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2. 린
3. 만남
4. 마법의 포니테일
5. Baseball Queen
작가 후기
역자 후기
1. 프롤로그
화창한 날의 방과 후는 기분이 좋다. 하루의 수업을 모두 마친 해방감에 들떠 오르기 때문일까.
오늘 방과 후도 역시 선명한 푸른색 줄무늬의 야구 유니폼을 갖추어 입은 학생들이 훈풍으로 가득한 운동장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역에서 이름이 살짝 알려진 죠난 고등학교 야구부의 연습 풍경이었다.
죠난 고교가 이름이 '살짝' 알려진 데에는 이유가 있다. 지난해 죠난 고교는 현(県) 예선 대회에서 지역 내 최다 고시엔(甲子園) 출장 횟수를 자랑하는 명문 '타키카와난 고교'―― 통칭 '타키난'에 패배했다. 작년뿐 아니라 재작년에도 그 이전 해에도. 그렇다, 죠난 고교는 지역 내에서 '두 번째로 강한 고교'였다.
하지만 둘의 실력 차는 분명했다. 지난해 여름 예선에서는 두 자리 수의 실점으로 완패를 당했다. 그때 시합에서 선발로 나선 투수가 여기에 있다. 이름은 '세노에 가즈히로'. 지난달 막 2학년이 된 야구 소년이다.
"마지막 하나! 갑니다!"
공을 던지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져 어쩔 줄을 몰라 한다. 가즈히로는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을 만큼 우렁찬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매끄러운 언더핸드 투구에서 힘 있게 뻗어 나간 공이 대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포수 미트로 빨려 들어간다. 피땀 어린 연습량을 짐작케 하는 훌륭한 폼이었다.
"나이스 컨트롤!"
운동장 가장자리의 불펜에서 포수를 맡은 3학년 학생이 후배인 가즈히로를 치켜세웠다. 배터리를 이루고 있는 이상 선배이든 후배이든 상관없다. 투수가 기분 좋게 공을 던질 수 있도록 전력으로 돕는 것이 포수의 중요한 역할. 그 점을 잘 알고 있음이 드러나는 칭찬이었다.
"좋아! 쭉쭉 뻗는다!"
가즈히로보다 한결 더 체격이 큰 선배 포수는 그렇게 외친 뒤 남고생의 평균을 한참 밑도는 신장 162센티의 가즈히로에게 다가가 어깨를 팍팍 두드렸다.
"언더핸드로 바꾸길 정말 잘했어!"
가즈히로는 조금 쑥스러워하면서도 기쁜 듯이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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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핸드는 공에 강한 무브먼트를 부여할 뿐 아니라 제구력을 잡는 데도 도움이 된다. 또한, 키가 작다는, 자칫 야구 선수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는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어 주기까지 한다. 그렇지 않아도 키가 작은 투수가 더욱 낮은 릴리스포인트에서 공을 뿌림으로써 타자의 눈에는 마치 공이 솟아오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원래 오버스로로 공을 던졌던 가즈히로는 어떤 계기를 맞아 언더핸드로 전향했다. 바로 지난해 여름 예선 대회에서 타키난과 치른 결승전이었다.
당시 시합에서 선발로 출장한 투수는 아직 1학년인 가즈히로였다. 물론 3학년 에이스가 따로 있었지만, 그가 시합 직전 어깨 통증을 호소했던 바람에 돌아온 중대한 역할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정으로 대신 올라 온 1학년에게도 타키난은 일절 손을 늦추지 않았다.
가즈히로의 제구력이 불안정하다는 점을 알아차린 타키난은 철저하게 기다리는 야구를 펼쳤다. 가즈히로는 볼넷을 연발했고, 결국 철저하게 두들겨 맞았다. 자신감이 뿌리째 뽑혀 나간 가즈히로는 이런 제구력으로 투수를 계속할 수 있을지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때 가즈히로를 도와준 사람이 은사이자 감독……, 토쿠나가였다.
『언더핸드로 전향하면 어떨까――.』
물론 언더핸드를 습득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죠난 고교 운동장에서 가즈히로의 땀방울이 닿지 않은 곳은 없었다. 그런 피땀 어린 노력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가즈히로는 없었으리라. 다행히 가즈히로는 언더핸드 투구법과 상성이 좋았다. 언더핸드 피칭을 마스터한 가즈히로의 공은 제구력과 무브먼트가 대폭 향상되었다.
지면에 닿을락 말락 한 낮은 위치에서 뻗어 나오는 공이 발군의 제구력으로 거침없이 구석을 찌른다. 물론 아직은 부족한 면도 있지만, 바야흐로 가즈히로는 2학년이면서도 팀의 에이스 를 노리는 존재가 되었다.
"여전히 반할 것 같은 폼이구나."
"무슨 말씀이세요.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에요."
뒤쪽에서 투구 폼을 체크하던 토쿠나가가 장난스러운 말투로 입을 열자 가즈히로는 쑥스러운 웃음을 띠며 머리를 긁었다.
토쿠나가 감독이야말로 언더핸드로 전향하지 않겠느냐고 가즈히로에게 조언해 주었던 당사자다. 그런 까닭에 가즈히로는 이 감독 앞에서만큼은 항상 고개가 수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빙글거리는 감독으로부터 도망치려는 듯 가즈히로는 불펜 밖으로 달려 나갔다.
"세노에! 어디 가는 거냐!"
"지금부터 러닝 다녀오겠습니다!"
흐르는 땀을 타월로 닦아 낸 가즈히로는 토쿠나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운동장 바깥으로 향했다.
"게으름 피우지 마라!"
"걱정하지 마세요!"
매일같이 달리는 러닝 코스는 학교 바깥에 있다. 거리는 약 7킬로미터. 투수에게 충실한 단련이 될 만큼 긴 거리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겠지만, 도중에 누구라도 가슴을 부여잡을 법한 급경사가 있다. 투수로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하체. 그리고 한여름의 태양을 이겨 내는 체력. 가즈히로에게는 그 둘을 동시에 갈고닦을 수 있는 이상적인 러닝 코스다.
이 코스를 매일같이 달려온 가즈히로는 체력에 자신이 있었다. 체력은 1학년 때부터 줄곧 이 코스를 달려왔던 가즈히로의 자긍심이기도 했다.
지금이라면 타키난과 맞붙어도 시합이 작년처럼 흘러가진 않겠지……. 가즈히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만큼 체력을 단련해 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뭐라 표현할 길 없는 불안이 가슴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승리를 위해선 여전히 뭔가가 부족하다는 기분이 들어――.'
무엇이 부족한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가즈히로는 머리를 흔들어 정체 모를 불안을 털어냈다.
'올해의 나는…… 작년하곤 다르다고!'
이번에야말로 타키난에 승리한다!
――그것이야말로 지금 가즈히로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다시금 결의를 다지며 가즈히로는 운동장에서 학교 바깥으로 달려나갔다.
운동장에서는 막 2학년이 된 팀원들도 포함하여 시트 배팅 연습이 한창이었다. 주전 자리를 차지하려는 호기 가득한 2학년 팀원들의 힘찬 목소리와 금속 배트의 경쾌한 타격음이 가즈히로의 귓가에 와 닿는다.
의지할 수 있는 팀원들과 함께 확고부동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나날. 그 끝에서 기다리고 있을 고시엔 구장으로 발을 내딛기 위해서. 그리고 가즈히로의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이것이 '고시엔으로 가는 길'이라면 가즈히로는 틀림없이 그 길을 걷고 있었다.
적어도, 바로 그 순간까지는.
"위험해!"
누군가가 소리쳤고, 동시에 가즈히로는 머리가 찡 울리는 충격에 휩싸였다.
[ 1. 프롤로그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