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룬해방 시대


마법사를 그리 우호적으로 바라보는 편은 아니었지만, 막상 이런 변화가 일어나고 나니 한 때 동경하던 대상이 이렇게 몰락에 몰락을 거듭하고 나니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의 연민을 느낀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유명한 전문지도학원을 다니며 2년 정도를 스스로가 가진 마법사의 자질을 알아보기도 했으나 성과는 없었고, 그간에 투자한 시간과 돈이 절망으로 바뀔 때의 심정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충격적이고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마법 자체를 원망하지는 않았기에 현직 마법사들이 ‘룬의 소실’ 이후 마법을 쓸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은 참 유감이다.
300년간 지속되어온 황금기가 단 한 순간에 그 시절의 역사로 돌아가버리자 그들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학회 통계 기준, 세계에서 8.2%를 차지하는 마법사 인구는 현재 정부에서 한동안 특별관리대상이 되었다. 과거공적에 따라 국가보조금을 지급한다거나 마법에 의지하여 생활했던 이들에게 도우미를 붙여주는 식으로 말이다.
말이야 그럴 듯 해도, 이런 ‘무기력한 독거노인 돕기’나 다를 바 없는 정부의 처세를 과거 마법사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지도 미지수다.

“쉬엄쉬엄 해라이… 어차피 이젠 다 아무 쓸모 없는 골동품들이니께.”
전직 원소의관이었던 호태네 할아버지의 별실에는 특이하게 생긴 마법도구들로 가득하다. 대체로 일상에서 볼 수 없는 기괴한 물건들인데, 보면서 알만한 것이란 거기에 접합되어 있는 빨간색 수정이 ‘룬’이라는 것 정도.
마법사에겐 유전과는 별개로 선천적으로 타고난 ‘룬’의 힘이란 것이 있어서 일반적으로는 마법도구를 사용하지 않지만, 할아버지 같은 의관들이 사용하시던 마법은 병이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시도된 과학과 마법의 접합계열이라 이런 의료기기들이 따로 필요하다.
뭐, 지금에 와서는 그저 빨간 돌 조각일 뿐, 이젠 정말 가치가 전혀 없는 골동품이나 마찬가지다.
마법사의 입장에서 하는 말은 아니지만, 나 또한 ‘마법’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는 소식을 접한 뒤 가슴 속이 텅 비어버리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태어나면서 함께 가지고 나온 치명적인 병은 마법의학이 전파되기 불과 2세기 전만 해도 치료할 수 없는 불치병이었으니까. 그 관계는 내 삶에 있어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현시점의 바깥 분위기는 굴러가는 시대의 거대한 일부를 차지하고 있던 톱니바퀴가 빠지면서 모든 것이 멈춰버린 것 같다고나 할까?
이로서 지난 300년 간 ‘마법’의 뒤편으로 밀려나있던 ‘과학’이란 톱니바퀴가 다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나 현재로선 ‘과학’에 종사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그에 관한 정보자료가 많이 소실되어서, 이렇게 빠진 구멍이 다시 메워지려면 적어도 백 년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마법사협회의 전문가들은 말한다.
고로 현재 시대는 멈춰있다.
시계의 시간은 흐르지만 발전은 하지 않는다.
지금은 그런 세상이 되었다.


(쇠퇴)편_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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