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왠지 따뜻한 무언가에 감싸여 있는거 같아서 눈을 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납치라도 당한건가? 그렇게 생각해봤지만, 온몸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부유감 덕분에 그런 가능성은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아무리 보관을 잘해야 나중에 쓸모가 있다고 한다지만, 공중에 띄워서 보관한다는 건 뭔가 비효율적이잖아?
나는 시간도, 시각도, 청각도, 촉각도 느껴지지 않는 기묘한 공간에서 몸을 파닥파닥 거리며 움직여보았다. 아, 촉각이 느껴지지 않는 건 아닌 모양이다. 팔을 이리저리 뻣을 때마다 무언가 막 같은 게 손바닥에 만져지는 게 느껴진다. 마치, 생물처럼 매끈매끈하고 따뜻한 것이 내장 같은걸 만지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내가 진짜 내장을 만져본건 아니지만.
통- 통- 내가 막을 계속 두들기자, 막 밖에서 누군가가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사람일까? 나는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막을 두들겨서 밖의 누군가에게 내가 여기있다는걸 알리려고 했다. 그러자, 밖에서 기묘한 소리가 들리더니 스윽- 스윽-하고 무언가를 쓰다듬든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안돼겠다. 저 밖에 있는 사람은 나를 여기서 꺼내줄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이야. 나는 고개를 저으며 몸을 웅크렸다.
그래, 자자. 이건 그냥 꿈일 꺼야. 여기서 눈을 감았다가 뜨면, 우리 집이고. 컴퓨터 앞일 테고. 그리고......
- 정말로 꿈일까?
“.......?!”
위험해.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뭔가 무서우면서도 인자한 말에 무의식적으로 대답하려고 하다가 입에 물이 들어갈 뻔했어. 뭐야 이 공간. 왜 물이 한가득 차있는거야! 아니, 잠깐. 나 그러고보니 숨도 안 쉬고 있잖아? .....에반게리온이냐?! 에반게리온인거냐!
- 미안하지만, 여긴 네가 생각하는 그런 곳은 아니야.
‘누구시죠?’
- 나 말인가? 음.... 영어로는 God.라고 하고, 아랍어로는 알라라고 하며, 너희 언어로는 신이라고 불리는 존재지. 물론 내 이름은 따로 있지만. YHWH라고.
아, 그 악마보다 사람을 더 많이 죽인 그분 말씀하시는 거군요. 네 압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런 전능하신 분이 여기에는 어쩐 일... 이신지요?’
나는 최대한 공손한 마음을 담아서 마음속으로 물어보았다. .... 당연하잖아. 저분은 환상향식으로 따지자면 수십억 이상의 신앙을 가진 대 신이라고? 나 따윈 저분이 숨만 내쉬면 이 세상에서 소멸당할 불쌍한 어린 종에 불과하단 말이야.
- 그렇게 당황할 필요는 없다. 어린 종아. 네가 너를 이곳에 부른 건. 한가지 사명을 너에게 주기 위해서란다.
‘사명 말씀이십니까?’
-그래.
잠깐 뜸을 드리던 그 분께서는 충격적인 말을 했다.
- 세계는 멸망했네.
‘.......네?’
잠시 내가 술취해 잠든 일자를 생각했다. 2012년. 마야 사람들이 지구 멸망을 예언한 때잖아? 그러면 내가 잠든 사이에 전부 죽었다는 건가. 고통을 느끼지 않고 죽어서 좋은건지 나쁜건지.....
- 네가 원래 있던 세계가 멸망한 것은 아니네. 다만 다른 세계가 멸망했을 뿐.
‘다른 세계요?’
- 그래. 다른 세계. 네가 살던 세계에서는 창작물로나 나오던 세계지만 실은 실존했던 세계였어. 뭐, 그곳에 살던 인간들은 스스로의 발전에 짓눌려 자멸하고 말았지만.
‘그러면 자업자득 아닌가요?’
- 자업자득이긴 자업자득이지. 헌데, 남아있는 마지막 생존자인 과학자가 내 대천사들을 과학이라는 것의 힘으로 죄다 봉인시키고 있어서 말이야. 이대로 가다간 나도 봉인될지도 모르고.
ㄷ... 대천사를 봉인한다고? 과학 짱 세에에에에!!!! 아니, 잠깐만 신이잖아? 신이라면 저런 주제모르는 인간 따위는 그냥 찍-하면 죽일수 있는거 아니였어?
‘전지전능 하시다면서요? 그럼 그냥 ’너 신벌‘ 하시면 안 되나요?’
- 전지전능이라니, 허허. 그런건 이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네. 음. 그건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하기로 하고. 아무튼 본좌는 너를 보내서 그 세계의 운명을 비틀려고 하네. 이미 결정된 세계는 바꾸기 힘들지만, 너와 같은 이레귤러가 가면 바뀔 가능성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ㄱ.... 그럼 저는 환생하는 건가요? 그렇다면 혹시 특전같은거라도 있나요?’
- 특전? 하긴, 가끔은 너같은 녀석이 나오기도 하지. 요한도 그랬고.
‘요한요? 혹시 그 요한복음의 저자?’
- 아, 천국에서 내 옆자리를 달라고 징징대서, 그냥 이 세상에서 평생 살라고 불사의 권능을 주긴 했지. 나중에 하도 회개하길래 그냥 죽여줬지만.
뭔가 ‘특전 그런건없다.’라는 느낌이 풀풀 풍겨서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하다못해서 내가 가게 될 세계를 알고 싶긴 한데.... 솔직히, 딱 환생했는데, 애피쳐 사이언스 내부라던가, 콤바인이 날뛰는 동네라던가, 붉은색 건축물 때문에 사람들이 죄다 괴물로 변해버린 우주선 같은 동네로 가면 끔살이잖아. 뭐, 알아도 바뀌지 않는건 마찬가지지만.
- 자네에게 주어진 사명은 간단하네, 그 세계를 충실히 살아가면서 빛과 함께 그 어리석은 과학자를 막는거지.
‘빛.... 이요?’
빛과 함께 막으라고? 뭐, 럭스같은 애라도 찾아오는건가? 나는 그 분의 부가 설명을 기다렸지만, 그 이상 아무런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 대신 갑작스럽게 머리 위에서 누가 당기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물이 몸 위로 빠져나갔다.
‘오오, 막이 열리는건가? 좋아. 환생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살아주겠어!’
".......라고 생각하던 때가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처음에 태어났을 때, 좀비라던가, 사람머리에 기생하는 기묘한 생물 같은게 튀어나오지 않는 평범한 일본 동네라서 안심했었다. 최소한 어릴 때 끔살당하지는 않겠구나. 아마, 그 ‘빛’이라는 녀석을 찾으려면 고등학생 정도는 돼야겠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는데.....
“짠! 료야야, 여기 블루아이즈 아이스크림이야.”
저기, 제가 왜 카이바 유원지에 와있는건가요?
아니, 제가 왜 유희왕 세계에 환생한거란 말입니까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