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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mate


052


“예헴,”


아린은 다시 한 번 헛기침을 했다. 벌써부터 자기가 선생님이라도 된 마냥 우쭐해지는 그녀. 한편 그녀의 손에 모인 영은 점점 더 커져가면서, 어느새 솔이 그걸 보며 겁을 먹을 지경이 되었다. “아, 아린,” 그가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하는 걸 보면서도 멈추지를 않는 그녀. 마치 이미 알고 있다는 태도였다. “영이란,” 그리고 곧 시작된 아린 선생의 가르침.


“이 세상에 흐르는 흐름야. 하지만 단순히 흐르는 게 아니얘, 고것들 하나하나가 살아있으야. 소야도 우리 집이랑 마을에서 떠다니는 것들 봤으얘?”


마을 곳곳에 다니는 영 덩어리, 그렇게 영롱한 빛을 내면서 소식을 전하거나 하는 등 여러 역할을 해주는 것들. 솔 또한 그것들이 단순한 애완동물 같은 것이 아닌, 정말로 자아를 가지고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는 느낌을 충분히 받았다. 그리고 소년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린은 자신의 왼손에 모으던, 작은 회오리를 이루며 웅웅거리는 영의 흐름을 높이 치켜들었다.


“신령님 아니면 신관님 같은 계승자들얘, 그렇게 영을 귀엽게 모을 수 있으야. 하지만 나머지는 그것까진 못하얘. 그래도 이렇게 잠깐동안 모으는 건 할 수 있으야.”


“하지만 그, 영이란 것들,”


솔은 아린의 손에서 빠르게 휘몰아치는 그것을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정말로 하나하나 다 살아있다면, 그렇게 멋대로 써도 되는 거야?”


“그건 괜찮얘.”


아린은 방긋 웃었다.


“어차피 영이란 건 죽지도 않으이. 아프지도 않으얘. 그냥 살아있어서 세상에 흘러다니는 것들이, 이렇게 다른 사람이나 혼령의 힘이 되어주기도 하는야.”


말을 마친 아린은 직접 보여주기라도 하듯 높이 치켜들었던 그 작은 영의 소용돌이, 하나의 동그란 형체를 이룬 그것을 “흐얏!” 저쪽에 있는 바위에 냅다 던졌다, 그것은 정말 바람과도 같이 빠르게 날아가 돌에 부딪혔고, 그렇게 바위에 표면에 닿은 순간 마치 아주 깨끗하고 얇은 유리가 산산조각이 나는 듯, 뭉쳐져 있던 것이 아주 맑은 소리와 함께 흩어졌다. 그리고 잠시 그 자리에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면서 시야를 살짝 가렸다가 다시 보인 자리에, 그 커다랗고 단단한 바위에는 뚜렷하게 보일 만큼 금이 나 있었다.


“사람 손으로는 절대 못하얘. 망치로도 좀 힘드이. 혼령들도 사람보다 힘이 세지만 저정도는 쉽지 않으야. 하지만 영을 쓰면 누구든 저런 힘을 쓸 수 있으이. 저거보다 더 강하게도 되얘. 나랑 리냐가 그 뱜이랑 싸운 거 기억야?”


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확실히 그 거대한 뱀을 사람이 맨손으로 상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리고 뱀을 쓰러뜨리자 나온 그 검은 것들도, 아린과 리니아가 가깝든 멀든 굳이 영으로 공격했던 것 또한 기억한 소년. 이에 그는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 너, 그… 이상한 검은 것들도 저렇게 없애지 않았어?”


“사령야? 으야, 그것들은 그냥 때리면 별 소용없으이.”


그리고는 다시 손에 영을 모으는 아린. “리냐가,” 천천히 맴돌면서 점점 크기도 커지고 빠르기도 거세지는 그것을 보며, 소녀는 이번엔 다른 손도 그 위에 살짝 띄우면서 말했다.


“여기는 영이 꽤 많이 흐른다고 말했으야. 고것들 다 살아있으얘, 좋아하는 곳이 있고 싫어하는 곳이 있으야. 예를 들면, 에에… 야! 저기 신령님얘 연못에는 영이 아예 없으야. 강제로 데려가거나 하면 다 도망가이. 그리고 여기는 좋아하는 야. 그래서 달도 별도 여기선 이렇게 밝게 보이는 얘.”


“영이 많다고 저게 더 밝게 보이기도 하는 거야?”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신이 여기서 눈을 뜬 뒤로 달빛과 별빛 속에 있던 때를 떠올리는 그였다. “야!” 아린이 고개를 끄덕였고, 이에 그는 바닥을 한 번 내려다보며, 그 은빛의 하얀 돌에 비치는 매끄러움과 화사함을 잠시 감상했다. 한편 아린은 영을 모으면서 리니아에게 무언가를 시키고 있었는데, 때문에 혼령은 조금 애를 쓰면서, 제법 크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을 최대한 압축시킨 탓에 거의 눈알만 하게 작아진 그 영에 집중하는 중이었다. [힘들어.] 투덜거리자 아린이 조금만 더 힘내달라고 말한 뒤 천천히, 한 손을 영으로부터 떨어뜨렸고, 그러자 잠시 뒤,


“쨘!”


아까처럼 단순히 맴돌기만 하던 영은 리니아와 아린의 노력에 그 형태가 바뀌고, 그렇게 작업을 끝낸 아린이 솔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에는 그 위에 작고 앙증맞은 무언가가 있었다. 손바닥보다도 작지만 어쨌든 급조한 것치고는 제법 잘 만들어낸 눈의 결정이었다. “와아!” 손은 그것을 만져봤다가 정말로 차갑기까지 한 그것에게서 바로 손을 뗐다.


“이런 것도… 되이. 후야.”


조금 헐떡이는 아린. 솔은 심지어 그녀의 이마에 식은땀까지 나는 것을 닦아주었다.


“그냥은 너무 힘드얘. 후야, 나도 혼령도 많이 힘드얘, 신관님도 이런 거 잘 못 한다고 하이. 오직 신령님만 이런 거 맘대로 하는 야.”


“신령님이?”


솔은 그 어린아이 같기도 하고, 어른 같기도 하면서 누가 봐도 '작은 거인'이라는 표현이 말 그대로 어울렸던 여자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그 여자 뒤에 뭐가 있었더라? “야.” 한편 소년에게 아린이 대답하고는 설명을 계속했다.


“어쨌든 여러 가지 할 수 있으이. 치료도 할 수 있고, 으야, 물론 사람이든 혼령이든야. 애초에 혼령은 피 대신 영이 흐르고 있으얘. 다치거나 하면 그게 빠져나가야. 에, 그래서 치료도 하고, 어어 먹는 건 안 되고, 어어… 에에…”


이쯤 되니까 슬슬 한계가 오는 아린. 이에 리니아가 [비켜.] 한 마디와 함께 자리를 바꿨고, 곧 아린의 얼굴이 더 차분해지면서 살짝 딱딱해지기도 했다. 리니아는 그 변화를 확실히 느낀 솔에게 차분히 말을 계속했다.


“그렇게 치료도 할 수 있지만, 물론 한계는 있지. 아무리 영을 신령님처럼 쓴다고 해도 죽어가는 정도의 사람이나 혼령은 어쩔 수 없어. 애초에 죽은 건 죽은 거지. 어쨌든, 방금 너가 본 것처럼 공격을 할 수도 있고, 여러 자연물을… '흉내'낼 수도 있어. 물론 잘만 하면 진짜 자연물보다 더 강하고 말야. 이해했니?”


“네에.”


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리니아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실 그녀 또한 여기서 더 설명하기는 조금 귀찮아졌는지 대충 끝맺었다.


“여기까지 말해줬으면 어느 정도 감이 잡힐 거야. 이 세상에 흐르는 가장 거대한 생명이자 힘, 그리고 우리 혼령들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의 근원과도 같아. 아린이 말했듯 우리 혼령들에겐 그것이 피처럼 흐르고 있거든. 이건 신령님도 마찬가지야.”


“그럼 그, 사령이란 것도 그래요?”


“사령?”


리니아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곧 설레설레 저었다.


“잘은 몰라. 지금까지 누구도, 신령님조차도 그것들에 대해서 전부 알아내지 못했어. 다만, 먼 옛날에는 그런 것들이 없었다는 건 확실해.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나진 않아서 잘은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그것들은 굉장히 오염되고 더럽혀진… 아니, 정확히는, 이 세계에 정상적으로 흐르는 영과는 다소 대비되는 색의 영을 띠고 있어. 그래서인지 단순히 때리거나 찌르거나 하는 건 전혀 통하지를 않아. 오직 영을 써야만 죽일 수 있지.”


그쯤에서 설명을 끝내자 솔은 다시 끄덕였고, 곧 리니아는 전당을 한 번 둘러보더니 곧 내려가기 시작했다. “가자.” 그녀가 말했다.


“너무 헤매서 그런지 늦었어. 아린과 다시 얘기하고 싶니?”


“네에.”


솔이 대답하자 곧 차분해졌던 얼굴은 다시 밝고 둥글둥글한 표정으로 변했고, “가얘!” 곧바로 덥석, 솔의 손을 잡고는 앞서나가는 그녀를 당황한 얼굴로 끌려가듯 따라가는 소년이었다.








“벌써 아침이야? 하, 다들 일어나!”


이진은 누군가가 날카롭게 소리 지르는 걸 듣고서야 자기가 어느새 자고 있었음을 알았다. “일어나!” 이어서 누군가가 퍽, 퍽, 때리는 소리와 함께 사람이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고, 곧 그 또한 작지만 매서운 손에 몇 대 맞으면서 몸을 뒤척였다. “사미,” 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차피 다 왔구만… 뭐가 그리 급해?”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요. 일어나서 봐요!”


성질이 난 목소리에는 약간의 당황도 섞여 있었기에, 이진은 무슨 일인가 싶어 천천히 눈을 떴다. “아!?” 천천히 떠지던 눈은 곧바로 휘둥그레졌고,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어,”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입만 벌리고서 멍하니 있는 이진,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조용한 유랑과 그와는 달리 조용한, 마치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닌데 새삼스럽게 왜 그러냐는 얼굴의 민 앞으로, 조용한 기운들이 흐르고 있는 게 보였다. 그래, 눈에 보이는 영의 형체들. 곧 민이 장막을 걷어내자 조금 거리를 벌리고 있던 그들은 앞으로 다가왔고, 천천히 몸을 숙여 인간의 인사 방식을 따라 했다.


“여기서 쉬고 계셨군요. 어차피 안으로 들어왔다면 굳이 막을 치지 않아도 되셨을 텐데.”


“그러면 야경을 제대로 볼 수 없잖소.”


민이 친근한 미소와 함께 대답하자 혼령들도 가볍게 웃었다. 그들이 웃자 주위에 몸의 주위에 흐르던 기운이 살짝 팔랑거렸다.


“그럼 어서 가시죠. 영령들께서도 지금쯤 일어나셨을 겁니다.”


“요즘은 아예 영령이라고 부르나요?”


곧 혼령들이 앞서가고, 그들의 뒤를 따르면서 이진이 말을 꺼내자 고개를 끄덕이는 민.


“아무나 되는 건 아니니까. 애초에 우리쪽처럼, 저 혼령들 중에도 계승자는 하나밖에 없어.”


“네.”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어쨌든 그렇게 혼령들을 따라가자 곧 검은색의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고, 이진은 한 번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다른 이의 기억 속에서나 보던 것을 태어나서 처음 보는 순간이었다.


“너는 처음 왔지, 이진? 잘 보거라.”


넓게 파인 곳으로 향하는 경사진 길 앞에 선 그에게, 민 아저씨가 한마디 했다. 그리고 이를 들은 혼령들도 이진을 슥 쳐다보더니, 곧 웃으면서 그에게 말해주었다.


“코오르 유적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시험준비하느라 많이 늦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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