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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 ◆GULJi96aoSzS 2013/09/01(日) 02:12:24.78 ID:8u/6m7Hj0
다음은 사회.
나는 2과목이고 유키노시타는 1과목이다.
어느쪽도 90점대를 맞기는 했지만 점수가 높았던 일본사는 유키노시타의 세계사와 동점이었다.
「히키가야 군치고는 꽤 하잖아」
하고 분해하면서도 감탄했다.
아니, 당신 이과잖아……, 분한 건 문과인 내쪽이라고.
유키노시타를 이 이상 우쭐하게 하고 싶지 않아 이 말은 봉인했다.
233: ◆GULJi96aoSzS 2013/09/01(日) 02:13:46.99 ID:8u/6m7Hj0
사립 문과 3과목의 마지막은 영어다.
귀국자녀인 유키노시타는 200점 만점이었다.
나는 160점대.
이것도 감지덕지였지만, 유키노시타한테서
「20점 정도는 더 받아야겠네」
하고 시원하게 혼나고 말았다.
234: ◆GULJi96aoSzS 2013/09/01(日) 02:15:17.26 ID:8u/6m7Hj0
「그런데 리스닝은? ……나는 50점 만점인데」
하고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유키노시타.
「난 35점이다.」
「우리 학교는 영어를 꽤 강조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하고 기막힌다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너 바보야? 하고 매도당하는 듯한 분위기다.
235: ◆GULJi96aoSzS 2013/09/01(日) 02:17:24.27 ID:8u/6m7Hj0
「……뭐, 이정도지. 전에도 말했지만 오랄 커뮤니케이션(oral communication)하려고 하면 옆자리 여자애가 핸드폰 만지작거리니……」
하고 자조적으로 말하자 유키노시타는 그렇지 그렇지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간단하게 납득하지 말라고.
「히키가야 군에게……, 이상한 벌레가 붙으면 곤란하니. 알았어. 수험에서 리스닝은 고려하지 않으니까」
뭔가를 중얼중얼 혼잣말하고 있어서 앞부분은 거의 들리지 않았지만, 「알았어」하고 방긋 웃는 건 하지 말아줄래.
역시 날 포기한 건가?
공부에 대해 이야기할 때 유이가하마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래도 리스닝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돼서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부터도 오랄 커뮤니케이션 때는 외톨이로 있어도 괜찮다는 거지?
딱 앞부분 채점이 끝났을 때, 주문했던 컷 스테이크가 나왔다.
236: ◆GULJi96aoSzS 2013/09/01(日) 02:20:01.29 ID:8u/6m7Hj0
「이 가격에 이정도 맛은 꽤 괜찮네」
하고 유키노시타는 감탄한다.
부잣집 딸인 유키노시타.
모친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자취를 시작했다.
드링크바도 그렇고 이 컷 스테이크도 그렇고, 이렇게 견문을 넓혀서 세상을 알아가는 것은 유키노시타한테 있어도 플러스가 될 것이다.
……아니, 내가 끼어들 일이 아니지.
바로 그 생각을 부정했다.
242: ◆GULJi96aoSzS 2013/09/01(日) 18:48:10.32 ID:8u/6m7Hj0
식사를 끝내고, 자기채점을 계속했다.
이번부터 수험과목에 포함된 수학과 이과다.
급히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싶어지지만, 이제 와서 결과는 어떻게든 바뀌지 않는다.
이과부터 채점을 재개했다.
나는 한 과목 째, 유키노시타는 두 과목 째다.
상수로 양쪽 다 90점대를 얻은 유키노시타는 여유로운 표정이다.
243: ◆GULJi96aoSzS 2013/09/01(日) 18:49:38.56 ID:8u/6m7Hj0
나는 70점대.
급하게 준비한 것 치고는 잘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자기만족을 아주 간단하게 때려 부수는 유키노시타.
「이쪽도 20점 더」
하고 담박하게, 싹뚝하고 벤다.
이게 무슨 국정감사냐고. (역주 : 事業仕分け)
……그러고 보니 이런 것도 있었지.
조금은 부드럽게 말해줘도…… 그런 걸 유키노시타한테 기대해봐야 어쩔 수 없겠지.
여기는 현실을 직시해서 죽었다고 생각하고 공부할 수밖에 없다.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혹시 재수하게 되면……, 내년부터 이과가 또 한 과목 추가된다고 하는 것 같다.
이과 2과목을 포함한 5교과 8과목이라니, 문과 수험생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냐.
뭐야, 이 대학?
244: ◆GULJi96aoSzS 2013/09/01(日) 18:51:02.55 ID:8u/6m7Hj0
마지막은 수학이다.
…….
갑자기 현실과 마주하는 게 두려워졌다.
비참한 꼴을 당하는 게 두려워졌다.
이런 건 오래 전에 익숙해져 있을 텐데.
아니, 그게 가장 큰 이유는 아니다…….
「자, 채점해보자.」
그렇게 말하는 유키노시타의 목소리에 반응할 수 없는 내가 있었다.
눈이 점점 밑으로 향하는 게 스스로도 느껴졌다.
245: ◆GULJi96aoSzS 2013/09/01(日) 18:52:44.19 ID:8u/6m7Hj0
「히키가야 군……」
그건 몹시 냉담한 어조였다.
지금까지 들었던 적 없을 정도로 냉담한 어조였다.
더 이상 어쩔 수 없을 정도,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결국 생기를 잃은 것처럼 그저 힘 없이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유키노시타는 말하던 것을 멈추고 후우하고 한숨을 쉬었다.
246: ◆GULJi96aoSzS 2013/09/01(日) 18:55:05.23 ID:8u/6m7Hj0
아주 침울한 기분에 지배당해 사고가 멈춘 것 같았다.
그 때,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내 시야 구석에 어렴풋이 비춘 문제용지 책자가 밖으로 밖으로 질질 끌리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야에서 사라지는 책자의 행방을 눈으로 좇고 있었다.
그러자 앞으로 나아가고 있던 책자는 잠시 그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책자가 다시 움직인다고 생각하자 이번에는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 눈도 그것에 호응했지만, 이미 눈만으로는 그 움직임을 좇을 수가 없게 되었다.
자연스레 머리도 그 움직임을 따라 위로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인력에 의해 끌려가는 것과 같이…….
248: ◆GULJi96aoSzS 2013/09/02(月) 00:01:31.43 ID:RzeIM8Nk0
머리가 완전히 떠올랐을 때 책자는 공중에 뜬 채로 정지했다.
순간 멈추는 게 늦었던 내 눈앞에는 수학ⅠA하고 고딕으로 큼직큼직하게 쓰인 문자가 있었다.
그저 멍하게 그 4글자를 보고 있으니, 느닷없이 시야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너무나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초점이 흐트러져서 뿌연 세계가 펼쳐졌다.
앗하고 필사적으로 초점을 맞추자, 문제용지 책자 대신에 온화한 웃음을 띄운 유키노시타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비췄다.
「히키가야 군, 돌아왔어? 지금까지 어디 갔다 온 걸까?」
그 따뜻한 목소리에 전신이 휩싸여, 유키노시타와 같이 있을 때 느끼는 기분좋은 감각이 되살아나는 게 느껴졌다.
249: ◆GULJi96aoSzS 2013/09/02(月) 00:03:07.04 ID:RzeIM8Nk0
-「유키노시타는 다정해서 때때로 올바르다.」
히라츠카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유키노시타의 평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나를 향한 유키노시타의 따뜻함이라니 지금까지 요만큼도 느낀 적이 없는 나지만, 이 때 처음으로 그 따뜻함을 깨달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차례 나를 내치려고 하면서도, 꾹 참고 나를 제정신으로 되돌아오게 해준 유키노시타의 따뜻함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찼다.
나는 더욱더 유키노시타 유키노가 좋아서 좋아서 견딜 수가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