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8
“흐야아,”
아린은 두 팔을 벌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그대로 뿜어냈다.
“영이 없어도 여기 공기 너무 좋으이.”
“그래, 아주 맑구나.”
유가 뒤따라와서는 광장의 한가운데에 섰다. 그리고 조용히 달을 올려다보는 동안 아린은 처참하게 죽은 꽃들이 있는 쪽으로 폴짝 뛰어내려, 그 앞을 바라보았다. 생기가 도는 나무와 풀 사이에 죽은 것들로 인해 난 길이라니. 리니아가 몸서리를 치면서 아린도 조금 꺼림칙해지긴 했지만, 어쨌든 천천히 발을 죽은 꽃을 피해 딛고, 다시 한 발을 들어 죽은 풀을 밟지 않도록 조심스레 흙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이런 아린의 옆으로 유가 스르르 미끄러져 와서는, 밑에 뭐가 있든 말든 앞으로 나아갔다. “으야!” 조심조심 걷던 아린은 신령이 벌써 저만치 가자 후다닥 뒤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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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럭,
“여기 맞나?”
한편 제이미는 나무 사이로 고개를 내밀어 보았다. “맞네.” 한참을 걸어오니 드디어 그녀의 앞에는 (다시는 볼 일 없을 것 같았던) 그 구덩이가 저 위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 속에 마침내 보였다. 제이미는 가만히 그 구덩이를 바라보았다. 저곳에서 기어나오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그리고 지금 저 안으로 다시 들어가려고, 다시 건너가려고 왔다니. 좀 더 복잡한 생각이 들기 전 그녀는 얼른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고, 더이상 뭘 할 필요도 없이
“가자, 그럼.”
하면서 자발적으로 휙 뛰어들었다. 이진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일단 이 주위엔 아무도 없는 것 같다고 카일이 확신하자 따라서 들어갔다.
그렇게 들어가자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게 다였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세상.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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삑, 삐익, 삐이익–
순식간이었다. 모든 복도가 갑자기 새까맣게 어두워짐과 동시에, 짜증이 확 치솟을 정도로 큰 경보가 울려 퍼졌다. “아?” 멈칫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면 머리 위로 울려 퍼지는 목소리.
<긴급 상황! 긴급 상황! 침입자 발생. 침입자 발생. 찌르레기 발령. 1단계. 모든 부대원은 신속히 장비를 착용하고 건물 내를 수색하라. 이건 훈련이 아니다. 다시 말한다, 이건 절대 훈련이 아닌 실제 상황이다. 필요에 따른 사살을 허용한다.>
“하, 하하…”
깜깜한 어둠 속에서 그녀는 약간 얼빠진 웃음을 흘렸다. “귀찮게.” 혀를 차고는 한 손을 올려, 머리 위에서 손가락을 툭 튕겼다. 그러자 야시경이 빠르게 내려와 철컥 소리와 함께 그녀의 눈높이에서 멈췄고, 그 짧은 순간에 그녀는 어느새 소음기를 꺼내 권총에 달고 있었다.
총을 든 그녀는 저쪽에서 발소리가 들리자 재빨리 옆의 벽으로 돌아섰다.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입을 꾹 다문 그녀. 이어서 그녀의 왼손이 허리춤에 달린 무언가를 만지작거렸고, 그러자 귓가에서 조그맣게 들려오던 소리가 잡음과 사람 목소리를 왔다갔다하다가 곧 발소리와 함께 들리는 목소리에 맞춰졌다.
<여기는 작대기 3. 지하 2층 복도에 있다. 집무실 쪽에서 침입자로 보이는 형체 발견. 그쪽으로 이동한다.>
<알았다 작대기 3. 우리는 다른 침입자를 찾아본다.>
짧게 오가는 대화가 들리자마자 그녀는 옆으로 고개를 슥 내밀었다가 탕,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바로 옆에서 총알이 튕기는 소리가 귀를 때리자 “으힉–” 얼른 쏙 들어갔다.
'옘병할,'
차마 소리는 내지 못하고 입으로만 욕을 내뱉은 그녀. 그러면서 고개를 돌리자 반대쪽 복도에서도 몇 명이 오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입술을 깨물다가, 곧 주머니에 손을 넣어 뒤적이고는 작고 동그란 금속을 하나 꺼내 들었다. 그리고 다시 머리에 손을 올려 이번엔 귀에 무언가를 끼운 뒤 곧바로 휙, 그렇게 저쪽으로 데구르르 굴러간 공을 보고 발소리가 멈추며 “뭐지?” 한순간,
————-!!!!!
“아아아아아아!!”
모두가 비명을 질렀으나 그 소리마저 곧바로 덮는, 귀를 넘어 뇌고 심장이고 손톱 끝까지 하나하나 다 찢어 버릴 만한 굉음이 복도 전체에 울렁였다. 그녀도 귀에 보호대를 썼음에도 얼굴이 저절로 구겨지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가, 그녀의 머릿속을 두드리면서 정신을 일깨우는 느낌에 재빨리 뛰어나갔다.
타악!
“윽!”
재빨리 방아쇠를 당기자 한 명이 쓰러지면서, 곧 다른 한 명의 코앞에 다다르자 그 부대원은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는 발악과 함께 개머리판을 휘둘렀다. 그녀는 재빨리 무릎으로 팔을 올려침과 동시에 저쪽의 한 명을 쏘고, 있는 힘껏 팔꿈치를 내리쳐 우둑 소리가 나게 했다. 팔이 꺾인 부대원이 소리를 지르는 순간 그녀는 한 손으로는 자신의 총을, 다른 손으로는 그가 들고 있던 총을 손째로 잡아 방아쇠를 동시에 당겼다. 그렇게 두 명이 더 쓰러지고 그녀는 팔이 꺾인 부대원의 목도 잡아서 확, 숟가락 구부리듯 처리하고 남은 한 명을 쏘았다.
<작대기 3. 응답하라.>
비명소리를 들었는지 다른 부대원의 목소리가 해킹한 통신장비를 통해 들려왔다. <작대기 3?> 그녀는 쓰러뜨린 부대원이 가지고 있던 수류탄 하나를 집어들어, 이게 뭔지 확인할 새도 없이 핀을 확 뽑고는 저쪽에 던졌다.
<여, 여기는 낙엽… 1… 침입자가 무슨, 소음을…>
취이익–
<켁, 지금, 침입, 자…>
아마 최루탄이었던 듯싶다. 그녀는 자신도 기침을 심하게 하면서, 눈물이 쏟아지는 앞을 죽어라 뛰어갔다. “후우,” 곧 연기가 닿지 않는 곳에서 그녀는 빠르게 숨을 고르고, 총을 꽉 쥐면서 저쪽을–
퍼억–
“아!?”
최루탄 때문에 근질거리던 몸이 싸늘해지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쫙 끼쳤다. 잠시 멍해지려던 걸 얼른 정신을 다잡았을 때 그녀의 시야는 다시 어두워져 있었고, 얼굴 한쪽에서는 피가 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총상으로 인한 통증 정도에는 제법 익숙했다. 물론 그렇다고 머리에 직격으로 맞고도 그녀가 살아남는다는 건 아니었으나, 다행히 총알은 야시경에 먼저 맞은 덕분에 그녀의 볼에 얕게 박혀 있었다.
그녀는 총알을 빼며, 저격한 방향을 대충 어림잡으면서 물러났다.
<침입자가 피격된 것 같다. 머리에 무언가를 쓰고 있어서 사살은 못 했으니 즉시 추격 바란다.>
<알았다.>
[제법이구나.]
무전이 오간 뒤 그녀의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였다. 귀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닌 것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벽에 등을 기대며 입술을 깨물었다. 망가진 야시경을 벗어 내던지는 그녀.
[완전 걸레가 됐어… 새로 만들라고 해야겠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닐 텐데?]
굉음과 최루 가스에서 벗어난 부대원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어두운 중에 발소리로 알 수 있었다. [뭐어,] 애써 웃어 보이는 그녀.
[어쩌겠어. 네 말대로 제법 하는데… 이제 어쩔까? 네가 할래?]
[하아,]
한숨이 그녀의 머리를 타고 울려 퍼졌다. 하지만 이러는 중에도 어느새 그녀의 손은 저절로, 그녀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뒷주머니에 들어가고 있었다.
[별수 없구나.]
무전처럼 생긴 두둑한 것을 꺼낸 그녀. 여러 버튼 중 몇 개를 가볍게 누르며 그걸 던질 때, 그녀의 눈빛은 평소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삐이이–
<낙엽… 응답… 낙엽? 무슨… 일… 통신이…>
“뭐야? 이거 왜 이래?”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동시에 그녀의 앞에 비치던 레이저포인트도 꺼졌다. 물론 저들이 가진 총은 여전히 잘만 쏴지겠지만. 어쨌든 아까보다는 훨씬 나아진 거였다. 적어도 지금 그녀가 있는 이상.
[빨리!]
어느새 그녀는 자신의 머릿속, 혹은 그보다 깊은 곳에서 재촉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그녀의 몸이 튀어 나갔고. 재빨리 복도를 뛰어가 당황하고 있는 이들 중 한 명을 잡았다. 손이 아닌, 발로. 그녀가 뛰어오는 소리를 듣고 저쪽에서 총을 쏘기 전에 뛰어올라, 공중에서 한 바퀴 돌며 한 명의 머리를 두 발 사이에 끼워 넣은 것이다.
그녀는 기합과 함께 몸을 날려, 붙잡은 머리를 자신과 함께 공중에서 빙글 돌렸다. 이어서 그대로 바닥에 내리치자 앞에 있던 부대원은 그대로 자기 동료에게 깔려 엎어졌고. 그녀가 펄쩍 물러남과 함께 총성이 여러 번 들렸다. 아무래도 엎어진 두 명을 향해 쏜 것 같았다. 이어서 들리는 신음과 당황하는 소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같은 편을 쏜 이들 중 한 명에게 가서, 그녀는 곧바로 그 부대원을 뒤에서 붙잡고 머리를 있는 힘껏 홱 돌려서 비명도 내지 못하게 죽인 뒤 그의 손을 잡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총성이 울리면서 하나둘씩 쓰러지고, 그러면서 이쪽으로 날아온 총알은 이미 죽은 동지가 앞에서 맞아주었다. 하지만 그러다가 총알 하나가 그녀의 팔목 근처에 맞자 “윽–” 통증에 찡그리면서도 이를 악물어 최대한 소리를 죽이고, 나머지 부대원들을 전부 쏜 뒤 달려간 그녀. 팔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지만 상관없었다. 이제 계단만 올라가면…
그리고 잠시 뒤, 모든 불빛이 꺼진 건물에서 작동도 하지 않는 철문이 박살 나고 그녀가 뛰쳐나왔다. 마침 그 안에 있던 바주카도 그대로 들고 나오면서 하나를 끼운 그녀는 죽어라 달려가다가 뒤를 돌아, 이미 망가진 문에 한 번 더 쏘았다. 그녀를 쫓아오던 이들이 곧 비명과 함께 아수라장 속에 묻혔고, 그녀는 후우 한숨을 내쉬면서 저 앞의 익숙한 차로 뛰어가 얼른 탔다.
“제때 왔네. 전파 터뜨려서… 너무 일찍 왔으면 어쩌나 했지.”
이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빛에는 평소의 여유로움이 돌아와 있었다. “뭐야,” 이런 그녀가 차 안의 알콜솜을 꺼내는 걸 보는 운전사.
“다쳤어?”
“괜찮아, 괜찮아.”
그녀가 손을 저었다. “가자.” 그녀가 말하자 차가 바로 움직였고, 곧 이 밤을 벗어나기 전 저쪽에서 총성과 함께 차 뒤편에 몇 발이 맞는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냅다 창문을 열고 고개를 밖으로 내밀었다.
“내 차에 지랄하지 마, 이 병신들아!!”
멀어져 가는 적들을 향해 포효한 그녀는 찡그린 얼굴로 다시 앉았다. “진정해.” 운전사가 말했다.
“또 고치면 되잖아. 어쨌든 그건 잘 가져왔지?”
“물론이지.”
그녀는 주머니에서 작은 캡슐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이를 열어 안에 들어 있는 USB 하나를 꺼낸 그녀는 생긋 웃었다.
“오늘도 이렇게 끝나네. 수고했어. 다들 모여있지?”
“응. 곧 넘기고 밥이나 먹자고 했어.”
“좋아.”
그녀는 몸을 뒤로 기대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곧 눈을 감으며 속으로 한마디 하는 그녀.
[그리고 너도 수고했어. 꽤 재밌었지?]
[평소보다 덜 쉽긴 했지.]
엔시나가 대답했다.
[끝났으면 된 거야. 수고했어, 니콜.]
[응.]
차 안에 늘어져서 고개를 돌린 그녀는 이대로 도착할 때까지 바깥 풍경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