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기사를 쓰고싶어서 전편
“잠깐, 유미! 대신 나가달라는 게 무슨 소리야!”
“어쩔 수 없잖아. 나는 이런 상태고.”
여름 감기에 걸려 침대에서 이불을 둘둘 감고 있는 유미를 내려다보며 유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소리를 해도, 그런 이야기 한 번도 한 적 없었잖아.”
“괜찮아, 후쿠자와 집안은 남들하고 친해지기 쉬운 가계니까.”
“그래도 초대면인데.”
“마미 양에게는 내가 이미 전해 두었으니, 잘 부탁해.”
유미는 자기가 할 말만 하고는 힘이 완전히 빠진 듯 반대쪽을 향해 몸을 동글 말았다. 참말, 뭐가 잘 부탁핸지. 억지로 일을 맡기고선.
유키는 유미가 맡긴 표를 든 상태로 난처한 표정을 드러냈다.
유미 양의 전화가 걸려 온 건 마미가 딱 집을 나서겠다 생각했을 때였다.
비음으로 하는 소리는, 여름 감기로 뻗어 있어서 오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몸 상태가 나빠진 건 어쩔 수 없다고, 빨리 건강해지라는 이야기를 하고 전화를 끊으려고 했을 때 전화 저편에서 어마어마한 말을 전해 들었다.
“미안해. 그래도 나 대신에 남동생인 유키가 갈 테니까.”
“…………엣?”
“유키도 기대하고 있으니까. 그럼 동생을 잘 부탁할게. 바이바이~.”
“자, 잠깐, 유미 양?! 무, 무슨 소리”
하지만 이미 전화는 끊겨 뚜ー뚜ー하는 소리만이 공허하게 들려올 뿐. 무의식중에 수화기를 돌려놓고 마미는 문득 자신의 모습을 다시금 확인했다.
평소와 별다를 바 없는 티셔츠에 청바지. 여름이고 더운데 친구와 만날 뿐이었으니 이걸로 충분했을 텐데.
마미는 서둘러 우당탕 계단을 뛰어 올라가 자신의 방으로 뛰쳐 들고는, 천천히 셔츠와 청바지를 벗어 던지고 브라와 쇼츠만 입은 속옷 차림으로 옷장을 열어, 필사적으로 옷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래층에서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빨리 가지 않으면 약속에 늦을 거라는데, 그런 건 알고 있다. 알고 있긴 한데.
혼란에 빠져 있던 마미는 이미 유키 군이 약속 장소로 가고 있을 거로 생각하고 전화를 걸어 거절한다고 하는 선택지를 떠올리지도 못했다.
간신히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을 때는 이미 약속 시각을 맞출 수 없는 시점이 되어 있었다.
결국, 마미가 고른 건 카키그린색 니트에 줄무늬 스커트를 맞춘 원피스, 더블 벨트 웨지 샌들, 그리고 햇빛 차단용 베이지색 모자. 이걸로 거의 한계였다.
어쨌든 만 16살의 야마구치 마미는. 릴리안 여학원에 다니는 여고생인데다, 비슷한 나이대의 남자분과 둘이서 외출한 경험 따위는 전혀 없었으니까.
우와아, 게다가 팔죽지의 살이 신경 쓰인다. 뭐니해도 스스로 체력이 없다 하고 다닐 정도로 운동부족이다. 조금 더워도 칠 부 기장 정도로 해 두는 게 나았으려나.
그런 걸 떠올리며 안절부절못해 하면서도 스커트를 너펄거리며 간신히 약속 장소에 도착한 뒤, 마미는 자신이 어마어마한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나, 유키 군을 전혀 몰라――.’
유미 양에게서 연년생 남동생이 있다는 걸 들은 적 있었지만, 여하튼 만난 적은 한 번도 없는데다가 사진도 본 적이 없다. 그건 분명 상대도 마찬가지겠지. 서로 만날 상대의 얼굴도 모르고, 특징도 모른다. 적어도 아까 전화로 어떤 모습으로 갈 건지 이야기라도 했었으면…… 같은 걸 떠올리며 허둥지둥거리고 있자
“저기, 야마구치 마미 양인가요?”
하는 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에? 하는 생각과 함께 몸을 돌리자.
이쪽을 돌아본 그녀를 한 박자 늦게 따르듯 줄무늬 스커트가 너펄거렸다. 옛날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아 한순간 정신을 빼앗겨 버렸다.
“저기, 야마구치 마미 양이죠?”
“에, 예. 아, 혹시나, 유키 군인가요?”
“맞아요. 후쿠자와 유미의 남동생이고.”
마미 양은 눈을 끔뻑거리며 유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과연, 유미 양의 남동생이라는 게 이해 가네요. 똑 닮았어요.”
“하하, 그런 소리 자주 들어요.”
“그래도 전걸 잘 알아보셨네요. 혹시나 유미 양이 사진이라도 보여준 적 있나요?”
“엣?! 아, 아아, 으, 응. 사진. 맞아, 사진을 봤으니까.”
얼버무리려는 듯 건조한 미소를 짓는다. 사진을 보고 마미 양을 알게 된 건 사실이지만, 그 사진은 유미에게 받은 게 아니라 다른 쪽에서 받은 거였다.
“우와……이상한 사진 같은 건 아니었나요?”
“에? 그런 거 아녜요. 괜찮았어요.”
“그렇다면 괜찮은데…….”
“그보다, 오늘 일 말인데…….”
“아, 아아! 그, 부족한 몸입니다만 오늘은 잘 부탁드립니다.”
“엣.”
마미 양은 등을 쭉 뻗은 뒤 허리를 구부리며 깊게 인사를 했다. 거기에 이끌리는 형세로 “이, 이쪽이야 말로.”같은 걸 말하며 유키도 고개를 숙여 버렸다.
예상외의 전개였다.
아무리 유미의 친동생이라고 해도, 처음 보는 남자다. 유키는 릴리안에 다니는 여자애가 당일이 되어서 대역으로 정해진 남자와 함께 외출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하고, 유미가 말해 버린 이상 약속장소에 가지 않으면 실례일 테니 일단 가 보기로 한 거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제대로 오늘 일을 사과한 뒤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게 어째선진 모르겠지만, 시원스레 같이 가는 걸 납득하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유키는 성실한 마미가 ‘약속’을 깨지 못하고, 유키 자신이 함께 갈 생각이었다고 믿고 있다는 건 알 리도 없었다.
“저기, 오늘 간다는 건……”
이런. 정말로 가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해서, 표는 받았지만 무슨 표인지 확인해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마미양은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며
“예! 전쟁 카메라맨이자 르포라이터인 ‘츠키하라 유키(土原 勇気)전’ 이예요!”
몸 앞에 두 주먹을 꽉 쥐고, 힘차게 선언하는 마미 양. 아무래도 굉장히 기대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함께 갈 사람을 잘못 고른 게 아닐까. 유미가 이런 거에 흥미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도 없다.
“아아, 그러고 보면 유키 군도 같은 이름이네요. 유키 군도, 역시 같은 이름이니만큼 그를 좋아하는 건가요?”
어느샌가 좋아한다는 게 되어 있었다. 확실히 이름은 들은 적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하지만, 잘은 모른다. 청바지 주머니에서 표를 꺼내서 봐 본다.
“아니, 제 이름은 한자가 달라요.”
“에, 그런가요?”
“저기, 유미의 ‘유(祐)’에 그ー 기린의 ‘기(麒)’를 써서”
“기린? 으음”
생각에 잠긴 마미 양의 머리에 물음표가 떠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래도 목이 긴 기린을 떠올리고 있는 모양이다. 어떻게 말하면 잘 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 뒤, 유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저기, 옛날 스모 선수였던 기린아(麒麟児)의”
“아아! 과연, 그래서 ‘유키’ 군인가요.”
짝, 하고 손뼉을 치는 마미 양.
“에, 이걸로 아는 거야?!”
말한 유키가 오히려 놀랐다.
“마미 양은 재미있네.”
“에, 에엣?! 그런, 유키 군이 말 꺼낸 거잖아요!”
얼굴을 붉게 붉히고 부끄러워한다고 생각했더니, 꽉 쥐었던 주먹을 위아래로 흔들며 조금 화난 듯 입을 빼쭉이는 마미 양.
“아하하, 미안. 확실히 피장파장이네.”
“그렇다니까요, 참말.”
입을 빼쭉이며 걸어가는 마미 양을 쫓아, 유키도 곁에서 나란히 걸음을 옮긴다.
어느샌가 두 사람은 극히 자연스럽게 걸어나가고 있었다.
후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