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화 2화
작가의 말: 롤링의 업무를 해내는 자가 곧 롤링이다.
-------------------------------------------------------------
“나는 네게 힘을 줄것이고,” 인영이 말했다, “그 힘에 대한 사항들과 그에 따른 대가 또한 알려줄거야. 그 힘은 곧 현실의 형태에 대한 자각과 함께 그것을 조정할 수 있게 됨과 동시에 찾아오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곧 조종할 수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달의 표면을 걷게 해주고도 남을만한 위대한 힘이야. 그 힘에 대한 대가는 자연 그 자체에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자세, 그리고 더욱 어렵겠지만 자연의 대답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겠다는 마음가짐이야. 너는 실험을 행할것이고, 갖가지 가설을 시험해 그 결과물을 관찰할거야. 그리고 만약 네가 실수해서 그 결과물이 잘못되었다고 해도 너는 그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하지. 너는 내게 아닌, ‘자연에게 패배하는 법’을 터득해야 해. 현실에 대항하며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부정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면, 너는 굴복하고 그 ‘현실’에게 승리를 양보해야하고. 물론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울 거야, 드레이코 말포이, 그리고 솔직히 나는 네 성격상 그것을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어. 치뤄야 할 대가를 알게 된 지금도, 아직도 너는 정말 인간의 무한한 힘에 대해서 배우고 싶은거야?”
드레이코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이미 생각해뒀던 일이다. 그리고 그 외에 다른 답변의 선택지는 별로 없어보였다. 이미 그는 해리 포터와 우정을 쌓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라는 충고를 받은 상태였다. 그저 가르침을 받는 것뿐이고, 꼭 무언가 해야 한다고 하지는 않았다. 원한다면 언제든지 이 교습을 거부할 권리가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교묘히 설계된 함정이라고 의심해볼 수 있는 사항이 몇 개, 아니 수십개는 존재했지만, 솔직히 말해, 그렇다고 해도 별로 잃을 것은 없어 보였다.
뭐 게다가 드레이코 또한 세계정복에 대한 야망이 완벽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 드레이코가 말했다.
“좋아,” 음영이 드리워진 인영이 말했다. “사실 나는 이번 주를 상당히 바쁘게 보냈기에, 네 일과를 짜내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아─”
“나 또한 슬리데린에서 나의 입지와 권력을 굳히기 위해 할 일이 많아,” 드레이코가 말했다, “숙제는 말할 것도 없고. 차라리 10월에 시작하는 게 어때?”
“설득력 있군,” 인영이 말했다, “허나 내 말은 네 일과를 정하기 위해서는, 내가 네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야. 내게 세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어. 첫째는 네게 인간의 마음과 뇌의 구조에 대해서 설명 및 강의를 하는거야. 두번째 선택지는 네게 물리적인 세계를 보여주고, 달에 도달하기까지 인류가 일구어낸 수만가지의 발견들을 가르치는 것이고. 이 경우에는 자연스래 숫자놀음을 조금 해야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 숫자들을 과학에서 가장 중요시하며 가장 위대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지. 숫자를 다루는 것에 자신이 있거나 좋아하니, 드레이코?”
드레이코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그 선택지는 볼 것도 없군. 뭐 수학은 차차 자연스럽게 배워나가게 될 거야, 아마도. 세번째 선택지는 네게 유전학과 진화론을 하사하는 거야, 흔히들 혈─”
“그거 좋겠다,” 드레이코가 말했다.
인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그러리라 짐작했어. 하지만 드레이코 네게는 가장 혹독하고 잔혹한 길이 될거야. 만약 네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순수혈통들의 말과 위배되는 결과가 실험 끝에 도출된다고 하면 넌 어떻게 할것이지?”
“그럼 그 실험에서 내가 납득할 결과가 나오게 할 방법을 모색해야지!”
음영이 드리워진 인영이 입을 헤 벌린채 멍하니 서 있는 동안, 잠시간의 정적이 일었다.
“어,” 인영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건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야. 네게 경고하려던 것이 바로 이거야, 드레이코. 너는 단지 네가 원한다고 해서 원하던 결과를 가질 수는 없어.”
“네가 원하면 언제든지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어,” 드레이코가 말했다. 가정교사들이 그에게 가르쳐준 가장 첫번재 수업이 바로 그것에 대해서였던 것이다. “그저 부합하는 주장과 반박을 색출해내면 끝나는 일이야.”
“아니야,”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인영이 부정했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그렇게 하면 정확한 답을 얻지 못하고 달에도 갈 수 없어! 자연은 사람이 아니야, 단지 세치 혀로 그들을 멋대로 농락할 수는 없어, 달을 바라보며 ‘너는 치즈로 되어있다’라고 몇 일 밤낮을 세뇌해도 달의 본질은 결코 바뀌지 않아! 네가 말하는 논리는 바로 ‘합리화’야, 가령 백지에서 시작해서, 가장 밑부분에 잉크로 ‘고로, 달은 치즈로 되어있다’ 라고 적은 다음, 다시 위로 올라가 설득력이 다분한 반박거리와 증거들을 적는 거나 다름없다고. 하지만 결국 달은 치즈로 이루어져 있거나 아니거나 둘 중에 하나야. 네가 종이의 밑부분에 무언가를 적었을 때부터, 사실이거나 거짓이거나 둘 중 하나일 수 밖에 없어. 어찌됐든 종이는 밑부분에 무언가를 적는 순간 올바른 결론으로 끝맺어지거나 잘못된 결론으로 고정되어버려. 만약 네가 두 개의 무지막지하게 비싼 트렁크 가방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고 가정하고, 너는 개인적으로 광택이 나는 쪽을 더 선호한다고 했을 때, 그 어떤 그럴싸한 논리로 가방의 장단점을 고려한다고 해도 무의미한 짓이야, 결국에 너를 움직일 결정적인 요인은 ‘광택이 나는 쪽을 골라라’라는 이념이며, 네가 구성한 논리가 얼마나 완벽할지라도 결국에 너는 네가 선호하는 가방을 고르게 되어있어. 합리화는 이미 고착화된 개념을 반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직 결론이 지어지지 않은 불투명한 개념을 위해 존재하는 거야. 과학은 순혈주의자들의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해 있는게 아니야. 그건 정치지! 과학의 힘은 곧 자연은 그 어떤 의지나 반박거리로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함에 따라 비로소 부여되는 거라고! 과학은 우리에게 혈통의 관계성과, 어떻게 마법사들이 조상들로부터 마법을 물려받으며, 과연 머글 태생들이 마법사들보다 더 강한지 약한지─”
“강하다고!” 드레이코가 고함을 질렀다. 혼란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어떻게든 대화의 흐름을 따라간 그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생각과 논리임에도 불구하고 해리의 말은 나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해리 포터는 드레이코가 도저히 묵인할 수 없을만한 망언을 하고말았던 것이다. “넌 그 더러운 잡종들이 더 강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나는 어무것도 생각하지 않아,” 인영이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몰라. 아무것도 믿지 않아. 나는 아직 결론을 맺지 못했어. 나는 머글 태생들의 마법력과, 순수혈통의 마법력을 측정할 방법을 찾아내 실험을 할거야. 만약 내 실험이 머글 태생들이 더 약하다는 결론을 보이면, 나는 그들이 더 약하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만약 내 실험이 머글 태생들이 더 강하다는 결론을 도출시킨다면, 나는 그들이 더 강하다고 믿을거야. 이러한 것과 다른 여러가지 진실을 알아냄에 따라, 내게는 자연스럽게 어느 정도의 힘을 보유할─”
“그리고 너는 정말 내가 네 말을 모두 믿고 따라야 한다고 생각해?” 분개한 드레이코가 해리를 추궁했다.
“나는 네가 개인적으로 실험을 해보았으면 해,” 인영이 차분하게 읊조렸다. “혹 그 앞에서 발견할 결과를 두려워하고 있는거니?”
눈을 가늘게 뜬 드레이코가, 인영을 잠시 노려보았다. “괜찮은 함정이었어, 해리,” 그가 말했다. “새로운 기법인데, 기억해서 나중에 써먹어 봐야겠네.”
인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함정이 아냐, 드레이코. 말했잖아 ─ 나는 이 앞에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는지 몰라. 하지만 그저 다음 기회에는 다른 답을 들고 찾아오라고 세계에게 억지를 부리는 것만으로는 세계 그 자체를 이해할 수는 없어. 과학자의 복장을 갖추는 순간 너는 네 모든 정치관념과 옹호세력, 파벌과 반박거리들을 쓰레기통에 쳐넣어버리고, 이성의 외침마저 강제로 침묵시키고는, 오로지 자연의 말만 곧이곧대로 들어야 해.” 인영이 잠시 멈추었다. “대다수는 이를 행하지 못하지. 그 때문에 난감하고 어려운거야. 지금이라도 그저 뇌에 대해서 배울 생각은 없어?”
“그리고 만약 내가 뇌에 대해서 배우고 싶다, 라고 말한다면,” 딱딱해진 목소리로, 드레이코가 말했다, “너는 내가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겁쟁이에 패배자라고 모두에게 떠벌리고 다니겠지.”
“아니,” 인영이 말했다. “그런 짓거리는 하지 않아.”
“하지만 만약 네가 비슷한 실험을 해, 오답을 도출했을 경우 내가 그것을 지적하면 너는 이미 다른 누군가에게 그 답을 보여준 뒤겠지.” 드레이코의 음성은 여전히 사납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나는 네게 먼저 물어볼거야, 드레이코,” 인영이 조용히 말했다.
드레이코가 입을 꾹 다물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답변이었다, 어슴푸레하게 함정이 보이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정말로?”
“물론이지. 어떻게 내가 협박할 만한 사람을 구별하고 그들에게 무엇을 요구할지 분별할 수 있겠어? 드레이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내가 교묘하게 판 함정이 아니야. 적어도 네게는 아니지. 만약 네 정치관념이 다르다면, 만약 ‘순혈이 더 강하다’라는 실험 결과가 도출된다면, 이라고 나는 말하겠지.”
“정말이냐.”
“그렇다니까! 그게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라면 누구나 치뤄야 할 대가라고!”
드레이코가 손을 하늘로 뻗어 중지하라는 표시를 취했다. 조금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녹색 빛이 은은하게 비추는 인영은 조용하게 기다렸다.
허나 생각을 끝마치는 건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단 혼란스러운 부분들을 제외시킨다면…해리 포터는 자칫 잘못하면 거대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수도 있는 어마어마한 실험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이대로 아무런 성과도 올리지 못한채 그것을 외면하는 것은 병신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혈통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지,” 드레이코가 말했다.
“좋아,” 미소를 지으며 인영이 말했다. “자발적으로 질문을 던질 용기를 낸 것을 축하해.”
“고맙기 이를데가 없네,” 그렇게 드레이코가 감사를 전했지만, 비아냥거리는 듯한 어투를 숨기지는 못했다.
“이봐, 달에 도달하는게 그렇게 쉬운 작업인 줄 알아? 이게 인신공양이 아니라 그저 가끔씩 네 사고를 전환하기만 하는 되는 것을 천운이라고 생각하라고!”
“차라리 인신공양이 훨씬 더 간편하겠다!”
잠시간의 정적 끝에, 인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네.”
“이봐, 해리,” 드레이코가 무기력하게 말했다, “이 발상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저 머글들의 지식을 마법사의 것과 통합해, 두 단절된 세계의 지배자가 되는 게 아니었어? 차라리 그냥 이미 머글들이 완성시킨 지식들, 가령 달여행이라거나를 공부해, 그 힘을 이용하는 게─”
“안돼,” 인영이 고개를 세차게 가로젖자, 그의 코와 눈두덩이에 녹색의 음영이 잔뜩 드리워졌다. 그가 진중하기 그지없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현실을 자각하고 받아들이는 과학자의 기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나는 그 ‘자각’으로 인한 ‘발견’을 결코 알려주어서는 안돼. 그건 마치 네가 보다 더 미미한 위험으로부터 지식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생존할 수 있다고 증명하지도 않았는데 강대한 마법사가 찾아와 결코 풀려서는 안되는 봉인이나 해방되어서는 안되는 힘에 대해서 떠벌리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무의식적으로 몸을 몸을 떤 드레이코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희미한 불빛에서마저도 확연하게 드러날정도로 그 동요는 컸다. “좋아,” 드레이코가 말했다. “이해했어.” 그의 아버지에게서도 몇번이나 들었던 말이다. 강력한 마법사가 ‘아직 너는 알 준비가 되지 않았다’라고 충고를 해준다면,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입 닥치고 가만히 있는 것이 목숨을 연명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인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그 밖에도 네가 알아둬야 할 것이 있어. 역사상 첫 과학자들, 그러니까 머글들은, 네가 이해한 것들을 이해하고 있지 못했어. 처음에 그들은 소위 알아서는 안 될 ‘위험한 지식’들의 구별법을 인지하고 있지 않았고, 모든 발견은 자유적으로 사회에 퍼져나갈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지. 그들의 발견이 위험성을 품고 있을 때, 그들은 절대적으로 비밀로 음지에 머물러야 했던 지식들을 정치인들에게 털어놓았어 ─ 그런 얼굴 하지마, 드레이코, 결코 우둔함 그 자체만은 아니었으니까. 애초에 무언가를 발견하려면 그만큼 지식도 갖추고 있어야 하니. 어찌됐든 그들은 머글이었고, 위험성을 띤 발견을 한 것이 난생 처음이었으며, 그들은 유해한 것은 철저하게 비밀로 함구한다는 ‘전통’을 갖고 있지 않았어. 당시는 전시 상황이었고, 전쟁 중 한 측 세력의 과학자들은 만약 그들이 입을 다물고 있을 경우, 적국의 과학자들이 먼저 그들의 정치인들에게 입을 열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지….” 그의 목소리가 확연하게 사그러들었다. “물론 그들은 결코 세계를 붕괴시키진 않았어. 하지만 그럴 뻔 했지. 그리고 우리는 결코 그 과오를 반복해서는 안돼.”
“그래,” 이제는 단호해진 목소리로, 드레이코가 말했다. “우리는 그러지 않을거야. 우리는 마법사이고, 과학을 배운다고 해서 머글로 바뀌지는 않으니까.”
“네가 말했던 것처럼,” 녹색 빛을 배경으로한 인영이 말했다. “우리는 새로운 개념의 과학을 창조할거야, 바로 마도과학이지, 그리고 그 과학은 시작부터 비범하고 명석한 전통을 먼저 구축한 뒤 비로소 시작하게 될거야.” 그의 목소리가 점차 엄해져갔다. “지금부터 나는 진실을 받아들이는 법과 병행해 지식들을 너와 공유할 것이고, 지식의 수준은 네게 진실을 각성시킬 중대한 열쇠임과 동시에, 결코 그 법칙을 깨우치지 않은 이들과 나누어서는 안 될 비밀 중의 비밀이야. 동의하니?”
“응,” 드레이코가 말했다. 그럼 설마 ‘아니’라고 말하겠는가?
“좋아. 그리고 네가 연구 끝에 무엇을 발견하던지 간에, 타 과학자들이 그것을 알 준비가 되었다고 확신하기 전까지는 비밀로 숨기고 있어야 해. 그리고 우리의 정치와 충성의무가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는 그 어떤 상황, 심지어 전쟁이 일어났다고 해도 위험한 마법이나 흉악한 무기들을 사회에 공개하는 우리의 세력 인원들을 처절하게 응징할거야. 이 날을 기점으로, 그것이 우리 마법사들 간에 전통으로 내려오는 과학의 법칙이 될거야. 이 또한 동의해?”
“그래,” 드레이코가 말했다. 사실 가면 갈수록 이 모든 것이 흥미진진해져가고 있었다. 죽음을 먹는 자들은 소위 말하는 공포 정치로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했고, 아직은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제는 ‘철저한 비밀’이라는 무기로 지배를 할 시간이 도래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의 세력은 가능한 한 음지에 숨어있어야 하고, 세력 내의 전원은 우리가 정한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거지.”
“물론이지. 당연해.”
찰나의 시간 동안 정적이 일었다.
“이제부터는 더 세련된 망토가 필요할 것 같아,” 인영이 말했다, “뭐 후드도 달려있는 멋진 것으로─”
“나도 지금 막 그걸 생각하고 있었어,” 드레이코가 말했다. “하지만 새로 망토를 장만할 필요는 없고, 그냥 후드만 갖추면 될 것 같아. 슬리데린에 아는 친구가 한 명 있는데, 걔가 치수를 재면 될 거야.”
“하지만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발설하지 말─”
“이봐, 나는 바보가 아니라고!”
“그리고 아직은 가면이 필요 없을거야, 지금은 그저 너와 나 뿐이니까─” 인영이 말했다.
“그래! 하지만 나중에 우리 세력이 커졌을 때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 표식이 필요할 것 같아, ‘과학의 표식’같은 거 말야, 가령 오른팔에 ‘달을 집어삼키고 있는 뱀’의 문신이라거나─”
“그건 ‘박사 학위’라고 불리고 있고, 그렇게 한다면 너무 우리 세력이 눈에 띌 것 같은데?”
“뭐?”
“내 말은, 만약 누군가가 ‘자, 모두들 망토를 걷어 오른팔을 드러내보도록 하자’라고 뜬금없이 말한다면 팔을 걷은 우리 세력원은 ‘헐 죄송, 아무래도 나 스파이인 갑네’라고─”
“그냥 없었던 걸로 치부해줘,” 식은땀이 온몸에서 흐르는 것을 느끼며 드레이코가 말했다. 한시라도 빨리 화제전환을 해야 한다─ “그러면 세력 명칭은 뭘로 할까? 과학을 먹는 자들?”
“아니,” 인영이 느릿느릿하게 대답했다. “올바른 명칭이 아닌 것 같아….”
드레이코는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망토자락으로 연신 닦아내렸다. 도대체 어둠의 마왕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어둠의 마왕은 희대의 천재였을텐데!
“좋은 이름이 떠올랐다!” 별안간 인영이 외쳤다. “아직은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겠지만 믿어줘, 정말 쏙 들어맞는 명칭이니까.”
설령 그것이 ‘말포이를 먹는 자들’이라고 해도 드레이코는 이 화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흔쾌히 수락할 용의가 있었다. “뭔데?”
그리고 호그와트의 지하감옥 아래 텅 빈 교실의 먼지 쌓인 책상 옆에, 은은한 녹색의 빛무리를 배경으로 서 있는 해리 포터는 극적으로 하늘에 두 손을 치켜들고 말했다, “이 날을 기점으로 우리…‘베이스의 결탁’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한다.”
-------------------------------------------------------------
정체불명의 인영이 래번클로 기숙사를 향하는 호그와트의 복도를 힘없이 거닐고 있었다.
드레이코와의 회담 이후 해리는 곧장 저녁식사를 위해 대연회장으로 직행했고, 잠자리로 향하기 전에 허기를 채우기 위해 음식을 억지로 몇 번 입에 쑤셔넣고는 말았다.
아직 오후 7시도 되지 않은 이른 시각이었지만, 이미 해리의 취침 시간은 한참 전에 지났었다. 겨우 어제서야 해리는 ‘독서 대결’이 끝날 토요일에는 적어도 오후 이전에는 시간을 돌리는 기계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금요일 밤에는 사용이 가능했기에, 가까스로 여분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에 성공하였다. 그래서 해리는 금요일에 스스로를 몰아붙여 악다구니로 기계의 보호 장치가 해제되는 오후 9시까지 뜬눈으로 버티고는, 기계에 남아있던 여분의 4시간을 이용해 오후 5시로 시간을 돌려 쓰러지듯이 잠에 빠졌다. 그리고는 사전에 계획해두었듯이 토요일 오전 2시에 기상해, 12시간 가량 쉬지 않고 독서 삼매경에 빠졌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해리는 앞으로 몇 일 동안 그의 수면 주기가 따라잡을 때까지 예정보다 더 일찍 잠들고 말것이다.
문 앞에 새겨져있는 초상화가 던진 11살의 지혜에 걸맞는 바보같은 수수께끼를 채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무의식적으로 풀어버린 해리는 비틀비틀거리며 계단을 올라가 기숙실로 들어가고는, 대충대충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침대에 풀썩 엎어졌다.
그리고 그의 배게가 다소 딱딱하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해리는 짜증 섞인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정말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상체를 일으킨 그는, 침대 위에서 몸을 뒤척인 뒤, 베게를 들었다.
베게 밑에는 쪽지와, 갈레온 금화 두 개, 그리고 ‘오클러먼시: 그 숨겨진 비술’이라는 제목의 책이 자리하고 있었다.
쪽지를 집은 해리는 그것을 읽어내렸다:
정말 사건에 휘말리는 것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구나. 설령 제임스라도 네게는 상대도 안 될 거다.
너는 강대한 적을 만들고 말았다. 스네이프는 슬리데린 기숙사의 충성과, 경애, 그리고 공포 위를 군림하고 있단다. 너는 그 기숙사의 인물이 네게 호감을 표하건 적개심을 드러내건 그 누구도 결코 믿어서는 안된다.
앞으로 너는 스네이프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쳐서는 안된다. 그는 레질리먼스이고 눈을 마주칠 경우 네 생각을 읽어내릴 수가 있다. 네 정신을 보호하는데에 필요한 책을 동봉했지만, 정식적인 강사의 도움 없이 성과를 기대하기란 요원할거다. 하지만 적어도 무단 침입의 존재를 감지할 수는 있겠지.
그래서 네가 오클러먼시를 익힐 시간을 가능한 한 벌어주기 위해, 그곳에 마법의 역사 수업의 1학년 숙제와 시험지 답의 가격인 2 갈레온을 동봉했다(빈스 교수는 사후 매년 이전 해와 완벽하게 같은 숙제와 시험들을 제출했지). 네가 새로이 사귄 위즐리 쌍둥이 형제가 사본을 구해다줄 수 있을거다. 물론 교수님들에게 결코 걸려서는 안된다는 점을 명시하도록.
퀴렐 교수에 대한 것은 나도 잘 모르겠구나. 그는 슬리데린이며 동시에 방어술 교수이기도 하니, 두 가지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셈이나 다름없다. 그의 충고를 항상 두번 이상 고려해보고, 그에게 필요 이상 알려주지는 말거라.
덤블도어는 그저 미친 척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는 상상을 초월할정도로 지혜롭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옷장 속에 들어가 사라지는 행동을 반복하다가는, 그는 만약 아직 알아채지 못했다면 언젠가 반드시 투명 망토의 존재에 대해 파악하고 말거다. 가능한 한 그와의 만남을 회피하고, 그것이 불가능할 경우 투명 망토를 네가 생각하는 가장 안전한 장소에다가(절대로 네 주머니는 안된다) 숨기고, 그의 앞에서는 항상 조심히 행동하거라.
앞으로는 조금 더 신중하기를, 해리 포터.
─산타 클로스가
해리는 쪽지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썩 나쁘지만은 않은 충언이었다. 물론 해리는 설령 원숭이의 사체를 교수님이랍시고 던져준다고 하더라도 결코 역사 시간에 부정 행위를 저지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세베루스의 레질리먼시라…이 쪽지를 적은 인물이 누구건 간에 그는 각종 중대한 비밀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고, 해리에게 알려줄 의향이 있다는 것이다. 쪽지는 아직도 덤블도어의 망토를 향한 갈망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었지만 이맘때쯤 해리는 과연 그것이 좋지 않은 징조로 치부해야할지 갈피를 못잡고 있었다, 그저 이해할 수 있는 실수일 수도 있지 않은가.
허나 호그와트에 모종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것만은 거의 확실했다. 만약 해리가 덤블도어에 관한 갖가지 소문들과 쪽지에 담긴 정보를 종합해본다면, 진실에 한층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가령 그 두가지의 정보가 모두 일맥상통한다던가, 그러면….
…뭐 어때…
해리는 그 물품들을 모조리 주머니에 쏟아넣은 뒤 침묵 마법의 ‘강도’를 최상으로 올려놓고는 이불을 머리까지 덮고는 죽어버렸다.
-------------------------------------------------------------
일요일 아침, 해리는 대연회장에서 손목시계를 몇 번이고 초조하게 흘낏흘낏 바라보며 팬케이크를 재빨리 먹어치우고 있었다.
지금은 오전 8시 2분, 그리고 앞으로 두 시간 하고도 일 분이면, 그가 위즐리 일가를 만나고 9와 4분의 3 승강장을 건넌지 정확히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나게 된다.
그리고 끔찍한 생각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이것이 과연 올바르게 세계를 직시하고 있는 것인 것 해리는 몰랐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는 이미 생각을 그만둔 상태였고, 나름 타당성이 있었다….
바로…
일주일 동안 흥미진진한 사건이 생각보다 더 적게 일어났다는 점이다.
해리는 아침을 끝마치고, 곧장 기숙사로 올라가 10시 3분까지 트렁크의 최하층에 숨어 그 누구와도 대면하지 않을 계획이었다.
그 때 해리는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위즐리 쌍둥이 형제를 발견했다. 개중 한 명은 등 뒤에 무언가를 숨긴채 실실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당장 비명을 지르며 도망쳐야 한다.
당장 비명을 지르며 도망쳐야 한다.
저것이 무엇이던 간에…아마…
…이 일주일의 대단원을 장식할지도 모른다….
정말 당장에라도 비명을 지르며 도망쳐야 했다.
아무리 그래도 우주의 의지가 다가와 오히려 그의 발목을 잡을것이라는 무기력함을 느끼며, 해리는 연신 포크와 나이프로 팬케이크를 썰었다. 도저히 힘이 나지를 않았다. 그게 바로 잔인한 현실이었다. 도망가고 도망가고 끝내 운명을 회피하는 것에 지친 나머지 바닥에 주저앉아 날카로운 이빨과 촉수가 잔뜩 돋아난 괴물들에게 몸을 맡겨 나락의 저편으로 끌려가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제서야 이해가 갔다.
위즐리 쌍둥이들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더 가까이.
해리는 팬케이크를 씹었다.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위즐리 쌍둥이들이 당도했다.
“안녕, 프레드,” 해리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쌍둥이 중 한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 조지.” 나머지 한 명이 끄덕였다.
“피곤해 보이는데,” 조지가 말했다.
“기운 내라구,” 프레드가 말했다.
“우리가 선물을 가져왔어!”
그리고 조지가 프레드의 등 뒤에서─
열두 개의 활활 타오르는 초가 꽂힌 케이크를 꺼냈다.
래번클로 테이블 전체가 그것을 주시하는 동안, 정적이 일었다.
“틀렸어,” 누군가가 말했다. “해리 포터는 7월 31일에 태어났─”
“그가 다가온다,” 잘 벼려진 칼날과도 같은 거대하고도 공허한 음성이 모든 대화를 종식시키고 귓가에 싸늘하게 파고들었다. “그가 갈가리 찢어발기고, 철저하게 붕괴시킬 것은 바로─”
그때, 덤블도어가 자리에서 헐레벌떡 일어나며 교직원 테이블을 쏜살같이 가로질러서는 그 끔찍한 말을 퍼붓고 있는 여성을 가로챘고, 퍽스가 허공에서 빛무리와 함께 나타나더니, 이내 거대한 불길과 함께 그 셋이 사라져버렸다.
충격에 휩싸인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장내의 모든 얼굴이 해리 포터를 향했다.
“내가 아냐.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해리 포터가 피곤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예언이었어!” 테이블에서 누군가가 사납게 속삭였다. “그리고 그건 분명 너와 관한 것이 분명해!”
해리는 한숨을 토했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애써 목소리를 끌어올려, 활화산처럼 폭발한 소란을 모조리 잠재울 수 있을 정도의 커다란 음성으로 외쳤다. “이런 젠장할 나에 관한 게 아니라니까! 내가 ‘다가올리가’ 없잖아, 난 이미 여기 존재하고 있다고!”
해리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를 응시하고 있던 이들이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테이블에서 또 다른 인물이 말했다, “그럼 누구에 관한 걸까?”
그리고 둔하고도, 무기력한 감각으로, 해리는 호그와트에 ‘없는’ 인물을 깨달았다.
추측이나 다름없었지만, 해리는 아직 죽지 않은 어둠의 마왕이 언젠가 방문을 할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와중 대화가 주변에서 연신 피어올랐다.
“찢어발긴다는 것은 또 뭐고?”
“일단 교장 선생님에게 잡히기 전에 트릴로니가 ‘ㄱ’으로 시작하는 단어를 말하려고 했던 것 같았는데.”
“가령…기억? 고간?”
“누군가가 고간을 찢어발긴다면 그건 정말 큰일이지!”
이 세계가 남성에게 적개심을 보이고 있지 않는 이상 그건 상당히 설득력이 없어보인다고 해리는 생각했다.
“그래서,” 해리가 피곤한 목소리로 물었다, “호그와트의 일요일 아침은 항상 이렇게 시작하나보지?”
“아니,” 7학년인 것처럼 보이는 학생이 침울하게 인상을 쓰며 대꾸했다, “그렇지 않아.”
해리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됐어. 누구 생일 케이크 먹을 사람?”
“하지만 오늘은 네 생일이 아니잖아!” 방금 전 이의를 제기했던 학생이 외쳤다.
물론 그 말에 프레드와 조지가 웃음을 터뜨린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심지어 해리조차도 힘겹게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케이크의 첫 조각을 접시에 올리며, 해리가 말했다, “정말 긴 일주일이었어.”
-------------------------------------------------------------
그리고 해리는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게 굳건하게 잠긴 트렁크의 최하층에 앉아서, 이불에 머리를 파묻고는, 일주일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10:01.
10:02.
10:03, 하지만 확실하게 해두기 위해…
10:04, 그리고 첫째 주가 지나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해리는 조용히 머리를 둘러싼 이불을 내렸다.
몇초 후, 해리는 햇살이 포근하게 비추는 기숙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또 얼마 후, 그는 래번클로 기숙사의 휴게실에 다다랐다. 몇 명이 그를 돌아보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그에게 감히 말을 걸지 않았다.
넓직한 책상을 발견한 해리는, 푹신한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종이 한장과 연필을 꺼냈다.
엄마와 아빠는 해리에게 집과 부모님의 품을 떠나는 것이 아무리 흥분되더라도 일주일에 반드시 한 번은 편지를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 그가 멀쩡하게 살아있으며, 결코 교도소에 끌려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기를 원하였다.
해리는 아직은 백지 상태인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어디 보자…
역에서 부모님의 곁을 떠난 뒤, 그는…
…다스 베이더에게 훈육을 받은 소년과 안면을 텄고, 호그와트의 가장 악명 높은 세 명의 짓궂은 친구들을 사귀었고, 헤르미온느를 만났으며, 분류 모자와의 사건도 있었다…월요일에 그는 수면 장애 덕분에 타임 머신을 하사받았고, 정체불명의 자선가로부터 전설의 투명 망토를 받았으며, 다섯 명의 흉악한 상급생, 개중 한명은 그의 손가락을 부러뜨리겠다고 협박한 이들로부터 일곱 명의 후플푸프 학생들을 구출했고, 그에게 불가사의한 암흑면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마법 수업에서는 프리기데이로라는 주문을 배웠으며, 헤르미온느와의 경쟁을 시작했다…화요일에는 착한 오로라 시니스트라 교수님이 가르치는 천문학에 입문했고, 반드시 성불시켜 녹음기로 대체되어야 하는 유령 교수가 가르치는 첫 마법의 역사 수업을 가졌다…수요일에, 그는 당당히 교실에서 가장 흉악한 위험인물로 지정되었고…목요일, 그래 목요일은 아예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금요일에는, 마법의 약 수업 사건과, 교장님에게 가한 협박, 그리고 방어술 교수님의 지도 아래 행해진 그에게 향한 집단구타, 그리고 방어술 교수님이 사실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엄청나고 간지나고 뛰어나며 잘생긴 멋쟁이였다는 것을 깨달았고…토요일에 그는 대결에서 져버리고 첫 데이트에 갔으며 드레이코의 사고를 보완했으며…오늘 아침 트릴로니 교수의 예언은 불사의 어둠의 마왕이 조만간 호그와트를 공격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할 수도 뜻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침묵 속에 정리한 해리는, 편지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에게:
호그와트는 정말 재밌어요. ‘마법’ 수업에서는 열역학 제 2법칙을 위반하는 방법을 배웠고, 헤르미온느 그레인저라고 저보다 책을 더 빨리 읽는 여자아이를 만났어요.
이만 여기서 줄일게요.
두 분을 사랑하는 아들,
해리 제임스 포터-에반스-베레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