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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X51OaJwJEEOu:2014/05/11(일) 00:35:46.34 ID:Zzp1A0AIo
일을 마치고 맨션에 돌아오자, 현관에 낯선 물체가
“으―, 물체라고 하는 건 너무해~.”
“미안해. 그래도, 마미. 무슨 일이니? 이런 깊은 밤에.”
“음―, 일단 집에 들여보내줬으면 싶은데―.”
사이드 테일을 빙글빙글 손가락으로 돌리면서 치뜬 눈으로 부탁한다. 내가 거절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
교활하다.
3: ◆X51OaJwJEEOu:2014/05/11(일) 00:36:48.50 ID:Zzp1A0AIo
“들어와, 어질러져 있지만.”
“실례하겠습니다―.”
박스를 쌓아두기만 하는 환경에선 졸업하긴 했지만, 여전히 살풍경한 내 방.
어질러져 있다고 할 정도까진 아니지만, 물건 자체가 적은 거다.
5: ◆X51OaJwJEEOu:2014/05/11(일) 00:37:59.89 ID:Zzp1A0AIo
“호오호오, 여기가 치하야 언니의 하우슨가~.”
“후훗, 뭐야 그거. 보리차 괜찮니?”
“아, 고마워.”
아직 가사에는 서툰 내 필수품, 물만 타면 되는 보리차.
페트병을 사는 것보단 경제적이고, 쉽고 맛있다. 편리.
6: ◆X51OaJwJEEOu:2014/05/11(일) 00:38:56.49 ID:Zzp1A0AIo
“그런데, 무슨 일이니?”
냉장고 문을 닫고, 방석만 놓여 있는 바닥에 앉는다.
“으음―, 뭐어, 별일은 아닌데.”
방석 위에서 쿠션을 안고 쪼그려 앉는 마미.
별일 아닌게 아니라는 건, 사람이랑 잘 못 어울리는 나도 알겠다.
“뭐어, 상관은 없는데, 우리 집은 시간 때울만한 건 없는데?”
7: ◆X51OaJwJEEOu:2014/05/11(일) 00:39:43.61 ID:Zzp1A0AIo
두리번 두리번 방을 둘러보는 마미의 눈길이 한 점으로 모인다.
“뭐든 안정되는 음악 없어?”
“하아, 어쩔 수 없네.”
급료로 산, 적당한 가격의 오디오 콤보.
무슨 노래를 고를지 한동안 고민한 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콘체르토 음반을 넣는다.
9: ◆X51OaJwJEEOu:2014/05/11(일) 00:40:46.96 ID:Zzp1A0AIo
“가족들에게는 말했니?”
“응, 치하야 언니 집에서 묵겠다고.”
재생. 달콤한 선율이 깊이 있는 음색으로 흘러나온다.
11: ◆X51OaJwJEEOu:2014/05/11(일) 00:41:28.78 ID:Zzp1A0AIo
“그런 것치곤, 짐이 적지 않니?”
“읏, 치하야 언니한테 들킬 줄이야.”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자, 휴대폰 빌려줘.”
“예―.”
번호가 입력된 휴대전화를 받는다.
12: ◆X51OaJwJEEOu:2014/05/11(일) 00:42:13.73 ID:Zzp1A0AIo
“아, 여보세요. 후타미 양네 집인가요? 예, 저는 마미 양과 아미 양의 동료인 키사라기 치하야라고 합니다. 예, 지금 마미 양이……예, 오늘은 늦었으니 여기서……예, 죄송합니다. 내일 제대로 보내 드릴테니, 예. 그럼, 마미 양에게 바꾸겠습니다.”
전화를 마미에게 건넨다.
후우.
전화는 숨 돌릴 시간이 없어선지, 끝나고 나면 언제나 한숨이 나와 버린다.
“여보세요, 엄마? 응, 미안. 응, 괜찮다니까! ……정말, 애 취급하지 마. 끊을게? 응, 그럼 내일 봐.”
14: ◆X51OaJwJEEOu:2014/05/11(일) 00:43:04.86 ID:Zzp1A0AIo
“괜찮았니?”
“응, 괜찮아.”
눈을 제대로 맞춰 준다. 제법 안정을 되찾은 모양이다.
「えへへ、今일はお泊りだねい」
“에헤헤, 오늘은 자고 가는 거네~.”
“그렇구나.”
기분 좋은 침묵 속에서 보리차를 홀짝인다. 곧 제 1 악장이 끝날 것 같다.
“잠시, 쇼핑하러 나갈까?”
15: ◆X51OaJwJEEOu:2014/05/11(일) 00:43:41.87 ID:Zzp1A0AIo
찾아간 건 24시간 영업하는 할인 슈퍼.
“조금 의외일지도.”
“뭐가?”
“치하야 언니는 편의점 도시락 같은 걸로 때울 것 같은 이미지가 있었으니까.”
“뭐, 부정은 안 할게.”
사실이다. 영양보급 젤리나 칼로리 밸런스 같은 것만으로 보내던 시기도 확실히 있었다.
16: ◆X51OaJwJEEOu:2014/05/11(일) 00:44:53.90 ID:Zzp1A0AIo
“그래도 역시 직접 요리를 만드는 건 기분 전환도 되고 괜찮아.”
“호에―, 그런 거려나~.”
야채 매장을 걸으면서 마늘과 가지를 바구니에.
“마미는 요리 안 하니?”
“흥미는 있지만, 시간도 없고 엄마가 밥 만들어서 기다려 주니까, 별로 할 필요가 없다고 할까.”
“그렇구나.”
18: ◆X51OaJwJEEOu:2014/05/11(일) 00:45:37.67 ID:Zzp1A0AIo
“아, 그래도 아미보다는 잘해! 조리실습에서 파스타를 종이호일로 닦거나 하진 않으니까!”
“후훗, 그건 뭐니? 비교대상이 너무 낮아.”
일단 시간도 시간이기에 무첨가 베이컨을 고른다.
“저기― 치하야 언니, 뭐 만들거야?”
“아미가 종이로 닦았다는 파스타야.”
마지막으로 병조림 토마토소스를 잡은 뒤 계산대로.
금방 계산을 마치고 귀로에 오른다.
19: ◆X51OaJwJEEOu:2014/05/11(일) 00:46:24.15 ID:Zzp1A0AIo
“그럼, 빨리 만들게.”
“마미도! 마미도 도울래!”
“어머, 그럼 부탁할게.”
그 전에, 평소에는 안 하지만 일단 사 둔 앞치마를 마미에게 해 준다.
20: ◆X51OaJwJEEOu:2014/05/11(일) 00:47:31.69 ID:Zzp1A0AIo
“좋아. 옷에 튀면 미안하니까.”
“고, 고마워. 치하야 언니는 괜찮아?”
“괜찮아. 지금은 실내복으로 갈아입었으니까.”
21: ◆X51OaJwJEEOu:2014/05/11(일) 00:48:21.63 ID:Zzp1A0AIo
우선은 둘이서 손을 잘 씻는다.
“그럼, 마미는 이 냄비로 물을 끓여줘.”
“라저―!”
혼자 살다 보니 국수냄비나 곰솥같은 건 없다. 뚝배기에 프라이팬, 그리고 이 다시냄비만 있으면 대체론 어떻게든 되니까.
22: ◆X51OaJwJEEOu:2014/05/11(일) 00:49:20.39 ID:Zzp1A0AIo
“뚜껑을 닫아야 빨리 끓지?”
“응.”
마늘은 잘게 썰고, 가지는 통통 반달썰기를.
올리브오일을 두른 프라이팬을 가볍게 데우고 마늘을 투하.
슈우우 하는 소리와 함께 마늘의 향기가 기름으로 옮겨간다.
23: ◆X51OaJwJEEOu:2014/05/11(일) 00:50:31.31 ID:Zzp1A0AIo
“아, 환기팬.”
“마미가 할게.”
부우우웅 하는 낡은 소리를 내며 환기팬이 돌기 시작한다.
“그럼 마미는 프라이팬에 있는 걸 안 타게 볶아줘.”
“알았어.”
“가지는 구석구석까지 기름을 먹여줘.”
“응!”
24: ◆X51OaJwJEEOu:2014/05/11(일) 00:52:45.00 ID:Zzp1A0AIo
마미가 주걱으로 재료를 볶는 동안 베이컨을 한입 크기로 썰어나간다.
기세로 덩어리 베이컨 같은 걸 사 버린 탓에 조금 귀찮긴 하지만, 고기의 식감이 즐길 수 있을 정도의 두께로 썰어나간다.
“와왓, 조금 타기 시작했을지도!”
“괜찮아, 불을 줄여줘. 뭐하면 아예 꺼도 괜찮아.”
25: ◆X51OaJwJEEOu:2014/05/11(일) 00:53:20.56 ID:Zzp1A0AIo
조금 오래된 가스레인지 레버를 탈칵탈칵 돌려서 불길을 줄인다.
그리고 베이컨을 투입.
“고기는 먼저 구워야 하는 거 아니었어?”
“보통은 그래. 그래도 베이컨은 훈제고, 이번에는 가지에 기름을 먹이고 싶었으니까 뒤에 넣어도 괜찮을까 싶어서. 후훗, 대강대강이네.”
“웃훗후~, 역시 치하야 언니는 치하야 언니구나~.”
“뭐야 그거, 정말~.”
26: ◆X51OaJwJEEOu:2014/05/11(일) 00:53:48.73 ID:Zzp1A0AIo
“아니아니, 언제나 멋있지만 어딘가 안심할 수 있는 느낌이라는 소리야.”
“그러니? 특별히 의식한 적은 없는데.”
“그런 부분이 멋있는 거야♪”
“마미도 언제나 건강하고 밝아서, 요즘 여자애란 느낌이라서 부러워.”
“에, 그, 그러려나……에헤.”
수다를 떨면서 베이컨을 익힌다. 조금 바삭하게 탄 부분이 보여서 토마토소스를 넣는다.
27: ◆X51OaJwJEEOu:2014/05/11(일) 00:54:34.59 ID:Zzp1A0AIo
“잔뜩 달라붙어서 아까워~.”
“그렇지, 그래서 이렇게 할 거야.”
병에 물을 3분의 1 정도 넣은 뒤 뚜껑을 꽉 닫고 흔든다.
“오오―! 순식간에 더러운 부분이 떨어져 나가―!”
“이게 눌러 씻기란 거야, 일리가 있나.”
“치하야 언니가 셀프 딴죽, 이라고……!”
“후훗, 왠지 마미랑 있으면 여동생 같아서 평소보다 마음이 놓여.”
28: ◆X51OaJwJEEOu:2014/05/11(일) 00:55:06.67 ID:Zzp1A0AIo
“여동생인가~. 에헤헤, 이런 언니가 있으면 마미도 기쁘겠는데~.”
“나 같은 애로 괜찮니?”
“치하야 언니니까 괜찮은 거야.”
“뭐, 뭐든 괜찮지만―.”
“뭐야 그거―.”
“옛날 말버릇.”
소스가 녹은 물을 프라이팬에 넣는다. 그 뒤에는 조금 조리면 소스는 완성. 다음은 면.
29: ◆X51OaJwJEEOu:2014/05/11(일) 00:56:05.44 ID:Zzp1A0AIo
“물은 끓고 있니?”
“응, 잘 끓어!”
“그럼, 소금을 한 자밤 넣어줄래?”
“알았어!”
자그만 손이 통 안의 소금을 잡곤 다시냄비에 뿌린다.
그것보다 큰 손이 파스타 2인분 만큼을 펼쳐지듯 투하한다.
한동안 긴 젓가락으로 천천히 뒤섞어, 파스타 전체가 물 안에 잠긴 뒤에 손을 멈춘다.
30: ◆X51OaJwJEEOu:2014/05/11(일) 00:56:46.06 ID:Zzp1A0AIo
“여기서부턴 조금 편법으로 가겠습니다.”
“무슨 소리야?”
“이런 소리야.”
조금 큰 뚜껑을 덮곤, 불을 끈다.
31: ◆X51OaJwJEEOu:2014/05/11(일) 00:58:08.20 ID:Zzp1A0AIo
“에―! 불 꺼버리는 거야?!”
“응. 이 뒤는 삶아질만한 시간을 기다리기만 하면 돼.”
삑, 하고 미리 8분으로 설정해 뒀던 타이머를 켠다.
이 뒤는 테이블 메이크같은 것들을 하고 있으면 된다. 정말 편하다.
“정말 괜찮아―?”
“괜찮아. 나를 믿으렴.”
“에―, 그 대사는 별로 믿기 힘든 사람이 하는 대사잖아―.”
32: ◆X51OaJwJEEOu:2014/05/11(일) 00:59:05.19 ID:Zzp1A0AIo
접이식 밥상을 행주로 닦고, 다시 보리차를 준비한다.
BGM은 식사에 어울릴 모차르트 같은 거면 어떨까.
흘러나오는 소야곡. 정말로 오늘 밤에 어울리는 느낌이다.
이러는 동안에 삶기 시간은 끝.
“아직 못 믿겠어…….”
“그럼 마미가 열어 보렴.”
“에―, 그럼 열긴 할텐데.”
33: ◆X51OaJwJEEOu:2014/05/11(일) 00:59:37.60 ID:Zzp1A0AIo
뚜껑을 연다. 그러자 안에서는 황금색 파스타가 고개를 내민다.
“겉보기만으론 아직…….”
“한 가닥 먹어 볼래?”
“응……아, 진짜 부드러워! 어째서?!”
“나도 잘 모르겠지만, 삶는 건 결국 수분을 침투시켜서 전분에 열을 가해 알파화 시키는 거잖아. 그러면 뚜껑을 닫아 두기만 해도 충분할 것 같지 않니?”
“으으으, 어려운 말이 잔뜩 나왔어~.”
“후훗, 뭐, 맛있으면 괜찮은 거야.”
34: ◆X51OaJwJEEOu:2014/05/11(일) 01:00:24.59 ID:Zzp1A0AIo
마미에게 채를 들어달라고 하고, 파스타의 물을 뺀다. 그리고 가볍게 물기가 있는 상태의 면에 토마토소스를 더해서 다시 점화.
“소스랑 섞기만 하는 게 아니구나.”
“조금 볶아주는 편이 서로 잘 섞일 기분이 들지?”
소스가 잘 들어간 파스타를 접시에 담아서 완성.
35: ◆X51OaJwJEEOu:2014/05/11(일) 01:01:05.48 ID:Zzp1A0AIo
“미안해, 포크가 없으니까 젓가락으로.”
“으으응, 마미도 집에서는 젓가락으로 먹을 때도 있고.”
“그럼 먹자.”
“응.”
““잘 먹겠습니다―!””
36: ◆X51OaJwJEEOu:2014/05/11(일) 01:01:36.38 ID:Zzp1A0AIo
“필요하면 가루치즈 쓰렴.”
“고마워!”
면을 하나 집고, 후르르릅 빤다.
응, 맛있어. 토마토 맛에 안 밀리고.
37: ◆X51OaJwJEEOu:2014/05/11(일) 01:02:37.31 ID:Zzp1A0AIo
“맛있어…….”
“정말? 그러면 만든 보람이 있었네.”
알 덴테의 면과 심플한 맛의 소스가 잘 어울린다.
토마토의 신맛, 베이컨의 감칠맛, 마늘의 향기, 가지의 식감.
자그만 식재기에 더더욱 각각이 지닌 맛이 두드러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렇다 쳐도, 가사 초보자인 내 가정 요리는 대단한 맛은 아닐 텐데.
“응? 왜 그래, 마미를 지긋이 보곤. 설마 반해버렸으려나~?”
38: ◆X51OaJwJEEOu:2014/05/11(일) 01:03:33.74 ID:Zzp1A0AIo
그렇게나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던 마미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었던 데는 자긍심을 가져도 괜찮지 않을까.
“아무것도 아니야, 즐거운 밤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야.”
어차피 아미랑 싸움을 했다거나 하는 사소한 일이 꼬여 버린 거겠지.
그렇다면, 요리라는 자그만 행복으로 그걸 녹여주면 된다.
40: ◆X51OaJwJEEOu:2014/05/11(일) 01:04:43.17 ID:Zzp1A0AIo
“이야~ 그래도 오늘은 달이 예쁘네~.”
“응――.”
41: ◆X51OaJwJEEOu:2014/05/11(일) 01:05:10.78 ID:Zzp1A0AIo
“나, 죽어도 좋아, 려나?”
42: ◆X51OaJwJEEOu:2014/05/11(일) 01:05:43.44 ID:Zzp1A0AIo
“에, 뭐야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차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