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의 기억
이탈리아에서의 생활엔 완전히 친숙해졌다. 2년 이상이나 살았으니까 익숙해지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거고.
7월에 들어서서 계절적으론 제일 더운 시기에 돌입했지만, 일본처럼 다습한 여름은 아니다 보니 그늘이 있으면 꽤 선선하다는 건 알고 있다. 에어컨은 목에 그리 좋지 않다 보니 일본에 있을 때는 여러모로 고생했었지만, 이탈리아에 있는 동안에는 그런 부분은 좀 편해졌다.
하지만 기분적으로는 별로 편한 마음이 안 드는 상태다. 이렇게 말하는 것도 얼마 전부터 슬럼프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트레이닝을 하거나 지도를 받거나 해도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나빠지고 있는 기분마저 든다. 물론 레벨이 낮을 무렵에는 능숙해지는 것도 빠르고, 레벨이 오를수록 숙달되는 속도가 느려진다는 것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벽에 부딪친 건가.
벽을 넘기 전에는 시즈카에게 음악의 세계에서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어중간한 레벨, 적당한 레벨로도 괜찮다면 지금 그대로도 괜찮을지도 모르겠지만, 시즈카의 목표는 훨씬 멀리 있다.
“하아~, 이렇게 될 줄이야~.”
침대 위에 대자로 뻗어서 천장을 올려다본다. 자만은 아니지만, 자신이 이렇게 막히는 모습을 상상한 적은 없었다. 그 자체가 자만이라고 한다면야 돌려줄 말도 없지만. 지금까지가 너무 순조로웠던 걸지도 모른다. 조금은 휴식도 필요한 걸까, 아니면 무작정 나아가야 하는 걸까. 지금의 시즈카는 어떻게 하는게 좋을지도 판단이 되지 않았다.
그냥 무작정 연습을 한다고 해도, 목을 다치거나 쓸데없이 컨디션을 무너뜨릴 것 같아서 무섭다. 기분전환으로 TV를 볼까 싶어 방을 나서 거실로 나간다. 이탈리아에서 신세를 지고 있는 집에선, 거실에밖에 TV가 없다. 원래 TV를 볼 일이 그리 많지도 않고, 애초에 외국 방송에선 잘 모르는 부분도 많다. 그런데도 2년이나 살다 보면 알게 되는 게 많은 거다.
계단을 내려가 보자, 거실에는 신세를 지고 있는 부부가 편히 쉬고 있었다. 환갑에 가까운 둘에게는 아들이 있지만, 일로 세계를 도느라 만나기 상당히 힘들다고 한다. 그 탓도 있겠지만 시즈카를 진짜 딸처럼 아껴주고 있다. 아니, 요즘엔 처음부터 ‘딸’로 소개되고 있다.
둘의 애정은 뜨거울 정도여서 처음에는 당황했었지만, 지금은 얌전히 애정을 받아들일 수 있다.
“시즈카, 마침 잘 됐다. 같이 간식을 먹자꾸나.”
“감사히 먹을게요, 아저씨.”
방그레 웃으며 소파에 앉는다.
아무래도 TV를 보는게 아니라 이야기를 하게 될 모양이다. 이탈리아에선 일본처럼 TV를 계속 보는 식의 습관은 없는 모양이다.
오늘의 간식은 프로세코와 구운 커스터드. 프로세코는 스파클링 와인인데, 산뜻하고 쌉쌀한 맛이 꽤 기분 좋다.
“여기 여름에는 슬슬 익숙해 졌어?”
“예, 정말 익숙해 졌어요. 세 번째인 걸요. 습도가 낮은 덕에 일본보다 훨씬 보내기 쉬워요.”
“그래. 나는 더워서 힘든데 말야.”
체격이 좋은 알레시오(아저씨)는 더위를 많이 타서, 언제나 덥다 덥다 하다가 플라비아(아주머니)에게 혼난다. 그래도 사이가 좋은 둘을 보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입가가 풀어진다.
알레시오도 플라비아도 집 안에서 시즈카의 노래 이야기는 그리 입에 담지 않는다 않는다. 아니, 시즈카가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래도 되도록 해 주고 있는 거다. 두 분다 이런 부분을 날카롭게 느끼는 편이다. 아니, 혹시나 시즈카가 단순히 알기 쉬운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요즘은 노래와는 전혀 관계 없는 잡담만을 하고 있다. 자연스런 배려가 시즈카에게 와닿는다.
“응 응, 오늘의 식사 당번은 시즈카야.”
“아―, 예, 알고 있어요.”
가끔씩 시즈카가 둘을 위해 요리를 하는 걸로 되어 있다. 이탈리아의 요리에 도전할 때도 있고, 일본의 요리를 낼 때도 있다. 요리는 그리 능숙하지 않지만, 그래도 두 분다 기쁘게 드셔 주신다.
근처에 사는 렌초는 ‘딸이 만들어주는 요리야 뭐든 맛있는 법이고, 뭐든 기쁜 법이야.’ 라고 호쾌하게 웃으면서 말했었다.
오늘은 뭘 할지 고민한다.
시즈카는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일본인이여서, 밥을 먹고 싶어질 때도 많다. 리조토에 고기나 야채를 더할까. 고기라면 닭고기가 좋은데, 그래도 가끔은 생선 요리나 카르파초 같은 것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다 보니 점점 더 즐거워진다. 음악과는 다른 걸 힘껏 하고 있으면, 음악을 생각하는 시간도 적어진다.
온화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저녁이 가까워와서, 슬슬 식사 밑준비를 해둬야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재료는 집에 있는 걸 쓸 생각이다. 큰 냉장고와 저장고에는 아직 식재료가 산처럼 쌓여있는 건 이미 확인해 뒀으니까.
하루 내내 집에서 안 나가는게 되지만, 휴일이기도 하고 슬럼프인 감도 있으니 그런 날이 있어도 괜찮겠지.
일어나서 부엌을 향하려던 참에 벨소리가 손님이 온 걸 가르쳐 줬다.
“시즈카, 나가 주겠니?”
“예.”
플라비아가 말할 것도 없이 현관을 향한다. 이런 것도 익숙해져 있고, 어차피 찾아온다고 해도 거의 근처에서 교제가 있는 사람들.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쾌활한 이탈리아노라면 문제 없다.
“예, 어느 분이신가요?”
현관문을 연다.
“오, 오랜만이에요, 시즈카 씨.”
“………….”
“에에, 저기, 시즈카 씨?”
밖에 서 있던 건 유키였다.
더운 건지 얼굴도 조금 붉고, 이마에 땀도 맺혀있다. 부드러운 표정 가운데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시즈카를 보고, 가볍게 미소지어 보인다.
시즈카는 유키의 얼굴을 보고 뒤이어 눈길을 아래로 향해, 자신의 차림을 확인한다.
캐미솔.
쇼트 팬츠.
끝.
어깨도 팔도 허벅지도 드러나 있고, 가슴도 꽤 헐겁다.
“꺄아아아아아앗?!”
“에, 에, 왠가요?!”
갑자기 비명을 지른 시즈카를 보고 놀라는 유키.
시즈카는 얼굴을 붉히고 양팔로 몸을 감싸곤, 유키에게 등을 돌려 2층으로 도망갔다.
“에에에에엣?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그 문이 열리지 않도록 등을 기댄다.
왜 유키가 있는 건지 전혀 이해가 안 된다. 그건 허상이 아니었을까. 아니, 허상이라고 하기엔 너무 리얼하고, 호흡도, 목소리도, 냄새도 있는 허상은 들어본 적이 없다.
“시즈카, 손님을 두고 뭘 하는 거니, 빨리 내려오렴.”
계단 아래서 플라비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와서, 거짓도 환상도 아니라는 걸 이해했다.
하지만 유키가 왜 여기에 있는지 다시 스스로에게 묻는다. 덤으로, 하필이면 이런 차림일 때 나타난 걸까. 하루 내내 집에 있다 보니 완전 방심해 꼴사나운 실내복 차림을 보여 버리다니.
뒷북일지도 모르겠지만, 허둥지둥 옷장을 열어서 갈아입을 옷을 찾아본다.
“에, 에에, 원피스? 앙상블? 카디건? 아아, 아냐, 데이트 같은 것도 아니고, 집 안인데.”
경험한 적 없는 혼란이 시즈카를 덮치고 있다.
결국, 어련무던한 니트와 데님 팬츠로 갈아입곤, 아직도 당황한 채로 계단을 내려가며 조심조심 아래의 모습을 살펴본다.
왠지 알레시오와 플라비아와 즐거운 듯 담소하는 유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부족한 이탈리아어로, 그런데도 어떻게든 둘과 열심히 대화하려는 모습이 엿보인다.
이탈리아어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긴 들은 적도 없는데, 정말로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시즈카의 혼란은 더더욱 깊어졌다.
“하하하, 시즈카를 놀래주려 한 건 훌륭히 성공했는데.”
알레시오가 호쾌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시즈카가 조금 화난 듯하면서도 부끄러워하는 듯한 표정으로 노려본다.
“정말, 너무해요, 유키 군.”
“죄, 죄송해요.”
옆에 앉은 유키에게도 불만을 토한다.
놀랍게도, 두 분과 공모해서 연락없이 방문해 시즈카를 놀라게 하려고 짰던 모양이다. 시즈카 혼자만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거다. 덕분에 지독하게 부끄러운 꼴을 맞아서, 아직 원망스런 기분으로 셋을 바라봐 버린다.
“애초에, 대학교는 어떡한 거예요?”
“조금 일찍 여름방학에 들어가는 걸로 했어요. 제대로 다니곤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들어보면, 유키와 알레시오는 어느샌가 메일 친구가 되었던 모양이다. 시즈카와는 아직도 편지를 주고받고만 있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걸까. 메일로 사이가 좋아진 둘은 어느샌가 유키의 이탈리아 방문 계획을 입안했다는 거다.
“거기에, 이탈리아 어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전혀 들은 적이 없는데요?”
방문 건이야 시즈카를 놀라게 하려고 했다는 걸로 이해할 수 있지만, 이탈리아어 이야기는 가르쳐 줬어도 괜찮았을 텐데 싶어서 조금 삐친 시즈카.
추궁하자, 시즈카랑 알게 되고 나서 아는 사람을 통해 이탈리아어를 배우기 시작해, 대학교에서도 제 2 외국어로 이탈리아어를 골랐단 모양이다. 어느 정도 수준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기 전에는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했다는 모양이지만.
“시즈카, 그렇게 화낼 일이 아니잖니. 유키는 너랑 이탈리아에서 같이 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거니까.”
“그래, 오히려 기뻐할 일 아니니?”
“무, 무, 무슨 소리를.”
급작스런 발언에 당황하는 시즈카.
옆의 유키도 얼굴이 새빨개졌다.
“요리는 입에 맞니, 유키?”
“아, 예, 정말 맛있어요.”
“오늘 식사는 시즈카가 전부 만들어 준 거야. 어때, 지금 바로 결혼해서 부인이 되기에도 문제 없겠지?”
“아아, 아주머닌 무슨 소리세요?!”
알레시오와 플라비아는 둘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멋대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둘을 놀리고 있는 건지, 어느 쪽이든 유키도 시즈카도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당황스럽다. 이탈리아어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곤 해도, 아직 어휘나 표현에는 이래저래 고민할 때도 많아, 바로바로 이야기를 하진 못한다.
“시즈카가 다른 남자들의 구애를 전부 거절한 것도, 유키가 있었던 걸 생각하면 수긍이 가.”
“이,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
“어머, 그래도 시즈카, 저번에 유키를 ‘미래의 서방님’이라고 말했었잖니.”
“무……무슨…….”
터무니없는 소리를 입에 담는 플라비아. 확실히 말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벼운 농담으로 한 거지 진심이었던 게 아니다.
“설마, 그건 거짓말이었니?”
“거……거짓, 이라기보다, 그.”
“그럼 괜찮잖니. 일본인은 정말 즈윽하구나.”
플라비아는 미소를 지었지만, 시즈카는 정말 새빨개져서 유키 쪽으로 고개를 돌릴 수 없게 되었다.
이래서야 마치 유키에 대해 인정해 버린 것 같지 않은가. 확실히 유키를 싫어하는 건 아니고 오히려 괜찮게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애인이라거나 결혼이라거나 식으로 급속 전진할만한 건 아니어서.
“좋아, 내일은 모두에게 유키를 소개해 줄까.”
“파티를 열어, 모두에게 피로하는게 좋지 않겠어요?”
“하, 하지 말아 주세요!”
울 것 같은 상태로 말한다.
결국, 식사가 끝난 뒤에도 시즈카는 계속 놀림받았다.
시련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이 집에는 다른 남은 방이 없어서, 유키는 시즈카의 방에 묵게 되어 버렸다.
완전히 재미삼아 하고 있는 걸로밖에 안 보이지만, 정말로 시즈카와 유키 사이를 인정하곤 뒤를 밀어주려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떠밀리는 입장에선 견디기 힘들다.
“왜, 왠지 죄송해요. 설마 이렇게 될 줄은 몰라서.”
면목없는 듯 고개를 숙이는 유키.
방 안에 단 둘이 있어, 시즈카의 마음은 조금 침착을 잃고 있다. 둘 다 이미 샤워는 끝마쳐서, 자는 것만 남은 상황이다.
어쩌지, 어쩌면 좋을까. 뭐가 정답일까. 시즈카의 머릿 속은 이미 혼란의 극치에 이르렀다.
“저기, 괜찮아요, 시즈카 씨. 저는 바닥에서 잘테니까.”
둘만 남아서인지, 유키는 시즈카에게 일본어로 말했다.
“에?”
“아무리 그래도, 같이 잘 순 없으니까요. 지금 시기면 감기에 걸릴 걱정도 없을테니, 안심하세요.”
“그런 거 안돼! 나랑 같이 자!”
시즈카는 저도 모르게 유키의 팔을 잡고 그런 말을 꺼냈다. 그 소릴 들은 유키는 눈을 크게 떴지만, 그보다도 시즈카 쪽이 자기 발언에 놀라 눈을 크게 뜨며 얼굴이 단숨에 새빨개졌다. 자칫했다간 굉장히 대담한, 마치 유혹하는 것 같은, 그렇게 생각해도 어쩔 수 없는 소릴 꺼내 버린걸 깨닫고.
“아냐, 이상한 의미가 아니라, 바닥은 딱딱하니 몸도 아플거고, 애초에 유키 군은 손님이고, 그렇게 할 순 없는 걸. 그러니까, 자, 침대는 꽤 넓으니까, 둘이 같이 자기엔 충분히 여유 있고.”
유키의 팔을 잡고, 새빨개진 채로 변명하듯 빠르게 말하는 시즈카.
하지만 유키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시즈카 씨, 그러면 안돼요.”
“에, 어, 어째서요?”
“저도 남자니까요. 그, 시즈카 씨 같은 매력적인 여성이랑 같은 침대에 자면서, 어떻게 안되리라는 자신이 없으니까.”
유키의 말에 몸이 떨린다.
남자인 유키가 진심을 냈다간 저항할 수 있을리 없어 보인다. 유키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걸 용납할 수 있을까. 애초에 애인도 아닌 상대인데.
“그래도, 역시 바닥은 안돼요. 저는……제가 알고 있는 유키 군은 정말 신사고, 강한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저는 유키 군의 강철같은 정신력을 믿기로 할게요.”
머릿 속에 갈등은 있다. 하지만 바닥에 재우는 선택지만은 없다. 그러니까 결론은 하나밖에 없는 거다.
“그래도, 제가 시즈카 씨의 신뢰를 배신했다간.”
“그 때는……그래도 괜찮아요.”
“……엣?”
시즈카의 대답에 놀란 표정을 짓는 유키.
유키를 몰아넣는 상황을 결단한 건 시즈카다. 그러니까 유키가 혹시 ‘그럴 맘’이 든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시즈카 씨.”
유키가 시즈카의 어깨를 잡고, 조금 거리를 좁혀와서 시즈카의 몸이 굳었다. 저도 모르게 눈을 굳게 감는다.
그런 시즈카에게 상냥한 소리가 들려온다.
“시즈카 씨, 무리하면 안돼요. 봐요. 이렇게나 무서워하고 있잖아요. 남자가 무서운 거죠?”
유키의 말에 눈을 뜬다.
이어진 편지 가운데, 시즈카는 어느덧 남자가 아닌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던 걸 고백했었다. 얼굴을 보지 않는 편지의 특성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시즈카의 성격 때문인진 몰라도 자연스레 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키도 그 뒤로도 전혀 변함없이 시즈카와의 교제를 계속해 왔다.
확실히 시즈카는 옛날부터 동성을 좋아해 왔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자를 싫어하거나, 무섭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다. 유키에게도 그런 소리를 하진 않았다.
그런데도 유키에게 껴안기는 듯한 상황이 되자, 몸이 떨리고 심장이 굉장히 빠르게 맥박치고 몸은 굳어버린 것 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예전에 일본에 귀국해서 만났을 때는, 이렇지 않았었다. 혹시나 물론 그때는 나란히 걸은 정도지 긴장할만한 일도 없었지만.
“그러니까, 역시 안돼요. 거기에 시즈카 씨에 대한 것도 있지만, 역시나 저,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시즈카 씨랑 그렇게 된다면 그야 저는 시즈카 씨를 좋아하니까 기쁘겠지만, 그래도 제대로 시즈카 씨가 제 마음을 받아들여 주신 뒤가 아니면 저도 싫으니까요.”
“하, 하아……에, 에엣?!”
“??”
갑자기 얼빠진 소리를 낸 시즈카를 보고, 유키가 이상하단 듯한 눈길을 향해온다.
“에에, 저기, 유키 군. 지금 건, 어떤 의미였어요? 저, 저, 저를, 좋아한다고, 말한 거예요?”
“에? 에에……아앗?!”
시즈카의 말을 듣고 깨달은 듯 유키도 소리를 내고, 그리고 시즈카의 얼굴을 보고, 순식간에 얼굴을 붉힌다.
“저, 저기……뭐어, 에에, 그, 그래, 요.”
“그래도, 어째서 그렇게. 저희들, 실제로 만난 건 저번이 처음이고…….”
“그렇지만, 한참 전부터 편지나 전화로 이야기를 하면서 못 만나는 만큼 더더욱 시즈카 씨를 생각하게 됐고, 실제로 만나보고 정말 멋진 여성이라는 걸 느끼고, 그래서……라니, 우와, 무슨 지독한 고백이야…….”
유키는 머리를 감싸안았지만, 시즈카도 유키가 이야기 한 것과 비슷한 걸 느낄 때가 있었다.
멀리 떨어진 땅에서 만나지도 못하고, 편지와 전화를 주고받기만 한 사이. 그렇기에 상대가 남자인 것도 신경 쓰이지 않았고, 많은 것들을 상상하는 즐거움도 느꼈다. 그리고 실제로 만났을 때, 조금 실망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은 있었지만 실제론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가 동년배인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즐겁고, 마음이 뛰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어, 어쨌든, 시즈카 씨를 위해서라도, 같이 자는 건 안되니까요.”
떨어지려 하는 유키의 팔을 시즈카는 세게 잡아 세웠다.
“유키 군, 기, 기다려 줘요. 저, 저는, 딱히 유키 군이 무서워서 떨고 있는게 아닐지도 몰라요.”
“에, 무슨, 소린가요?”
“긴장,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유키 군을 앞에 두고.”
“그러니까, 그게 제가 무서워서”
“아니에요. 그……유키 군에게 들은 이야기를 기쁘게 느꼈어요. 그래서, 저도 유키 군을 싫어하는 건 아니고, 그러니까 즉,”
“에, 그 이야기는, 혹시나 저를.”
“모, 몰라요. 단지 알고 있는 건, 같이 자는 것 자체는 싫진 않다는 거고.”
스스로 말하면서도 굉장히 부끄러워진다.
“……이, 일단, 오늘은 이미 늦었으니, 자요.”
“에, 예, 그그, 그렇네요.”
어떡하면 좋을지 알지 못해서 생각을 멈추고 도망치듯 말하자, 유키도 아마 비슷한 상태였는지 거기 동의한다.
유키의 팔을 잡은 채로 침대를 향해, 침대에 올라, 몸을 낮추고, 누으려 상반신을 쓰러뜨려 베개에 머리를 뒀을 즈음, 완전히 같은 타이밍에 침대에 누운 유키의 얼굴이 정면에, 바로 근처에서 보였다.
겨우 수십센치만 더 가면 닿아버릴 것 같은 거리. 둘 다 눈을 감지도 못하고, 얼굴을 붉히며 바라본다.
“부, 부, 불, 끄는거 잊었네요.”
“아, 그럼, 제가, 끌게요.”
유키가 일어나 방의 불이 꺼진다. 어둠 속에서 유키가 다시금 침대에 눕는 기척이 바로 옆에서 느껴진다.
이 뒤로 어떡하면 좋을까.
유키가 손을 낸다고 하면,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까. 몸이 뜨거워진다.
“시즈카 씨.”
“예, 옛.”
“저, 강철같은 정신력으로, 노력할테니까요.”
“예, 예. 그래도, 너무 무리하진 말아요.”
“에? 그래도 그러면.”
“조, 조금 만지는 정도라면, 괜찮을 지도요.”
“무리예요. 만졌다간, 제가 참을 수 없게 될테니까.”
같은 침대 위에 누워놓고, 정말 얼빠진 대화를 나눈다.
“유키 군, 이미 잠 들었어요?”
“아뇨, 아직이에요.”
“빠, 빨리 잠들어 줘요.”
“그, 그런 소릴 하셔도, 무리예요.”
둘이 서로를 마구 의식한다.
결국 동이 터올 즈음까지, 잠에 들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
시즈카와 유키, 둘이서 새빨간 눈에 지친듯한 모습으로 거실에 모습을 드러내자,
“어머, 둘 다 굉장히……뭐, 젊으니까 어쩔 수 없겠지만.”
플라비아가 둘을 보고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저희들, 아직 그런 짓 할 관계가 아니니까!”
허둥지둥 부정하는 시즈카.
그걸 듣고도, 싱글벙글 웃고 있는 플라비아.
“후후, 어느 쪽이든, 굉장히 표정이 좋아졌어, 시즈카. 요즘 침울했던 것 같은데.”
플라비아의 말을 듣고 번뜩 깨닫는다.
어제 유키가 온 뒤로, 완전히 음악이 머리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시즈카가 슬럼프에 빠졌었다는 건 플라비아도 알레시오도 당연히 알고 있었을 테니, 혹시나 서프라이즈로 유키를 불러온 것도 시즈카를 위해서였나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역시,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 주는게 제일 좋은 특효약인 걸까.”
“그러니까 그런 게 아니라―!”
뺨이 뜨거운 걸 느끼며 불만을 내뱉자, 플라비아는 웃으며 주방으로 도망쳐 버렸다.
플라비아가 사라진 뒤 그녀가 한 말은 신경쓰지 말라고 유키 쪽으로 흘낏 눈을 향한다.
“시즈카 씨, 미안해요. 저, 그렇게 오래는 여기 못 있어요.”
“그, 그러니까, 그건 아니라니까.”
“그래도 알바로 돈을 모아서, 겨울방학에도, 봄방학에도 반드시 시즈카 씨를 만나러 올테니까요. 에에, 가능하다면 여름방학중에도 다시 한 번 이라거나.”
이 애는 소릴 하는 거람 하고 생각하며, 유키를 바라본다.
“……폐, 일까요.”
곤란한 듯 웃는 유키.
“바보…….”
시즈카는 유키의 셔츠 소매를 잡곤, 이마를 유키의 가슴에 탁 댄다.
“……한 이야기에는 책임을 져 줘요.”
“예, 예.”
어째서, 어느새 이렇게 됐나 싶지만.
결코, 불쾌하진 않은 신비한 기분.
그건 어느 맑은, 이탈리아의 여름 날에 있었던 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