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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mate


068


“신령?"


아린이 멍하니 고개만 저었다.


“신령얘? 소야가 신령님얘?"


솔은 천천히 끄덕였고, 그런 순간 갑자기 그의 손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림과 함께 경련을 일으키자, 소년은 그 손을 꽉 잡았다. 보기에도 너무 아프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손을 잡은 그를 보며, 아린은 동그란 눈만 몇 번 깜박였다.


[결국 신령이었구나. 그런데 왜 모습은 인간인 거지?]


“그건 저도 몰라요."


리니아가 아린의 안에서 한 말에 솔이 대답했다. “으야," 정말로 신령이 맞구나 하며 아린은 또다시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어쨌든, 이곳에 있던 모든 영은 원래부터 내 거였으니까, 그래서 내가 여기서 뭘 할수록 나한테 다시 돌아오는 거였어. 자기 주인을, 원래 몸을 알아보고서 말야."


다시 한 번 그의 몸에서 무언가가 일어나려 하자, 솔은 그대로 이를 악물었다. 아린도 느꼈다. 지금 그의 기운으로부터 당장에라도 한바탕 폭풍이나 홍수가 일어날 것 같았다. 원래의 몸을 되찾은 영들이 자신들의 재결합을 축하하기라도 하듯, 굉장히 활발하게 날뛰려는 것을 어떻게든 제지하려는 솔. “미안야." 아린은 그런 솔이 안쓰러워졌다.


“진작에 알았어야 했으이. 괜히 여기까지 또 데려와서… 하지만 괜찮으이. 영은 잘 조절할 수 있게 배우면 되는 야. 게다가 소야, 신령님얘? 신령님이 두 분이면 우리 모두 정말 좋아할 거이. 소야는 착하니까. 착한 애니까 괜찮얘. 야?"


하지만 솔은 고개를 저었다. 이에 아린이 한 발짝 그에게 다가서자, 소년은 반대로 그녀에게서 한 발 멀어졌다. “저리 가." 그가 말했다.


“그리고 마을로 돌아가, 아린. 난 이제 돌아가면 안 돼. 나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이제 나도 안 이상–"


그렇게 말하던 솔은 갑자기 고개를 홱 돌리고는, 그쪽에 마치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조용히 눈을 굴리며 위아래로 훑어 보았다. “소야?" 다시 한 번 그의 몸이 경련을 일으키자 아린이 그에게 다가갔으나, 솔은 그녀를 쳐다보지 않은 채 침을 꿀꺽 삼키고는 곧바로,


“앗, 소야! 잠만얘! 소야!"


그대로 전당에서 뛰쳐나가, 저 산 어딘가로 빠르게 달렸다. 그가 뛸 때마다 마치 그림자처럼 가벼운 기운이 일었다가 잠잠해졌고, 그렇게 곧바로 사라지는 흔적을 남기며 빠르게 뛰는 그를 아린은 차마 따라가지도 못했다. 강한 영을 두르고 뛰어서 그런지 너무나 빨랐다. 그리고 이렇게 소년이 쏜살같이 달아난 뒤, 그가 간 쪽을 보며 멍하니 있는 아린에게 “아린!" 그녀를 부른 소리가 들렸다.


“오라부이얘?"


아린은 고개를 돌렸고, 곧 전당 위로 허겁지겁 올라와 자신에게 뛰어오는 란과 이진을 마주했다. “괜찮나?" 란이 묻자 곧바로 끄덕인 그녀였으나, 그랬다가 다시 솔이 사라진 쪽을 한 번 바라보고는 곧 얼굴이 어두워지며 고개를 숙이는 아린.


“소야, 소야가 갔으얘. 멀리 갔으얘."


“그래…"


란은 아린이 바라본 쪽을 한 번 보고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착한 애였는데. 별로 기분이 좋지 않구나."


“야?"


고개를 들어 란을 쳐다보는 아린.


“신관님도 알고 있었으얘? 오, 오라부이도?"


“난 오늘에서야 알았어."


이진이 대답하자 아린은 란을 말없이 응시했고, 이에 신관은 “미안하구나." 착잡한 얼굴로 대답했다.


“어쩔 수 없었어. 아직 확실하게 알기 전까지, 다른 사람들이 알아선 안 되는 거니까."


“하지만!"


아린이 속에서 무언가가 북받치며 큰 소리를 터뜨렸다.


“소야는 내가 구해서, 내가 돌봐준 야!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옆에서 있어주려고 했던 야… 왜 나한테도 알려주지 않았으얘? 왜얘!"


"……"


란은 다시 한숨을 푹 내쉬고는 이진을 쳐다봤다. 이진도 그를 보면서 한 번 끄덕였고, 이에 신관은 두 눈이 서서히 뜨거워지고 있는 아린에게 가까이 갔다. “아린," 그의 목소리는 차분히, 어린아이를 달래주는 듯 부드럽게 깔렸다.


“솔이 말해주지 않았니? 왜 자기가 여기 오면 안 되는 건지."


“영을 잘 못 다루는 거 말얘? 그거야 배우면 되는 야. 안 그러야, 신관님얘?"


곧바로 눈물을 흘릴 듯한 아린에게, 란은 “안 했군." 한 마디로 그녀의 눈이 동그래지게 했다. “야?" 아린이 그를 가만히 쳐다보는 중에, 신관은 천천히 아린의 검은 머리 위에 한 손을 얹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갑자기 눈앞이 아득해지는 아린. 갑자기 바닥이 꺼져서 어디론가 계속 떨어지는 느낌이 나더니, 그렇게 어디서부터 어딘가로 떨어지던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


“으야?"


갑자기 눈앞이 선명하게 보인 그녀의 앞에, 모든 것이 새파랗게 불타고 있었다.

이 상황을 무심하게 지켜보듯 그저 매정하게 쏟아지는 달빛 아래에서, 온 세상이 하얗고 파랗게 변한 것처럼 그 불길 속에 잠겨, 안에서 점점 새까맣게 물들던 나무 기둥은 결국 쩌억 갈라지는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여기는 마을이었다. 아린이 사는 산 아래 마을.

하지만 집의 지붕을 덮고 있던 것들은 짚이고 진흙이고 너나 할 것 없이 하나같이 열기 속에 오그라들고 있었고, 심지어 커다란 바위들마저 예사 불이 아닌 그것 속에서 서서히 가루가 되고 있었다. 곳곳에서 자란 나무와 풀들은 말할 것도 없었고, 이 비정상적인 화재를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여러 동물들은 이미 저 멀리 달아났거나 몸에 불이 붙은 채 울부짖으며 뒹굴고 있었다.

싫어. 이를 보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이런 거 싫어. 무자비한 불길을 보며 애원하듯 하는 그녀였으나 저 창백하고 퍼런 불길이 단순히 한 누군가의 의지만으로 꺼질 리 없었다. 이를 알고 있는 이들은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 불길이 아직 닿지 않은 쪽으로 죽을 힘을 다해 뛰는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그렇게 저마다 겁에 질린 얼굴로 도망치고 있었다. 서로에게 빨리 뛰라고 재촉할 틈도 없이 그저 발만 움직이는 모습. 단 1초라도 더 먼저 재앙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망가는 이들을 보며 그녀는 온 정신이 떨리는 것 같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 하는 거야?


“다들 빠져나가! 어서! 빨리 뛰라고!!"


이런 재난 한가운데서 란이 외치는 게 들렸다. 그 또한 자신에게까지 번지려 하는 불길을 피해 다니는 중이었고, 그러다가 “신령님!" 소리를 지르며 아린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갈 수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 서서, 완전히 아무것도 못 하는 그녀였다.


너무나 싫고, 끔찍하고, 무섭고, 너무나 싫고, 싫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안 되는 거였다. 그런데 어째서, 왜 이렇게 되어야만 하는지 그녀는 계속해서 묻고 또 물으며, 그런 중에도 저렇게 퍼져가는 불길을 어찌할 수 없이 보며 속으로 울고 있었다. 너무나도 힘들었다. 너무나도.

저 불은 멈춰야만 한다. 그녀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누구도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그 두 현실 사이에서 괴로워하던 그녀는 결국 절벽에 매달린 사람처럼 애원하기 시작했다. 누가 도와줘. 누구든 상관없으니 제발 도와달라고 빌고, 몸부림치며 빌고, 울면서, 아무 목소리도 내지 못한 채 소리를 지르며 또 빌기만 하는 그녀였다.


이런 그녀의 기도를 누군가가 알아줄까? 완전히 절망한 그녀는 저 앞에 누군가가 오고 있음을 알았다. 모두가 죽어가거나 도망치는 상황에서, 불이 가장 먼저 번지기 시작한 저 윗쪽에서 누군가가 내려오고 있었다. 하얗고 파란 불 사이로 걸어오며, 지금 더이상 견디지 못할 정도로 괴로워하는 그녀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녀는 저 누군가를 보았다. 몇 번 본 적이 있는 듯한 모습. 굉장히 강력한 힘을 숨긴 채 불길 사이로 걸어온 그는 그녀의 앞에 멈춰 섰다. 그녀는 몸을 떨었다. 뭐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아무 목소리도, 다른 무엇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눈에 들어온 그를 아득히 바라보기만 하면서, 그가 잠시 뒤 천천히 팔을 들어, 그 안에 숨기고 있던 힘을 드러낼 때까지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잠깐, 잠깐만! 그녀는 몸서리를 쳤으나 그는 멈추지 않았고, 손에서 모이던 작은 힘은 점점 폭발적인 기운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이렇게 자신을 향해 손을 뻗어 힘을 모을 동안 무엇도 할 수 없었고,


퍼엉!


그가, 소년이 쏜 강력한 영에 맞은 아린은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렇게 아파서 난리를 치는 자신을 솔은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고, 이런 그의 앞에서 아린은 고통이 서서히 가라앉음과 함께 조금 정신을 차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결국 이렇게까지 됐네요."


그가 말했다.


“결국은 이렇게 됐어요…"


두 번째로는 자기 스스로에게 중얼거리듯 말한 그는 다시 한 번 아린을 향해 손을 뻗었고, 곧 그의 손에서 다시 한 번 강한 영이 뿜어져 나오는 순간, 아린은


“소야!!"


소리를 지르다가 갑자기 눈을 떴다. 이미 눈은 뜨고 있었는데? “야?" 아니, 그게 아니었다. 아린은 지금 전당 위에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눈앞에서는 이진이 그녀를 걱정스런 얼굴로 바라보는 중이었고, 그 옆에서는 란이 아린의 머리 위에 얹었던 손을 천천히 거둬들이고 있었다. “이게," 아린과 리니아는 신관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보여줬음을 알았다.


“이게 뭐얘? 왜 소야가, 갑자기 저러는 거얘?"


“저번 달에 신령님께서 꾸신 꿈이야."


란이 말했다.


“너도 알지, 아린. 신령님께서 저렇게 선명하게 보신 건, 결국 언젠가는 실제로 일어났어. 그리고 이번엔 저게 그 꿈이었고… 너는 알지 모르겠지만, 신령님은 저 아이를 처음 봤을 때부터 무서워하셨어. 그분이 두려워하시는 모습은 나도 처음 봤지만, 어쨌든 아린, 미안하구나. 어쩔 수가 없었어."


아린은 다만 그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소년이 도망간 쪽을 바라보았다. “소야," 아린은 더이상 울지도 못하고 어쩌지도 못한 채, 그저 먼 하늘을 보는 얼굴로 계속 서 있었다.



==



“흐읏!"


마지막으로 이를 악물고 한 번 크게 팔을 휘두른 그녀. 그녀의 움직임과 함께 번득이는 칼날이 허공에서 가늘고 빠른 선을 그렸고, 그 선과 함께 검은 물체가 두 동강이 나 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두 쪽이 난 괴물을 바라보자, 그것은 마침내 경련을 일으키며 증발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후아, 하,"


호흡이란 건 참 편하면서도 걸리적거리는구나. 그녀는 인간의 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끝났어요?] 한편 시히델이 묻는 말이 그녀에게 전해졌고, 시히델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제 검은 건 보이지 않았다. 저 유적을 제외하고, 이제 검은색을 띠는 건 없었다. 끝났다.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리다가 프리아에게도 말해줬다. “응."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은 그녀.


“끝났어, 이제. 다 끝난 거야."


물론 사령들이 이게 다가 아님을 알았다. 저 밖에 이미 퍼질 대로 퍼져 있겠지. 하지만 이젠 괜찮았다. 적어도 맞설 방법은 알았으니까. 그리고 시히델은 다른 것도 깨달았다. 지금 프리아는… 그녀와 함께였다. 말 그대로 그녀와 함께 있었다. 함께, 한 몸에. 어째서 인간의 몸이어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이제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렇게 살과 혼이 영으로 이어져 있는 것임을 그녀는 알았다.


“자네가 시히델이라고?"


한편 모든 일이 끝나자 호리에르가 자신의 상처를 감싸고서 천천히 다가왔다. “네." 시히델은 자신을 잘 보라는 듯 그를 마주했고, 호리에르는 그의 얼굴을 조용히 훑어보고는 자신의 기운을 뻗어 보았다. 그리고는 곧 거두면서 긍정하는 호리에르.


“정말이군. 자네가, 프리아의 몸이라니. 어떻게 된 일인가?"


“이어진 거죠."


시히델이 대답했다. 그리고 어느새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혼령들, 그리고 인간들을 바라보았다. [시히델,] 그리고 프리아가 자신도 한마디 하고 싶다며 조르자, 곧 싸우던 도중 알아낸 방법으로 자리를 비켜주는 그녀. 잠시 정신이 멍해진 사이 몸의 원래 주인이 앞으로 나오는 게 느껴졌고, 곧 그녀의 표정부터 항상 하던 얼굴로 변한 것도 알았다.


“저예요. 프리아. 그리고 시히델도 저랑 같이 있어요."


“같이 있다고?"


노일이 묻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프리아. “네." 그녀가 말했다.


“시히델이랑 같이 있어요. 이 몸에. 그래서 정말 좋아요. 시히델이 계속 옆에 있으니까.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한 몸에 둘과 같이 있다. 영으로 이어져서. 프리아는 시히델이 전해주는 설명을 있는 그대로 모두에게 말했다. 그렇게 모든 설명이 끝나자 천천히 긍정하고서 묻는 마르한.


“그럼 신령님들께서 남긴 건 이거라는 거야? 혼령과 인간이 한 몸으로 살아가게 하는 거?"


“그래."


시히델은 그 사이에 앞으로 나와서 대답했다. 그녀는 프리아의 얼굴과 몸에서 나는 기운이 변했음을 스스로 느꼈다. 그리고 이 변화를 본 이들을 둘러보며, 고개를 몇 번 끄덕이는 그녀.


“살과 혼이 이어져서, 새로운 시대를 열 힘을 얻는다. 그게 바로 '영'이야. 이제 우리가 살아갈 새로운 힘. 신령님들께서 없어도, 그 힘으로 살아가면 되는 거지. 서로 같이 말야."


그녀의 말에 인간들도, 혼령들도 웅성거렸다. 이곳에 처음 온 이들도 그동안의 이야기를 조금 들은 건지, 저마다 뭐라고 하면서 고개나 기운을 갸웃하는 게 보였다. 시히델은 그들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처음 듣는 얘기에 미심쩍어하는 이들도 있었고, 곧 이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이제 누구도 자신의 기운을 날카롭게 뻗거나 무기를 들지 않았다. 비록 저마다 태도는 달랐지만 이제 시작이니까. 이미 한 번, 이곳 유적 근처에서 모두가 모이는 걸 보고 경험했기에 시히델은 확신할 수 있었다. 또 이런 그녀에게 프리아가 미소 짓는 게 느껴지자, 그녀도 마침내, 모두의 앞에서 실로 오랜만에 웃어 보였다.


“그래, 이제 끝났어. 드디어 끝난 거야."
이제 다음편으로 2부도 끝나는군요. 학교 갔다와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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