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하렘?! (2)
모두의 몸이 순식간에 굳었다. 아니, 나는 그 의도는 아니였는데 나머지 세 명이 그대로 어붙어서 내가 어떻게 할 상황이 아니였다.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는 눈을 부릅 뜬 체 잇시키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고 잇시키는 내게 인사하던 그 자세 그대로 굳어서 그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둥..."
방의 정적을 깨는 기이한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출처는 유이가하마.
그런 목소리는 대부분 나레이션이 하는거라고?
일단 상황이 닥치니 어떻게 정리해야 될지 종잡을 수 없었다. 일단 뭐라도 말을 해야될 것 같았다.
"크흠...그러니깐..."
"히키가야 군, 당신을 유괴 밑 성폭행 죄로 신고해야 될 것 같네요."
"아니, 기다..힉!"
변명하기도 전에 유키노시타의 살의에 찬 목소리에 묵살당했다. 유키노시타는 지금까지 본 적도 없는, 정말로 차디찬 표정의 얼굴로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경멸의 눈빛도 환멸의 눈빛도 아닌, 그저 무표정일 뿐인데 엄청 무섭다.
"히, 히, 히, 힛키? 오, 왜 이로하 짱이 여기에 있는걸까나? 랄까, 왜 힛키의 집열쇠를 가지고 있는거야?"
유이가하마가 거의 울상을 지으면서 내게 달려들었다. 그, 그러니깐 내게 알려달라면서 왜 해명 할 기회를 안 주는건데?!
"유, 유이가하마 기다려 봐. 어이, 유키노시타! 전화기에서 손 때!"
"서, 선배님. 제가 안 좋은 타이밍에 들어온걸까요?"
"어, 무지 그래. 그러니....."
"그럼 천천히 일 보세요."
"야! 기다려!"
이봐, 여기서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가 도망가려고 하면 어쩌자는거냐? 이 수라장을 나 혼자서 정리하라고?!
"잇시키 이로하 양, 이 문제에 대해서 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는데?"
"네, 네에..."
우와, 풀 네임으로 불렀다.
다행히도 잇시키는 유키노시타의 제지로 인해서 붙잡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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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완전 위험해. 랄까, 유키노시타 완전 무서워.'
지금 우리 네 명은 6평짜리 좁은 단칸방 안에서 동그란 원형테이블을 둘러서 앉아있었다. 정면에 유키노시타가 앉아 있어서 그녀의 차디찬 눈동자가 그대로 내게 작렬했다.
"나, 나는 차를 타 올게. 서로 이야기들 나누고 있어."
"힛키, 피하지 마."
일어나려던 나를 유이기하마가 붙잡았다. 그리고는 그나마 상냥하게 잇시키에게 말했다.
"아...이로하 짱? 부탁해."
"맞겨만 주세요."
잇시키는 히-하고 웃으면서 부엌으로 걸어갔다. 부엌이라 해봤자 바로 뒤에 있지만 말이다. 잇시키 가 자리를 비웠음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셋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아무 말 없는게 더 무섭다고. 그냥 빨리 아무거나 말 해. 빨리 죽고싶어....
잇시키가 신나게 부엌을 뒤지는 모습을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가 뚫어져라 지켜보고 있었다. 거의 눈에서 레이져가 나올 수준으로...
"선배님, 티팩 어디있나요? 늘 두시던 자리에 없네요."
"아, 그거? 그...조미료 놓는 곳 에다가 잠깐 놨었어. 아마 거기에 있을거야."
"네에~"
잇시키가 왠지 즐거운 듯 보인건 나 뿐인걸까?
하아-
하아-
내가 한 숨을 푹 쉬는데 덩달아서 옆에 앉아있던 유이가하마까지 한숨을 쉬었다. 왜 그런가 하고 돌아봤는데 유키노시타가 내게 갑자기 말을 걸었다.
"지금 대화를 들어보니...잇시키 양은 평소에도 여기에 자주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뭐, 그야 이웃이기도 하고..."
"헤에~이웃이라면 이런 야밤에 들이닥쳐도 되는구나."
"야밤이라니, 아직 여덣시다. 그리고 들이닥친다니, 내가 가능랄 것 같아?"
"뭐, 혈기왕성한 그대라면 못 할 것도 없지."
"무, 무슨..."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짓거리는거냐!! 이거 완전 얀데레 아니야? 아차, 이거 입 밖으로 내뱉을 뻔 했다. 분명 그랬다면 난 그 시점으로 세상에 지워졌을거야...
"힛키, 언제부터 이런 생활을 하기 시작한거야?"
"그, 그건..."
"6개월 정도 됬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제가 이 건물에 이사온 당일날부터, 일까나요?"
어느새 돌아온 잇시키가 '우훗' 하면서 각자에게 녹차를 돌렸다. 그보다, 넌 상황파악이 안 되는거냐? 왜 불난 집 안에 LPG가스통을 통째로 던져버리는거냐고?!!
"이, 이사온 다, 당일부터?"
"우오아아아...."
지금까지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던 유키노시타의 목소리가 떨렸다. 유이가하마는 뭐가 신기한지 감탄사를 흘리는데....신기해서 흘리는 감탄사 맞지?
"흠흠, 그럼 잇시키 양.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아무렴요."
"..."
잇시키의 너무나도 태연스런 반응에 유키노시타의 눈꼬리가 살짝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 미묘한 움직임은 잇시키 외에는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 했다.
"잇시키 양은 히키가야 군과 무, 무슨 일을 하는건가요?"
"무슨 일이라니, 어이. 질문이 이상하잖아?"
"선배는 가만히 계세요."
"그래 히키가야 군. 지금 당신은 찌그러져 있는게 정상이에요."
"맞아, 맞아."
뭔 말을 못 해요...
"그러게요...우선적으로는 '서로 밥을 만들어주고 있기' 랄까요?"
"하아?"
"...네?"
"어이, 기다..."
"선배는 조용히 하시라니깐요?"
어이, 잇시키. 우선적인건 그게 아니잖아? 다른 게 우선순위 아니였어? 왜 그게 먼저 튀어나오는거야. 그리고 유이가하마, 후배에게 존칭 쓰는 거 아니야.
"우선 서로 당번을 정해서 밥을 만들어 준달까요? 아, 그리고 종종 청소하는 거 서로 도와줘요."
"어이, 잠깐..."
"그리고 같이 장도 보고..."
"그러니깐 기달...."
"종종 술친구가 되기도 하고..."
"야, 잇시키 쫌..."
넌 뭐가 좋다고 신나서 그렇게 나불거리냐?! 저 둘의 표정이 안 보이냐?
말 그대로였다. 잇시키를 바라보던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의 안색은 처음보다 점점 하얗게 질리고 있었다. 얼마나 핏기가 가시면 하얗게 질리는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폭주하는 잇시키를 막으려 하는데 잇시키가 지뢰를 밟아버렸다.
"아, 그리고 저번에는 데이트도...."
"이로하 그만하라고, 쫌!"
"히끅!"
내 절규어린 외침에 그제서야 잇시키의 폭주가 멈췄다. 그렇다, 이제야 확신이 제대로 섰다. 이녀석은 정말로 악마다. 이렇게까지 날 곤란하게 만들고 싶을까? 그리고 왜 일부러 오해 할 만한 말만을 골라서 하는건지 모르겠다. 사실 잇시키가 나와 친하게 지내는 이유는 따로 있는데 말이다.
"후우...잇시키, 앞으로 그런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발언은 삼가해 줘."
"네에- 근데, 선배님은 괜찮아요?"
하아?!
"그걸 말이라고 하냐?! 네놈 덕분에 아주 죽겠다."
"아뇨 그게... 선배가 마지막에 크게 한 방을 먹인 것 같아서요, 유키노시타 선배님이랑 유이가하마 선배님께..."
뭔 소리래? 내가 뭘 잘못했는데? 지금까지 너만 신나게 나불거렸잖아?! 나는 억울하다는 듯이 그 두 여인을 바라봤다. 그런데 왜 저 둘의 입이 떡 하고 벌어져 있을까?
"히, 히키가야 군이 여성의 이름을 부르는 걸 보는 건 처음이야..."
유키노시타가 혼이 나간 듯 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그래도 내 귓가까지 소리가 잘 전달됐다.
"하아? 처음이라니, 코마치랑 하루노 누나가 있잖냐?"
"힛키, 그게...하루노 씨는 예외라 치고 코마치는 여동생이잖아."
"그런데?"
왜이래 대체...
"근데...왜 이로하 짱은 이름으로 부르는거야?"
"....내가 방금 이름으로 불렀어?"
"그래, 확실히."
유키노시타가 저렇게까지 말하면 분명 내가 잇시키를 이름으로 부른 것이다. 나는 머리를 굴리며 괜찮은 변명을 찾아다녔다.
"아니, 그게 자주 만나니깐 조금 편해졌달까..."
"봉사부때는 힛키, 우리는 이름으로 안 불러줬잖아?"
"어...사회에 나가고 긴 시간동안 같이 있다보니..."
"히키가야 군. 봉사부 때 우리랑 같이 했던 시간이 더 길었어."
으어어어 진짜, 이 상황을 어쩔거냐고 잇시키!!
나는 원망의 눈초리로 잇시키를 째려봤다. 잇시키는 그런 나를 보면서 해맑게 웃었다. 어째서 이 상황에서 그렇게 해맑게 웃을 수 있는거냐고! 때문에 화도 못 내겠잖아!
내가 씩씩 거리면서 분을 삮히고 있을 때, 유키노시타가 축 늘어진 자세로 웅얼거렸다.
"아...역시, 데이트 때문에 서로 가까워진 걸지도 몰라..."
"데이트라니 그건 진짜 아니야!"
"힛키........대실망."
"아니라고오~! 애초에 내가 잇시키랑 같이 생활하는 것도 잇시키의 부탁 때문이야."
내 말에 그 두 명이 고개를 갸웃했다. 순간 고양이들 같아서 무심결에 쓰다듬을 뻔 했다. ....물론 머리라고? 배나 허벅지나 엉덩이 같은 곳이 아니야.
"내가 아직 하야마랑은 어떻게 연락이 되고 있거든..."
"히...히키가야 규, 군이 고등학교 도, 동창이랑?"
"히, 힛키도...뭔가 변했구나..."
뭐야, 왜 말을 더듬는거냐. 학교 동창이랑 연락하고 지내는 건 딱히 리얼충들만 하는 그런 저급한 것이 아니란 말이야.
"하아...어지됐든, 잇시키가 하야마랑 잘 되게 해 달라고 부탁해서 도와주는거야. 그 이상은 없어."
눈을 감고서는 당당하게 말했다. 비록 잇시키 때문에 중간에 이상하게 흘렀지만 나는 꼴릴만한 게 없다. 그러나 당당하고 자신있게!
한동안 아무 말도 없어서 슬쩍 눈을 떠봤다. 그 둘은 확실히 조용해져 있었다. 하지만 왠일인지 그 둘의 눈총은 내가 아니라 잇시키에게 쏘여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천진난만하게 나불거리며 웃고있던 잇시키는 처음으로 얼굴울 굳히고 있었다.
....뭐냐 이 상황은...산 넘어서 산이냐?
"이로하 짱..."
"그게...이렇게라도 해야지 상대를 해 주셨거든요...헤헷"
애써 애교있는 짓을 했지만 그닥 효과는 없는 듯 했다. 아니, 원래 누구에게도 효과는 없었지만 말이지. 유키노시타는 한 숨을 쉬면서 관자놀이에 손을 언졌다.
뭔가 불편하신가요, 유키노시타 양?
"잇시키 양...애초에 우리랑 했던 말이 다르다고 생각하진 않은거니?"
"우...그게..., 선배들과는 달리 저는 반학기 정도 늦게 시작했잖아요? 그거애 대한 핸디캡...이라고 하면 돼겠죠."
"하아....."
뭐, 뭐야. 갑자기 그 서두없는 대화는. 설마 아까 카페집에서 했던 대화를 이어서 가는거냐? 아니, 나랑은 관계 없지만 여기서 그 이야기가 나오면 왠지모르게 신경쓰인달까, 그리고 여기서 그 말이 나온걸 보면 나랑도 관걔 있는 거 아니야?
"저기....지금 그 얘기는 아까 카페에슈 했던 얘기야?"
"히키가야 군. 소녀들의 이야기를 캐묻는 건 저급한 삼류 치한들이나 하는 짓거리야. 더 이상 그딴 발언을 한다면 사회적으로 지워버리는 수가 있어."
소녀라니 네가 애냐....라기보단 그게 그렇게나 하면 안 될 행동이였어? 전혀 몰랐잖아. 앞으로 조심해야지....라고 수긍하는 내가 참...
"선배님, 참고로 이 이야기의 시작은 꽤 지난 일입니다. 한....8년 됬을까요?"
"하아?"
"이, 이로하 짱! 그건..."
"뭐, 선배님도 관여된 일이니깐...힌트정돈 괜찮잖아요? 선배님은 이런 쪽으론 둔하시고."
"어이 마지막은 아무리 들어도 날 비하하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데?"
"그러게...히키가야 군 이라면 그런 핸티캡 정돈 있어야겠어."
"납득하지 마."
하아....정말로 힘이 쫙쫙 빨린다. 대체 잇시키 이 녀석은 왜 이런거냐고...
"참, 그리고 내일은 토요일 이잖아요? 너 내일 선배님이랑 데이트 간답니다~"
아~~잇시키 양이 또 한 건 터트렸어요. 소악마는 죽여도 되살아난다지요?
"데...데이..트?"
"힛....키..."
둘이서 암울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제발 잇시키가 하는 말 그대로 믿지 말라고! 잇시키 너도 이상한 말 하지마. 날 정말로 죽일 작정이냐??
"아냐, 이건 단지 하야마의 물건을 사러가기 위해서다."
"흐음...."
유키노시타가 턱을 어루만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저를 이해하시는 건가요? 그런가요?
"그럼 잇시키 양. 나도 내일 동행햐 줄게. 저게 네게 너떤 파렴치한 행동을 할 지 모르나깐."
"결국 내가 나쁜놈인거냐?!"
"이로하 짱!! 나도 내일 같이갈래. 응? 그러자 유키농~!"
"아, 알았어 그럼..."
"자...잠깐, 유키노시다 언니랑 유이가하마 언니, 전 아직 허락하진 않았다고요?"
"그렇네...그럼 우리도 살 게 있으니 내일 같이 가기로 할게."
"응, 그러자 유키농~"
하아....시끄럽다고 이놈들아! 벌써 10가 다 되간다. 밥....배고픈데 말이야.... 제발 누가 이 수라장 쫌 막아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