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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 시리즈 노리코편

マリみて 祐麒シリーズ


원작 |

역자 | 淸風

장난스런 비


 휴일에, 유키는 잠시 역 쪽으로 외출을 했다. 특별히 볼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단지, 집에 있어봐야 할 일이 없었으니까. 역까지 가면 서점에서 적당히 잡지 신간을 서서 읽거나 게임 센터에서 새로 나온 게임을 잡고 솜씨를 발휘하거나, 대강 근처에 있는 가게를 돌아다니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까.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시간도 가끔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중이 돼서 왜 그런 쓸데없는데다 시간을 쓴 건지 후회할 때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때는 그 때. 지금은 단지 남아있는 시간을 어떻게 쓸지가 중요하다.

 이럴 때 애인이라도 사귀고 있으면 데이트를 한다거나, 아니면 특별한 데이트 같은 게 아니더라도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우려나 등등, 유키도 그 나잇대 소년이 할만한 생각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현실에선 그런 상대가 없다. 유키만이 아니라, 남학교인 하나데라 학원에선 다른 공학들과 비교했을 때 남녀교제율이 낮은 모양이었다. 유키도, 코바야시나 타카네 같은 친구들에게 애인이 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물론 그래도 애인이 있는 녀석이 없는 건 아니지만.

 유키는 아직 여친을 그렇게까지 사귀고 싶은 건 아니다. 지금은 학교생활도 나름대로 충실하고, 코바야시같은 남자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도 즐거우니까.

 그런 두서없는 생각을 하면서 역 건물 안에 있는 큰 서점에 들어간다. 장서량도 재고도 풍부하고, 갖춰둔 책의 종류도 많아서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가게다.

 적당히 돌아다니다 스포츠 잡지를 훑어보고, 놓쳤던 주간 만화잡지를 파라락 넘겨본다. 그러다 사 모으던 작품의 신간이 이번 주에 나왔단 걸 보고, 만화책 코너에서 책을 집어든다.

 그것 말고도 신경 쓸만한 신간이 나온 게 있는지 보러 문고본 신간이 쌓여있는 코너로 갔을 때, 그 애와 마주쳤다.

"아."

 먼저 소리를 낸 건 유키였다.

"――에?"

 그 소리에 이끌려 유키 쪽을 보곤, 그녀도 입을 열었다.

 가지런히 정리된 검은 머리카락이, 마치 일본 인형 같은 이미지를 상기시키는 외모.

"니죠 양."

​"​…​…​…​…​안​녕​하​세​요​.​"​

 떨떠름한 느낌으로 인사하는 노리코. 아마 저번에 있었던 일이 꼬리를 잇고 있는 거겠지. 유키도 그걸 잊은 건 아니다. 예상치도 못하게 노리코랑 같이 외출하게 되었던 기억을.

 말을 걸었으니,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에 잠긴다. 딱히 친한 관계인 것도 아니고, 서점 안인 걸 생각하면 인사만 하고 그냥 헤어져도 문제는 없겠지만, 그걸로 끝내는 것도 너무 냉정하다.

 이 상황은, 별 문제 없는 대화를 조금 나눈 뒤 작별하는 게 제일 나은 것처럼 느껴졌다.

"여기는 자주 와?"

"예, 가끔 다녀요."

"여기라면 어지간한 건 다 있으니까."

"그렇네요."

 유키는 정말로 마음이 담기지 않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를 띄울만한 꺼리도 없다보니 슬슬 말을 끊을까 하고 있을 때, 문득 노리코가 왼손에 들고 있었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일본의 ​비​불​(​祕​佛​)​』​…​…​"​

"으!!"

 톡하고, 한 순간에 뇌리에 틀어박힌 제목을 입으로 흘려버렸다. 그 순간 노리코의 얼굴이 붉어지고, 눈초리가 험악해졌다. 책을 자연스레 몸 뒤로 숨긴다.

"……! 뭐, 뭐가 이상한 건가요."

"에?"

 아무래도 유키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입매가 조금 풀어졌던 모양이다. 불상 관람을 즐기는 특이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는 건 들었지만, 고등학생인 여자애가 가지기엔 너무나 안 어울리는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이 희안했다고 할까, 역으로 묘하게 어울려 보였다고 할까.

"정말로, 좋아하는구나."

"……그래서 나쁜가요."

"나쁘다는 소린 한 마디도 안 했어. 빠져들 수 있는 게 있다는 건 좋은 거잖아."

"그런 소릴 하면서, 어차피 마음 속으론 웃는게 아닌가요?"

"아니라니까."

"어쨌든, 저는 실례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태도만은 정중하게, 그러면서도 사람을 멀리하는 오라를 내뿜으면서 노리코는 유키에게서 몸을 돌리고 떠나갔다.

 『일본의 비불』을 가지고, 계산대를 향해서.




 노리코와 헤어진 뒤, 유키는 한동안 서점 안을 돌아본 뒤 밖으로 나갔다. 결국, 산 건 만화책 한 권. 다른 건 그다지 볼만한 게 없었다. 그 뒤로, 역 건물 안에 있는 가게 몇 개를 둘러봤지만 끌리는 게 없는데다, 근처에서 노리코를 다시 만나면 그것도 거북할 것 같아서 건물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역전에 펼쳐진 잡다한 가게 사이를 지나서 도착한 곳은 큰 게임센터. 즐기며 시간을 때우기엔 이만한 곳이 없다.

 일단 유키는 토큰을 산 뒤, 올 때 마다 꼭 첫 번째로 하는 게임기 앞으로 갔다. 존재감은 부족하지만, 그런데도 어째선지 어디나 있는 슈팅 게임.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더더욱 불타오른다. 어려운 부분은, 실력이 부족하면 순식간에 넣은 돈이 날아간다는 것. 유키는 결국 스테이지 5의 벽을 돌파하지 못한 채로 게임을 끝냈다.

 그 뒤, 대전 격투 게임, 레이싱 게임을 한 뒤 한 숨 돌린다. 유키가 들어간 게임 센터는 넓고 밝고 깨끗한 곳이긴 하지만, 그런데도 공기가 좀 답답한 기분이 드는 건 피할 수 없다. 마실 걸 살 겸 바깥 공기나 마시러 갈까 싶어, 유키는 가게 입구쪽을 향했다.

 가게 입구 근처에는 주로 리듬 게임이 놓여있다. 리듬에 맞춰서 여럿 있는 버튼을 두드리는 것, 기타를 치는 것 등 종류도 많다.

 그 쪽에는.

 채를 들고 화려하게 큰 북을 두드리는 일본 인형의 모습이 보였다.

"오오―――."

 저도 모르게 소리를 흘린다.

 큰 북을 두드리고 있는 건 노리코였다. 게다가 노래는 '푸니쿨리 푸니쿨리'다.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진 잘 모르겠지만, 노리코의 실력이 훌륭한 건 틀림없었다.

 노리코의 움직임에는 전혀 주저가 없어서, 꽤나 높은 점수를 기록할 것처럼 보인다. 유키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정말로 우연히, 음과 음 사이에 노리코의 눈이 약간 움직여, 유키의 눈과 마주쳤다.

"아―――."

 그 순간 노리코의 리듬이 끊겼다.

 당황하며 상황을 수복하려 하지만, 한 번 끊겨버린 리듬은 그리 쉽게 돌아오지 않아, 노래가 끝날 무렵에야 간신히 돌아왔지만 때는 이미 늦었고.

"큭……."

 노리코는 그야말로 떫은 걸 씹은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신의 책임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유키는 노리코 쪽으로 걸어가서 사과했다.

"미안, 그, 내 탓이지?"

"아뇨, 관계 없어요. 제 정신력이 미숙했던 것뿐이니까요."

"그건 결국, 날 보고 동요했단 거지?"

"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노리코는 채를 내려놓으려 했다.

"아, 잠깐 기다려."

"에?"

 유키는 바로 기체 쪽으로 다가가, 지갑을 꺼낸다.

"이대론 나도 좀 잠을 설칠 것 같아서. 니죠 양에게도 미안하고."

"그, 그만둬 주세요. 별 생각 없으니까요. 이유가 없어요."

 노리코는 그걸 거부하려 했지만, 이야기를 듣지 않고 동전을 넣는다. 그것도, 2인분의 금액을.

"애가 하고 싶은 거야. 좀 어울려줘."

 놓여있던 이인용 채를 손에 든다.

"……알았어요. 그럼, 대결하는 걸로."

"협력 플레이라고 안하는 게 ​평​소​답​네​…​…​오​케​이​,​ 승부 받을게."

 쓴웃음 지으면서 유키는 적당히 노래를 고른다.

"뭣……'라자 라자 마하라자'라니."

 노리코의 허릿심이 빠진다. 고른 유키 본인도 힘이 빠질 것만 같았다. 왜 이런 노래가 리스트 안에 들어가 있는 건가.

 하지만, 둘이 그렇게 당황하는 건 별 상관없다는 것처럼 힘빠진 노래가 흐르기 시작한다. 노래에 맞춰서, 두 사람은 리듬 좋게 큰 북을 두드린다. 그리 길지 않은 노래라 얼마 안 가 첫 판이 끝난다. 득점은 거의 똑같았다.

'――제법 하네요.'

'그쪽이야 말로.'

 슬쩍 눈길을 뒤섞으며, 마음속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흐르고 있는 노래가 노래인 만큼 우습게 보이고 있다는 걸, 당사자들은 깨닫지 못했다.

 결국, 첫 번째 노래는 노리코의 점수 쪽이 약간 높았다.

"다음은 제가 선곡할게요."

 그렇게 말하곤, 노리코가 고른 노래는.

"으, '망나니 장군'을 고르다니."

"저도 처음 하는 노래예요. 이걸로 농락해 드릴게요."

 드높은 소리로 시작되는 두 번째 곡.

 이 노래가 처음이라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노리코의 채놀림은 정확무비하게 리듬을 타고 있었다. 침착하게 화면에 나오는 정보를 분석하고, 거기에 기반해 움직이는 손. 유키도 따라잡고 있긴 하지만, 어떡해도 세밀한 부분에선 노리코에게 이기지 못한다. 이대로는 점수차가 질질 벌어져 지리라고 생각한 순간.

"――――아."

 손이 미끄러 진 건지, 노리코가 채를 고쳐 잡았다. 하지만 거긴 마침 고득점 콤보를 노리는 프레이즈였다. 노리코는 서둘러 북을 두드렸지만, 아무래도 리듬이 맞지 않아 점수를 놓쳐간다. 유키는 지금이 기회라는 듯이 두드렸다. 그야말로, 이게 망나니 장군의 노래라는 듯 날뛰어대는 기세로 큰 북을 두드렸다.

 그리고, 결과는.

"…………큭."

"역시, 앞에 플레이를 계속 했던 게 문제였으려나. 이거, 팔이 꽤 힘드네."

"그, 그런 자비는 필요 없어요."

"그럴 셈이……아니, 미안. 쓸데없는 소리였어."

"크……이 굴욕은, 언젠가 반드시 되돌려 줄테니까요!"

 분한 마음에 토해내듯 말을 남기고, 노리코는 게임 센터를 떠나갔다.




 노리코가 떠난 뒤, 게임을 여러개 더 플레이 한 다음 유키도 밖으로 나갔다. 시간도 꽤나 지나서, 적당히 가게들을 둘러보며 걸음을 옮겼다. 활기찬 거리를 빠져나와, 가게가 적은 구석진 곳 까지 발을 디딘다. 그러다 이쪽은 주택가나 공원 정도 말곤 없겠지 싶어, 유키는 걸음을 되돌렸다.

"――아."

 뺨에 뭔가가 닿았다.

 위를 올려다보자, 잿빛 하늘에서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한 상태였다.

"우와, 내리기 시작했어. 일기예보선 안 내린댔었는데."

 불만을 내뱉는 동안에도 빗발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지금은 일단 비를 피해야겠다 싶어서, 일단 달리다 눈에 들어온 가게의 처마에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엑."

 하는 소리를 낸 건 옆에 있던 사람이었다.

"니죠―――양."

 두 번 있는 일은 세 번도 일어난다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지 않나. 하지만 실제로 둘 다 여기 있는 거다.

"……아무리 그래도 '엑'은 너무하잖아?"

"……시, 실례했어요."

 역시나 좀 심했었다고 느꼈던 건지, 노리코는 조금 부끄러워 하면서도 순순히 사과했다.

"그렇다 쳐도, 이렇게나 마주치다니……혹시 스토커예요?"

 조금 솔직해 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 노리코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입에 담았다.

"왜 내가. 니죠 양, 너무 의식하는 거 아냐?"

"누, 누가 의식 같은 걸! 그도 그럴게 이상하잖아요. 아까부터 가는 곳마다 얼굴을 마주치다니."

"그건 내가 할 말이라니까."

"제가 스토커 행위를 할 리가 없잖아요!"

"아니, 그런 소린 한 마디도 안 했잖아?! 왜 그렇게 바로 트집 잡는 거야. 안 귀엽게."

"안 귀여워서 죄송합니다ー."

 비가 계속 내리는 상황에서, 가게 처마에서 얼굴을 맞대고 말다툼을 한다. 급작스런 비에 놀란 건지, 지나다니던 다른 사람들도 근처 가게 안 같은 곳에 피난한 모양이라 통행인이 단숨에 줄어들었다.

"정말, 지독한 휴일이에요."

"그러니까, 그건 내가 하고싶……."

 말대답을 하려던 중 유키의 말이 막혔다.

"――? 뭔가요, 무슨 소릴 하려고 한 건가요."

 분위기를 민감하게 느낀 노리코가, 눈꼬리를 치켜올리며 추궁한다. 하지만 유키는 눈을 돌리고, 노리코와 거리를 벌리려 했다.

"대체, 뭔가요?"

 유키의 행동은 더더욱 노리코의 의혹을 부추길 뿐이었다.

 하지만 유키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비에 노리코의 얇은 블라우스가 젖어서, 희미하게 속옷이 비쳐 보이는게 눈에 들어왔으니까. 많이 젖은 것도 아니고 비쳐 보인다고 해도 잘 봐야 조금 보이는 수준이었기에 노리코도 깨닫지 못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까이 있던 유키에겐 그게 보여 버렸다. 그리고 한 번 깨닫고 나면,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다. 물기를 빨아드린 부분이 피부에 달라붙어서, 그리 살집이 잘 붙었다 할 수 없는 노리코의 몸이 정말로 육감적으로 보인다.

"아니, 그, 게……?"

 얼버무리듯 어깨에 건 가방 안을 살펴봤다. 그랬더니, 안에는 뭔가 낯선게 들어 있었다. 손을 넣어서 꺼내 보자,

"아."

 접이식 우산이었다.

"……굉장히 귀여운 취미시네요."

"이, 이건 유미 거니까."

 비야냥 담긴 눈길로 바라보는 노리코에게, 당황하며 변명한다. 유키의 손에 쥐인 접이식 우산은 여자애에게 어울리는 핑크 색이었다.

 유키 본인에겐 가지고 있다는 자각이 없었으니까, 아마 예전에 빌린 적이 있어서, 그걸 그대로 넣어뒀던 것 같다. 여하튼, 이걸로 유키는 지금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된 거지만.

"가세요. 전 신경쓰지 마시고요. 조금 기다리면 그칠지도 모르고."

 유키가 슬쩍 눈길을 향하자, 노리코는 얄미울 정도로 냉정한 말투로 말한다. 빗방울을 계속 뿌려대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 표정은, 그런데도 왠지 천진난만해 보였다.

 비는 기세를 더해가, 잦아들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한동안은 그칠 것 같지 않았다.

 유키는 분홍색 접이시 우산을 펼치곤, 조금 고민한 뒤 노리코를 향해 내밀었다.

"……뭔가요?"

"이거, 써도 괜찮아."

"그러면, 유키 씨는 어떡하실 건가요?"

"달려 갈거니까, 괜찮아."

"됐어요. 모처럼 있었던 거니까, 직접 쓰시면 되잖아요."

"그럼 나랑 같이 쓰고 갈래?"

"거절할게요."

 무익한 대화가 이어진다. 노리코는 변함없이 정면을 향한 채로 유키 쪽을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럼, 역시 니죠 양이 써."

"그러니까, 됐어요"

"그럼, 같이."

"그것도 거절할게요."

"그러면 계속 이대로야.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여자애를 빗속에 혼자 남겨둘 생각은 없으니까. 니죠 양이 우산을 빌려 줄지, 싫더라도 나랑 같이 있을지야."

"…………."

 고민하고 있는 건지, 노리코는 말없이 잿빛으로 잠긴 거리를 바라보고 있다.

 계속 내리는 빗소리만이 귀에 닿는다. 휴일, 젊은 남녀 둘이 나란히 서 있기에는 너무나 풍류가 없는 무대였다.

 바람도 조금 불어와서, 발밑에 빗방울이 튀어오기 시작했을 즈음.

"……알았어요."

 드디어, 끈기에 졌다는 듯이 노리코가 한숨 섞어 말했다.

"선배의 체면을 세워 드릴게요."

"예이예이, 감사합니다."

 밉살스럽게 이야기하는 노리코의 말으 흘렬들으며, 유키는 손에 든 우산을 높게 들어올린다.

"……저 말야, 좀 더 이쪽으로 안 붙으면 젖어. 이 우산, 별로 안 크니까."

"아, 알고 있어요."

 한 걸음, 유키 쪽으로 다가붙는 노리코. 그래도 미묘하게 거리가 벌어져 있다. 유키가 노리코를 바라보자,

 노리코는 팔짱을 끼고 삐친 듯한 표정으로 유키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있었지만, 유키의 눈길을 느꼈는지 불편한 듯 몸을 조금 움직인다.

"뭔가요. 마, 말해 두겠지만, 별로 좋아서 이렇게 우산 같이 쓰고 있는 게 아니니까요. 어쩔 수 없이 이러는 거니까요."

"알고 있다니까."

 노리코가 눈치채지 못하게 유키는 가볍게 웃는다. 불만을 내뱉으면서도 역시 둘이서 우산을 쓰는 게 부끄러운 건지, 약간 얼굴을 붉히고 있는 노리코가 굉장히 귀여워 보였으니까.

"빨리 가요."

 이 뒤로 둘은, 역까지 십몇분동안 말 없이 걸었다.


 역에 도착한 뒤, 노리코는 잽싸게 거리를 벌린다.

"정말 감사했어요."

 그래도, 제대로 해야 할 말은 한다. 노리코는 고개를 숙인 뒤, 그대로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

"아, 잠깐 기다려."

 유키에게 불려서 걸음을 멈춘다.

"니죠 양, 도착했을 때 역에서 부터는 걸어 가?"

"그런, 데요?"

"그럼, 이거 가져 가. 그러다 젖어버리면 결국 의미도 없고."

 접은 분홍색 우산을 건넨다.

"괜찮아요, 거기까지 가면 마중 부탁하면 되고요."

"그래도, 니죠 양은 분명히 아는 사람네 집에 신세를 지고 있었지? 그러면 부탁하기 힘들 거고, 집을 비웠을 가능성도 있잖아."

​"​그​건​…​…​그​렇​네​요​.​"​

"나는 가족 중에 한 명은 집에 있을거고. 신경 안 써도 되니까."

"그래도……."

 노리코는 뭔가 말하고 싶은 것 같아 보였지만.

"자, 모처럼이니 마지막까지 선배의 체면을 세워 줘."

"앗."

 반쯤 억지로 노리코의 손을 잡고, 거기에 우산을 놓았다.

"그럼 갈게."

 노리코가 대답하기 전에, 유키는 잽싸게 달려갔다. 그 모습은 순식간에 역의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그 뒤엔, 부딪칠 상대가 없는 기분을 홀로 안은 노리코만이 남겨졌다.




"다녀왔어ー."

"어서오렴, 리코. 비는 안 맞았니?"

"응, 괜찮아."

 스미레코에게 대답하며, 노리코는 방으로 들어갔다.

 결국, 역에 도착했을 때는 비도 완전히 그친데다, 햇살까지 내리쬈던 걸 보면 전형적인 소나기였던 모양이다. 유키에게서 건네받은 접이식 우산은 전혀 쓸데가 없었다.

 노리코는 짐을 침대로 던진 뒤, 자신도 힘차게 침대에 앉았다.

"아ー아, 왠지 피곤하네."

 힘없이 중얼이는 중에, 가방에서 삐져나온 종이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 산 '일본의 비불'이다. 기대하고 있었던 책이지만, 본 순간 다른 일이 뇌리를 스친다.

 우연히 만난, 하나데라 학원의 학생회장.

 딱히, 불상을 좋아하는 취미를 부끄럽게 생각하진 않는다. 그런데도 오늘 책을 사는 모습을 보였던 게 묘하게 마음을 애태운다.

 그것만이 아니라 그 뒤, 게임 센터에서 다시 만나서 특기였던 게임에서 져 버린 것도.

 거기다 그 뒤에, 우연히 내린 빗속에서 빚을 져 버린 것도.

 노리코가 보기엔 추태의 연속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아, 정말, 짜증나네."

 노리코는 근처에 있던 베개를 쥔다.

"에에잇, 이게, 이게!"

 팡, 팡, 하고 베개를 손으로 후드려 팬다.

 엉뚱한 화풀이다.

 이윽고, 때리는 것도 지쳤을 즈음.

"어차피ー, 난 귀엽지 않은 걸요ー, 흥이다."

 하며, 베개를 향해 혀를 내밀곤, 베개를 휙 내던진다.

"……아아, 난 뭘 하고 있는 거람."

 자신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럴 정도로 오늘 하룻동안 있었던 일들이 곤혹스러웠던 거다.

 그래도, 아무리 마음에 안 든다고 해도 빚이 생긴 건 어쩔 수 없다. 비를 안 맞고 올 수 있었던 건 우산에 넣어줬던 덕이라는 사실이 바뀔 리도 없고, 노리코는 은혜를 원수로 갚을만한 인간이 될 생각도 없다.

"우산쯤이야, 제대로 깨끗이 말려서 돌려 줄거야."

 이미 날도 개었으니, 우산을 말리는 게 어렵지도 않다.

 노리코는 한 번 현관으로 돌아가 우산을 쥐곤, 거실을 지나 베란다로 나갔다.

"제법 귀여운 우산이네. 그런 거 가지고 있었니?"

 거실 소파에서 책을 읽으며 차를 마시고 있던 카오루코가 말을 걸었다.

"응, 우연히 선배를 만났는데, 선배가 빌려줬어."

"흐응ー. 그런 우산을 들고 있다니, 귀여운 선배겠구나."

 별 흥미도 없는 듯, 카오루코는 여전히 책을 바라보고 있다.

 노리코는 우산을 펼쳐서 베란다에 놓았다. 난간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내리며, 저녁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다.

"귀엽거나 하진, 않아."

 허리에 손을 대고, 우산을 향해 투덜대는 노리코.




 하늘에는, 어느 샌가 무지개가 화사하게 호를 그리고 있었다.








~ 추신 ~

 오랜만에 노리코였습니다만, 어떠셨는지요.

 아무래도 백장미가 적다는 건 저도 알고 있고, 여러분의 요망도 있어서 써 봤어요ー, 러브하곤 거리가 멀지만요…….

역자의 말:
 시마코를 했으니 다음엔 노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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