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8 (1)
이제 더이상 도움을 청하는 소리 같은 건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방향은 확실하기에 시히델은 가던 방향 그대로 계속 달렸… 응? '소리'라고? 확실히 기운이고 뭐고 없이 그저 순수한 음성만이 그녀에게 들렸다. 그리고 이 말은 즉,
“정말 아무도 없어… 정말로…”
과연, 그녀의 예상대로 혼령이 아닌 인간이 그곳에 있었다. 보아하니 젊은 여성이었고, 칼을 든 채 벌벌 떨며 중얼거리는 모습을 시히델은 가만히 보다가, 그 옆을 보고서는 흠칫했다. 그리 사납게 생기진 않았지만 분명히 들짐승, 몸뚱아리에 두 가지 빛을 가진 털이 잔뜩 난 들짐승이 조용히 그 인간을 노려보고 있었다. 늑대일까? 산에서도 흔히 보이는 늑대였지만 글쎄? 분명 저 생김새는 늑대가 맞긴 맞는데. 시히델은 주위를 둘러보며 이곳에 저 둘 말고는 아무도 없음을 확인했다. 늑대가 혼자 사냥하는 일도 있던가? 게다가 저 놈, 늑대치고는 이상하게 크다. 어지간한 다른 맹수보다도 훨씬 큰 덩치를 가진 그것을 시히델은 천천히 다가가면서 유심히 관찰했다. 확실히, 저건 어지간한 맹수들보다 훨씬 더 컸다. 그리고 저런 놈 앞에서 고작 칼 한 자루 들고 벌벌 떠는 저 여자는,
“형편없어.”
첫 느낌을 숨기지 못하고 혼자 중얼거리는 시히델. 갑자기 늑대가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는데, 그럴 때마다 저 인간이 칼을 휘두르긴 했지만 뭐라고 할까, 무언가 베겠다는 식으로 휘두르는 게 아닌, 그저 무작정 저리 가라는 식으로 이리저리 휘젓는 식이었던 것이다. 시히델은 저런 도구 따위에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 지금까지 그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인간들과 싸워온 그녀는 누군가가 무기를 다루면 좋든 싫든, 그 수준을 스스로 판단하게 될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리고 저 여자는 그녀가 장담하건대, 그냥 혹시 몰라서 가져온 것이지 그 이상은 전혀 아니었다. 절대로.
아무래도 늑대가 그녀에게 공격을 시도한 건 처음이 아닌 듯싶었다. 그럼에도 끈질기게 달려들고, 그럴 때마다 여자는 칼을 휘둘러 그것이 조금 뒷걸음치게 하는 식으로 몇 번을 반복한 모양. 애초에 늑대의 사냥 근성은 알아주는 편이니까. 도대체 왜 혼자인지는 몰라도. 시히델은 아무래도 유난히 덩치가 큰 놈이다 보니 혼자 떨어져서 살게 되었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한편 그녀가 저 늑대에게 주로 관심을 가지는 사이, 인간 여자는 벌벌 떨면서도 점점 눈빛이 굳어지면서, 머리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떠는 손으로 닦아보려 했다. “집중, 집중,” 그녀가 혼자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이에 그녀에게 시선을 돌린 시히델은 저 인간이 왠지 마음을 다잡은 표정으로, 무언가를 하려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으어야앗!”
어색한 소리를 지르며 이번엔 인간 쪽에서 먼저 달려들며, 거의 자기 자신만 한 늑대에게 칼을 세차게 휘두르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늑대는 영리한 동물이다. 그동안 몇 번 저렇게 부딪히면서 저게 무기라는 것을 눈치챘을 게 분명했고, 과연 그것은 상대가 앞으로 내달릴 때 뒤로 발을 빼더니, 휘두르는 칼이 자신의 입 위의 높이까지 왔을 즈음 매섭게 달려들어, 그것을 콱 물어 버렸다. 짧은 순간에 인간 여성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시히델마저 이를 보고서 기운이 살짝 떠는 사이 그것은 칼을 문 채 그대로 돌진해, 인간을 그대로 들이받아 버렸다.
“아흐윽–”
그대로 둘이 함께 날아가다 늑대가 먼저 착지하고, 인간은 그대로 저 작은 언덕 밑으로 굴러떨어져, 시히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혼령은 기운을 살랑였다. 몸집도 몸집이지만, 늑대가 저렇게 힘이 세던가? 무는 힘이라면 몰라도, 저렇게 인간을 날려버릴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왠지 저 맹수를 보며 뭔가 이상하다고 여기면서, 그녀는 저것이 언덕을 슬슬 내려가자 재빨리 그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언덕에 다다랐을 즈음, 그녀는 저 아래로 굴러떨어져, 피는 흘리고 있지 않으나 아무래도 기절한 모양인지 엎어져서 움직이지 않는 인간, 그리고 그 인간에게 느릿느릿, 여유롭게 다가가 식사를 시작하려는 늑대를 보았다.
인간 한 명이 이렇게 죽게 되는 상황에서 그녀는 조용히 저 맹수를 좀 더 지켜보는데, 순간 그녀의 뒤로 바람이 일었고, 이에 위쪽의 모래가 날아가 늑대를 건드렸다. 곧 늑대는 걸음을 딱 멈추고는 코를 킁킁거리면서 뒤를 돌아봤고, 시히델은 그것이 자신을 발견하고는 흠칫했다가 곧바로 자세를 잡자 “으음,” 일이 귀찮게 꼬였음을 한탄했다. 저 인간도 그렇지만, 그녀도 괜히 밖에 나왔다가 난처한 상황에 놓일 줄이야. 애초에 인간들은 지능과 도구가 있어서 그렇지, 육체적 능력 자체는 저런 맹수들이 훨씬 우위임을 그녀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떠올린 순간, 늑대가 입을 벌리며 달려들었다.
“흐읏,”
시히델은 중심을 잃지 않도록 힘을 주며 몸을 뒤로 꺾었고, 그로 인해 자신의 위로 휙 지나가는 늑대의 배에 있는 힘껏, 강한 타격을 가했다. “커엉–” 늑대는 중심을 잃고 날아가 그대로 고꾸라졌고, 시히델은 이를 놓치지 않고 몸을 뒤로 날려 공중에서 한 바퀴 돌고는, 그대로 엎어진 늑대를 온몸의 무게와 힘을 실어 매섭게 짓밟았다. 늑대가 다시 한 번 숨을 토해냈고, 시히델은 이에 한 번 더 그것을 확실하게 밟아 버리려고 했으나, 갑자기 늑대가 그녀의 무게를 이겨내고 벌떡 일어서서, 뿐만 아니라 펄쩍 뛰기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오는지, 깜짝 놀란 시히델은 그만 중심을 잃고 말았다.
늑대가 으르렁거렸다. 마른 땅에 주저앉은 시히델은 재빨리 일어섰으나 이미 그때 늑대는 자리에서 뛰어오른 뒤였고, 그녀는 재빨리 그것을 피하는 대신 세게 밀쳐내려 했으나 동시에 이게 잘못된 선택임을 스스로 느꼈다. 그리고 다시 판단력이 돌아올 새도 없이, 그녀는 다음 순간 몸의 한쪽에 그 짐승의 모든 이빨이 세차게 파고들어오는 감각, 갑자기 하늘에서 불덩이가 떨어져 그녀를 덮치는 듯한 고통에 휘말려, 순간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모든 기운이 요동치며 날뛰었다.
“아아아으어아아아아아아아아아!!!”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때 예상했던 것을 아득히 뛰어넘는 감각을 당해내지 못하고, 시히델은 그러나 온몸이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면서도 최후의 이성으로 그것의 다리를 잡아 확 비틀어 버렸다. 이에 짐승은 혼령에게서 떨어져 나갔고, 대신 그 다리로 상대를 팍 밀어 버렸다. 수십 개의 이빨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감각도 파고들 때의 그것에 못지않게 치명적이라, 그녀는 안 그래도 시야가 거의 깜깜해질 뻔한 중에 밀려 그대로, 저 인간 여자가 그랬듯 그만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아으으,” 몸의 기운 하나하나가 제멋대로 날뛰고 있었다.
시히델은 지금 자신이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그리고 왜 여기에 있는지도 잊을 뻔했다. 그러다가 다시 시야가 흐릿하게나마 조금 돌아왔을 때 저 징그러운 짐승이 다시 그녀에게 달려오는 것이 보였고, 이에 그녀는 내가 누구고 여기가 어디고 간에 완전히 본능적으로 그것을 재빨리 막아냈다.
“그르르…”
다행히 그것의 주둥이는 턱을 밀어서 닫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까 물 때의 힘도 그렇듯, 이놈은 보통 늑대가 아니었다. 다른 개체들보다 비정상적으로 크고, 힘도 거셌다. 닫힌 입 사이로 그녀의 몸에 감돌던 기운이 묻어 저 공기 중으로 증발하는 이빨을 드러내며, 이미 한 번 제대로 문 사냥감을 노려보는 그것. 동시에 몸으로도 그녀를 계속 밀어붙였다. 시히델은 거친 모래가 굴러다니는 땅에서 질질 뒤로 밀려 나가면서, 상처에서 자신의 기운이 빠져나가고 있음을 점점 뚜렷하게 느꼈다. 곧 힘이 빠질 게 분명했다. 아니, 이미 힘이 빠지고 있었다. 그녀가 밀려나는 속도도 점점 빨라졌고, 이젠 짐승의 닫혔던 입 또한 서서히 틈이 생기고 있었다.
늑대가 다시 한 번 으르렁거렸다. 이젠 그것의 윗니와 아랫니가 완전히 떨어진 게 보였고, 이 순간 시히델은 지금까지 이 정도의 위협을 느껴본 적이 거의 없어 슬슬 겁에 질리기 시작했다. 결국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보았고, 자신의 옆에서 기절해있는 인간 여자를 보았다. 차라리 이 여자가 지금이라도 깨어난다면 그나마 뭔가 나아질까 하는, 평소라면 전혀 하지도 않을 생각을 하며 시선을 반대로 돌린 그녀는 순간, 이제 보니 그 여자가 잡고 있던 검이 여기 반대편에서 뒹굴고 있는 걸 발견했다.
“컹! 커엉!”
이제 늑대의 입이 완전히 열렸다. 시히델은 굳이 그걸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고, 이런 그녀의 옆에 인간의 칼이 있었다. 인간의 칼. 인간의 도구. 어차피 육체적 능력도 한계가 거의 자명한 것들이, 그런 자신들의 약함을 숨기기 위해 만들어낸 핑계 따위. 평소라면 이걸 보자마자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평소라면. 하지만 지금은 전혀 평소 같은 때가 아니었고, 시히델은 더이상 무언가를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일단 늑대의 온몸을 밀어내던 것을 멈추고 모든 힘을 한곳으로 모아, 짐승의 활짝 열려 있는 주둥이를 다시 콱 닫으면서 밀어내 버렸다. 그리고는 늑대가 잠깐 상체만 위로 붕 뜨는 사이 재빨리 기운을 뻗어 칼의 손잡이를 잡아, 다시 한 번, 이젠 정말 모든 것을 던지듯 남은 모든 힘을 쏟아부어 짐승의 복부에 대고 휘둘렀다.
촤아!
“케엥!”
몸에 금이 간 자리에서 피가 쏟아져 나옴과 동시에 그녀를 몰아붙이던 늑대가 순간 힘이 빠진 듯했고, 이때를 놓치지 않은 시히델이 요 망할 생물을 밀어내 버렸다. 마침내 짐승은 그녀에게서 떨어졌고, 그녀는 늑대가 완전히 멀어지기 전 다시 한 번 칼을 휘둘러, 이번엔 두 다리에 거의 동강이 날 듯한 칼자국을 냈다. 뼈까지 그 대부분을 잘라낸 일격에 늑대는 나가떨어지며 착지고 뭐고 아예 엎어져 버렸고, 이제 자기가 무엇도 할 수 없음을 증명하듯 다리와 배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버둥거리기만 했다. 그리고 이렇게 뻗은 늑대에게 시히델은 천천히 일어나서 다가가, 마지막으로 자신의 몸과 몸이 잡은 이 칼에 모든 힘을 실어, 오늘 그녀와 피범벅이 되도록 싸운 거대하고 강한 짐승의 머리에 꽂아 버렸다.
머리에 쇳날이 푹 들어오자 그토록 강했던 짐승은 온몸이 터져버릴 듯, 소름 끼치는 경련을 일으켰다. 그렇게 미친 듯이 부들부들 떨다가 잠시 뒤 마침내 축 늘어진 늑대. 놈이 완전히 죽었음을 확인한 시히델은 그만 온몸에 힘이 풀리며 털썩 주저앉았다. 그렇게 있다가 아예 자리에 누워 버린 그녀는 무슨 놈의 짐승이 이렇게 강한지, 놈에게물린 자리를 확인했다. 기운이 많이 새어나갔지만 경험상 푹 쉬면 어떻게 낫기는 할 듯싶었다. 다만 적어도 당분간은 이쪽 몸은커녕 아예 어느 쪽도 활발하게 움직여선 안 됨을 스스로 판단한 그녀. 그리고는 지친 몸에서 기운을 누그러뜨린 채 한동안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누워 있던 중 갑자기,
“응?”
시히델은 늑대가 다시 움직이는 듯한 기척을 느끼고 기겁함과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아니, 분명히 죽었다. 죽었는데, 갑자기 몸이 들썩인 것 같았다. 시히델은 무언가 이상하다고 여기며 그것의 머리로부터 칼을 숙 뽑아들었고, 그러자 늑대가 움찔하더니 곧, 입에서 무언가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
피? 아니, 시히델은 부정했다. 이건 절대 피가 아니었다. 피는 분명 어두운 붉은빛이어야 하는데, 이건… 그냥 어두운 빛이었다. 게다가 액체인 것 같으면서도 마치 뿌연 연기 같기도 한 무언가가, 죽은 짐승의 입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검고, 물 같기도 하면서 수증기 같기도 하고, 그리고 이제 보니 분명히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드는, 즉 하나의 생물인 듯한 그것. 뿐만 아니라 왠지 모르게 불길하고, 아주 기분 나쁜 느낌이 피어오르는 괴이한 생물이었다. 게다가 하나가 아니라 더 있는 듯한 그것을 보고 있자니 시히델은 갑자기 마음속까지 오싹해져, 다짜고짜 그것을 칼로 푹 찍었다.
물컹,
검은 생물이 움찔했다. 죽은 걸까? 시히델이 그것을 좀 더 가까이 보려고 몸을 숙이는 순간 그것은 갑자기 다시 움직여서, 아니 아예 자신을 찌른 칼을 중심으로 두 갈래로 갈라져 움직이더니 곧 다시 하나로 합쳐졌고, 그렇게 스멀스멀 움직여 시히델이 있는 자리를 벗어났다. 시히델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유유히 떠나는 그것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다가 시선을 조금 움직이자 분명 아까 전까지만 해도 커다랗던 늑대가, 무슨 일인지 그저 일반적인 늑대의 크기로 돌아와 있었다. 어리둥절한 시히델. 그렇게 아무 생각도 없이 가만히 있던 그녀의 옆에서, 아까부터 정신을 잃고 엎어져 있던 인간 여성이 “으응…” 나지막이 신음했다.
정말이지 오늘은 아주 안 좋은 날이었다.
내가 왜 여기까지 와야 하는 건지 혼자 속으로 투덜대면서도, 시히델은 다른 혼령들이 본다면 정말로 대담하게 보일 짓을 하고 있었다. 성난 기세로 그 인간 여자를 업고 그녀의 동족들이 있는 쪽으로 가서는, 거의 내동댕이치듯 내려놓은 것. 그리고 누군가가 땅에 쓰러지는 소리에 근처의 몇몇 인간들이 몸을 뒤척이면서 눈을 살짝 떴다가, 순간 누가 물이라도 끼얹은 듯 “혼령!?” 화들짝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이 소리에 다른 인간들도 하나둘씩 일어나며 그녀를 쳐다보고는, 저마다 놀라서 거의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너 그때 그 혼령 아냐!? 우리한테 대놓고 소리 질렀던 년… 이번엔 또 무슨 일로 온 거냐! 썩 꺼져!”
”…이,”
시히델은 다짜고짜 무기부터 꺼내 드는 인간들을 노려보며 기분이 썩을 대로 썩어들어갔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들아!!”
그녀는 자기가 그때 그 혼령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듯 오늘 아주 별꼴을 당한 분풀이를 이 고함에 모조리 담아 토해냈고, 이에 대다수의 인간이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자기가 들고 온 여자를 가리키며 매섭게 꾸짖는 그녀.
“너희들은 이런 어린 계집 하나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는 거냐! 애가 밖에서 돌아다니다 잡아먹히는데 여기서 그따위로 잠이나 자고 있었냔 말야! 원래부터 한심한 줄은 알았지만 어떻게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는 거냐 너희들은! 이런 너희들 때문에 내가 지금 어떤 꼴인지를 봐라!!”
버럭버럭 있는 성질 없는 성질 모조리 퍼붓는 그녀를 놀란 얼굴로 보는 인간들. 이어서 그녀의 한쪽 몸, 지금 보이는 인간들의 몸으로 치자면 대략 오른쪽 어깨 정도에 난 이빨자국으로 시선이 향했다. 누가 봐도 인간이 낼 리 없는 상처였고, 이를 확인한 그들은 다시 이 혼령 여자를 멍하니 쳐다보며 자기들끼리 뭐라고 수군거렸다. 시히델은 악이 받쳐서 다시 뭐라고 할 기세로 그들을 노려보는데, 순간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가 그녀에게 들렸다.
“지금 한 말이 사실인가?”
시히델은 목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봤다. 과연, 그날 인간들의 지도자라고 하던 그 남자 인간이 그녀 앞에 걸어나왔다. “그러면,” 이에 시히델의 모든 분노가 그에게 쏠렸다.
“네놈은 이게 지금 장난으로 보인다는 거냐? 정말 보자보자 하니까 인간–”
갑자기 그 인간이 허리를 깊게 숙였다.
“아?”
말이 뚝 끊기는 시히델. 인간이 나한테 허리를 숙인다고? 자기도 모르게 말을 멈춘 시히델은 다소 놀라서 그를 빤히 쳐다보는데, 곧 허리를 세워 그녀를 똑바로 쳐다본 그는 조용히, 전혀 화나지 않고 오히려 온화한 느낌이 드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차분히 말했다.
“내 감사하지. 애를 구해준 건 절대 잊지 않겠네. 다친 건 정말 미안하게 됐네만, 우리는 혼령을 치유하는 법은 전혀 모르는 점 이해해줬으면 하네.”
“구,”
시히델은 그의 말에서 아주 거슬리는, 그러니까 마치… 아니, 뭐라고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구해줬다니, 그냥 주워다가 온…”
더이상 화를 내지 못하고 혼자 중얼거리듯이 대답하는 그녀. 한편 다른 인간들은 이런 지도자의 태도가 불만인지 그의 이름–그래, '노일'이라고 했었지–을 부르면서 뭐라고 했으나, 노일은 그들의 불평을 전부 무시하는 것 같았다. 다만 시히델에게는 이게 거의 다 들렸고, 결국 언제 놀라서 기가 죽었냐는 듯 다시 화가 뻗쳐서 버럭 성질을 냈다.
“그러니까! 그냥 주워다가 온 거란 말야! 알겠느냐!? 애를 그딴식으로 흘리고 다니지 말라고!”
“그래, 내 명심하도록 하지.”
하지만 노일은 여전히 기분이 상하는 기색 하나 없이 조용히 대답했고, 이에 시히델은 정말, 더이상 그 자리에서 있기도 싫어졌다. 그녀는 홱 돌아서서 정말이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을 당장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