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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내리앉기 직전에 우리는 다음 마을에 간신히 도착할 수 있었다. 페니실린 한 통이 거의 비어가기 시작했다. 아이는 마을의 입구를 보자 손가락을 뻗어 가리켰다. 봐요, 마을이에요. 그래, 마을이구나. 해도 같이 져가는군. 일몰은 언제 봐도 회색이예요. 그래, 끝나기 전의 세상의 일몰은 참으로 아름다웠는데 말이다. 나는 아이와 함께 마을에 들어섰다. 마을은 지나쳐온 마을보다 조금 커서 소도시쯤 됬다. 대도시 다음으로 기피하는 곳이 이런 소도시급 마을이였다. 나는 탄창 하나쯤 남은 라이플과 리볼버를 생각했다. 총탄이 전부 떨어지면 총은 쓸모가 없었다. 총합 여섯 정도를 죽일 수 있겠군. 두 발은 아이와 나를 위한 자살용. 계산을 끝내고 조심스럽게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마을 안 역시 회색이었다. 한때 건물이었던 것들과 물건이었던 잔해들이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우리는 마을 안쪽으로 더 들어가 묵을 장소를 찾았다. 3층 건물이었다. 아마 예전엔 여관 아님 빌라였던 건물일 것이다. 아이가 고른 장소였다. 나는 아이에게 정말 여기서 묵을거냐고 물었다. 아이는 끄덕였고 그러면 안돼나고 되물었다. 나는 말하지 않고 라이플을 꺼낼지 리볼버를 꺼낼지 고민하다 결국 리볼버를 품 속에서 꺼내들었다. 3층 건물, 방은 최소 여섯 개 이상. 나는 어렴풋이 그 정도로 잡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아직 말짱해보이는 푸른색 목제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오른손에는 리볼버를, 왼손으로는 아이의 손을 잡고있었다. 아이의 손에서 전해져오는 온기가 내가 이 생명을 다시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저주같았다.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그만두기 위해 리볼버의 공이치기를 당겼다. 끼릭하면서 공이치기는 당겨졌다. 나는 1층을 수색하기 보다는 2,3층부터 수색하기로 했다. 우리 둘은 소리를 내지 않도록 천천히 올라갔다. 2층의 상황은 개판이였다.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만이 남아있었고, 양 쪽으로 들어가는 복도는 잔해가 내려앉아 있었다. 이렇게 되면 3층의 상황도 좋지 않을 것이란것 쯤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아이를 돌아봤다. 아이는 두려운듯 했다. 어서 빨리 나가자고 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고른 장소라 나가자고 말을 못꺼내는듯 했다. 아이를 이끌며 3층 계단에 발을 디뎠다. 제발 아무도 없기를. 빌어먹을 감염자도, 약탈자도, 생존자도. 나는 그렇게 빌고는 올라갔다. 3층의 복도는 2층에서 본 대로 완전히 내려앉아 있었고 죽은듯이 조용했다. 오직 정 중앙의 방만이 살아 있었다. 방 문은 닫혀있었고, 목제 그대로의 문이었다. 옻칠이 벗겨져 있는게 눈에 띄었다.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여기 있으렴. 왜요? 너와 함께 가면, 저 안에 감염자가 있을지도 모르잖니. 그럼 내가 널 보호하기 힘들어 진단다. 하지만 무서운걸요. 알았다. 내 뒤에 꼭 붙으렴. 아이는 내 자켓의 뒤꽁무니를 힘껏 잡았다. 나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손에 긴장감이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문을 열자,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누군가 살았던 오래된 흔적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방은 작았다. 1인용 방에 가까웠다. 하지만 있어야할 가구들이 없는 탓에 안으로 들어오자 의외로 넓었다. 나는 바닥에 내려앉은 먼지들을 만져보았다. 적어도 3~4년정도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방이었다. 나는 가방을 낡은 침대에 내려놓았다. 매트릭스는 전부 찢어지고 헐거워졌지만, 몸을 뉘일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이 어딘가. 아이는 뒤꽁무니를 놓고 창문을 열어 환기시켰다. 나는 아이를 말리지 않았다. 묵은 먼지내음이 매캐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시 리볼버를 집어넣고 활과 화살통을 내려놓았다. 창문 밖에는 이미 석양이 져 있었다. 아이가 말했다. 춥네요. 그래, 창문 닫으렴. 아이는 창문을 닫았다. 녹슨 연결고리에서 끼익거리는 불안한 소리를 냈다. 다음번엔 열리다가 떨어지겠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떨어질거야. 천둥이 찢어지는 소리를 내면서 떨어지겠지. 그러면 이 마을에 있던 모든 감염자고 약탈자가 여기로 몰려들거야.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면 그랬다. 다음부턴 아이에게 창문을 열지 마라고 해야겠다. 나는 아이를 위해 불을 피우고 싶었지만, 목재 건물이라 자칫하단 화재가 날 수 있었다.
아이는 불을 피우고 싶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내가 목재 주택에서의 불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세 번정도 반복해서 말해주자 그럭저럭 납득해준 듯 했다. 그러면 된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내뱉었다. 오늘도 하루가 끝나가는군. 나는 가방에서 통조림을 꺼내들었다. 전의 약탈자들의 저택에서 얻은 통조림이었다. 참치 통조림이군. 비리겠는데. 꽁치보단 덜하겠지. 나는 내 손바닥만한 참치 통조림을 깠다. 아이는 처음 보는 통조림이 궁금한 듯 했다. 아이는 참치 통조림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뭐예요? 통조림. 참치 통조림. 참치요? 그래. 옛날 바다에서 나던 물고기. 아이는 물고기라는 것을 잘 모르는 듯 했다. 나는 손짓을 동원해가며 아이에게 설명을 했지만 아이는 도통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다. 결국 피식 웃고 아이에게 먼저 먹으라고 통조림과 포크를 내밀었다. 아이는 주춤하다가 조금씩 맛을 보기 시작했다. 처음 먹어보니? 네. 콘만 먹었어요. 그래, 참치는 처음이겠구나. 아이는 조금 얼굴을 찌푸렸다. 우웩. 막 이상한 냄새. 그게 비린내라는 거야. 물고기들은 전부 그런 냄새가 난단다. 이걸 참고 먹어요? 먹어봐, 맛있어. 아이는 결국 통조림의 반의 반을 먹고는 내려놓았다. 먹을만 한데 너무 그래요. 비리다고? 네. 비려요. 어쩔 수 없구나. 나는 남은 참치를 전부 먹었다. 밖은 어두웠다. 창문 열어도 돼요? 아니. 열지 마라. 삐걱거렸잖니. 떨어질 수도 있어. 네. 아이는 의기소침해진 표정으로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나는 담요를 꺼내 아이를 덮어줬다. 자장가를 불러줄까 생각했지만, 역시 무리였다. 이미 자장가 같은건 기억에서 잊어버린지 오래였기 때문이었다. 한번 더 밖을 확인하고 문을 닫았다. 아이는 어느새 잠들어 있었다. 나는 아이의 어깨까지 담요를 올려준 다음 옆에 누웠다. 세상은 죽었지만 아이는 살아있었고 나 역시 살아있었다.
폭발. 군인들의 함성. 하나 둘 하나 둘. 적이다! 발포해, 쏴버려! 이어지는 총성. 여긴 주 방위군. 방어선이 무너지고 있다! 놈들이 다가오고 있다, 지금 당장 지원바란다! 고함. 비명. 다시 이어지는 총성과 민간인들의 대피. 처음 본 감염자. 아들과 아내의 비명. 내리찍음. 나는 도끼로 감염자를 내리찍을때 일어났다. 몸이 자동적으로 튀어올랐다. 빌어먹을 꿈 같으니. 그렇게 중얼거리고 옆을 보았다. 아이는 일어나 있었다. 괜찮으세요? 그래, 괜찮다. 그저 나쁜 꿈을 꿨을 뿐이야. 나쁜 꿈이요? 그래. 악몽 말이다. 무슨 소리 없었니? 네, 아무 소리도요. 아이는 평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 나는 짤막하게밖에 대답하지 못하고는 가방에서 다른 통조림을 꺼냈다. 이번엔 콘이군. 나는 그러면서 가방 안에 들어있는 통조림의 숫자를 세었다. 네 개 남았군. 예전 같았으면 나흘치 식량이겠지만 지금은 이틀 치 밖에 되지 않아. 어서 빨리 다른 식량을 찾아야해. 그렇게 생각했다. 콘 통조림을 꺼내서 늘 그랬듯 포크와 함께 아이에게 건냈다. 아이는 또 다시 주춤했다. 아마 받는거에 있어서 면역이 없어 그러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아이는 익숙한 콘 통조림을 먹기 시작했다. 먹고 있어라, 주변을 확인하고 오마. 나는 라이플을 쥐고 3층 계단을 밟아서 2층으로 내려갔다. 2층에도 정 중앙의 방만 남아있었다. 나는 그 방 안으로 라이플을 겨누었다. 누군가 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방 문은 어제처럼 열려있었다. 하지만 안에는 먹다 남은 썩어 문들어진 햄이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없던 것이었다. 나는 라이플을 더욱 단단히 쥐었다. 공포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나와. 나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나오라고.
그 말에 어느 남자가 문 뒤에서 나오며 말했다. 양 손을 든게 '무기 없음'이라는 자세였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 쪽이었다. 안녕하세요? 그가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지? 그냥요, 아침을 해결하고 있었죠. 그러면서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아까 본 썩은 햄을 보여줬다. 뭐 저게 마지막 식사지만요. 여기 언제부터 있었지? 사흘이요. 아니, 나흘인가? 우릴 봤겠군. 네, 저는 약탈자가 아니니 건들진 않았지만요. 착한 사람이군. 칭찬인가요?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