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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 Please


1 “뭐어, 그럭저럭 나쁘지 않아.”


  나쁘지 않아.
  본의 아니게 정해진 자취 생활에 대한 첫 감상이었다. 뭐, 고교생이라면 누구든 가진 자유(웃음)에 대한 동경이다. 부모님이 미국 전근 얘기를 꺼내셨을 땐 당황했지만, 이제 곧 고등학교 2학년인데 뜬금없이 유학이라니 이상하다, 난 이대로 학교를 졸업하고 싶다는 얘기로 납득하셨다. 덧붙여 한 학년 아래인 여동생은 약삭빠르게도 “난 유학 갈래!”라고 날 배신했다.
  “자취생활 어때?”라고 묻는 친구에게 “뭐어, 그럭저럭 나쁘지 않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는 편하게 지내고 있다. 사내커플로 시작해 결혼까지 골인한 부모님은 결혼한 뒤에도 사내 부부로 남았고, 맞벌이로 비어있는 집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 나름대로는 요리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 소스는 여동생. 덧붙여서 ‘요리할 수 있게 된’ 거랑 ‘요리하게 된’ 건 미묘한 차이가 있다. 난 요리를 할 수는 있게 됐지만, 그다지 적극적으로 요리한 건 아니었다. 사실 70% 정도는 여동생이 해주는 밥을 먹었던 것 같다. 여동생은 나랑은 반대로 적극적으로 요리하는 스타일이었다.
  덧붙여서, 여동생 친구가 놀러 왔을 때 요리실력을 피로한 결과는 “뭔진 모르겠는데 맛있어.” 였다. 나름대로는, 부대찌개라고 끓인 거였는데….

  고1의 마지막 주간은 방학을 앞둔 학교가 대다수 그렇듯 나른했다. 교사들은 2학년 때를 대비해서 미리미리 예습을 철저히 해 두는 게 좋다고들 지나가며 얘기하지만, 적극적으로 예습을 시키려는 모습은 아니다. 뭐, 학원도 아니니까 교육청에서 지정한 교육과정을 너무 지나치게 벗어날 수도 없겠지. 그런 나른한 환경에, 몇 안 되는 자극이 교복 블레이저의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이다. 뭐, 아무리 이런 분위기라도 수업 중에 전화를 받을 용기는 없으니까 방치했다.
쉬는 시간에 잠깐 확인해보니, 모르는 번호였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시간은 의외로 빨리 흐르는 법이라, 어느덧 겨울방학과 봄방학 사이의 짧은 등교기간은 끝나 있었다. 방송으로 간략하게 마친 종업식은 내용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블레이저 위에 트렌치 코트를 걸치고, 추위에 몸을 떨며 팔짱을 낀다. 교실을 뒤로 한 채 클래스메이트들과 인사를 나눈다. 저 중 내년에도 같은 반이 될 녀석은 얼마나 있으려나.
입김을 내뱉으며 하굣길을 걷는다. 이 와중에도 교복 치마(그것도 짧게 줄인!)와 스타킹만으로 추위를 버티며 거리를 걷는 여자들에게 소소한 존경심을 느끼며, 머플러를 고쳐 맨다. 이제 곧 2학년이라는 걱정보다는, 읽다 만 소설의 뒷내용이 궁금하다. 저, 신경쓰여요! 이 시대의 고등학생은 대체 어떻게 된 건가, 하고 잠시 자아비판. 반성은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겠습니다.
  책은 썩 좋아하는 편이다. 정확히는, 책을 좋아한다기보다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걸지도 모른다. 장르문학도 SF, 판타지, 미스터리 등 특별히 가리지는 않는다. 소위 말하는 덕후 취향의 책들도, 뭐어 그럭저럭 읽는 편이다. 아무래도 로맨스 소설류는 간질간질해서 읽기 힘들지만.

  대략 10분정도 걸어서 집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자취방이라고 해야 할지. 지금 내 주거 상태를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나도 명확히 하기 힘들다. 중앙의 거실을 중심으로 대칭으로 지어진 주택의 좌우 양측 현관 중 오른쪽 문을 향한다. 오토 록의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방으로 들어가 냉큼 문을 닫고 보일러를 켠다. 몸을 좀 따뜻하게 하고 싶다. 겨울용 두꺼운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이불 속에 파묻혔다.
  특이한 구조이지만 명백히 이유가 있다. 양친이 다 외동이고 효심이 지극했다는. 할아버지께서는 외가와 친가 모두 돌아가셨는데, 홀몸이 되신 양쪽 어머님을 집에서 모시고 싶어했으나 부담스럽다며 거부하셨다. 아무튼 상황이 그렇다 보니, 우리 집 근처에 어머님들(내 입장에선 할머님들)을 모실 주택을 지었다. 그 결과가 이거다.
  중앙에는 거실과 주방과 서재, 그리고 목욕탕이 있다. 세탁실도 목욕탕에 딸려있다. 화장실과 개인 샤워 룸도 중앙에 있지만, 입구가 거실이나 주방이 아닌 방에서 이어진다. 거실을 중심으로 좌우측에 할머니들께서 사용하시던 개인 방이 있다. 주방에서 방으로 이어지는 문은 방 쪽에서 잠글 수 있게 되어있다. 이 때문에 현관도 중앙이 아닌 개인 방에 붙어있는 형태가 된 것이다. 그럭저럭 큰 주택 치고는 안방이라고 할 큰 방이 없는 구조도 이 때문이다.
  뭐, 그 할머니들도 지금은 효심 지극한 아들딸과 함께 미국에 가 계신다. 아무리 그래도 해외까지 나가는데 할머니들만 놔두고 갈 수는 없었겠지. 길고 긴 설득 끝에 결국 할머니들도 함께 가셨다.
  생각해보면 나만 담담하게 국내에 남아있는걸 허락하신 게 신기할 정도로, 신뢰받고 있는 건지, 단지 방치되어 있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다.
  내가 부모님들의 전근에 따라가지 않는다고 결정했을 때, 그럼 내 주거지가 어떻게 되느냐가 문제가 되었다. 본래 우리 가족이 살던 집은 혼자 살기엔 좀 큰 편이니까. 이리저리 궁리한 결과 할머니들 집, 그중에서도 친할머니께서 사용하시던 오른쪽 방에 내가 살고, 원래 살던 집과 이 주택의 왼쪽 방은 세를 놓기로 했다. 급하게 출국하시느라 계약도 거의 부동산에 맡기다시피 하고 나가셨었다. 뭐, 원래 살던 집이야 그렇다 치고, 이 집은 구조가 워낙 특이해서 어지간해선 세가 들어올 것 같지도 않다.
  집이야 줄어들었지만, 사실 내 방만 두고 보면 오히려 원래 방보다 늘어난 결과가 되었으니 나로서도 만만세다. 가구류도 대부분 붙박이고, 할머니께서 쓰시던 침대를 남겨두고 가셨기 때문에,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책들과 책상, 데스크탑 PC만 옮기면 됐다. 심지어 거실의 커다란 TV와 드럼 세탁기도 그대로 남기고 가시긴 했는데, 세탁기는 둘째치고 TV는 내 모니터가 겸용이라 아마 쓸 일이 없지 않을까. 옷이야 뭐, 남고생의 옷은 별로 많지 않은 게 보통이다. 이건 편견이지만. 아무튼 중앙의 서재에 내 책들을 꽂는 게 제일 고생이었다.
  책을 덮고 눈가를 가볍게 마사지. 조금 배가 고파져서, 늦은 점심 겸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거실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눈앞에 보인 건, 배스타올을 두르고 목욕탕에서 막 나온 동년배의 여자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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