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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mate


071 (프롤로그)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가자 이를 지켜보던 크고 작은 벌레들이 길을 비켜주었다.


“아직 하나도 안 느껴져?"


“아직."


그러면서 한 명이 묻자 다른 하나가 대답했고, 그 소리는 발에 밟히는 잔 낙엽 소리와 함께 저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영이 감도는 밤, 이 세상 어디에든 흐르는 그 기운에 이런 자그마한 낙엽들도 자신의 죽은 모습을 간신히 유지하는 곳, 이곳에서 움직이는 두 사람이 있었다. 나무 사이를 지나 생기가 도는 잎사귀를 헤치고 나아가며, 도대체 마을에서 어느 정도 떨어졌는지, 다만 돌아갈 길만 알고 있는 채 계속해서 발을 옮기고 있었다.


“힘내자고. 이제 한 송이만 더 있으면 되니까."


“그래. 난 안 힘들어. 걱정 마."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지만 자신의 다리는 속이지 못했다. 점점 느슨해지는 발걸음이 저 밑의 흙에도 찍히는 것을 어떻게 가리겠는가. 때문에 그렇게 계속 걸어가다가, 결국 잔잔한 수면 위로 넘치는 물처럼 불평이 새어 나오고 말았다.


“이번엔 왜 저리 많은지 모르겠어.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따야 하는 거 아냐?"


“어쩔 수 없잖아. 딱 그런 때에 인간계에서 돌아올 줄 누가 알았겠어? 엔시나가…"


“그래, 어쩔 수 없지. 그런데 말야,"


한쪽에는 바위들, 다른 한쪽에는 기다란 덩굴이 늘어진 곳에 멈춰 기웃거리며 한 명이 말했다.


“그 동반자 말인데, 진짜 좀… 특이하지 않아? 생긴 건 둘째치고, 그 말투에 성격이… 어어… 솔직히 말야, 나는 지금까지 신관님한테도 신령님한테도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그렇긴 해."


다른 한 명이 끄덕였다. 그러다 고개를 다른 쪽을 돌려 보고는 손가락으로 그쪽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쪽에 있는 것 같아. 빨리 가지고 돌아가자고. 솔직히 난 좀 지쳐서."


“나도."


그리고는 가리킨 쪽으로 가볍게 뛰어간 둘이었다. 그렇게 뛰어가다가 무언가 다른 걸 느낀 것도 같지만, 어차피 이제 한 송이만 더 있으면 되니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곧 둘은 어두운 밤중에 기묘한 빛을 내는 것 같은, 하지만 사실은 빛을 낸다기보단 빛을 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더 맞다고 해야 할 무언가를 보았고, 발을 멈췄다. “됐어." 한 명이 말했다.


“얘는 꽤 많이 먹었네. 몇 년은 살았나 봐. 이제 가자."


“참, 오늘 뭔 고생이– 어?"


돌아서는 순간 멈춰선 발. “왜?" 함께 왔던 한 명도 지금까지 모은 것을 다시 세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고, 눈이 동그래져서는 자리에 그대로 섰다. 누가 있다. 그도, 그의 혼령도 단번에 그것을 느끼자마자 이에 응답하듯 저쪽에서 움직이는 게 느껴졌고, 밤도 밤이지만 그 모습이 잘 보이진 않자 “누구세요?" 입을 열었다. 그러자 조용히 들려오는 대답.


“당신들, 혼령과 같이 있는 사람들인가?"


“네?"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저쪽에 잘 안 보이는 사람을… 아니, “응?"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잘못 들었을까? 아무래도 꽃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어서 잠시 헛것이 보인 걸 수도 있다. 영 덩어리들이 뭉쳐서 가끔 장난을 하는 일도 있으니까. 그냥 소소한 장난이겠거니 하고 곧 돌아갈 길을 찾는데, 곧 둘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길이 안 보이는 것에 서로를 쳐다보았다.


“뭐야?"


중얼거리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면, 아니었다. 길이 안 보이는 게 아니라, 막혀 있는 것이었다. 그들 주위로 사방이 어떤 이들에 의해 막혀 있었다. 갑작스런 일에 놀라서 살짝 뒷걸음질을 쳤다가 뒤를 돌아보면 그쪽에도 누군가가 서 있었고, 이렇게 되자 혼령은 고개를 기웃하며 중얼거렸다.


[인간들이잖아. 그런데 아무도 혼령이 느껴지지 않고… 어?]


영문을 모르는 두 혼령과 사람들을 감싸고서, 저 밤하늘과 숲 그리고 다른 무언가에 가려진 이들은 조용히 지켜보다가 곧 한 발짝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설마… 위, 위험해!]


그리고 혼령이 뭐라고 외친 것과 함께 두 사람이 들고 있던 꽃송이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푸석한 흙바닥에 떨어져 뒹구는 것들 위로, 굉장히 많은 모래와 나무 조각 등이 매섭게 튀어 그것들을 조금씩 덮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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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 킹 루이즈… 앨리슨입니다."


녹음 파일 재생.


“네, 결혼했어요. 나 같은 년한테 그런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벌써 딸내미도 하나 있어요."


시원시원한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고, 바람 같은 그 음성을 물처럼 마시듯, 아니 정말로 무언가를 마시는 소리가 이에 대답하고 있었다.


“지금 이걸 열어보는 게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면… 네, 어쩔 수 없네요. 맘대로 뒤져보세요. 저에 대해서든 아니면 이 골칫거리 엔시나에 대해서든."


“그래, 그래야지."


눈을 감은 채 중얼거리면서, 어느새 텅 빈 병을 책상 위에 쾅 내려찍었다. 그리고 한숨과 함께 반쯤 처진 눈으로 화면을 응시하는 그녀. 수많은 일들, 수많은 목소리들이 의자에 늘어져 있는 그녀의 머리를 채우고 있었다. 하나씩, 또 하나씩 보고 들을수록 알코올이 채울 뻔하던 뇌가 다른 것들, 그녀의 정신을 깨우고 제법 긴장하게 할 만한 것들로 채워 나가고 있었다.


꿀꺽, 꿀꺽,


그렇게 화면을 빤히 응시하며 이것저것 누르다가 다시 한 병 따서 마시면, 어느새 대략적인 설명은 끝난 뒤였다. “그럼," 그리고 다시 스피커에서 나오는 목소리.


“여기까지야. 일단은. 나머지는 다 거기 저장했으니까. 알았지?"


이미 질리도록 마셔 본 입이 다른 한 병을 순식간에 비웠을 때, 그 목소리는 다시 한 번 살랑이면서 귀를 문질러 주었다. 그리고 잠시 뒤, 곧 조용해진 방 안에서 다시 무슨 소리가 들리면, 이번에는 조금 시끄러운 소리로 그녀의 고개를 움직이게 했다. “아?" 한쪽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폰을 집어 들면, 화면에 '애송이'. 조용히 이를 쳐다보던 그녀는 폰을 슥 밀어서 귀에 갖다 대지도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뭐야? 나 지금 많이 마셨으니까 간단히 말해."


“언제나처럼 똑같습니다."


부드럽지만 절제된 느낌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래." 한 마디로 대답하는 그녀. 이에 으음 하고 무언가 망설이는 듯한 소리가 나는 것 같더니, 전화를 걸어온 이가 약간 조심스럽게 말하는 듯 조용히 덧붙였다.


“저, 그리고 이제 술은 좀 줄이셨으면 합니다만. 그 일 이후로 으음, 솔직히 제가 봐도 너무 심할 정도로 많이 마시–"


“꺼져."


통화를 뚝 끊고는 다시 책상 위에 던졌다. 그리고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화면을 보다가, 한 손을 들어 이번엔 새 병 대신 이마를 감싸는 그녀였다. 그렇게 방 안에서 혼자 늘어진 채 이대로 잠들 것처럼 있다가도, 갑자기 찬물이라도 한 모금 마신 듯 크게 숨을 들이마쉬고는 “좋아," 갑자기 온 세상에 활력이 돌기 시작하며 살며시 미소 지었다.


“어디 간만에 좀 위험하게 놀아볼까."





Soulmate, 3부 : 믿음은 불길 속에
3부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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