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5 (2)
[금속.]
시히델은 그것을 곧 바닥에 내려놓았다.
[흙.]
다시, 두 번쯤 그것을 확인한 뒤 다른 쪽에 놓았다. 둥글어서인지 그것은 저쪽으로 굴러가려 했으나, 그녀는 저게 시야에서 조금 벗어나기도 전에 거친 흙바닥에 꾹 눌렀다. 그리고 다음 거.
[덩굴.]
또 다음 거.
[딱딱함.]
시히델은 그것을 '금속'이 있는 쪽에 내려놓았다. 어느새 하나하나 비슷한 것들끼리 분류하고 있는 그녀. 이런 그녀에게 어느새 마르한이 다가오고 있었다. “시히델,” 그는 그녀가 만지고 있는 작고 동그란 것들을 꽤나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너 뭐 하고 있어?”
“잠깐만,”
시히델이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말 걸지 말아봐.”
그녀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바닥에 앉아서 주위에 널린 동그란 것들을 만져보고, 한쪽에 놓고, 또 다른 것을 집어보고, 역시 어느 한쪽에 놓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시히델,”
주위에서 무슨 소리가 전해진 것 같았다. 아니, 정말로 전해져 오는 걸까? 그냥 헛것이었던 걸까. 시히델은 아니겠거니 했다. 그리고 다음으로 원형, 산, 강물… 아니, 이건 별 의미가 없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냐.” 그녀는 짧은 부정을 내뱉고는 다른 조각을 집었다. 이게 동그란 것들은 도대체 무엇이길래 그녀가 잡을 때마다–
“시히델!”
갑자기 누가 다그치자 시히델은 “아?” 놀라서 기운을 떨었다. 마르한이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이제 보니 아까부터 그녀를 부르고 있었는데 잘 몰랐던 걸까. 시히델은 자신이 든 조각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래도 이것들에 집중하고 있으니 주위에서 누가 부르는 것마저 이것에서 느껴진 것처럼… 그렇게 된 것 같았다.
“너 뭐하는 거야? 아까부터 이것들 가지고.”
“아, 그,”
시히델은 잠시동안 이 조각들에 신경 쓰느라 잊고 있었던, 지금 그녀가 있는 쪽을 조용히 쳐다보는 혼령들을 둘러보았다. “그냥,” 도대체 이것들이 뭐길래 하나하나 잡다가 정신을 잃었던 건지. 그녀는 다시 침착함을 되찾으며 말했다.
“잠깐 있던 거야. 이게 뭔가 싶어서. 별거 아냐. 돌아가 있어.”
“으응?”
마르한이 미심쩍어하는 게 느껴졌다.
“글쎄. 넌 아는지 모르겠지만 너, 지금 평소랑은 완전히 다른데.”
“알 게 뭐야.”
그가 말하는 중에도 어느새 또 이 조각들을 훑어보던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짜증을 냈다. “돌아가라고.” 다시 한 번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하자 곧 친구가 조용히 떠나는 게 느껴졌고, 동시에 그녀 또한 저 녀석의 말대로 자신의 기운이 평소와는 달라졌음을 어렴풋이, 아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게 중요했다. 지금은 그게 다였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귀뚜라미.]
어느새 그녀 주위에는 수많은 조각들이, 그녀가 비슷한 느낌끼리 분류한 대로 곳곳에 얌전히 놓여있었다. 시히델은 남은 조각들, 아직 너무나 많은 그것들을 하나하나 가볍게 여기지 않고 정성 들여 살펴보다가, 그것에서 느껴지는 무언가를 몇 번이고 생각한 뒤에서야 이 조각이 어울릴 만한 자리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혹시나 굴러가지 않도록 바닥에 살짝 누르면서.
[천둥소리.]
시히델은 살짝 떨었지만, 곧 그것을 소리와 관련된 것들이 담긴–그녀는 확신하고 있었다. 각각의 조각에 '담긴' 것이라고–조각들이 있는 곳 중 하나에 놓았다. 그리고 다른 것을 집어 들려고 하는데, 언제 또 왔는지 마르한이 그녀에게 물었다.
“도와드릴 거 있나요?”
이제 방해하는 건 그만뒀나 싶어, 차라리 잘 됐다 하는 생각으로 “응.” 그녀가 대답했다.
“저기 저쪽에 이것들 아무렇게나 흩어진 거 보이지? 그것 좀 많이 주워다가 줘. 최대한 많이… 응?”
그건 마르한이 아니었다. 기운이 담기지 않은 소리. 시히델은 뭘까 싶어 고개를 들었고, 이런 그녀의 시야에는 또다시, 그 인간 여자가 눈에 보였다. 그녀는 시히델이 말한 대로 저기 있는 조각들을 한 아름 들고서 아주 조심스럽게 걸어왔고, 이런 자신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는 시히델에게 다가와 미소 지었다. “여기요.” 인간 계집이 말했다.
“이 앞에 놓으면 돼요? 말씀하시면 더 가져올게요.”
밝은 목소리로 말하는 모습을 계속 쳐다보다가, 시히델은 조용히 자신의 기운을 거둬들이며 경계했다.
“넌 왜 여기 온 거야?”
그녀의 인사는 저 조각들 중 하나에 담긴 [냉기]보다 훨씬 더 쌀쌀했다. 인간 여자는 조금 움츠러들었지만, 그래도 기죽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그,” 어떻게 대답은 했다.
“그게, 저는 도와드리려고… 며칠 동안 계속 그렇게 하고 계시길래…”
“내가 이걸 하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이라는–”
시히델은 다시 한 번 칼바람을 흘려보내다가 멈칫했다. “며칠 동안?”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고, 곧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혼령들은 이제 그녀에게 관심도 주지 않고 있었다. 마치 이젠 질렸다, 쟤 맘대로 하게 놔둬 하는 듯이 각자 할 일 하는 그들을 둘러본 시히델은 다시 인간 여자를 쳐다보았고, 그만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며칠 동안 잠도 안 자고 여기서 이러고 있었단 말야? 지금까지 그녀는 이런 적이 없었기에 멍하니 지금 자신의 상황에 잠겼다.
“어, 저기, 괜찮으세요?”
아니, 없진 않았다. 아주 오래되었지만, 정말로 옛날 신령들의 가르침을 받고, 그걸 혼자 공부하고 연구하다가 밤을 지새운 적이 있긴 했다. 심지어 어느 날은 다음 수업에 늦을 정도로. 하지만 그건 오래된 일이었다. 아주 오래된 일. 혼령과 인간이 충돌하는 격전지에서도 그녀는 결국 피곤함을 느끼고 조금이라도 쉬어야만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건, 시히델은 자신의 기운을 휙 저었다. 꼭 옛날로 돌아간 것 같잖아. 전혀 돌아갈 리가 없는데.
“그런데 이 구슬들은 뭐길래 이렇게 열심히 하시나요?”
한편 이런 그녀 앞에서 인간 여자는 어느새 움츠러들었던 것도 돌아와서 조용히 묻고 있었다. 시히델은 그녀를 쳐다보았다. 구슬? 인간들은 이걸 이렇게 부르는 걸까. 아니, 그 전에 지금 내가 이 계집이랑 뭐 하고 있는 거야?
“어… 그러니까… 알 게 뭐야!”
벌떡 일어서는 시히델, 덕분에 놀란 인간 여자가 동그란 조각들, 구슬이라 부르는 그것들을 와르르 떨어뜨렸다. 그것들은 흩어져서 저마다 굴러가, 시히델이 기껏 분류해놓은 다른 조각들에 부딪히고, 그건 또 다른 데 가서 부딪히는 식으로 반복되었다. 그렇게 몇 초 만에 그녀의 주위가 절반쯤 초토화가 되었으나, 혼령은 이에 상관치 않고 이 인간에게 쏘아붙였다.
“누가 뭘 열심히 한다는 거냐! 쓸데없는 참견 말고 꺼져!”
그렇게 성질을 낸 뒤 주위의 조각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고서, 갑자기 치솟은 화를 자신의 기운을 통해 토해낸 그녀였다. 그리고는 말과는 달리 자신이 잔뜩 성이 난 움직임으로 자리를 벗어났고, 그렇게 처음 이곳에 왔을 때처럼 뭐라고 투덜거리며 떠나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흘끗 본 그녀의 시선 속에, 완전히 흩어진 조각들을 그 계집이 급하게 하나씩 정리하고 있었다. 시히델은 그 모습을 노려보다가 다시 혼령들이 있는 쪽으로 몸을 재촉했다. 해 보라지. 저게 뭔지도 모르는 년이. 그렇게 속으로만 툭 던지면서 돌아간 그녀였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정적이 감돌았다. 그러다가 말을 꺼낸 건 바로,
“그런 일이 있었군.”
역시나 켈샤였다. 이진은 다시 한 번, 저 말과 함께 흘러나오는 기운으로부터 그가 확실히 계승자가 맞다는 걸 감각으로 느꼈다.
“그래서, 인간 쪽에서 지난 수백 년 전부터 우리 존재를 알았다 이건가?”
“네.”
민이 대답하자 이쪽의 혼령들, 저쪽에선 '망령'이라 낮춰 부르는 이들도 있으나, 사실상 '독립파 혼령'이라 부르는 게 공식적인 표현인 그들의 지도자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너희들,” 한편 그가 조용해지자 랭이 곧바로 한 말 했다.
“그럼 지금까지 그 사실을 우리한테 숨기고 있었다는 거야? 인간계란 곳이 있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려주더니.”
“랭,”
다소 공격적인–그리고 아주 솔직한–태도에 간트가 주의를 주었으나, 그 옆의 페르가 자신의 기운을 뻗어 오히려 그를 막았다.
“일리가 있어요, 간트. 어찌 되었든 또다시 나중에서야 우리에게 정보를 준 건 사실이니까.”
“그건 저희도 어쩔 수가 없었던 점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민이 정중하게 대답했다.
“신령님도 신관님도 인간계에 대해 굉장히 신중하게 생각하고 계셔서… 어느 정도 확정이 된 것만 저희가 알리고 있는 겁니다.”
“그 어느 정도라는 기준이 꽤나 까다롭긴 한가 보군.”
간트가 조용히 말했으나, 그 말에 공격성은 전혀 없었다. 그냥 그렇겠지 싶은 그의 태도. 거대한 몸에 비해 공격적이진 않은 그를 이진은 가만히 쳐다보다가, 곧 세느가 천천히 말하기 시작하자 고개를 돌렸다.
“신령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그리 말씀하신 거죠. 어쨌든 지금 알려주면 지금 알려주는 거예요. 다만 저희들 입장은, 지금까지 들은 말이 사실이라면 앞으로는 저희들도 더 신경 써달라는 거예요. 맞지요, 페르?”
역시나 물이 부드럽게 흘러가듯 말하는 그녀에게, 페르는 조용히 동의를 보냈다. 랭은 그냥 조용히 있었다. 한편 켈샤 역시 동의를 보낸 뒤, 이번엔 이진을 보면서 물었다. “다일,” 나중에서야 무언가를 알려줬다는 것에 대해 그는 별 상관없다는 듯, 그는 조용하게 묻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의 동반자라고 했지. 그리고 최근엔 엔시나라는 이가 왔고. 그러면 나머지 하나는 아직도 인간계에 있는 건가?”
“그,”
이진은 다일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괜찮아?] 그의 물음에 혼령은 조용히 고개만 저으면서 저 안으로 숨어 들어갔고, 이런 그의 행동을 느끼며 자신도 덩달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으나, 어쨌든 대답은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진은 낮은 목소리를 냈다.
“아뇨, 죽었습니다.”
“시히델,”
아주 오랜만, 거의 일주일 만에 마르한이 그녀를 깨우고 있었다. “시히델,” 지난 며칠 동안 잠도 안 자고 있었던 게 사실이었구나, 하면서 시히델은 조금만 더 자려고 그저 몸만 뒤척였다. 하지만 그녀의 친구는 포기하지 않고 이런 그녀를 계속 흔들다가, 잠깐 조용해지더니 냉큼 한 대 치는 것이 아닌가. “으으!” 하필이면 아직 아물고 있는 중인 그 상처 근처였다. 시히델은 시야를 열자마자 그를 매섭게 노려봤다.
“아침부터 뭐하는 거야! 나 며칠 동안 잠도 안 잔 거 몰라!?”
“지금 그게 문제야!?”
마르한이 맞받아쳤다. “보라고!” 그가 한쪽을 가리키자 시선을 돌린 시히델. 그리고 “어?” 곧바로 자리에 얼어붙었다. 언제 저런 상황이 된 걸까, 저쪽 유적 근처에 웬 것들이 널려 있었다. “저건,” 그녀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 조각들. 어제 분명 그 꼴이 났던 조각들이 저마다 한곳에 모여있었다. 잘 보니, 그것도 어제보다 훨씬 더 많이.
“어떻게 된 거야?”
시히델이 물었으나, 마르한이 영 대답도 없는 모습에 어쩔 수 없이 그쪽으로 직접 가야겠다고 판단했다. 아니, 그런데 생각보다 그 답은 빠르게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고 할까, 다시 그쪽을 본 순간 조각들 말고도 다른 게 보였던 것이다.
“저기서 뭐 하는 거야, 저 계집이!”
자기가 구슬이라고 부른 그것들 사이에 그 인간 여자가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자마자, 시히델은 곧바로 빨리 움직여서 그 앞에 다다랐다. 하지만 이제 보니 그녀의 생각…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시히델은 자기가 왜 이 계집이 이렇게 있는 모습을 보자마자 곧장 온 건지, 갑자기 생각이 정지되어 서 있다가 그냥 뿌리치고서 몸을 숙였다. 그 계집이 숨소리도 거의 내지 않고 자는 모습과 함께, 그녀의 손에는 구슬 몇 개가 쥐어져 있었다.
“깨우지 말게나.”
“네?”
이런 인간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그녀에게 어느새 다가온 건 호리에르. “그 애,” 늙은 혼령이 말했다.
“밤새도록 이걸 정리하고 있었어. 자네처럼. 일단은 자도록 놔둬야겠지.”
”……”
시히델은 가만히 그 인간 여자를 내려다보다가, 그녀가 정리했다는 조각들을 둘러보았다. 단순히 정리했을 뿐만 아니라 어제보다 더 많이 놓여있는 조각들. 이런 광경을 죽 둘러본 그녀는, 다시 이 인간 계집을 내려다보더니 곧 미심쩍은 태도로 이곳에 놓인 구슬들을 하나씩 건드려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정말로,”
밤새도록 그 일을 하고서 자던 여자는 이젠 그녀의 앞에서 거의 울먹이고 있었다.
“제가 도와주는 게 싫은 거예요?”
이에 시히델은 그녀를 보는 시선이 날카로워지다가, 이를 거두고 인내심을 가지며 낮은 한탄을 흘려보냈다. 어쨌든 이 계집한테 또 화를 냈다간 마르한이 작정하고 그녀에게 덤벼들겠지. 그가 정말로 화내는 모습은 그녀조차 꽤나 무서워했던 것이다. 또 호리에르에게 잔소리 듣는 것도 싫고. 시히델은 그렇게 자신이 화를 내면 안 되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주입하듯 하며, “좋아.” 천천히 그녀를 설득하듯–내가 인간을 설득하는 날이 올 줄이야–조용조용 말했다.
“이렇게 됐으니 인정할 건 인정할게. 넌 훌륭해. 하루 만에 저걸 다 정리하고 다른 것들 분류도 거의 완벽하게 했어. 그런데 너도 알지? 겨우 하루 만에 그렇게 쓰러져 잤잖아. 원래 인간들의 정신이 혼령보다 약한 건 알고 있었지만,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네가 굳이 도와주지 않아도 된다 이거야. 어차피 이걸 다 하나씩 보다가 너 또 피곤하다고 할 게 뻔한데, 그러면 나한테 방해만 되지 않을까? 게다가 난 너 때문에 아직도 아프… 아니, 그건 됐고. 어찌 되었든 네가 싫어서가 아니라, 네 도움은 오히려 방해될 수 있어서야. 알았어?”
“어어…”
그 여자는 조용히 입을 우물거리다가, 그녀의 말 중 걸리는 게 있는지 조그맣게 대답했다.
“그게, 저도 어제 알았지만 그, 꼭 하나씩만 볼 필요는 없는데…”
“뭐?”
시히델의 기운이 인내심과 함께 흔들렸다. “뭐가?” 기껏 최대한 부드러워졌다가 도로 딱딱해진 그녀에게, 인간은 자기가 손에 쥐고 자던 조각 중 두 개를 들어 보였다. “여기요.” 그녀가 말했다.
“여기 두 개를 잡아도, 잘 집중하면 안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있는 걸요. 세 개도 되고, 네 개도. 많아질수록 집중하기 힘들지만요.”
“그게 무슨 소리야!”
보자보자 하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시히델은 반쯤 폭발해서 그녀의 구슬을 홱 낚아챘다. 그리고 곧 인간에게 반의반 정도가 더 폭발해서 성을 내는 그녀.
“호수 위에 있는 연꽃이잖아! 집중은 무슨 집중이야!”
“네에?”
역시나 잔뜩 움츠러들면서도 그 인간 여자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듯, 자기 할 말은 다 했다.
“이슬이랑 새싹, 아닌가요? 왜 그게 나오는…”
“이게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정말 끝까지 성질 볶는 이 인간을 노려보며, 시히델은 “봐!” 두 구슬을 내려놓고, 하나씩 집으면서 말했다.
“이건 이슬이잖아! 이건 싹…”
잔뜩 성을 내다가 어제처럼 멈칫한 그녀. “응?” 정말로 새싹과 이슬이었다. 하지만 방금 분명… 그녀는 두 개를 동시에 집어서 집중해봤고, 그러자 역시 호수 위에 얌전히 떠 있는 연꽃이 그녀의 생각 속에 유유히 떠올랐다. 시히델은 갑작스런 일에 멍하니 있으면서, 이번엔 그 두 개를 내려놓고 다른 조각 중 두 개 하나씩, 그리고 동시에 들어보자 역시 개별적인 것과는 다른 무언가가 떠오르는 게 아닌가. 이에 그녀는 다른 조각도, 또 다른 조각도 해보면서 놀라고 있다가 곧 저 인간이 목소리를 내는 걸 듣고서 시선을 돌렸다.
“저, 제가 틀렸나요? 혹시나 제가 잘못했을 수도 있으니까, 어, 그게,”
이렇게 우물거리는 그녀를 시히델은 빤히 쳐다보다가, 곧 화가 조금 가라앉은 기운으로 물었다.
“너는, 이게 하나씩 다 느껴진다고 했어? 그… 정말로 하나씩 다?”
“네? 어, 네에.”
계집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히델은 이런 그녀를 다시 바라보다가, “그래,” 작은 소리로 한탄을 내뱉었다.
“그렇게도 날 도와주고 싶다는 거지, 넌.”
중얼거리듯 말한 그녀는 다시 이곳에 널린 조각, 구슬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