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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mate


059


“다 들어왔나?"


유랑이 문을 닫고 들어오자 켈샤가 말을 꺼내며 주위를 둘러봤고, 나머지 또한 그랬다. 곧 열 명 모두 이 방에 있음을 확인하고 자리에 앉는 혼령들. 인간과 그들의 혼령도 자리에 앉으며 먼저 민이 입을 열었다.


“중요한 얘기는 어제 다 끝난 것 같고, 영에 대해서 어디까지 연구했는지 좀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별로 새로운 건 없어."


페르가 대답했다.


“영은 언제나 영이지요. 흐르고, 또 흐르는 거 말고는 별게 있나요."


세느 또한 노래하듯이 말했고, 자신은 그렇게 스스로가 부른 노래를 타고 방 안을 날아다니듯 기분 좋게 기운을 살랑거렸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이 가락에 동참하라는 듯, 이진은 왠지 모르게 그녀로부터 보이지 않는 손이 뻗어 나와 자신을 끌어들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사미가 한 번 허공에 손을 휘저어, 아니, 그 보이지 않는 손을 탁 쳐내듯 하자 세느가 움찔했고, 곧 자리에 얌전히 앉아서 그녀를 멀뚱히 바라봤다. “그 말은," 사미가 말했다.


“당신들은 아직 그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는 거네요. 영에 대해서."


그녀의 말에는 별 감정이 없어 보이기도 했으나, 그 속에는 왠지 모를 바늘이 작게 빛나는 듯한 목소리. 이진은 청화 쪽에 대해 별 감정이 없었지만, 어쨌든 그들이 다소… 자기주장이 강한 이들임은 알고 있었다. 란의 경우 그나마 마르한이 그 기세를 많이 누그러뜨려서 그렇지, 나머지는 그렇지 않았기에. 오죽했으면 이 기 센 여자가 란을 빼고는 가장 온건한 태도를 가졌기에 그들의 대표가 되었을까. 그리고 이런 그녀에게 켈샤가 조용히 말했다.


“서로의 신념에 대해서는 더이상 간섭하지 않기로 했을 텐데."


“간섭하는 게 아니죠."


사미가 대답했다.


“다만, 이제 인간계라는 외부의 위협도 생겼는데, 우리가 언제까지 우리 세계의 힘에 대한 의견도 일치하지 않고 이래야만 하냐는 뜻이었어요."


이진은 그녀를 쳐다봤다. 사미의 얼굴엔 어쨌든 거짓이 없었고, 이를 본 이진과 민은 나이 든 민이 작게 한숨을 내쉴 뿐, 더이상의 말은 없었다. “글쎄," 그리고 이에 대답하는 간트.


“어쨌든 그 얘기는 그만하도록 하지. 자네 말대로 인간계가 우리에게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는 건 확실하지만,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그걸 가지고 별 의미없이 논쟁하는 것이야말로 시간 낭비야."


“그렇겠지요."


작게 끄덕이는 사미. 그녀와 저쪽의 여섯 혼령들을 번갈아 보면서 이진은 가만히, 언젠가 들었던 얘기를 떠올려 봤다.


독립 혼령들, 인간들 측에서는 망령이라고 약간 비하해서 부르기도 하는 이들은 공존측에서 하는 것처럼 영을 통해 살아가고 있긴 하지만, 그것에 대한 개념을 거의 반대로 알고 있다. 먼저 공존측에서는 이 세계에 흐르는 영이 한정되어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증발하여 혹은 사용하는 이들에 의해 소모되어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그들은 자연적으로 생기는 영 덩어리들 말고도, 자신들이 직접 혹은 신령들에게 만들어주도록 부탁하는가 하면, 자신들이 직접 영을 사용할 때에도 그것을 쓸 만큼만 모아서 사용하는 등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독립 혼령들은 생각이 달랐다. 그들은 영이 이 세상에 언제든지 넘쳐 흐르며, 영 덩어리가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이유도 그것이 너무 많아서 스스로 모인 것이라는 게 그들의 생각. 때문에 그들은 보다 직접적으로 영의 흐름에 관여하는, 예를 들자면 그것을 모은다기보다는 일부를 통째로 끌어당기거나 휘젓는 등의 방식을 택했다. 물론 이진은 인간이었기에 전자를 익히고 자라, 그것이 옳다고 배웠지만… 그래, 간트의 말이 맞다. 논쟁은 시간 낭비였다.

애초에 그에게 있어 둘 다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닌걸. 어느 쪽이든 부정적으로 볼 수 있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영을 마치 자신들만의 자원이라도 되는 양 취급하는 공존측도, 영이 이 세계에 얼마나 있는지도 확신이 없는 채 남발하는 독립측도 결국 다를 게 없었다. 무엇보다 그는 다른–


“이진?"


“아, 네에?"


어느새 자기 판단에 정신이 팔려 있던 이진은 민이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푸후후," 세느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여간 젊은 인간은 언제 봐도 귀여워요.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생각하고 계셨나요, 이진?"


악의는 없지만 자신을 은근슬쩍 어린애 취급하는 말에 이진은 얼굴이 살짝 비틀렸다.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보아하니 지금 나는 뭐 할 말 없냐고 물어본 것 같은데? [어이구.] 다일이 혀를 찼다. 기회가 왔을 때 얼른 말하라고 재촉하며. 이에 이진은 “어어," 하지만 역시 집회는 처음 와보기에 왠지 모르게 입만 우물거리다가, 갑자기 무언가가 그를 감싸자 놀라서 몸을 떨었다. 이런 그를 보면서 다시 웃음소리를 내는 세느. 하지만 지금 그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어깨를 지그시 눌러주는 것도 그녀였다.


“세느 취향 진짜 이상해."


랭이 작게도 아니고 다 들리도록 크게 한마디 던졌으나 세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혼령이든 인간이든 젊은이들이 기가 죽으면 안 되는 거예요. 물론 당신처럼 너무 기가 살아도 안 되지만 (“내가 왜!") 어쨌든 어서 말하세요."


“어, 네. 고마워요."


이진은 얼떨떨하게 세느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혼령들을 둘러보았다. 물론 어제도 얘기 중에 이들이 그를 쳐다보긴 했지만, 그때는 이진이 아니라 다일을 쳐다본 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혼령이 아닌 그 동반자를 가만히 쳐다보는 것이었기에, 이진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세느가 따스하게 어깨를 툭툭 쳐주는 중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 사령들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여기 온 겁니다. 그래서 원래는 서릿눈 대표로 다른 사람이 와야 했지만, 제가 대신 왔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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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괜찮다니까."


“으야, 그래도야."


아린은 아침밥은 (안그래도 사고 쳤는데 더 민폐 끼치기 싫다고) 집에서 먹고 와서도 또다시 서아 옆에 바짝 붙어 있었다. 이번엔 솔도 둘의 옆에서 영 덩어리 하나를 안고서 있는데, 이상하게 그 덩어리는 소년의 품에 있는 게 싫은 모양이었다. 이따금씩 부르르 떨면서 빠져나가려는 그를 계속 안고 있다가 결국 보내주는 솔. 아린은 덩어리가 밖으로 나가자 그걸 가만히 보더니 솔에게 물었다.


“무얘? 안좋은 일 있으야?"


“어어, 아니."


솔은 고개를 저었고, 하지만 아린이 다시 서아의 팔다리를 주물러주기 시작하자 입을 뻐끔거리다가 곧 마음속에 있는 것을 토해냈다.


“저기, 너희도 그때 봤어?"


“야?"


“네?"


두 소녀가 눈을 깜빡이자 솔은 차마 말로 하기가 부끄럽고 걱정되는지 둘의 앞에서 손만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런데 이러다가 갑자기 그의 손에서 다시 한 번, 마치 압축된 공기가 틈을 벌리고 뿜어져 나오듯 빠른 기운이 일었다. “으얏!?" 벽에 망치질이라도 한 듯 쿵 하는 소리가 이어졌고, 솔은 놀라서 손을 꼭 쥐었다.


“미, 미안! 이게 막 갑자기…"


“으, 으야,"


아린은 그제서야 지금까지 잊고 있었다는 듯, 소년의 손과 겁에 질린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고, 서아 또한 그랬다.


“하지만 혼령이 없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그냥 사람이 영을 써요?"


“무슨 일 있니?"


저쪽에서 서아 어머니의 소리가 들려오자 서아는 “아녜요!" 크게 대답하고는 다시 솔을 쳐다보다가, 옆에 있는 친구와 한 번 얼굴을 마주했다. 아린은 서아를 보다가 그녀가 어깨를 으쓱하자 자신이 가서 그의 손을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솔이 불안해하는 것을 조금 억지로 손을 편 그녀. 그리고 이렇게 편 손을 꼭 잡아보자 리니아가 [으응,] 무언가를 느끼고서 눈이 동그래졌다.


[정말 영이 흐르고 있어. 하지만 여전히 혼령은 느껴지지 않는데, 이건 나도 영 모르겠단 말야. 대체 뭐 하는 인간이지, 이 애는?]


“으음,"


솔은 아린이 자신의 손을 억지로 펴서 그걸 쥐기까지 하자 굉장히 불편해했다. 아린은 그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에 그를 보며 웃어줌과 함께 “괜찮야." 한마디 했다.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힘 빼고 있음 영도 나오지 않으이. 으응, 힘 빼고. 힘 빼야."


그러면서 등을 탁탁 쳐주자 솔도 조금은 진정되었고, 이렇게 진정된 그의 손을 마치 손금이라도 보듯 빤히 들여다보는 아린과, 이런 아린의 얼굴과 자신의 손을 번갈아보며 역시 조금은 불안해하는 솔, 그리고 이 둘을 지켜보는 서아 이렇게 셋이 있는 중에 시간이 조금 지났다. 그러다가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리자 솔은 놀라서 얼른 손을 꽉 쥐었고, 이에 아린이 “으야야," 얼굴을 찡그리며 자신의 손을 뺐다. “미안." 솔이 얼른 사과함과 동시에 문이 열리고, 셋의 눈앞에는 마르한이 있었다.


“여기 있었군요, 솔. 신령님께서 부르십니다. 지금 바로 올라가 주세요."


“아, 네."


솔이 일어나서 방을 나가고, 그 뒤를 아린이 자연스럽게 따라가는데 이번엔 그녀를 막는 마르한.


“죄송합니다. 이번에는 혼자 오라고 하셔서요. 별 큰일은 아니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


“야?"


아린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마르한이 솔을 따라 방을 나가는 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 서아를 보고는 으쓱하는 그녀.


이후 몇 분이 지나고, 솔은 신령이 쉬는 방에 숨을 헐떡이면서도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저기," 조그맣게 입을 여는 소년.


“급하게 부르셨다고 하는데, 무슨 일로–"


“문부터 닫아라."


유가 조용히 말하자 갑자기 찬바람을 맞은 것처럼 몸이 싸늘해지는 느낌 속에, 솔은 문을 닫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래," 신령이 말했다.


“네가 영을 쓰기 시작했다고? 결국은 그렇게 되는구나."


지금은 어째서인지 늙은 노인의 모습으로만 있는 그녀. 솔은 마치 커다란 동상이 눈앞에 있는 것 같아, 다소 부담스러움을 느끼며 앉은 채로 슬쩍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유는 이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뒤에 있는 촛불, 언제나처럼 파랗고 하얗게 빛나는 그것을 한 번 돌아봤다가, 곧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긴말은 않겠다. 그리고 이유 또한 너한테 설명해줄 수 없을 것 같구나."


“네? 무슨 말씀을…"


“앞으로 그 산에는 가지 말라고 해야겠다. 네가 처음 있었다는 그곳 말야."


이 말에 갑자기 말이 막히는 솔. 그리고 이런 소년에게 유는 “허나," 한마디 덧붙였다.


“만일 어떤 이유에서든 그곳에 다시 가게 된다면, 그 이후로 절대 이 마을에 내려오지 말거라. 지금 내가 할 말은 이게 전부다."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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