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ferstehung
"푸핫~"
기겁을 하며 미키야는 몸을 일으켰다. 크게 심호흡을 하며 막혔던 숨을 토해낸다.
"이제야 일어난 거야? 잠꾸러기."
귀에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고개를 들자 눈 앞에 보이는 것은 파란색 기모노와 붉은 점퍼. 귀 밑 아래로 아무렇게나 친 단발. 그의 연인, 료우기 시키였다.
"정말이지, 굳이 그렇게 깨울 필요는 없잖아?"
얼마나 세게 잡았는지 아직까지 빨간 코를 문지른다. 코를 막아서 숨이 막히게 해서 깨우다니. 좀 더 부드러운 방법도 있을텐데. 이를테면 귓가에 숨결을 불어넣는다던가, 모닝키스도 괜찮겠지.
"어쩔 수 없었어. 아무리 흔들어도 깨지 않았으니까."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리는 시키. 부끄러워하는 얼굴이 귀엽다.
"그런데 토우코는 어디 간 거야? 남매가 사무실에서 사이좋게 잠이나 자고 있다니."
무슨 소리지? 고개를 돌리자 책상에 엎어져 자고 있는 아자카의 모습이 보였다.
"....."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읽고 있던 책까지 베고서 곤하게 자고 있는 아자카. 항상 단정한 모습만 보이던 여동생의 저런 흐트러진 모습이라니. 역시 아자카도 피곤했던 걸까? 한숨을 쉬며 다가가 옷걸이에 있던 코트를 빼서 덮어주었다.
"그런데 미키야. 그것은 뭐지?"
난데없는 시키의 물음. 그녀의 시선은 날카롭게 나를-정확히는 나의 가슴을 향하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시키?"
의아해하며 몸을 살폈다. 옷도 단정하고, 어디 구겨지거나 접힌 곳도 없다. 무언가가 묻은 것도 없었다. 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예전의 녀석들과 동류인가. 어서 나와!"
버럭 하고 외치는 시키. 순간 나의 가슴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눈 앞에 있는 것은 작은 빛의 구체. 부드러운 보랏빛 광채를 흩뿌리며 그것은 허공에 떠있었다.
'이 느낌... 느껴본 적이 있어.'
방금 전까지 함께 있었던 듯 한 익숙한 친밀감을 미키야는 느꼈다.
료우기 시키는 품 속에서 나이프를 꺼내들었다. 눈 앞의 존재에게 적의는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예전에 이와 비슷한 적과 조우한 적이 있는 그녀는 안심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 자리에는 그녀의 연인, 미키야가 있다. 그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것일지라도, 일반인에 속하는 그에게는 위험할 수도 있다.
허공에서 조용히 점멸하던 빛은 갑자기 한쪽으로 날아갔다. 앞을 가로막는 작업실의 벽을 그대로 뚫고 사라지는 빛. 도망치는 빛을 쫓아 달려간 료우기 시키는 작업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그 뒤를 미키야가 따랐다.
"토우코씨의 인형...?"
빛의 구체는 미키야가 아침에 보았던 순백의 소녀 인형 위에 가만히 떠 있었다. 허공에 그대로 정지해 있던 빛은 갑자기 밑으로 떨어져내려 인형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와 동시에 눈부신 빛이 인형으로부터 터져 나왔다.
"큿..."
강렬한 빛에 일시적으로 시각이 마비되었다. 한참을 폭사되던 빛은 이윽고 사그라들었고, 그와 동시에 시야도 회복되었다.
"방금 건 대체 뭐였지?"
눈을 가린 손을 내리며 미키야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 빛의 구체도, 방금 터져 나온 빛도 어딘가 익숙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그 느낌에 시키를 지나쳐 앞으로 나갔다.
"물러서, 미키야. 위험할지도 몰라."
"괜찮아, 시키. 위험한 느낌은 들지 않아."
시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미키야는 인형을 향해 다가갔다. 묵묵히 인형의 얼굴을 내려다본다.
여전히 예쁜 얼굴. 틀림없었다. 그것은 그가 꿈 속에서 본 소녀와 같은 얼굴. 가만히 손을 뻗어 인형의 얼굴에 대었다.
그 순간 감겨있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천천히 드러나는 적보랏빛 눈동자. 아직 완전히 깨지 않은 듯 멍해 있던 눈에 이윽고 초점이 돌아왔다.
"당신은.... 누구?"
그 것이 그와 소녀의 첫 만남. 결코 끊어지지 않을 영겁의 연의 시작.
영원을 꿈꾸는 소녀는 앞으로 그 여행을 함께할 그녀의 반쪽과 만났다.
아오자키 토우코는 건물 옥상에 서 있었다. 입에 문 담배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자욱한 안개와도 같아 밤하늘의 옥상을 현실과 동떨어지게 하고 있었다.
이윽고 손에 쥔 담배를 그대로 바닥에 떨군 토우코는 발로 불씨를 비벼 껐다. 남아있던 붉은 불꽃은 검은 재로 변해 으스러졌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검은 장막 위에 점점이 수놓아진 별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가을의 날씨는 광활한 그 곳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공간. 아득히 높은 하늘. 결코 닿을 수 없는 머나먼 그 곳.
"모든 준비는 끝났다. 첫 번째 돌(Doll)은 수호기사(守護騎士)를 얻었다. 아직 깨어나지 않은 나머지 둘도 곧 모습을 드러내겠지."
손을 뻗어보았다. 펼쳐진 손에 가둘 수 있는 것은 그녀의 시야뿐.
저 광활한 하늘을 담기에는 너무나 작았다.
저 아득한 하늘에 닿기에는 너무나 작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술사는 그 손을 굳게 움켜쥐었다. 단호한 의지를 담아서.
"앨리스 게임의 시작이다."
새로운 싸움의 서막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