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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눈송이 - 초고


7. 꽃무더기와 수수께끼 (가제) (5)


"미셸!"

 리무쟁 공작, 오를레앙의 쟝 미셸 루이 프랑수아는 정의관 꼭대기에 마련된 자신의 방에서 펜대를 굴리다가, 난데없이 찾아온 연인을 받아 안았다. 그녀는 노크도 하지 않고 다짜고짜 쳐들어왔다. 그의 양 뺨에 소리 내어 키스를 한 리젤로트는 그의 목에 어리광을 피우듯 매달렸다. 보드라운 여체가 착 감겨왔다. 

 "우리 요정 아가씨.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거야?"

 "미셸을 보러 왔지요! 설마 안 된다고는 말하지 않겠지요?"

 그녀는 미셸이 두 번 정도 빙글빙글 몸을 돌린 다음에야 바닥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는 고동색의 긴 머리카락이 천천히 가라앉는 사이로 해맑게 웃고 있는 얼굴에 다시금 반하고 말았다. 

 그는 푹신한 의자에 리젤로트를 앉히고 시종과 시녀들을 내보냈다. .

 "물론 안 될 리 없지. 하지만 오늘 재단사를 불렀다고 들떠 있었잖아?"

 "아, 그건 내일로 미룰 거예요. 새언니를 만나고 왔거든요. 새언니도 같이 옷을 맞추
기로 했어요. 새언니는 오늘 오라버니랑 같이 노신다고 해요! 음, 그리고 마담 르와이얄도요."

 "마담 르와이얄?"

 아롈은 그렇다 치고, 미셸은 붙임성 좋은 리젤로트가 자신의 큰언니를 '마담 르와이얄'이라고 부르는 데에 의아함을 느꼈다. 그의 연인은 짐짓 새침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가씨들의 사정이 있답니다. 너무 깊이 파고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이좋게 지내라는 잔소리는 오라비인 세시안의 몫으로 돌려도 충분했다. 약혼자는 그저 이 애교 넘치는 파란 장미 봉오리에게 넘치도록 애정을 부어주면 그만이었다. 그는 가볍게 리젤로트의 손을 잡고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입술을 댔다.

 "그래서, 오늘 저녁은 무얼 하실 예정이신가요? 마담 리젤로트?" "글쎄요? 숙녀가 지루해하지 않도록 생각해야 하는 건 원래 신사의 의무이자 권리가 아닐까요."

 "가고 싶으신 무도회라도?"

 "있으면 이런 차림으로 오지는 않았겠지요?"

 "지금만으로도 충분히 눈부십니다. 여기서 더 치장하셨다간 온 이블린의 가련한 숙녀분들이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고 시들어 버리겠지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리젤로트는 미셸의 팔을 찰싹 때렸다. 

 "못 본 사이에 민망한 말만 연습해가지고 왔나봐요!"

 "내 진심을 그렇게 폄하하면 가슴 아파."

 그는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넘기고는 목에 맨 스카프를 고쳐맸다. 

 "그래서 어떻게 하지? 초대장이라도 뒤져볼까?"

 "아뇨. 내일 예뻐 보이려면 오늘은 일찍 자야 해요. 리젤로트는 벌써 스무 살이 넘어서 그런지 늦게 자면 피부가 칙칙해지거든요."

 "누구한테 예쁘게 보이려고 하는데?"

 "글쎄요."

 긴 속눈썹이 위아래로 팔랑였다. 개암색 눈에는 어설픈 교태가 어려 있었다. 미셸은 참지 못하고 리젤로트를 덮쳐 눌렀다. 목덜미에 입술을 댈 때마다 그녀가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아, 간지러워요! 그만! 그만! 간지럽다니까요!"

 그는 은근슬쩍 허리를 쓰다듬다가 훤히 드러나 있는 웃가슴을 슬쩍 핥았다.

 "그래서 답은 언제 알려주는 거야?"

 "글쎄요. 아이, 옷 구겨져요!"

 "일찍 자자며?"

 "그래서 재워주긴 하려고요?"

 혀가 진득하게 얽혔다. 리젤로트는 그의 재킷과 조끼를 한꺼번에 벗겨버렸다. 마음이 급했다. 당장이라도 이 맹랑한 아가씨를 통째로 삼키지 않으면 몸이 펑 터져버릴 것 같았다. 미셸이 바스락거리는 치마 속으로 성급하게 손을 넣었을 무렵, 누가 문을 두드렸다.

 리젤로트가 손으로 입을 막았다.

 "쉿."

 그러나 그 누군지 모를 방해꾼은 문을 부숴버릴 기세로 세차게 두드렸다. 미셸은 한숨을 삼키며 몸을 일으켰다. 리젤로트는 재빨리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는 입술을 손수건으로 문질렀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옷을 팔에 꿰는 사이에도 노크는 점점 커졌다. 

 만일 별 일이 아니라면 정말 가만두지 않으리라. 연인과의 은밀한 시간을 방해받은 사내는 분노에 찬 채 직접 문을 열었다. 그러나 나타난 인물은 정말 생각지도 못 한 사람이었다.

 "미친 놈!"

 미셸은 다짜고짜 뺨을 얻어맞고는 화끈거리는 뺨에 손을 댔다. 아무래도 입술이 터진 것 같았다.

 "어머니?"

 오를레앙 대공비 루이즈 안의 근력은 남성인 미셸에게 비할 바가 아니었다. 미셀은 검술로 몸을 열심히 단련한 남성이었고, 당연히 그녀의 움직임은 눈에 훤히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미셸의 어머니였다. 미셸은 손이 날아오는 것을 빤히 보면서도 얌전히 반대쪽 뺨도 맞았다.

 "세상에, 네가 어떻게 내게 이럴 수가 있니! 배은망덕한 것!"

 "어머니. 무슨 일이신진 알겠지만."

 "내가 지금 침을 뱉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스레 생각하는 게 좋을 거다! 하나 뿐인 아들이라 그토록 애지중지했건만."

 오를레앙 대공비는 정신없이 흥분한 상태였다. 리젤로트가 기겁해서 달려왔다.

 "세상에! 얼굴 좀 봐! 여기 좀 봐요. 찬물로 닦아야겠어요. 베아트리스! 베아트리스! 아, 아까 보냈던가? 오, 주님. 얼굴에 흉이 지면 어째요! 이모님! 대체 무슨 일이세요! 어떻게 장성한 아들에게 손찌검을 하실 수가 있어요!"

 루이즈 안은 키가 대단히 작았다. 리젤로트도 작은 편이었지만 그녀보다 조금 더 작은 체구인 그녀는 황소라도 때려잡을 듯 강렬한 눈으로 리젤로트를 노려보았다. 

 "마담 리젤로트, 오를레앙의 일입니다."

 "이모님, 저는 지금 두 분 폐하의 따님으로서가 아니라 미셸의 약혼녀로서 항의하고 있는 거예요!"

 하지만 그녀가 왜 이리 분노하는지 알고 있는 미셸로서는 차마 어머니를 비난할 수 없었다. 

 "마담 리젤로트. 오를레앙의 일입니다."

 "미셸!"

 "나중에 얘기해줄 테니, 오늘은 이만 돌아갈래? 데려다주지 못해서 미안해."

 리젤로트는 얼굴을 빨갛게 붉히더니 주먹을 꼭 쥐었다.

 "꽃다발이라도 들고 오지 않으면 영영 미워할 줄 알아요."

 그리고 그녀는 루이즈 안의 옆을 천천히 스쳐가면서 속삭였다.

 "이모님, 일주일 뒤에 어마마마의 다과회에서 뵈어요."

 미셸은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쳐다보다가 문을 닫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비난이 터져 나왔다. 

 "미친 놈. 정녕 네가 내 태에서 났다면 이런 반푼이일리가!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말 한 마디 안 하고 어미를 바보로 만들어!"

 "어머니, 저는 이미 리젤로트와 약혼했어요!"

 "약혼? 식 치른 지 십 년도 지난 약혼?"

 "세시안이 결혼하기 전에 절대 결혼시킬 수 없다는 황후 폐하의 말씀에 찬성하신 건 어머니세요."

 "그래, 그 때는 설마 그 아이가 이토록 늦게 결혼할 줄 몰랐으니까! 그리고 너는 겨우 스물다섯 살이었고!"

 "지금은 겨우 일곱이에요, 어머니!"

 "내일 당장 결혼한다면 모를까, 내년에 결혼해서 바로 아이를 본다 해도 넌 서른이야! 하물며 크리스틴 그 계집아이가 돌아온 걸 잊었니? 크리스틴, 그 다음엔 앙리에트 안, 언제 결혼하려고 그러니?"

 "어머니. 크리스틴은 바로 시집보내지 않겠다고 폐하께서 확언하셨어요."

 "약속은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거야. 그리고 약혼도 마찬가지지! 왜 그걸 모르니!"

 미셸은 충동적으로 어머니를 비난했다.

 "그건 어머니께서 지금의 폐하께 기대하고 계셨던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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