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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mate


069 (종편)


[여기까지야.]


엔시나가 기억을 거두면서 말하자 고개를 끄덕인 제이미.


[남은 기억들이 더 있지만, 왠지 조금 불안정해. 잘 정리해서 나중에 보여줄게.]


“으응."


마치 오랜 여행이 끝난 기분으로, 제이미는 한숨을 내쉬면서 이불 위에 드러누웠다. “그랬구나." 그녀가 말했다.


“그러니까 최초의… 그, 공존하게 된 사람이랑 혼령이다 이거네. 흐응, 저렇게 된 거구나."


[그래.]


엔시나 또한 이 이야기를 혼자 다시 기억해 보고, 또 기억해 보고 있음을 제이미는 알았다. 하지만 자신은–사람이라 그런지 몰라도–조금 지쳐서 그대로 베개에 머리를 이고 눈을 감았다. 그 성질 더러운 시히델이 저렇게 첫 번째 동반자를 두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잠시 생각만 했다가, 그대로 잠이 들려는 찰나, “아린!"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자 눈을 뜬 그녀.


“뭐야, 아린 왔나?"


제이미는 잠을 방해받았지만 어차피 뭐, 아린이니까 하면서 대충 넘기고, 일단 하품을 하며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아린 뿐만 아니라 이진과 란이 같이 있자 눈이 동그래지는 그녀. “뭐야?" 아레인에게 혼나지도 않고 그저 꼭 안겨 있는 아린을 쳐다본 제이미는, 지금 저 소녀의 표정이 굉장히 좋지 않음을 확인하고 이진과 란을 쳐다봤다.


“뭔 일 있었어? 왜 올 땐 둘이 같이 오는… 응?"


그리고는 왠지 누가 빠진 것 같다는 생각에 주위를 둘러본 그녀였다. “걔," 곧 두 남자에게 묻는 제이미.


“어딨어? 솔 말야. 어디 간 거야?"


“소야…"


낮게 중얼거리는 아린의 얼굴을 본 제이미는 뭔지는 모르겠지만 느껴지는 게 있어 입을 다물었고, 어쨌든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



==



“그러니까 이렇게 혼령이 인간과 같이 있을 수 있는 거라고?"


“네, 그래요."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안타깝게도, 인간 혼자서는 어떻게 해도 영을 다룰 수가 없어요. 그렇게 스스로 터득할 만큼 오래 살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혼령과 함께 있으면 되는 거예요."


“으응."


오늘 또 한 명의 혼령이 납득하며, 인간들을 쳐다보는 태도가 제법 누그러졌다. 이런 그가 조용히 앉아서 쉬는 모습을 본 프리아는 생긋 웃었고, 시히델도 그녀에게 잘했다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시히델,"


한편 저쪽에서 마르한이 그녀에게 오고 있었다.


“수고했어."


“응? 아, 으응."


그가 부르자 어느새 앞으로 나온 시히델은 그에게도 끄덕여 보였다. 그녀의 오랜 친구는 지금까지 이렇게 온 시히델을 가만히 바라보며, 왠지 기뻐하면서도 조금 아쉬워하는 듯한 기색이 보였다. 심지어 프리아의 인간의 눈으로도 보이는 그 태도에 그녀는 “왜?" 조용히 물었고, 이에 그는 말했다.


“아니, 그냥. 앞으로 네 원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게 좀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쩔 수 없잖아."


시히델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했다.


“그리고 원래 모습이 뭐든 그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이게 우리의 새 모습이니까 이대로 살아가면 되는 거야."


그녀를 쳐다보는 마르한. 역시 프리아의 몸이긴 하지만 그 서 있는 태도부터 얼굴 하며, 말하는 목소리의 음색까지 전부 프리아와는 다른, 딱 시히델이 느껴질 만한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마르한은 이를 생각하는지 잠시 가만히 있다가, 곧 미소 지으며 긍정했다. “그래." 그가 말했다.


“어쨌든 고마워, 시히델. 어… 응, 고맙다고 말하러 왔어."


마르한은 이러면서 꽤 쑥스러워하고 있었다. 그의 기운에서 아지랑이가 피는 모습을 보며, 시히델은 이 녀석이 그녀에게 고맙다고 하는 것도 정말 오랜만임을 알았다. 그리고 이 사실에 푸훗 웃는 그녀.


“지금까지 나 때문에 시작된 일이라고, 인간들한테 어떻게 대한다고 잔소리하더니, 지금은 고맙다고 하네?"


“어쨌든 이제 끝난 일이잖아."


자신도 어설프게 웃어 보이는 마르한. “알아?" 그가 말했다.


“사실 그 이후로 넌 달라지고 있었어. 프리아 씨를 만난 이후로 말야. 넌 그걸 알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난 그 사람이 네가 돌아오게 도와줄 거라고 믿었거든. 그냥, 뭐, 미안해. 그리고 고맙다고. 이게 다야."


“흐응, 그래?"


시히델이 눈썹을 치켜 올리자–그녀는 어느새 이게 인간의 비언어적 표현 중 하나임을 배웠다–마르한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많은 인간과 혼령들이 모여서, 그러나 비록 작은 다툼은 아직까지 있을지라도 그것 또한 점점 사그라지는, 그렇게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길을 택하는 모습. 시히델도 그의 시선을 따라 이런 모두를 둘러보고는, 어느새 마르한이 자신에게 웃으며 긍정하고는 저쪽으로 가는 걸 지켜봤다. “흥." 그녀가 중얼거렸다.


“저러면 꼭 나한테 잔소리하던 때가 그립다고 하는 것 같잖아."


[혹시 시히델도 그때가 좋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그녀의 생각을 읽은 프리아가 장난을 쳤다. 이에 그녀는 눈이 가늘어지며, 또 한 가지 배운 방법으로 자신과 함께 있는 그녀를 살짝 쥐어박았다. [아얏,] 영으로 한 대 맞은 프리아가 그러면서도 헤헤 웃자, 시히델은 돌아서서 저 유적을 올려다보았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야."


마침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그녀였다. 그 이후로 한 명 한 명, 혼령이든 인간이든 이제 서로 싸우지 않도록 설득하면서, 어느새 그녀가 이런 말도 하게 될 줄이야.


“난 가끔 생각했어. 내가 옛날, 신령님들께서 살아계실 때 그 애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고. 그리고 내가 저걸 열면서, 마침내 그때의 나로 돌아왔나 했어. 하지만 아냐. 난 인간들을 죽이던 그 혼령도 아니고, 이것저것 배우는 데 열심이던 그 혼령이 다시 된 것도 아닌 거야. 애초에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면 변하는 게 없잖아? 난 지금 여기 있는 혼령이야. 지금의… 응. 그런 거지, 뭐."


프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히델은 혼자 가볍게 미소 짓고는, 한 가지 잊은 게 생각나서 “프리아?" 그녀를 불러 보았다. 프리아는 그녀의 옆에서 동그란 눈으로 바라보았고, 시히델은 마침내 그녀에게, 환한 웃음과 함께 말했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프리아."


[네!]


프리아도 밝게 웃으며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저도, 정말 고마워요, 시히델!]



==



사흘 뒤,


“으야,"


마루에 앉아 발로 장난을 치며, 아린은 오늘도 멍하니 산을 올려다보았다.


“안 오얘, 소야."


[으응.]


리니아가 끄덕이고는 아린의 기분을 확인했고, 소녀는 혼령이 자신을 감싸려 드는 걸 치웠다. “됐으얘." 그녀가 말했다.


“뭐 죽은 것도 아니고, 죽을 리도 없고, 어디서 잘 살고 있겠지얘."


[그리고?]


지금 아린의 생각 깊은 곳까지 들여다본 리니아가 이어서 묻자, 아린은 그저 고개만 설레설레 저었다.


“모르겠으얘. 소야 어디 있을까…"


그렇게 또다시 산을 올려다보다가, 곧 장난치던 두 발도 축 늘어진 아린이었다. 리니아는 아린을 가만히 지켜봤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산만 뚫어지듯 올려다보는 아린. 지난 이틀 동안 다시 전당에 가봤으나 소년은 없었고, 그럴 때마다 아린은 아무 말도 표정도 없이 산을 내려왔다. 아무도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산에 다시 가든 어떻든. 아린은 오히려 이렇게 된 게 싫었다. 아무것도 예전 같지 않았다. 아무도 그녀가 밖에 나갔다 오든 말든 뭐라 하지 않았고, 아무도 소년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


“아린~!"


그렇게 아린이 마루 위에 조용히 굳어 있을 때, 서아가 손을 흔들며 안으로 들어왔다. “뭐해?" 친구가 묻자 아린은 그냥 방긋 웃어 보이고는 다시 산을 바라봤고, 이에 서아는 작은 한숨과 함께 그녀 옆에 앉았다.


“솔은 이제 안 오는 걸까."


서아가 중얼거렸다.


“신령님께서 오늘 아침에 말씀하셨어. 그 애가… 그… 아린? 듣고 있어?"


“듣고 있으얘."


아린이 대답했다.


“이미 알고 있으얘. 소야에 대해."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숙이는 아린.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산에서 내려오고 다음날, 저 위의 연못 앞에서 들은 말들이 다시 재생되고 있었다.


“미안하구나."


신령은 이제 한 번 제대로 혼나 보겠지 하는 아린의 생각과는 달리 아주 부드럽게, 마치 덜 익은 과실을 어루만지는 손처럼 그녀를 감싸주었다.


“내가 진작에 말해줬으면 좋았을 것을… 다른 인간도 아닌 네가 구해 온 아이라는 걸 잊었어."


“아, 아니예."


아린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죄송얘, 신령님. 제가 잘못했으이. 그,"


그리고서 무언가를 더 말하려다 입을 다문 아린. 리니아가 주의를 줬기도 했지만, 그녀 스스로도 이제 정말로 혼나기 전에 조용히 있어야겠다는 최소한의 눈치는 보였기에. 하지만 신령은 아린이 이렇게 (그녀답지 않은) 조용한 모습을 보이는 게 불편했는지, 천천히 물을 건너와서 그녀의 머리에 기운을 얹었다. “야?" 아린이 고개를 들자 어른의 모습으로 말하는 유.


“계속 말하거라. 속에 있는 걸 다 털어놔야지, 혼자 참으면 그게 독이 될 것이야."


“야…"


아린은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소야," 그녀가 말했다.


“소야 보고 싶으이. 그 야가 저렇게 가는 거 싫으야. 다시 보고 싶으이. 같이 놀고 싶고, 우리랑 함께 있었으면 좋겠으이."


[아린…]


리니아가 한숨을 내쉬었고, 유 또한 조용히 끄덕이면서도 무거운 한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미안하구나." 재차 말하는 신령.


“거짓말이 아냐. 나도 그 애를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구나…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언제든 나한테 오려무나, 아린."


“야?"


아린이 고개를 들었다. 신령은 여전히 어른의 모습을 하고서 이런 그녀를 보며 미소 지었다.


“언제까지 너한테 이거 안 된다, 저거 안 된다 할 수도 없잖느냐. 언제든 놀러오거라. 얘기도 많이 해주고, 네가 신기해할 것들도 많이 보여줄 테니까. 그 소년을 잊으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라도 내가 도움이 된다면 좋겠구나."


“으, 으야,"


소녀는 왠지 울먹이게 되면서 고개를 다시 늘어뜰였다. “감사하얘." 그녀가 중얼거리듯 대답하자, 신령은 그녀를 가볍게 감싸주었다.


"……"


그리고 이렇게 된 이후로 그녀는 다시 산에 가진 않았다. 신령님께서 의도한 건지는 몰랐지만–리니아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저​렇​게​까​지​ 해주셨는데 또 거기 가면 혼나는 건 둘째치고 그녀 마음속 한가운데를 마구 찌르는 것 같아서. “서야," 하지만 계속 산을 보면서 아린은 입을 열었다.


“소야는 잘 있겠지야? 신령님이니까. 사고 안 치고 잘 있겠으야?"


“그 애가 넌 아니잖아."


서아가 웃으며 말했다.


“잘 있을 거야. 네 말대로 신령님이잖아? 괜찮을 거야. 내가 그렇게 믿어줄게."


“으응, 고마우이."


그리고 아린은 이제서야 친구에게 방긋 웃어 보이고는 다시 저 위를 올려다보았다. “으응." 곧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아무 일 없을 거이. 괜찮야. 괜찮야…"


이런 그녀의 믿음에 대답해주듯, 산은 별 탈 없이 조용히 저 앞에 서서 시원하게 바람 한 줄기를 그녀에게 보내 주었다.





Soulmate, 2부 : “달맞이" 끝

3부에서 계속됩니다
암운입니다. 마침내 2부가 끝났네요. 앞으로 한참 남았는데, 그걸 생각하면서 이것저것 보여주다 보니 2부에서 판이 너무 커졌다고 해야 하나... 완전히 저도 중간에 혼란에 빠질 정도로 난잡해졌더군요. 어떻게든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넘어오긴 했습니다만, 역시 이번 2부가 너무 길어지고 벌써부터 일이 커졌다는 느낌이 드네요. 그래도 한번 시작한 이야기 앞으로 계속 이어나갈 것이고, 그만큼 3부는 더 제대로 준비해서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한 두 달 정도 여러 가지 준비하면서 쉬었다가, 3부와 함께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즐거운 하루 되시고, 아직 많이 부족한 이야기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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