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6
“시히델,”
온 세상이 어지럽게 돌아가던 중 누군가가 그녀를 건드렸다. “시히델,” 마치 커다란 달팽이 껍질 속에 넣어져 이리저리 굴려진 것만 같았다. 그만큼 도저히 정신을 차리지도 못하고 그저 뭐가 잡히는 대로 어떻게든 딛고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발버둥을 얼마나 계속했을까. 시히델은 겨우겨우 정신이 들자마자 “어!?” 잠에서 깬 마냥 고개를 퍼뜩 들어 자신을 흔든 혼령을 바라보았다. 마르한이 자신 역시 혼란스러워하는 중에서도 그녀를 어떻게든 일으키고 있었다.
“괜찮아?”
“나, 난,”
잠깐동안이었다. 기껏해야 몇 분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정말 세상의 종말이라도 온 것처럼 모든 게 뒤틀리고 무너지는 것만 같았는데, 그래서 너무나 길게 느껴진 시간이었는데, 막상 그게 끝나자 시히델은 어디서 자기가 뭘 하고 있던 건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를 않았다. 뭐가 지나간 걸까. 그녀는 멍하니 있다가 자신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온 힘을 다해 붙들고 있었던 바위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괜찮…아.”
꼭 태풍이 불어와서 거기 날려가지 않으려고 잡는 듯이 붙잡았던 바위를 그제서야 놓아준 그녀. 이어서 자리에서 일어날 즈음 마르한은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분명 아까 뭔가 있었지? 그랬던 거 맞지?”
“응.”
동의한 그녀는 역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둘이 엉뚱한 방향으로 무작정 기어왔음을 깨닫고는 부리나케 움직였다. “아, 잠깐!” 마르한이 곧 그녀를 따라왔다.
무언가 벌어졌다. 도대체 뭐가 뭔지 몰랐지만, 갑자기 거대한 것이 연달아 몰아쳤던 그것, 그녀도 마르한도, 어쩌면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었을 것 같은 그것 속에서 시히델은 분명히 그런 느낌을 받았다. 어떤 무언가가 일어났고, 그게 무엇이든 전혀 좋지 않은 거란 느낌이 그녀를 조여올수록 시히델은 움직임을 더 빨리했다. 무언가 좋지 않다고 더 강하게 느껴질수록 그녀의 움직임도 더 빨라져, 어느새 그녀는 덩굴과 잎사귀를 제대로 헤치지도 않고 이리저리 맞으면서도 계속 질주하고 있었다. “시히델!” 뒤에서 마르한이 힘들어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신령님!”
돌 하나를 딛고 뛰어오르며 나뭇잎 사이로 뛰쳐나올 즈음, 시히델은 저 앞에서 누군가가 소리 지르는 것을 듣고 순간 오싹해짐과 동시에 전속력을 냈다. 곧 마지막 잎사귀를 거세게 헤치고 나온 그녀의 눈앞에는 수많은 혼령이, 방금 전의 그녀처럼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여기저기서 떠돌고 있었다.
“무슨 일이예요?”
시히델은 다짜고짜 혼령 하나를 붙들고 물었다.
“무슨 일이냐고요!”
하지만 그 혼령 역시 방금 정신이 든 건지 그저 연신 부정만 할 뿐이었고, 이를 거의 내던지다시피 놓아준 그녀는 마침 뒤쪽에 있는 몇몇 인간들은 그나마 멀쩡해보이는 것을 보고, 이것저것 가릴 거 없이 그 중 하나에게 달려들었다. “앗,” 여성인 듯한 그 인간은 아까 그녀의 동족을 향한 시선을 알고 있었는지, 그 혼령이 눈앞에 나타나자 흠칫했다. “말해.” 그리고 이런 그녀에게 보다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그녀.
“무슨 일이냐? 방금 뭐가 있었던 게 맞지?”
“시, 신령님이…”
그 인간은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의 그녀를 보며 기어들어가는 소리를 냈다.
“신령님들이…”
이렇게 말하는 그 인간을 보며 시히델은 다시 한 번 오싹함을 느꼈다. 신령님들이 방금의 그것과 관련되었다니. “시히델!” 마침 뒤에서 마르한이 나타나자 시히델은 그를 돌아보고서는 “전당.” 조그맣게 중얼거렸다가, 곧 그에게 내던지듯이
“전당이야. 거기 계셔!”
라고 한 마디 남기고는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났다. 마르한은 이런 그녀에게 뭐라고 할 것도 없이 멍하니 바라보더니 역시 그녀를 따라갔다. 한편 이런 그녀의 움직임이 시선을 끌었는지, 다른 혼령들 또한 하나둘씩 그녀를 따라 산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시히델! 너 지금 뭐가 뭔지는 알고서 그러는 거야!?”
뒤쳐지는 마르한이 소리를 지르자, 시히델은 “신령님이라고!” 짤막한 대답만 흘리고서는 계단을 두세칸씩 매섭게 뛰어올라갔다. 비록 인간들처럼 발이라는 것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혼령의 몸 또한 바닥을 딛고 사는 것인지라 그녀는 조금씩 지치며 몸을 이루는 기운에서 서서히 김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돌 하나를 밟고 뛰어올라 약간 오른쪽, 바스라지는 잡초 위를 날아가듯 달리다가 왼쪽으로 움직여서 돌계단으로, 그곳에서 멍하니, 당황하거나 겁에 질린 얼굴로 서있는 덜떨어진 인간들을 비켜가며, 또는 밀쳐내며 계속 위로, 그리고 위로, 또 위로…
“신령님!!”
이렇게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순간 잊어버릴 뻔할 정도로, 정신없이 산을 올라간 그녀는 잠시 뒤 돌바닥이 보이자마자 그 위로 매섭게 뛰어오르며 소리질렀다. 이런 그녀의 목소리에 전당 위의 인간들은 모두 그녀를 쳐다봤는데, 다들 이런 그녀를 보고 더 놀라거나 할 것도 없이 이미 충분히 충격에 빠졌다는 얼굴들이었다. 다만 시히델은 인간들의 표정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딨어? 그녀는 이성을 잃은 것처럼 이쪽저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신령들의 흔적을 찾아봤다. 분명 여기 있어야 한다. 아침에 인간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밤에 혼령들을 대상으로 할때도 그랬지만 신령들 모두가 여기 와서 먼저 인사의 의식을 올린다. 모두가 있어야 한다.
“신령님!?”
시히델은 더 빠르게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없었다. 아냐. 시히델은 그녀를 이루는 기운이 겨울 공기 아래에서처럼 사납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냐. 없을리가. 하지만 없어. 단지 보이지 않는 것 뿐만 아니었다. 뭐라고 할까… 없었다. 단순히 보이지 않는 걸 넘어, 지금 이곳에 그분들이 없다는 걸 시히델은 마치 그 사실이 그녀를 꽉 죄어오듯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무슨 일이야?”
한편 그녀를 따라오던 혼령들이 이제서야 하나둘씩 돌바닥 위로 기어오르더니, 곧 그 앞에 펼쳐진 공허함에 놀라서 저마다 흠칫했다.
“신령님들은? 신령님들은 어디 계신 거야?”
뒤에서 한 혼령이 말하는 걸 시작으로, 그 뒤에 있는 혼령들까지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를 인지하고 저마다 웅성거렸다. 한편 그녀는 뒤에서 마르한이 부르는 것에 돌아볼 새도 없이 “없어.”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곧 마르한은 그녀 옆에 도착했고, 자신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건지, 그 자신의 기운이 오므라들었다 펴졌다 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신령님…”
그러다가 저쪽에 있는 인간들이 슬슬 충격에서 벗어나려는지 입을 열어, 조그마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시히델의 시선은 곧바로 그들에게 꽂혔다. 신령님들은 없고, 인간들만 남았다. 분명 무언가 거대하고 압도적인, 정말 감당할 수조차 없는 무언가가 일어났는데, 그 뒤로 신령님들은 없고 인간들만 남았다. 이 사실이 마치 누가 속삭이듯 그녀의 생각을 차지하며 천천히 읽혀내려가자, 그녀는 잠시 조용히 있다가 곧 말했다.
“무슨 일이야.”
첫 마디에 그녀를 쳐다보는 인간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에 그녀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 갑자기 아까의 그 거대한 무언가가 그녀 안에서도 폭발하듯, 거의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질렀다.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냐!! 이게 어떻게 된 거냐고!!”
“시, 시히델,”
어찌나 사나웠는지 평소에 그녀를 말리던 마르한도 이번엔 별 말 없이 움츠러들 뿐이었다. 인간들 또한 이런 그녀로 인해 마치 오랜 잠에서 깬 듯 일제히 그녀를 쳐다봤고, 시히델은 수십, 아니 그 이상의 동그랗게 커진 눈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혼자서 마주했다. 아니, 뒤에 있는 혼령들도 어느새 인간들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녀처럼 저들이 뭐라도 말해주길 기다리며.
“그, 그…”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마주하는 상황 속에 어떤 인간이 입을 열었고, 이에 모든 혼령들의 시선이 그 한 명에게 집중되었다.
“신령님들이… 사라졌어. 갑자기 괴로워하시다가…”
”……”
시히델은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물론 뒤에서 다른 혼령들도 조금 무서울 정도로 조용해졌으나 평소에 그들이 곧 모든 것이었던, 오직 그들이 무엇을 보는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말하는지에 모든 일생을 바치던 그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지금 저 하늘이 통째로 무너져서 당장 그녀부터 내리친 꼴이었다. “무슨,” 그리고 지금도 그녀를 억누르는 듯, 시히델은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시히델,” 시선이 푹 꺼져서 하얀 돌바닥만 바라보는 그녀를 마르한이 부축하려 했으나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고, 대신 추락했던 시선을 들어 이번엔 저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침 하늘이, 분명히 아침 하늘이어야 할 것이 구름과 안개로 인해 뿌옇게 변해있었다.
아니, 저건 구름도 안개도 아니었다. 마치 하늘이 뒤틀린 듯, 다른 것으로 뒤덮여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가. 하늘이 어떻게 된 건지는 지금 그녀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정말로,” 한편 뒤에 있던 다른 혼령이 앞으로 움직이면서 물었다.
“방금 한 말이 정말입니까? 갑자기 사라졌다고요?”
“난,”
인간들은 저마다 고개를 젓거나 하는 등 당황한 기색을 보이더니 그 중 한 명이 대답했다.
“난 모르겠어. 갑자기, 갑자기 막 힘들어하셨어. 뭐라고 소리를 지르려는 것도 같았는데 그러지도 못하고, 갑자기 모두… 갑자기…”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인간들을 보며 혼령들도 조용해졌다. 시히델은 주저앉은 채로 여러 생각이 소용돌이치며 자신을 두들기는 탓에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신령님들이 사라졌다. 갑자기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다 사라졌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히 그녀를 가르치던 분들이, 갑자기 사라졌다. 이제 신령님들은 이 세상에 없다. 그리고 자신들과, 인간들만이 남았다. 이젠 혼령들과 인간들이… 아까 무언가 일어났을 때 저 밑에 있던 혼령들, 그리고 같은 때에 여기서 신령님들을 마주하고 있던 인간들이. 신령님들이 사라질 때, 여기서 모든걸 본 인간들…
“뭐가,”
영혼이 빠져나간 듯, 시히델은 느리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뭐가 갑자기라는 거야.”
그리고는 천천히 일어나는 시히델. 이젠 그녀 스스로가 자신같지도 않았다. 자기가 왜 다시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자기가 왜 지금 인간들을 천천히 가리키면서 뭐라 중얼거리듯 말하는지도 몰랐다. 그저 일어서고 말했다. 지금 그녀는 더이상 무언가를 생각할 수도 없었다. 생각을 하기엔 그녀 스스로의 사고가 폭발해버린 것 같았다.
“너희들 때문이잖아. 너희들이… 너희들이 시작했어. 너희들… 네녀석들은 예전부터 다른 생물이며 뭐며 다 너네 멋대로 다루면서… 그렇게 살았잖아. 점점 더 크고, 강한 생물들까지 너네 멋대로 길들인다느니 뭐니 하면서… 너네들, 그렇게 살아왔잖아.”
“시히델?”
마르한은 지금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당황한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볼 뿐이었다. 한편 그녀는 모든 이성이 빠져나간 상태에서 계속했다.
“이번엔 신령님들이냐? 그렇지? 너네들 짓이지? 어떤 존재든 너네들이 멋대로 굴복시켜놓고, 그들을 지배했느니 뭐니 하면서 우쭐대기나 하고, 그랬잖아? 이번엔 신령님들이야, 응? 이젠 신령님들까지 건드릴 정도로 오만해졌어? 그딴 멍한 얼굴 하지 마라. 내가 모를 줄 아느냐? 너네는 처음부터 그럴 족속들이었어. 신령님들에게 제대로 감사하지도 않고… 가르침에 감사하는 마음도 없고…”
“뭐라는 거야! 함부로 지껄이지 마!”
순간 한 인간이 벌컥 화를 냈다.
“지금 누구는 멀쩡한 줄 알아!? 신령님들이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미친 소리나 지껄이지 말고 이제부터 뭘 어떻게 할지를 생각해야 할 거 아냐?”
“맞아, 시히델. 정신차려.”
마르한도 이 말에는 동의하는지 시히델을 다독였지만, 다음 순간이 문제였다.
“하여간 신령님들 없으면 뭣도 못하는 것들이, 나약해 빠져가지고는… 아예 뭐에 기대지 않고선 살아가지도 못하는 기생충들이…”
기생충. 혼령들이 다른 생물과 공존하고, 해치는걸 꺼리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지극히 온건한 삶에 대고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심한 모욕이었다. “뭐?” 혼령들 중 몇몇이 그 인간을 노려보았고, 그 중 맨 앞에 있는 시히델은 저 말이 자신에게 꽂힌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순간, 저 인간을… 저 인간의 입과 목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충동이 들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한편 마르한은 이 와중에도 가장 점잖았다.
“제 친구가 한 말은 대신 사과드리지만, 당신도 너무 심했는데요.”
“뭐가 심해?”
그 인간은 웃기지 말라는 듯, 아예 앞으로 나서며 감히 입을 놀렸다.
“너네들은 원래 그렇잖아? 맨날 얌전한 척, 착한 척은 다 하면서 지들이 약해빠진걸 숨기기나 하고. 너네같은 위선자들 때문에 신령님들이 얼마나 역겨워했겠어? 그렇게 뭐 하나 건드리지도 못하고 남들한테 기생이나 하는 주제에 뭐가 잘났다고 우리가 듣는 수업을 똑같이 들어? 주제를 알아야지! 애초에 신령님들이 없었으면 너네같은 것들은 당장 몰아냈을텐데 봐준걸 고마워하지도 못하고…”
이 말에 마르한마저 그 자리에서 굳어졌다. 뒤의 혼령들은 뭐라고 웅성거리더니 그 인간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시히델은, 더이상 뭐라고 말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천천히 그 인간에게 다가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뭐야?” 망언을 한 인간은 자신에게 천천히 다가오는 그녀를 똑바로 쳐다봤다.
“뭐라도 해보겠다는 거야? 약해빠진 기생충 주제에?”
“그 말,”
시히델은 이런 중에서도 어째서인지 아주 약간이나마 남은 이성과 함께 경고했다.
“다시는, 꺼내지 마라. 그 어떤 혼령 앞에서도, 감히–”
“약해빠진 기생충이라고! 신령님들이 사라진 것도 너네 때문 아냐? 너네같이 뭣도 못하는 기생–”
콱!
“어컥–”
순간, 시히델은 어느새 그 인간의 더러운 입속에 자신의 기운을 넣어, 목까지 넘어가는 동시에 그 안을 비틀어버렸다. 너무나 빠르고 매서운 기세에 그 인간은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컥컥거렸고, 주위의 인간들은 그녀의 행동을 보고 놀라서 움찔했다. 그러다 누군가가 “형!” 하면서 목이 막힌 인간에게 달려오더니 그가 곧 더이상 숨도 쉬지 못하고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는, 시히델을 보며 허리에 찬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무슨 짓이야! 형이 틀린 말이라도 했어? 너가 뭔데 감히–”
시히델은 그 인간이 지껄이는 말보단 그가 꺼내든 기다란 칼에 시선이 꽂혔다. 역시나, 도구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답게 뭐부터 꺼내들고 보는 걸까. 그녀는 하나도 겁이 나지 않았고, 곧이어 달려들어 그 칼을 휘두르는걸 가볍게 피함과 동시에 그 인간도 목을 안에서부터 꺾어 버렸다. “시히델!” 마르한이 소리쳤다.
“너 뭐하는–”
하지만 다음 순간 그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비명을 질러야만 했다. 어느새 한 인간이 쏜 화살이 그의 몸 한쪽에 박히고 말았기 때문에. 그리고 이것을 신호로 뒤에 있던 혼령들이 앞으로 뛰어나왔다. “마르한!” 다행히 치명적이진 않았는지 다시 일어서는 그를 부축해줌과 동시에, 몇몇은 분노를 머금고 인간들에게 다가왔다. 한편 인간들 또한 반은 여전히 충격에 빠진, 그리고 반은 새롭게 솟아오르는 분노에 찬 눈으로 혼령들을 노려보았고, 동시에 저마다 무언가를 꺼내 들고서 하나둘씩 앞으로 내달렸다.
“죽어!”
한 인간이 소리 지름과 동시에 혼령 하나를 칼로 베는 순간, 저쪽의 한 혼령은 인간 하나를 저 산 아래로 내던져 버렸다. 이어서 다른 혼령이, 다른 인간이, 더이상 무언가를 생각할 것도 없이 저마다 살기를 뿜어내며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잔인한 행동과 말을 내뱉으며 날뛰었고, 이 중에는 어느새 마르한을 쏜 인간의 팔을 찢어 버린 시히델도 있었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