었​다​. ​

그 짐승같은 형태의 입은 삐죽삐죽한 송곳니가 나있고, 한쪽 눈은 보라색으로 안광을 내뿜고 있다.

"Ultor666 (내가 믿는 신에게 복수를) 마법명을 말해라 성인!!"

"아, 아아, 아…"

마법명을 말한 상대에게는 자신의 마법명을 말하는 것이 예의.

하지만, 칸자키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법명이란, 마술사들이 마술을 배우게 된 이유이자 자신의 가장 중요한 신념.

Salvare 000(구원받지 못한 자에게 구원의 손길을).

그 신념대로, 설사 적이라도 구원의 손길을 뻗는 칸자키의 신념이, 부서지고 있었다.

'저런것'을 구원할 수 있을리가 없다.

신을 닮았다는 축복으로 모든 것에 재능을 발휘하는 자신때문에, 상대적으로 불행해지는 주변 사람을 위해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

하지만, '저것'은 칸자키의 존재 자체를 저주하고 있다. 세계를 저주하고 있다. 신을 저주하고 있다.

이제는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조차 모를 정도로 마도서에 잡아먹혀 육체까지 뒤틀리고 있는 '저것'을, 대체 어떠한 방법으로 구원해야 한단 말인가.

칸자키의 정신은 이미 한계에 부딪혔다.

정확히는 마도서에 의한 감정의 역류. 이미 '저주'의 카테고리에 들어갈 그 원망이, 칸자키의 신념을 검은색으로 물들인다.

뚜벅뚜벅, 칸자키의 목숨을 취하러 악마가 걸어온다.

그리고 순간,

​"​초​오​오​오​오​오​오​오​오​오​!​!​!​ 굉장한 펀치!!!!!"

파아앙! 커다란 파괴의 힘이 위에서 아래로 악마를 내려찍었다.

"이몸, 등장! 우왓, 이거 뭐야. 인간?"

시로란에 욱일승천기가 그러져있는, 장소에 따라 무지하게 욕을 먹을것같은 패션의 남자는 하늘에서 내려온듯 했다.

"네놈!!"

"흡!!'

바닥에 쳐박혀 있던 악마가 일어나 부정한 왼손을 휘둘렀다. 하지만 소기이타는 그 공격을 피하지도 않은채, 앞에 있는 허공에 주먹을 휘둘렀다.

쿠콰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왼손을 뻗고 있는 신부가 그 왼손채로 날아갔다.

(저 왼손에 지워지지 않는다구요!?)

소기이타는 헤헷. 하고 손가락으로 코아래를 훔치더니, 뒤에 있던 칸자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우. 기다란 포니테일에 기다란 장검. 당신이 칸자키지?"

"당신은…"

"여인에게 댈만한 이름은 없다! 그냥 사랑과 근성의 남자라고 알아주면 좋겠군!"

"……"

"그것보다, 혹시 앞머리를 짧게 자르고 주사위 피어스를 한, 매사가 귀찮아보인다는 표정의 소년은 보지 못했어? 자기혼자 텔레포트로 내려가더니 보이질 않는군"

칸자키는 생각했다.

(바, 바보군요 이사람… 분위기도 읽지 못하고… 하지만 덕분에, 조금 여유가 생긴듯 하네요)

"으음? 뭐가 그렇게 웃기지?"

피식, 웃었던 칸자키는 정신을 가다듬고, 눈앞에 있는 현실을 노려봤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시간이 없어요. 10분 내에 저 신부를 제압해서 '일소'의 술식을 취소시켜야 합니다"

"뭔진 모르겠지만 무지하게 위험한 상황같군. 꽤나 진심으로 쳤는데, 대단한 근성이잖아"

눈을 가늘게 뜨고 신부가 날아간 방향을 쳐다보는 소기이타의 시선 끝에, 검은색의 형체가 일어났다.

신부는 쿨럭, 하고 피를 토했다. 뿐만 아니라 칸자키에게 베인 가슴의 상처에서도, 끈임없이 피가 흐르고 있었다.

칸자키의 유섬에 당한 상처는 결코 얕은 상처가 아니다. 슬슬 출혈량이 ​한​계​일​것​이​다​. ​

비틀비틀, 자신의 몸조차 가누지 못하던 신부가 그 왼손을 뻗는다.

"APBWDX (어린양은 울부짖는다)"

정체불명의 술식을 완성한 신부의 몸이 휘청, 하고 크게 흔들린다.

그 영향으로 술식은 정면에 있는 칸자키나 소기이타가 아닌, 아마쿠사식 멤버들이 있는 방향으로 조준됬다.

오른손이 아닌, 신부의 왼손에서 생긴 핏빛 가시덩굴은 마치 의지를 가진 뱀처럼 매우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피해요!!"

칸자키의 외침에, 아마쿠사식 멤버들은 크게 거리를 벌려 그 공격을 피했지만.

"!!?"

슈우욱. 눈이 아닌 열기로 먹이를 감지하는 뱀처럼, 핏빛 가시덩굴은 한번 노렸던 전과가 있는 적을 추적하듯이 날아갔다.

"츠시마!!"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핏빛 가시덩굴에, 츠시마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그 직후, 파아앙! 물이 가득찬 물풍선이 터지는듯한 소리가 나더니,

"후우. 아슬아슬했네. 대체 무슨 일이야?"

츠시마의 앞에는 뾰족뾰족한 머리의 소년. 카미조 토우마가 그 오른손을 뻗은채 서 있었다.

**

출혈과다로 인한 현기증으로 휘청거린 신부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자신의 공격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날아간것 때문은 아니다. 다른 사람이라고는 알고 있지만, 자신의 딸과 매우 닮은 소녀에게 그 공격이 날아간것 때문이다.

(술식의 취소도, 늦,나!)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이것은 일종의 속죄였다.

오로지 자신의 딸을 위해 살아왔던 신부는 결국 딸을 잃었다.

'죽은 딸을 위해서' 라는 대의명분으로 시작한일이다. 그런 신부가, 아무리 타인이라고는 해도 자신의 딸과 매우 닮은 소녀를 공격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소녀와 핏빛 가시덩굴의 사이로, 평범한 교복을 입은 소년이 끼어들었다.

소년이 오른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오른손에 닿은 핏빛 가시덩굴은 파아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공기가 터지듯 사라졌다.

저 소년이 자신과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것은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은 것이다.

그 사실에 먼저, 신부의 표정이 안도감에 물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절망으로 물들었다.

"아"

소녀의 앞에서 방패막이가 되듯 서서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소년.

그리고 그 뒤에 있는 겁에 질린듯, 이쪽을 쳐다보는 소녀의 표정.

"아, 아아ㅡ"

그 표정을, 신부가 잊을리가 없다.

자신의 딸을 살해한 정신이상자들이 보낸 테이프.

잔뜩 겁에 질려, 계속해서 '아빠. 살려줘. 아빠. 구해줘' 라고 말하던 그 표정을.

다만,

저 표정을 짓게 한 사람은 자신이었다.

공포의 대상은, 이번엔 자신이다.

아무리 어두운 어둠속을 걸어간다고 해도, 고귀한 목적은 빛이 되어 당신의 길을 밝혀준다.

하지만 그 빛을 잃는 순간.

그저, 어둠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뚝ㅡ

하고, 가슴속에 있는 무언가가, 끊어진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 사실에 신부는 미쳤다.

아니, 원래부터 미쳐 있었지만 저 소녀를 본 그 한순간만 제정신으로 돌아왔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 잠깐동안의 제정신이, 신부의 마음을 완전히 파괴했다.

신부는 자신의 얼굴을 쥐어뜯으며, 갈라지는 목소리로 최후의 영창을 외운다.

"MBKTMSKP (나의 피로 목을 축이고 나의 영혼으로 포만감을 느끼리라)

 ​D​G​D​B​W​D​V​B​ (부정한 것은 빛. 부정한 것은 신. 악마의 방식으로 복수하리라)

 ​M​S​Q​W​E​B​R​W​ (결코 구원받지 못할 영혼은 영원히 고통받으리라)

 ​T​Q​D​F​W​G​F​B​ (하지만, 나의 영혼은 그러한 가치도 ​없​으​니​) ​

 ​T​W​D​P​W​G​W​F​H​D​ (신이여. 용서하소서, 그대를 증오하겠나이다)"

쩌저적, 신부의 피부가 떨어진다. 떨어져 나가는 피부의 아래엔 암청색의 비늘이 솟아있고, 이마에서는 두개의 뿔이 생겨났다. 그 양눈은 불길한 보라색으로 빛나며, 최후엔 그 등에서 쩌저적, 소리가 나며 천천히 어두운 색의 날개가 솟아나려고 하고 있었다.

순간, 신부의 무게가 갑자기 늘어난듯 쩍, 하고 땅에 균열이 생겨났다. 신부의 주위로는 숨막힐듯한 독기가 뿜어져나오고,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복수를 하기 위한 힘을 위해, 악마에게 영혼의 일부를 팔았던 신부는 이것으로, 완전하게 인간의 영혼을 잃었다.

"이게 대체…"

다른 악마의 술식도 마찬가지였지만, 이 역시 마력의 흐름은 느껴지지 않는다. 생명력을 마력으로 정제하는 과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악마로 변해가는 신부의 비늘도, 뿔도, 눈도, 날개도. 그 모든것이 마력은 아니지만, 마력과는 비슷한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칸자키 카오리는 깨달았다.

"천사에 버금가는 양의 텔레즈마ㅡ!! 설마 악마가 소환되는 겁니까!?"

칸자키가 알고 있는 지식이 근간부터 무너져간다.

천사란 선악이 없는 신의 힘.

신의 의사에 따라 사람을 구하면 성스러운 하늘의 사자로 숭앙받고, 땅에 떨어져 진흙으로 물들으면 두려움의 대상인 악마가 된다. 악마와 천사는 종이 한장 차이, 그 본질은 같은것일 것이다.

그랬을 터였다.

분명 눈앞에 있는 이것은 천사의 힘인 텔레즈마로 이루어져 있고, 천사의 술식인 '일소'마저 ​사​용​한​다​. ​

하지만.

완전한 악의의 덩어리이자, 어둠밖에 느껴지지 않는 이 '악마'를, 과연 '신의 힘'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천사의 이면' 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이면은 얼마나 추악한 것이란 ​말​인​가​. ​

"신을 죽zbpeq야 ​빛​p​w​e​r​l​b​겠​d​s​f​w​d​z​는​q​z​e​t​y​p​w​"​

신부의 입에서 나오는건 이미 인간의 언어도 아니다.

"초!! 굉장한 펀ㅡ치!!!"

콰앙! 하고 소기이타의 '알수없는 힘'이 작렬했다.

알수없는 힘은 확실하게 신부의 육체에 데미지를 입혔다. 하지만, 그런 데미지는 통하지 않는다는듯, 신부는 미동조차 없다.

​"​우​오​오​오​오​오​오​!​!​"​

20분 가까이 뛰어와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카미조였지만, 눈 앞에 있는 저 불길한 것을 막아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

이론이나 느낌을 떠나, 본능적으로 자신은 저것을 막을 수 있다는 확신에 가까운 감각. 

(날개가 나오기 전에, 막아야해!)

소리를 지르며 뛰어오는 카미조를 보고, 악마도 '저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다​. ​

카미조는 그 오른손을 꽈악 쥐고, 그 주먹을 뻗는다.

악마는 그 왼손을 꽈악 쥐고, 그 주먹을 뻗는다.

쿵! 하고 '모든 이능을 죽이는 오른손'과 '모든 이능을 죽이는 왼손'이 부딪혔다.

결과는 단순했다.

파아아앙! 물이 가득한 물풍선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m​b​w​p​슨​a​e​w​f​g​안​q​n​r​u​j​는​z​m​q​p​e​m​g​수​q​m​w​"​

악마의 왼손부터, 서서히 그 몸에 달려있는 암청색 비늘이 떨어져나갔다.

보라색으로 빛나던 눈은 그 빛을 잃고, 뿔은 부러지고, 날개는 꺾여나간다.

결국에는 이매진 브레이커에 사라지는 이능처럼, 서서히 그 실체가 사라져간다.

​"​…​…​…​…​…​…​…​…​…​…​"​

허무한듯한 표정의 신부는 나지막히, 자신의 모국의 언어로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한국어는 커녕 영어도 모르는 카미조가 그것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는 알수없었다.

결국, 악마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

"악마니 뭐니, 이해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니잖아 이거"

조금 떨어진 건물에서, 그런 상황을 중간부터 지켜보고 있는 페이커가 말했다.

까딱했으면 교토와 함께 통째로 지도에서 사라질수도 있었던 페이커지만, 과학이나 마술의 범주를 넘은 '일소' 술식의 해석을 하기엔 무리였다.

갈수록 내 인생이 판타지해지는 구나. 라고 중얼거리는 페이커는 지긋지긋 하다며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네모난 기계로 눈을 돌린다.

학원도시제의 번역기다. 단순한 사전을 뛰어넘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음성 번역률을 자랑하는 이 기계는 인간의 목소리라면 조그마한 소음까지 확대해줘 번역하고, 그것을 자동저장까지 한다.

머리가 좋다고는 해도 페이커는 일본말밖에 하지 못한다. 이런 좋은 기계가 있는데 시간을 들여 공부를 하는것은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

번역기의 화면엔 신부가 마지막으로 중얼거린 말이, 일본어로 번역되어 텍스트로 떠 있었다.

『명확. 그렇군. 진짜는 네놈쪽이었나』



드립칠게 업ㅂ네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