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문화 콘텐츠 사이트 삼천세계

히카루와 하치만이 친구가 아닐 무렵


원작 | ,

히카루와 하치만이 친구가 아닐 무렵~아오이 (4)


<4장. 히키가야 하치만은 지각한다.>

  부모님이 집에 돌아오셨다. 가족이 다 같이 모여 저녁을 먹었다. 평소랑 다를 바 없다. 옆에 유령을 달고 있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지금은 코마치가 제대로 된 옷을 입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아니면 안 맞는 걸 알면서도 미카도를 향해 주먹질을 했을 거라고.

  “잘 먹었습니다.”

  재빨리 밥을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피곤하다. 다시 그 얘기를 들어야 하나.

  “아오이 누나는 나와 소꿉친구였어.”

  “성격이 소극적이고 수줍음을 많이 탔어.”

  “그래도 은근히 고집이 세서, 달콤한 밀크티를 좋아하면서도 내 앞에서는 설탕도 넣지 않은 커피를 억지로 마시고는 했어.”

  “놀란 얼굴이 무척 귀여워서 몇 번 일부로 놀래킨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연상을 놀리는 게 아니라고 화를 냈어. 그 얼굴이 또 귀여웠어.”

  나는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미카도의 장황한 ‘아오이 자랑’을 들어야 했다. 처음에는 미안한 마음이 있어 진지하게 들었는데, 가만히 내버려두니 끝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저녁을 먹고 나서 방에 들어오자마자 다시 시작되는 긴 이야기에 결국 나는 참다못해 미카도를 제지했다.

  “이제 충분해, 스톱! 이제 기본적인 것은 알았으니까 그만 말해. 넌 지겹지도 않냐?”

  내 말에 미카도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어? 아오이 누나의 매력에 대해서 아직 반도 이야기를 못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냐 충분해. 정리해볼게. 이름은 사오토메 아오이. 나이는 16살. 헤이안 고 2학년. 스쿨 카스트 상위층인 ‘귀족’. 미카도와 소꿉친구. 성격은 수줍음을 많이 타고 소극적이지만 고집이 센 일면도 있다는 거지?”

  미카도가 부루퉁한 얼굴로 대꾸했다.
  “우우, 너무 요약했잖아.”

  “아냐. 내가 보기엔 이 정도면 충분해. 그 이상의 정보는 내게는 필요가 없지. 그보다 너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뭐가 궁금해?”

  “네가 말한 대로라면 사오토메 선배는 엄청 낯을 가릴 걸로 예상되는데 맞지?”

  “......응, 맞아. 낯을 좀 가리기는 해.”

  “그런데 그 선배와 초면인 내가 그 낯을 가리는 ‘귀족’ 선배한테 무슨 수로 나머지 선물을 주라는 거냐? 갑자기 가서 미카도 히카루가 맡긴 선물이 여기 있다 하고 준다고 해서 받아주지는 않을 거 아냐. 오히려 수상한 놈 취급을 받겠지. 그리고 고집이 센 성격이라면 한 번 나빠진 인상은 회복하기 쉽지 않을 거고 말이지. 너무 난이도 어렵잖아.”

  내 지적에 미카도도 조금은 그 부분이 신경 쓰인 듯, 우우 하고 신음하기 시작했다. 생각도 안 했던 거냐. 그러다 미카도는 갑자기 손뼉을 치더니 나에게 말했다.

  “그래! 네가 나와 친구였다고 하는 거야! 내가 히키가야에게 아오이 누나에게 선물을 전해달라고 했다고 ​하​면​.​.​.​.​.​.​.​”​

  “넌 사고로 죽었는데, 죽을 걸 예견하고 나에게 선물을 맡겠다고? 그딴 헛소리를 누가 믿겠냐.”

  “어라, 그런가?”

  “애초에 나 같은 놈이 사오토메 선배한테 말을 거는 것만으로도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그런 사람한테 나는 길가의 돌멩이 같은 존재일 것 아냐.”

  ​“​.​.​.​.​.​.​그​렇​지​는​ 않을 거 같은데. 그리고 네가 내 친구였다고 하면, 아마 그렇지 않을까 의심은 할 거야.”

  미카도가 영문 모를 소리를 지껄인다. 그래서 내가 쏘아붙였다.

  “무슨 근거로?”

  “으음, 아무것도 아냐. 그냥 느낌이랄까.”

  나는 미카도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미카도가 한 부탁은 나에게 난이도가 너무 어렵다. 게다가 리스크도 크다. 까딱 잘못하면 귀족한테 찍히게 된다. 그래서 나는 미카도에게 제안했다.

  “야, 그냥 네 친구들한테 붙는 게 어떠냐? 혹시 내 곁에서 떨어질 수 없다면 내가 네 친구들한테 찾아줄 수도 있어. 그럼 걔네한테 옮겨가는 거지.”

  내가 생각해도 괜찮은 생각이다. ​적​재​적​소​(​適​材​適​所​)​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상황에서 절대로 적당한 인재가 아니다. 그러니 다른 인재를 구해보자는 것이 내 제안이다. 그러나 이 말에 미카도는 부정적이었다. 미카도가 말했다.

  “그건 무리야.”

  ​“​.​.​.​.​.​.​왜​?​”​

  “나한테는 친구가 없거든.”

  “뭐?”

  뭔 소리야? 모두의 인기인, 황태자님이 친구가 없단다. 무슨 농담이지? 내가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자 미카도가 말을 이었다.

  “저, 정말이야. 물론 나는 많은 여자애들과 친하게 지냈지만 동성 친구는 없었어.”

  아하, 그런 말인가. 납득했다. 아마 미카도는 여자애들에게 너무 인기가 많았기에 오히려 남자들에게서 꺼려진 것이겠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딱 이 경우에 적용되겠지. 특정 인물들에게 지나친 사랑을 받으면 그 외의 사람들에게서는 미움을 받을 수도 있다. 여기에는 남자들의 질투심뿐만이 아니라 미카도에게 홀린 여자들의 광기 또한 한몫 했으리라. 그래, 나 같아도 친구가 되기 싫겠다. 미카도는 친구가 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친구가 되는 순간 거의 남녀 모두에게 있어 공동의 적이 돼버리는데 그런 놈이랑 친구가 된다니 상상만으로 치가 떨린다.

  아무래도 미카도의 표정을 보니 친구가 없다는 것은 그의 콤플렉스인 모양이다. 이번에는 내가 미카도를 위로해줘야 할 것 같다.

  “뭐, 저기, 미안하다. 그래도, 뭐, 괜찮지 않냐? 친구 같은 건 어찌 보면 그냥 거치적거리는 거고 말이지. 친구 따위 없다고 학창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잖아?”

  음음, 정말 맞는 말이다. 친구 따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런 존재지. 하지만 이런 내 위로를 받고도 미카도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은 모양이다. 미카도가 말했다.

  “히키가야, 네 말은 전혀 위로가 안 돼.”

  그러고는 한숨을 내쉰다. 그걸 보면서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미카도는 친구가 없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려는 내 계획은 불가능하다. 미카도와 친하다던 여자들에게 떠넘기는 건 논외. 미카도가 말하는 ‘친함’은 십중팔구는 연애적인 의미가 들어가 있을 것이다. 즉, 사오토메 선배한테 선물을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는 순간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뭐야, 그거, 무서워. 그렇다면 끝내 내가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가 미카도에게 말을 걸었다.

  “어이, 미카도.”

  “왜?”

  “네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 너에 대한 기본 신상 정보가 필요하다.”

  나는 미카도를 바라보며 필요한 것을 요구했다. 곧이어 미카도 히카루의 자기 자랑 쇼가 시작됐다. 나는 중간 중간에 말이 딴 데로 샐 때마다 제지하며 필요한 정보를 수집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유령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러다 나는 나도 모르게 하품을 했다. 그러자 갑자기 졸음이 쏟아진다. 이런 무심코 너무 집중했잖아. 아직 씻지도 못했는데 벌써 밤이 깊었다. 간단하게 샤워라도 해야겠군. 미카도에게 말했다.

  “난 이제 피곤해서 자야겠다. 그전에 잠시 씻으러 갔다 와야겠어.”

  “알았어.”

  미카도의 대답을 들으며 나는 방문을 열었다. 미카도의 말에 따르면 미카도는 내 근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이니 욕실 앞까지 따라오게 될 것이다. 나는 욕실 앞까지 가서 미카도에게 말했다.

  “너는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응, 알았어.”

  대답을 듣고 나는 문을 닫았다. 옷을 벗고 씻을 준비를 한다. 그런 내 귓가에 미카도의 목소리가 들린다.

  “저기, 미안.”

  “응? 너 밖에 있으라니까? 당장 나가.”

  내 말에 미카도가 하하하 하고 힘 빠진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지금의 나는 너와 두꺼운 벽을 사이에 두고 있을 수 없나 봐. 아마 네가 볼 수 없는 장소에 있을 수 없는 거 아닐까?”

  ......어이, 진짜냐. 이제부터 너랑 화장실이나 욕실에서도 같이 있어야 하는 거냐고. 제기랄.

**

  다음 날 나는 늦잠을 잤다. 아마 어제 쌓인 정신적인 피로와 유령의 존재를 부정하고픈 마음이 합쳐져 무의식적으로 꿈나라로 도피한 것이겠지. 잠자리에 누워서도 옆에 날아다니는 유령 때문에 쉽게 잠들지 못한 것도 한몫 했다. 어찌 됐든, 그런 고난 끝에 든 잠이기 때문에 깨어나기 싫을 정도로 정말 달게 느껴졌다. 하지만 누구라도 언젠가는 잠에서 깨어나야 하는 법이다. 눈을 뜨고 잠시 멍하니 있다가 시계를 확인한다. 이미 지각이 확실시된 상황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한숨을 쉰다. 옆에서는 아직 내게 씌어 있는 미카도가 떠들고 있다. 역시 미카도를 만난 것은 꿈이 아니었나.

  “내가 깨워주려고 했는데 목소리만으로는 히키가야를 깨울 수 없었어. 가족 분들도 좀 너무하다. 아무도 히키가야를 깨우러 오지 않더라고.”

  “냅둬, 원래 이래.”

  나는 가족 서열 최하위를 자랑한다. 즉 가족 내에서도 소외당하는 건 일상이다. 참고로 스쿨 카스트도 최하위다. 뭐지, 알고 보면 나 자신이 최하위인가. 너무 슬프잖아.

  서글픈 사실을 확인하고 잠시 침울해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욕실에 가서 씻었다. 그 다음 방에 돌아와 교복으로 갈아입고 가방을 들었다. 대충 토스트로 아침을 때울까 하고 식탁에 가보니, 토스트와 종이 한 장이 올라가 있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오빠가 어제부터 피곤했던 것 같아서 코마치는 오빠를 자게 두고 갑니다. 토스트 해놨으니 아침 삼아 먹어, 오빠.

  s.p: 만약 오빠가 이 글을 보는 것이 지각이 확정된 이후라면 서둘러 학교에 가. 안 그럼 코마치적으로 포인트 낮아.’

  어이, s.p가 뭐냐. security police? 틀렸다고. p.s겠지. play station의 약자라고.

  “하하, 여동생이 참 귀엽네.”

  천하의 미카도마저도 이건 좀 깼는지 억지 웃음을 짓는다. 내 얼굴도 조금 뜨거워진다. 에휴, 코마치한테 공부 좀 하라고 해야겠다.

  나는 토스트를 서둘러 먹었다. 그리고 자전거를 준비했다. 지금 시간이면, 학교에 도착하면 1교시 끝날 때쯤이겠군. 기념할 만한 고교 첫 지각이다. 당당하게 가자. 나는 페달을 밟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 내 옆에는 미카도가 공중에 떠서 따라오고 있었다. 무서운 광경이다. 나는 미카도에게 요구했다.

  “야, 내 시야 가리지 마. 사고 난다고. 차라리 내 머리 위에 떠 있으란 말이다.”

  그러자 미카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시야를 벗어났다. 유령을 달고 하는 기념비적인 첫 등교는 이렇게 이루어졌다. 자전거를 타면서 집중이 되지 않아 여러모로 불안했다는 점을 덧붙인다.

  학교에 도착해서 정문에 다다랐다. 경비원 아저씨가 나를 수상한 사람으로 생각한 듯 제지한다. 이봐요, 여기 교복 입고 있잖아요. 나 여기 학생이라고요. 그렇게 말하며, 학생증을 보여주고 나서야 통과할 수 있었다. 제길, 이래서 명문교는 안 된다. 보통 학교라면 그냥 아무 일 없듯이 통과할 수 있는데.

  1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이라는 최적의 타이밍에 교실에 들어간다. 1교시에 교실에 없었던 내가 들어왔는데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뭐, 이런 거지. 수업 중에 들어가서 눈에 띄는 것보다는 이런 게 훨씬 낫다. 나는 재빨리 내 자리에 가서 가방을 두었다. 내 옆자리의 여학생은 나에게는 관심도 없는 듯,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역시 내 ‘스텔스 히키가야’는 훌륭한 스킬이다. 바로 지척에서도 못 알아채다니 얼마나 대단한가. 그렇게 생각하며 의자를 끄집어내는데 의자 다리가 바닥에 끌리며 끼익 하는 소리를 낸다. 아, 실수했다. 그러자 내 옆자리의 여자가 고개를 들고 나를 노려본다. 우와, 무섭다. 특히 저 눈. 한 성깔 할 게 틀림없다. 나는 그 여자에게 나도 모르게 사과를 하고 있었다.

  “저기, 방해해서 미안하다.”

  그녀는 그 말을 듣고 대답도 없이 고개를 돌렸다. 어이, 아무리 그래도 사과하는데 무시냐. 너무하네. 그런 내 옆에서는 미카도가 떠들고 있었다.

  “역시 시키부는 멋진 여자애야.”

  저 여자 이름이 시키부인가? 아무래도 좋은 정보를 얻었다. 그 이전에 나를 그렇게 노려보는 걸 보고서도 저 여자를 칭찬하냐? 너 너무 여자에 대한 점수가 후한 거 아냐?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리에 앉자마자 수업종이 울린다. 곧 선생님이 들어올 것이고 수업이 시작될 것이다.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