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fersucht
와장창!
요란한 소리와 함께 창문이 깨지고, 그 안에서 붉은 인영이 튕겨 나온다.
“크윽!”
신쿠는 신음을 삼키며, 공중에서 자세를 바로잡았다. 갑작스러운 스이긴토의 공격에 그녀는 미처 방비할 틈도 없이 얻어맞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무사한 이유는 간단했다. 어째서인지 그 공격이 평상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한 위력이었기 때문이다.
“스이긴토!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지?”
날카로운 신쿠의 외침. 그에 응하듯 부서진 창문 안쪽에서 천천히 검은 인영이 걸어 나왔다. 환한 태양빛이 눈부신 듯 검은 드레스의 소녀는 하늘에 떠 있는 소녀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 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이내 날개를 펼치고는 다시금 깃털을 폭사시켰다.
나...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바보 같아. 이런 짓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을 텐데.
왜 싸우고 있는 거야? 이미 싸울 이유는 사라졌잖아. 아니, 애초에 이유 따위는 없었잖아.
이제 와서 설령 저 아이를 쓰러뜨린다 해도...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아.
그녀는 자랑스러운 로젠 메이든 제4돌.
그리고 나는...
단순한 정크(Junk)일 뿐.
비록 이전에 비해 날카로운 기세를 많이 잃어버린 공격이었지만, 상대하기 까다로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사방을 조여 오는 깃털무리들을 피하며, 신쿠는 다급하게 외쳤다.
“그만둬, 스이긴토! 심각한 사태가 벌어졌어. 지금 느긋하게 앨리스 게임이나 할 여유는 없다고!”
그 말에 깃털들의 움직임이 덜컥 정지했다. 스이긴토 또한 석상처럼 몸을 굳혔다.
뭐...라고...?
방금 뭐라고 했니, 신쿠?
너에게는 앨리스 게임이 느긋할 때, 여유로울 때나 하는 것에 불과했니?
나에게는 그것만이 전부였어.
굳이 앨리스가 되지 못 해도 좋았어. 설령 지더라도 상관없었어.
앨리스 게임은 앨리스가 될 수 있는 빛을 품고 있는 소녀들의 의식. 완전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소녀들의 의식.
그러니까 앨리스 게임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그저 싸우는 것만으로도 ‘나는 정크가 아니야.’ 라고 말할 수 있었어.
하지만 결국 그것조차 내게는 허락되지 않았어.
나에게는 자격이 없어. 그런 빛은 품고 있지 않아.
단 한 줄기의 빛조차 나는 가지고 있지 않아.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더더욱 간절히 바라고 있어.
이루어질 리 없는 소망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고 있어.
한 번이라도 좋아.
앨리스 게임을 할 수만 있다면, 짧은 시간일지라도 정크가 아닌 제대로 된 돌(Doll)로서 있을 수 있다면...
설령 그대로 부서져버릴지라도, 기쁘게 웃으며 마지막을 보낼 수 있을 텐데.
알겠니, 신쿠? 앨리스 게임은 결코 비극이 아니야.
그 것은 축복이야. 자신이 빛을 품고 있다는 증명이야.
앨리스 게임을 할 수 있는 너는 선택 받은 고귀한 존재인 거야.
그런데도... 그런데도... 너에게는 그 것이 고작 그 정도 가치 밖에 지니지 못 했던 거니?
내가 간절히 원하는 그 것이, 그러나 가질 수 없는 그 것이...
너에게는, 그 것을 가지고 있는 너에게는 고작 그 정도 의미에 불과했던 거니?
신쿠는 멈추어진 공격에 안도했다. 그녀에게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능력 같은 것은 없다. 그래서 그녀는 그저 자신의 말이 상대에게 통해서 다행이라고 여길 뿐이었다.
“8번째 로젠 메이든이 나타났어. 그리고... 그녀에게 소우세이세키가 목숨을 잃었어.”
사랑하던 자매의 죽음을 입에 꺼낸 신쿠의 눈이 우울하게 젖어 들었다.
“본래라면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로자 미스티카는 모두 일곱 조각뿐이니까. 8번째 로젠 메이든은 존재할 수 없어. 이상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야.”
잠시 스이긴토의 눈치를 살피던 신쿠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스이세이세키의 말에 의하면 그 아이... 너와 무척 닮았다고 해.”
움찔하고 스이긴토의 몸이 반응했다.
“스이긴토. 너는 제일 처음 만들어진 로젠 메이든이야. 그런 만큼 우리들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 게다가 너와 닮은 그 아이... 말해줘, 스이긴토. 너라면 알고 있겠지? 그 아이의 정체는 뭐지? 설마 로자 미스티카가 사실은 여덟 조각이었던 거야?”
대답은 없었다.
“쿡쿡쿡쿡...”
그저 조용히, 그러나 점점 크게 스이긴토의 웃음소리가 들려왔을 뿐.
“쿡쿡쿡... 아하하... 아~~하하하하하핫!”
넓은 하늘에 웃음소리가 퍼져갔다. 스스로를 비웃는 웃음소리가.
아하하하. 정말 바보구나, 신쿠.
모르겠니? 답은 간단하잖아.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 거니? 어떤 대답을 원해?
나에게... 지금 네가 보는 앞에서... 나 자신을 실패작이라고, 사실은 로젠 메이든이 아니었습니다~라고 말하라는 거야?
나보고 네 앞에서 사실 나는 정크라고 말하라는 거야?
닥쳐!
크롸롸롸롸!
스이긴토의 검은 날개가 용으로 화했다. 칠흑 같은 검은 용은 광폭한 입을 벌리고 신쿠를 덮쳐갔다. 그 압도적인 위용에 미처 피할 수 없었던 신쿠는 자신의 힘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신쿠의 작은 손 안에 붉은 꽃잎들이 너풀거리며 모여든다. 한데 모인 꽃잎들은 서로 뭉쳐 마치 방패와도 같은 둥근 원반을 신쿠 앞에 만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두 힘이 서로 충돌했다.
콰가가가가!
본래대로라면 꽃잎의 무리는 검은 용의 흉포함에 속절없이 흩어지고 말았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반대였다. 놀랍게도 기세가 사그라진 것은 검은 용 쪽이었다. 스이긴토의 힘이 평소보다 약해졌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신쿠는 깨달을 수 있었다.
본래 두 마리여야 할 검은 용이 한 마리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스이긴토, 너 날개가!”
본래 두 장이어야 할 소녀의 날개가 하나 뿐이라는 것을.
또 저 눈이다.
그래, 저 눈이다. 저 아이는 항상 저런 눈으로 나를 본다.
모두들 항상 저런 눈으로 나를 본다.
부족한 것을 바라보는 눈.
모자란 것을 바라보는 눈.
불완전한 것을 바라보는 눈.
열등한 것을 바라보는 우월한 존재의 눈.
그만둬.
그만둬.
그만둬.
“그런 눈으로 나를 보지 마!”
마치 절규와도 같은 외침이 울려 퍼졌다. 그에 응하듯 검은 깃털들이 붉은 옷의 소녀를 노리고 날아든다. 그러나 휘날리는 깃털들은 나풀거리는 꽃잎들에 의해 사그라진다. 붉은 꽃잎들이 우아하게 깃털들을 감싼다.
하늘이 온통 붉은 색으로 뒤덮인다.
나의 검은 깃털들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주변은 오로지 붉은 색 뿐이다.
붉디 붉은 꽃잎
Reiner Rubin (眞紅, 신쿠)
그 것은 장미의 색. 화사하게 피어난 장미의 붉은 색.
나풀거리는 진홍은 화려한 장미의 꽃잎.
알고 있니, 신쿠? 일곱 로젠 메이든 중에서 장미의 이름을 가진 것은 오직 너 뿐이라는 것을.
아버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그 붉음을 허락한 존재는 오직 너 뿐이라는 것을.
아버님은 너희들을 모두 사랑하셨어. 당신이 추구한 이상, 앨리스가 될 빛을 품고 있는 너희들을 모두 사랑하셨어.
하지만 그 중에서도 너만은 특별했어. 너는 그 분이 가장 사랑한 존재.
앨리스와는 관계없어. 앨리스가 이상(理想)이라면 너는 실재(實在). 앨리스가 앞으로 도달해야 할 미래라면, 너는 이미 곁에 있는 소중한 현실.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너를 만들어냈을 때 그 분의 웃음을. 네가 눈을 떴을 때 그 분의 미소를.
다른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보다 더욱 기쁨에 찬 그 모습을.
그 분이 너를 다루는 손길은 조심스러웠다. 그 분은 그 손길로 부드럽게 너를 품에 안았다. 너를 품에 안고는 그윽한 미소를 지으셨다.
감정도 자아도 없던 나였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너를 향한 그 분의 다정한 마음을. 그 따스한 사랑을.
그랬기에 너를 질투했다.
나는 그 모습을 어두운 구석에서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랬기에 너를 시기했다.
나는 그 모습을 어두운 구석에서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랬기에 너를...
너를... 동경했다.
애초에 무리였다. 스이긴토의 몸은 텐시와의 싸움과 수술의 후유증으로 인해 이미 한계에 가까웠다. 더군다나 공격수단인 날개는 한 장 밖에 없는 상태. 싸움 같은 것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혹사당한 육체가 비명을 지른다.
그러나 스이긴토는 필사적으로 날개를 퍼덕였다. 밀려오는 꽃잎의 물결을 애써 막으려했다.
그녀는 질 수 없었다. 최소한 눈 앞의 소녀에게만은 자신의 나약함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보이게 되면 자신이 품고 있는 감정을 들킬 것만 같았기에.
그러나 붉은 색은 무심하게 검은 색을 덮어버렸다.
네가 부러웠다.
아버님의 사랑을 받는 네가 부러웠다.
언젠가는 나도 그와 같은 사랑을 받게 되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그 것은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것.
실패작에 불과한 나는 아버님에게 버림받았다.
그 후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많은 사람들, 다양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보인 반응은 같았다.
냉대와 모멸 그리고 비웃음.
당연하다. 나는 정크니까.
쓰레기일 뿐이니까.
하지만 그랬기에 더더욱 손에 닿지 않는 그 것을...
그 따스함을...
스이긴토는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축 늘어진 날개가 흙이 묻어 더러워졌지만, 그녀에게 그런 것을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풀려버린 눈동자에 이미 빛은 보이지 않는다.
“신...쿠...”
조그만 입술이 달싹거린다. 메마른 목을 쥐어짜 간신히 말을 내뱉는다. 탁한 목소리가 이제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소망을 갈구한다.
“.....나를... 죽여.”
이것이야말로 그녀 자신도 알지 못 한 이 곳에 온 진실된 목적.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린 영혼. 그녀에게 더 이상 살아가야 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마지막은 과거 그녀를 쓰러뜨렸던 소녀의 손으로 맞이할 수 있기를.
그녀가 아직 진실을 몰랐던 때. 그랬기에 의미 있던 싸움, 앨리스 게임이라고 여겼던 싸움을 다시 재현하기를.
그리고 그 때와 똑같이 종언을 맞이하기를.
이런 일을 벌인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저 그녀만의 자기만족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소녀에게는 이런 작은 것만이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유일한 위안인 것이다.
비록 그것조차 거짓이라 할지라도.
“스이긴토...”
신쿠는 소녀를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전과는 너무도 달라진 초라한 소녀의 모습.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뭐라 말을 꺼내보려 했지만 적당한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위로나 걱정, 격려의 말을 꺼내기에는 둘은 그렇게 친밀한 관계가 아니었다. 결국 그녀가 택한 방법은 자리를 피하는 것이었다.
“오늘의 너는 평상시와는 너무 달라. 그러니까... 그러니까...”
입술을 깨물며 신쿠는 말을 이었다.
“나중에 네가 진정이 되면... 그 때 이야기 하자. 그러니까 그 때에...”
주저앉은 소녀를 뒤로한 채 신쿠는 등을 돌렸다. 자신을 쫓는 시선을 애써 외면하면서. 그리고 그녀가 막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이었다.
“어째서야!”
비명과도 같이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어째서 죽이지 않아? 네가 이겼잖아!”
싸움의 규칙을 따르지 않은 것에 대한 비난이 아니었다. 절규하는 목소리에는 그 이상의 감정이 담겨있었다.
“아니면... 아니면 죽일 가치도 없다는 거야? 내가 정크라서?”
“스이긴토, 너 무슨!”
신쿠는 당혹해하며 몸을 돌렸다. 인형인 그녀들에게 있어 ‘그 표현’을 스스로에게 사용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것이 끝이 아니었다. 스이긴토는 더욱 크게 울부짖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절대 꺼내고 싶지 않았던 말을 토해냈다.
“내가 로젠메이든이 아니라서... 그래서 죽일 가치도 없는 거냐고!”
“뭐?!”
신쿠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멍해진 정신은 뜻밖의 정보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그녀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스이긴토의 말은 그런 그녀를 비웃을 뿐이었다.
“뭘 그렇게 놀라? 당연하잖아! 8번째 따위는 없어. 로자 미스티카는 일곱 조각뿐이니까. 그래, 그러니까 답은 간단해!”
소녀의 얼굴이 비통으로 일그러진다. 떨리는 목소리로 진실을 내뱉는다.
“사실은 하나가 가짜였다는 거야.”
그제서야 신쿠의 이성은 스이긴토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이해한 바가 사실이라면 지금까지의 모든 의문이 풀린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8번째 돌(Doll)의 존재도, 과거의 싸움에서 스이긴토의 로자 미스티카를 찾지 못한 이유도.
하지만 동시에 그녀의 감성은 스이긴토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큰 충격이었기에.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스스로를 가짜라고 말하는 자매를 멍하니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시...싫어!”
그 눈길에 스이긴토는 히스테릭하게 반응했다.
“그만둬...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나는... 나는... 아...아아아악!”
주저앉은 채로 팔다리를 휘저으며 뒤로 물러나는 스이긴토. 떨리는 눈동자가 점점 커지더니 곧이어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몸을 웅크린다. 마치 환청이라도 들리는 양.
그러나 애초에 실재하지 않는 소리였기에 그런 행위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스이긴토의 귀에는 계속해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오직 한 가지 단어, 그녀가 수도 없이 들어온 한 단어만을 외치고 있었다.
“싫어어어어어어~~!”
외마디 비명과 함께 스이긴토는 그 곳에서 달아났다. 신쿠가 미처 말릴 틈도 없이 공간을 열고는 그 사이로 모습을 감춰버렸다.
“스이긴토!”
신쿠가 소리쳐 불렀지만, 이미 공간의 문은 닫힌 후였다.
검은 깃털 하나만이 홀로 남겨진 채 팔랑거리며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림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녀는 빛을 동경했습니다. 빛처럼 밝게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것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림자는 그저 그림자일 뿐이었으니까요. 그녀에게 허락된 것은 캄캄한 암흑 뿐이었으니까요.
그녀가 동경한 빛조차 그녀를 싫어했습니다. 빛은 밝지 않은 존재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무자비하게 내쫓긴 그림자는 빛이 비치지 않는 구석으로 숨어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빛이 밝으면 밝을수록 그림자와 빛 사이의 경계는 더욱 뚜렷해질 뿐이었습니다.
그녀는 밝은 바깥으로 나갈 수 없었습니다.
빛이 밝으면 밝을수록 그림자가 있을 수 있는 자리는 오히려 좁아질 뿐이었습니다.
그녀는 몸을 좀 더 웅크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림자는 결코 밝아질 수 없다.’ 그녀는 그 사실을 처절하게 깨달아야만 했습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소리 죽여 우는 것 뿐이었습니다.
행여나 빛에게 들킬 새라 아무도 없는 구석에서. 바깥의 밝음을 몰래 훔쳐보면서.
그저 소리 죽여 우는 것 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