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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나이츠 - 창공의 기사단


Sortie 008 - 피의 꽃 Part 3


  6
  연료 잔여량이 4%정도 남았을 때, 우리는 항공모함 근처로 다가갈 수 있었다. 그리고 별로 좋지 못한 소식도 연달아 들었고 말이다. 먼저, 대규모로 집중된 수십기의 후소 뇌격기와 급강하 폭격기들 덕분에 레인저와 요크타운이 얻어맞았다. 2개 항공 기사단이 사투를 벌이면서 적기를 요격했지만, 후소 제국의 공격대는 특유의 기민한 뇌격 전술로 항공모함들을 공격했다. 특히, 후소 제국의 공격대의 공격이 집중된 ESS 레인저는 어뢰 3발과 항공 폭탄 4발을 얻어맞고 15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남기며 굉침해버렸다. 레인저의 함장 텔레 대령은 마지막 까지 아일랜드를 지키다가 때를 놓치고 미처 퇴함하지 못했다. 슬픈 일이다. 불행중 다행이라면 조종사들은 대부분 하늘에 떠있던 탓에 다수가 살아날 수 있었지만, 누구의 생명이 다른 누구보다 값지다고 할 수 있을까? 레인저의 격침은 정말 재수가 없었다. 어뢰 하나가 보일러실을 강타한 덕분에 저닉와 빛이 끊겨버렸고, 항공폭탄 하나는 항공유 탱크를 직격했다. 그리고 항공유관을 따라 전파된 화재가 피해 복구반이 손 쓸 새도 없이 순식간에 화재를 전파시킨 것이다. 고작 10분이라는 눈 깜짝할 사이에, 레인저는 항공유의 유폭으로 인해 갑판을 불태우며 침몰했다. 천만 다행이도 호넷은 대공포 4기 완파에 그쳤지만, 박살나버린 레인저의 함재기 까지 수용하게 된 터라 갑판과 격납고는 북적북적해졌다. 호넷의 양현에는 수십기의 복구 불량의 전투기들의 잔해가 떠다니고 있었다. 우리가 출발한지 10분 뒤 복귀하겠다고 무전을 보내온 공격대의 생존 항공기 67기까지 합해 총 85
  기를 수용하게 된 호넷은 정말 바빴지만, 나의 착륙은 허용해주었다. 내 전투기 상태? 정말 안좋다. 무게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기관포도 바다에 버렸고, 심지어 신호탄 권총까지 밖에 버렸지만, 항공모함 상공에 도착했을 때는 연료가 4%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의 심각한 상태를 본 호넷의 착륙 관제 장교도 복잡한 착륙 절차 없이 바로 착륙을 허용해주었을 정도니까.
  “호넷, 여기 파파가이 01. 상태가 좋지 않으니 착륙 허가를 바란다, 오버.”
  [잘 돌아왔다. 어떻게 그 몸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신기하다. 파파가이 01, 랜딩 기어 내리고 현재 진입 각도로 그대로 진입해라.]
  “랜딩기어와 후크 내린다, 오버.”
  그거 아는가? 역사는 계속된다. 지금 있었던 일은 계속해서 일어나게 된다. 무슨 말인지 아는 사람?
  [파파가이 01? 왜 랜딩기어 안내리나?]
  랜딩기어가 또 고장났다.(…)
 
  얼마전에 새로 받은 블랙캣 전투기를 시원하게 갈아먹은 나는 정비병들이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박살나버린 내 전투기를 갑판에서 치우는 것을 도와준 다음, 나탈리의 착륙을 기다렸다. 풍덩, 하는 물기둥이 좌현에서 일었고, 그 쇨와 함께 나탈리의 전투기가 착륙 했다. 나탈리는………. 뭐, 나보다 양호한 컨디션의 전투기였으니까, 잘 착륙했다. 나탈리가 전투기에서 내림과 동시에 정비병들이 나탈리의 비행기를 격납고로 내렸고, 착륙 관제 장교는 우리 뒤에서 다가오는 67기의 공격대를 맞을 준비를 했다. 나탈리에게 다가간 나는 도와줘서 고맙다고 말하려고 했다. 나를 살려준건, 다른 누가 아닌 윙맨인 나탈리였으니까. 비록, 내가 미끼로 자청했지만, 나는 그게 ㄷ른 사람이라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탈리니까, 내가 믿고 의지하는 친구인 나탈리니까 할 수 있었던거다. 나탈리라면 반드시 내 뒤의 놈들을 격추시킬 것이라는 믿은 때문에 말이다. 물론 두번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지만.
  “나탈리”
  “………”
  하지만 나탈리는 무슨 이유인지 고개를 피했다. 뭐지? 왜그런거지? 내가 뭘 잘못했나? 아닌데? 그러고보니, 왜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거지? 그러고 보니 나탈리의 옷차림도 조금 이상하다. 이 더운 열대지방에서, 왜 긴팔에 긴바지를 입고 그 위에 코트까지 입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누가 섭씨 30도가 넘는 더위에서 저런 옷을 입겠어? 고공은 추우니까 긴팔을 입을 수는 있어도, 내리자마자 코트를 입어? 말도 안돼.
  “나탈리.”
  그리고 나탈리는 지금 내 시선을 명백하게 피하고 있다. 마치 내게 숨기는게 있다는 듯이. 빠르게 멀어저가는 나탈리를 붙잡았지만, 오히려 나탈리는 나를 뿌리쳤다. 이렇게 되면 확신범이다. 나는 뛰어가서 나탈리의 어깨를 잡고 몸을 돌린 다음 도망가지 못하게 팔목을 강하게 잡았다. 나탈리는 오른손으로 내 손을 잡고 몸을 빼내려고 했지만, 나는 손을 풀지 않았다. 불안했다. 그때 그 느낌이 다시 온몸에 퍼지고 있다. 무섭다. 두렵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나탈리의 입과 코를 가리고 있는 손수건을 잡고……….. 아래로 내렸다.
 
  끔찍하다. 이게 지금까지 내가 알던 나탈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손수건 아래 있던 나탈리의 얼굴은 피로 범벅이었다. 코에서 흘러나온 피는 나탈리의 창백한 얼굴과 체리빛 입술은 붉은 핏빛으로 적시고 턱 아래로 뚝뚝 흘러내렸다. 피에 흠뻑 젖은 나탈리의 손수건을 잡은 내 손에서도 피가 퍼져나갔다. 도데체 무슨 일일까. 왜 여태까지 나는 이 일에 대해서 몰랐을까? 나는 분명 내가 나탈리의 친한 친구고, 서로의 모든 비밀을 공유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 착각이었나보다. 심장이 쿵쿵 뛴다. 너무 고동쳐서 터져버릴 것만 같다.
  “차….창민아…… 이건……..”
  “따라와.”
 
  나는 나탈리를 끌고 호넷 안의 내 방으로 들어왔다. 뭐, 나탈리의 방이기도 하니까. 나탈리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고개를 푹 숙인채 가만히 서있었다. 나는 먼저 책상 위에 놓인 휴지를 가져와 나탈리의 얼굴의 피를 닦아냈다. 새하얀 휴지가 순식간에 선분홍빛 선혈로 뒤덥혔고, 핏방울이 내 팔꿈치로 떨어져 내렸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계속 닦았다. 무슨 편집증에 걸린 것 처럼, 나는 계속 닦았다. 나탈리의 하얀 피부가 다시 드러날 때까지, 계속, 말이다.
  “아야…….”
  “……..”
  “창민아………. 아파…….”
  “…………”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 나탈리가 지금까지 나에게 이런걸 숨겼다는 사실에, 그 배신감에 나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입을 열지도 않고, 코로만 숨을 쉬면서. 입을 열었다간, 그 순간 내 분노가 모두 나탈리에게 쏟아질 것 같으니까. 나는 가만히 서있는 나탈리의 코트를 벗기고, 그 위에 입고 있는 그녀의 항공 점퍼를 벗겼다. 나탈리의 몸 위에 남은건 하얀 서비스 셔츠와 속옷, 그리고 바지 뿐이다. 나탈리는 내 행동에 수치심을 느꼈는지 손으로 나를 말리면서 얼굴을 붉혔지만, 나는 그녀의 손을 쳐내고 나탈리의 서비스 셔츠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는 단추를 풀지도 않고, 거칠게 옷깃을 잡아 뜯었다. 나탈리의 새하얀 나신이 서비스 셔츠가 땅에 떨어짐과 동시에 빛났다. 속옷으로 가리고 있는 가슴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하지만, 내 눈에 들어온건 나탈리의 몸매나 그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나탈리의 몸이 아니라, 나탈리 몸의 상처들이었다. 수십, 수백개의 멍들과 핏자국들이 그녀의 몸에 나있었다. 푸른색, 보라색 반점들이 나탈리의 등과 배와 어깨에 나있었다.
  “흑……….”
  나탈리가 흐느끼기 시작했지만 나는 지금 그런거에 신경쓸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화가 난다. 나탈리. 지금 이 상처들, 지금까지 나에게 숨겨온거니? 왜 그랬어? 나는 우리가, 모든 것, 상처, 원망,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왜 그랬어? 왜 지금까지 숨긴거냐고, 왜?
  “나탈리.”
  ​“​…​…​창​민​아​…​…​…​.​”​
  “설명”
  짝
  나도 모르게 나간 손이었다. 나탈리는 설명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고개를 저었고, 그래서 반사적으로 나간 손이었다. 하지만 나탈리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지금 이게…….. 뭐야?”
  “…………..”
  “나탈리. 설명을 해봐.”
  “…………..”
  “왜 지금까지 내가 이걸 몰랐는지, 왜 지금까지 나에게 숨겨왔는지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말해보라고!”
  목소리가 높아진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앞으로 나가려는 내 주먹의 경로를 바꾸어 옆에 있는 철판에 그대로 찍었다. 손가락에서 피가 팍 튀었지만, 통증 같은건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보다 더욱 심한 통증을 느꼈을 나탈리를 생각하면 말이다. 어떻게 보면 이건 내 잘못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내가 나탈리에게 충분한 관심을 비추지 않았기 때문에 몰랐을 수도 있으니까. 이건 내탓이다. 내 잘못이다. 책임을 져야만 한다.
  삐익 삐익
  비상 출격 벨이다. 스크램블. 긴급 전투초계. 적기의 공습을 막기위해 날아오르는 비상 출격. 적기의 공습이 시작되었나보다. 철판 너머로 걸어가는 수병들의 발소리가 다급해졌다. 적기가 가까이 온 것 같다.
  [방위 312도, 거리 40km에서 적기 30여기가 접근 중이다. 전 기사들은 즉시 출격을 준비해라!]
  “간다.”
  지금까지의 나는 나탈리에게 항상 가자라고 말했다. 절대 간다라고 말한 적은 없다. ‘간다’는, 너의 의견 따위는 내가 존중하지 않겠으니, 나는 내가 하고 싶은걸 한다라는 뜻이니까.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이 말을 단 한번도 나탈리에게는 사용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 기록이 오늘 처음으로 깨졌다. 나탈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채 나는 멍하니 바라보았고, 나는 그녀의 몸 위에 코트를 걸친 다음 문을 열었다.
  “창민아……..”
  “오지마. 여기에 있어.”
  “이거 아무것도 아니야. 한두시간만 있으면 다 나을거야.”
  “너, 아프잖아.”
  “아니. 괜찮아.”
  나는 나탈리의 변명을 무시하고 그녀의 쇄골 위에 있는 멍을 눌렀다. 나탈리, 안아프다고? 그럼 왜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지, 설명을 좀 해줄래?
  “………………”
  “하지만………”
  “안돼. 넌 비행하면 안돼.”
  “창민아, 그런게 아니야. 그러니까 제발…..”
  “나탈리 프로필라이넨 중위! 제 44 기사단의 부기사단장으로서, 귀관의 어떠한 비행도 금지하며 자실 근신을 명령합니다.”
  “창민아…….”
  “중위, 대기하세요.”
  나탈리를 노려본 나는 그녀의 울먹이는 눈동자를 무시한 채 철문을 닫았다.
 
  7
  주황색 크로스 헤어 사이로 후소 제국의 제로 전투기가 지나갔다. 그리고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나는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둔탁한 진동과 함께 주익에서 발사된 수십발의 12.5mm 기총탄들이 그대로 제로 전투기를 꿰뚫었고, 제로기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채, 탈출할 기회도 없이 그대로 바다로 떨어졌다. 벌써 4기째. 아직 탄약은 반도 더 남아있다. 지금까지 7초가량 발사 했으니, 아직 13초 더 남은건가?
  [와우, 창민경! 축하해요! 오늘 4번째 격추에요!]
  사냐 공주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돌려 다음 목표를 찾았다. 아, 저기 있다. 블랙캣의 꼬리를 잡으려고 선회하는 저 제로기. 나는 기수를 돌렸다. 갑작스런 급선회에 순간적으로 눈 앞이 캄캄해졌지만, 금세 시력을 회복한 나는 크로스 헤어를 제로기의 동체에 맞추었다. 자신의 배후에 불청객이 있다는 것을 감지한 제로 전투기가 회피 기동을 시작하려고 했지만, 회피 기동을 위해 순간 수평 비행을 한 것이 그의 죽음의 원인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4정의 12.5mm 기총이 2초간 불을 뿜었고, 그 제로기는 오른쪽 주익의 절반이 날아간 채 오른쪽으로 텀블링을 시작했다. 5번째 격추다. 아무런 감정이 없다. 나탈리에게 화가 난다. 나에게 그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나에게 화가 난다. 나탈리의 그런 고통을 지금까지 몰랐으니까. 후소 제국에게 화가 난다. 이녀석들이 아니었으면 나탈리가 그런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테니까. 그래서 나는 일부러 후소 제국의 파일럿들이 탈출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들의 캐노피를 쏘거나, 주익에 뭉중시켜 탈출에 필요한 고도를 확보하지 못하게 만든다거나. 한놈도 살려두고 싶지 않다. 모조리, 전부 죽여버리고 싶다. 내 기총탄이 20초 분량밖에 없다는 것이 정말 아쉽다. 빌어먹을. 한두시간만 있으면 나을 거라고? 그 고통은 매번 비행하면서 겪었다는 말이잖아. 그런데 한두시간만 있으면 나을 거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다. 나탈리가 아프다는걸 내가 몰랐다는 사실에 화가난다. 지금 손을 뻗을 수만 있다면, 나탈리의 권총으로 내 머리를 쏴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내 눈 앞에 새로운 희생양이 들어왔으니까. 조준기 사이로 적기의 캐노피가 보인 순간,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캐노피에 일직선으로 피탄자국이 생겼고, 투명한 캐노피가 붉게 물들면서 안쪽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채, 제로 전투기는 빙글빙글 돌면서 하강하다가 결국 바다로 추락했다.
 
  이제 10초 남았다.
 
  전투는 오후 6시, 일몰 이후에 끝났다. 40여기의 함상 공격기들과 뇌격기들, 그리고 제로 전투기의 편대는 살아남은 호넷과 호위 함정들을 공격했다. 살아남은 전투기 11기를 재빨리 띄워올린 플레이크 제독 덕분에 적의 공격을 어느정도 요격할 수 있었지만, 충분하지 못했다. 3기의 블랙캣을 잃고, 5기의 공격기를 격추시켰다. 그리고 적기의 공습이 시작되었다. 폭격기들이 먼저 호넷을 노리고 달려들었으나, 다행이 갑판 근처의 지근탄이 터지는 정도로 끝났지만, 그 지근탄의 충격파는 대공포 사수 14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40mm 대공포 2문을 파괴해버렸다. 하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적 급강하 폭격기 7대와 뇌격기 5기, 제로 전투기 9기를 격추시킬 수 있었다. 물론, 이건 전혀 좋은 성과가 아니다. 에르데 제국 해군은 정규 항모 5만톤급의 ESS 레인저가 격침당했고, ESS 호넷은 비행 갑판에 폭탄을 얻어맞고, 어뢰를 2발이나 맞음으로서 중파되어 버렸다. 항공 갑판 중앙에 큰 구멍이 뻥 뚫려버렸으니, 항공 작전은 불가능하다. 임시로 이어붙인 널판지들로 구멍을 메운 덕분에 당장 이함과 착함은 가능했지만, 어디까지나 임시 땜방일 뿐이다. 그리고 더불어 전투기 56기, 뇌격기 24기, 그리고 급강하 폭격기 13기를 완전상실했다. 이제 남은 항공기는 전투기36기, 급강하 폭격기 11기 뿐이었다. 더불어 중순양함 아스토리아에 약간의 피해가 있었고, 경순양함 에온은 격추당한 적기의 자살 공격을 받아 49명의 인명 피해를 냈다. 그 외에도 구축함 4척이 적기의 공격에 격침당했고, 다른 1척은 엔진에 어뢰를 얻어맞아 작전 불능이 되었다.
 
  반면, 우리의 피해에 비해 후소 제국의 피해는 미미하기 그지 없었다. 그들의 손실은 소형 항공모함 격침이 전부였다. 대형 정규 항공모함인 즈이카쿠와 쇼카쿠는 항공 갑판만 파괴된 정도였다. 물론 그게 가벼운 피해라는건 아니다. 작전 불능으로 만들었으니까. 하지만 정규 항공모함 하나와 호위 항공모함 하나를 맡바꾼건……. 정말 손해보는 장사라고 할 수 있다. 아니, 할 수 있다가 아니라 손해 보는 장사다. 거기다, 항공기의 손실도 이쪽이 훨씬 크다. 파일럿들과 대공포 사수들의 전과를 종합해본 결과, 확인된 격추만 전투기 75기, 뇌격기 13기, 급강하 폭격기 8기로 우리가 더 많이 격추되었다. 제대로 된 격침 전과는 구축함 2척 뿐이었다.
 
  패배다.
 
  누가 봐도 명백한, 패배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건, 비교적 심각한 피해를 그나마 더 늘리지 않기 위해 육상 발진 전투기들의 행동 반경 안으로 들어가는 것 뿐이었다.
 
  야간을 틈타, 에르데 제국의 38 기동부대는 남쪽으로 항로를 변침했다. 함재기들을 모두 수용한 호넷은 전속력으로 남쪽으로 내려갔고, 그런 호넷을 구축함과 순양함들이 호위했다. 플레이크 제독은 오후 6시 30분을 기점으로 함대에 휴식 명령을 내렸으며 덕분에 나는 브리핑실에서 더이상 기다리지 않고 내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별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지금 나는 나탈리를 보고 싶지 않다. 하지만 뭐 별수 있나? 내 방이 곹 나탈리의 방인데. 그렇게 생각하며 최대한 화를 죽인 나는 방문을 열었다.
  “왔어.”
  대답은 없었다. 나는 나탈리가 화가 나서 대답을 안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나탈리는 방에 없던 것이었다. 어디에 있을까? 도데체 짐작이 가지 않는다. 나탈리가 내 옆에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지금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프고 정신이 없다. 나는 나탈리가 어디로 갔을지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착각하지 마라. 나는 나탈리를 좋아하거나 그런건 아니다. 하지만 나탈리는 내 둘도 없는 친구다. 지옥 같은 지구에서 탈출해 여기로 왔을 때 처음 만난 이후로 우리는 계속 함께 있었다. 한번도 떨어져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 떨어져버렸다. 어디로 갔을까? 짐작이 안된다. 내가…… 나탈리에 대해서 이런 간단한 사실조차 몰랐었나? 무리도 아니다. 우리는 계속적으로 전투를 치뤘고, 그때마다 나탈리는 항상 내 옆에 있었다. 하지만 이게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해야하는 일은 뭘까? 당연히 나탈리를 찾는거다. 목적과 이유가 생겼다. 남는건 행동이다.
 
  똑똑
  [누구세요?]
  “나야.”
  ​[​차​차​차​차​차​창​민​경​?​ 잠깐만 기다려요!]
  문이 열리고 사냐 공주의 얼굴이 나왔다 방금 샤워하고 나왔는지 머리카락은 촉촉하게 젖어있었고, 붉게 물들여진 얼굴에는 하룻동안 계속된 전투로 인한 피곤함이 가득했다. 웬지 미안해지만, 나탈리를 찾아야만 한다.
  “숙녀의 방에 들어오기 전에 미리 연락을 해야하는거 아닌가요, 창민경? 하마타면 부끄러운 모습을 보일 뻔 했잖아요.”
  사냐 공주가 웃으면서 말했지만 나는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나탈리, 봤어?”
  “에?”
  “나탈리 봤냐고.”
  “프로필라이넨 경이요? 아까 항공 갑판에서 본 거 같은데요……?”
  “그래? 고마워.”
  나는 사냐 공주의 다른 말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항공 갑판으로 달려나갔다. 내 뒤에서 사냐 공주가 뭔가 말을 했지만 미처 못들었다.
  “잠깐만! 무슨 일인데요? 창민경?”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나탈리를 찾은건 함교 위의 마스트에서였다. 나탈리를 찾아 정신없이 항공 갑판으로 올라온 나는 플레이크 제독에게 불려갔고, 오늘의 전과에 대해 칭찬을 받은 다음 나탈리가 마스트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거의 무례하다고 싶을 정도로 나는 정신없이 뛰어갔지만, 다행이 플레이크 제독이나 다른 기사단장들은 아무런 제제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뛰쳐 나가는 나를 진정시키면서 수병을 하나 붙혀 마스트까지 안내해주게 해줬으니까.
  “사냐 공주께서 귀관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네. 일단 마음을 가라 앉히고 행동하게나.”
  …………….. 나중에 사냐 공주에게 고맙다고 말해야겠다.
 
  마스트까지 나를 안내해준 수병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그대로 내려갔다. 나도 가볍게 답례를 하고는 나탈리가 앉아있는 마스트로 향했다. 나탈리는 긴 트렌치 코트를 몸에 걸친 채 아무런 말 없이 해가 지는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붉은 태양이 바다와 하늘을 붉은 보랏빛으로 물들였고,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열기를 식혔지만, 나탈리의 뒷모습에서 나는 쓸쓸함과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아니, 울고 있다. 조금더 가까이 다가가니, 조금씩 들썩이는 그녀의 어깨가 보이면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조용히 다가가 나탈리 옆에 걸터 앉았다.
  “………………”
  보통의 나탈리라면 나를 반갑게 맞아주면서 기쁘게 미소를 지었을 테지만, 지금의 나탈리는 그렇지 않았다. 입을 앙 다문채, 아무런 반응 조차 하지 않고 그저 눈물과 콧물을 훌쩍이면서 석양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부정하려는 듯이 말이다. 어색한 침묵이 10분정도 계속되었다. 오늘 정말 이상한걸 많이 알게되는구나. 나탈리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 부터 시작해서, 나와 나탈리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있을 수도 있단 사실까지. 나참. 하지만 나는 일단 내가 여기 온 이유를 해결하기로 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나탈리에게 그 상처들이 뭔지 자세하게 물어봐야 한다. 아깐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워서 화가 난 것이지, 나탈리를 걱정하던 내 마음이 사라진건 아니니까 말이다. 먼저 입을 연건 내 쪽이였다.
  “괜찮냐?”
  “아니.”
  아까 때린게 조금 심했나? 아까 때린게 충격이 조금 심했나보다.
  “괜찮을 리가 없잖아. 버림 받았는데.”
  정정. 조금이 아니라 충격이 많이 심한가보다. 누가 누구를 버렸다는거냐? 애시당초, 나는 너를 가진 적도 없다고. 하지만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나탈리에게 하지는 않았다. 지금 내가 상처받은 것 만큼 나탈리도 놀랐을테니까.
  “버린거 아니야. 그냥……..”
  “그냥?”
  “걱정되었을 뿐이야. 다른 누구도 아닌 너니까.”
  나탈리가 피식 웃었다. 평소와 조금 다른 느낌의 웃음이었지만, 나는 그렇게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다. 나탈리의 기분이 풀렸다고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하지만, 내 예상은 틀려버렸다. 나탈리의 기분을 확실하게 풀기 위해 어깨 위에 올린 내 손을, 나탈리는 떨쳐냈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처음으로, 우리가 만난지 처음으로, 나탈리가 나에게 화를 냈다.
  “창민아, 너, 왜 내가 화난지 알어?”
  ​“​…​…​.​.​내​가​…​…​”​
  “아니, 대답하지마. 어차피 또 나만 속상해질 것 같으니까.”
  그렇게 쏘아붙인 나탈리는 일어서서 나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네가 누구랑 시시덕거리든지 상관 없어. 네가 누구 옆에 있어서 행복한 것도 상관 없어, 네가 다른 사람을 좋아해도 상관 없고, 다른 사람이랑 결혼해도 상관 없어. 단지, 나도 봐달란 말이야! 무시하지 말로 나도 봐달라고! 지금까지, 10년동안, 네 곁만 맴돌아왔는데 어떻게 단 한번도 눈길을 주지 않을 수가 있어? 나는 네 곁에 있는 것으로 충분하단말이야. 이 세상의 권좌, 제물, 호의호식, 다 필요 없어. 그냥…………….”
  뭐라고 할 수가 없다. 지금 나탈리가 하는 말이 조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나에게 있어 나탈리는 가족과도 같은 존재였다. 나는 나탈리를 좋아한다. 사랑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족에게 느끼는 감정이었다. 연애할 때 느끼는 감정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한번도 나탈리가 나에게 그런 감정을 느꼈을 줄은……. 솔직하게 말해서 생각 못했다.
  “나는 그냥……….. 네 곁에만 있으면 된단 말이야……….”
  “……………….”
  “너, 내가 급기동을 하면 혈관이 파열된다는거, 말했으면 내가 조종사가 되는거에 찬성 했겠어? 급기동이 특기로 현란한 기동을 통해 적기의 후방 사각지대를 잡는 이창민, 네 요기가 되는 것에 찬성 했겠냐고.”
  분명, 나는 반대했을 것이다. 뛰어난 조종사인 나탈리가 내 뒤를 봐준다는 것은 내게 안심하고 싸울 수 있다는 믿음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탈리의 몸에 무리가 가는데도 그런걸 내가 찬성했을지는 안봐도 비디오다. 결사 반대했겠지. 하지만 나탈리, 그렇다고 해서, 그게 나에게 지금까지 네 고통을 숨겨온 것이 정당화 되는거냐?
  “당연하지.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을 뿐이야. 네가 언제나 그랬던 것 처럼.
  “하지만……..”
  “알아. 죽을 수도 있어. 하지만 창민아, 우리 인간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자기 자신을 희생할 수도 있는거라고.”
  “………..”
  나탈리가 울먹이지만, 난 무슨 말을 해야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나탈리의 마음은 이해한다. 친한 친구인 내 옆에서 전투를 하면 스스로도 안심이 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건강이 위험한데 모른척할 수는 없다. 나탈리가 나를 생각하는 것 만큼, 나도 나탈리의 안위와 생명을 진심으로 걱정하니까 말이다. 여기는 다른 곳도 아닌, 1초의 결정에 생사가 넘나드는 전장이니까. 그래서 더더욱, 나는 나탈리가 내 옆에서 나는 것에 찬성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의견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창민아, 네가 뭐라고 하든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아.”
  그렇게 선언한 나탈리는 일어나 마스트를 내려갔다. 마지막 한마디를 나에게 남긴 채.
  “이 상황에서도, 네 곁에 있어서 행복감을 느끼는 내가, 조금 밉다.”
 
  8
  날이 밝았다. 나탈리는 방에 들어가서 자고 있길래 나는 당직을 신청해서 브리핑실에서 잠을 잤다. 나탈리 옆에서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심란해서 제대로 자지도 못했고 말이지. 정말, 뭔가 제대로 돌아가는 일이 없다. 아……… 힘 빠지고 지친다. 정말……..
  텅텅텅
  [대위님, 모든 기사단장들은 즉시 제독실로 집합하라는 플레이크 제독 각하의 명령입니다.]
  그러니까 나 기사단장 아니라니까 그러네.
 
  플레이크 제독의 호출을 받아 나와 사냐 공주는 제독실로 올라갔다. 살아남은 5명의 기사단장들과 함께 착석한 플레이크 제독은 우리에게 좋은 사실과 나쁜 사실을 알려주었다. 주름이 없던 중년 제독의 얼굴에 주름이 잔뜩 있는 것을 보면 그렇게 좋은 소식도 아닌 것 같지만.
  “뭐부터 듣겠나?”
  플레이크 제독의 질문에 누군가 좋은 소식이라고 답을 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쁜 소식을 먼저 듣는게 나을 것 같지만, 나는 잠자코 있었다. 별로, 말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니까.
  “알았네. 좋은 소식은, 앞으로 1시간만 있으면, 우리는 아군 폭격기와 육군 항공대의 전투기의 작전 반경에 들어갈 수 있네. 즉, 앞으로 1시간 내로는 아군 항공기의 공중 엄호를 받을 수 있다는거지.”
  좋은 소식이다. 밤새 항해해도 아직 1시간이나 남았다는 사실이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그래도 아군 항공 지원은 분명 기쁜 소식이다. 당장 가용 가능한 항공 전력이 돈틀리스 11대와 블랙캣 24기가 전부일 때는 특히. 그리고 작전 가능한 항공 기사들도 30명 남짓이기 때문에 가용 항공고 35대를 전부 띄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EU-37의 항공 엄호를 받으면서 안전하게 빅토리아항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최소한 살아남은 호넷을 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어뢰 2발, 항공폭탄 수발에 얻어 맞았지만, 잘 한다면, 살릴 수 있을 거다. ESS 호넷이 격침되어 버리면, 에르데 제국 오스트 해군에 남은 주력함은 전함 0척에 항공모함 2척으로 줄어들어버리니까 말이다. 이게 좋은 소식이다. 이제 나쁜 소식 차례다.
  “나쁜 소식은……….. 몇분 전 아군 정찰기가 북방 80km 지점에서 적의 공습 편대를 발견했네. 중간에 들켜버려 정확한 숫자나 종류는 보고하지 못했지만, 다수의 뇌격기와 베티 폭격기, 그리고 호위기가 있다는 것 같네. 통신 장치가 고장났는지 적 편대와 접촉 후 5분만에 아군 정찰기와의 접촉을 잃었네.”
  즉, 오기는 오는데, 언제, 어디서 어느 정도의 적이 오는지는 모른다는 말이군.
  “현재 구축함 블루가 함대 최후미에서 레이더를 가동하면서 피켓 임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전투 초계를 준비해야겠네. 가용 가능한 항공 기사들을 전부 투입해야 하니, 다들 각자 기사단의 단원들을 준비시키게.”
  플레이크 제독의 부관이 들고온 종이에는 우리 44 기사단의 기사단원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뭐 어쩌라고?
  “각 기사단의 현재 가용 가능한 기사단원들인지 확인하게. 못해도 20분 이내로 출격을 준비해야 하니까 말이야.”
  나는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면서 리스트를 쭉 읽어내려갔다. 기사단장 사냐 공주, 나, 에리카 대위, 나탈리, 유나 중위, 요하네스 미야 중위, 릴리엘 마세나 중위, 에간 펠츠 소위. 그 중 요하네스 미야 중위와 에간 펠츠 소위는 수색 작업 도중 길을 잃고 해메다가 물에 착수, 구조되었지만 심각한 탈수 증세로 현재 의무실에 누워있다. 펜으로 찍찍, 2개의 X를 그었다.
  “유나 중위와 릴리엘 중위도 작전 속행이 불가능해요, 창민경.”
  사냐 공주의 손가락이 두사람의 이름을 가리켰다. 유나 중위와 릴리엘 중위의 전투기는 작전 도중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한사람은 다리에, 다른 하나는 어깨에 총탄을 맞아버렸다. 한번더, 2개의 X를 그었다. 남은 이름은 나, 사냐 공주, 에리카 대위, 그리고 나탈리가 남았다. 하지만, 나탈리를 올려보낼 수 없다. 절대로. 한번 더 그 상처를 내가 보았다가는 자살해버릴지도 모르니까. 나는 나탈리의 이름에 X를 그었다.
  “창민경? 나탈리 중위, 작전 가능한데요?”
  “아니. 그녀석, 지금 비행하면 안돼.”
  “왜요?”
  “왜냐하면………”
  이걸 말해야 하나? 괜히 말했다가 쓸데 없이 걱정을 끼치는게 아닐까? 나탈리가 지금까지 다른사람에게 숨겨온 진실을 쉽게 남에게 말을 해도 되는건가?
  “왜 안되는데요?”
  “44 기사단은 뭔가 문제라도 있는가?”
  “창민경이 나탈리 중위를 빼려고 해요. 분명, 오늘 아침 저에게 비행 가능하다고 했는데 말이에요.”
  응? 어느새 신경을 안 쓴 사이에 사냐 공주가 플레이크 제독에게 말해버렸다, 젠장.
  “대위, 왜 멀쩡한 항공 기사를 제외하려고 하는건가?”
  “제독님, 나탈리는 멀쩡하지 않습니다.”
  말해야 하는건가, 말하면 안되는건가, 고민이 된다. 이건 내 비밀이 아니라 나탈리의 비밀이다. 물론, 말하면 모든 상황이 정리된다. 나탈리는 분명 전과되거나 최소한 격한 기동이나 강한 G를 필요로 하는 전투 항공 병과에서는 제명될 것이다. 이정도는 사냐 공주에게 부탁하면 사냐 공주가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일이다. 아니면 내가 직접 갈란트 중장에게 부탁하던가.
 
  하지만
 
  만약 나탈리가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면? 다시는 나탈리와 날 수 없다면? 그 두 질문이 나를 강하게 죄었다. 무섭다. 정말, 이번이 마지막 비행이 될까봐 말이다. 나는 전투기 조종사다. 죽음 같은건 매일 달고 다닌다. 나탈리가 없어서, 내 등 뒤가 허전해서 죽임을 당할까봐 무서운게 아니다. 내가 무서운건……….
  “실례합니다, 각하.”
  “대위? 아무런 연락도 없이 이 무슨 무례한 짓인가?”
  에리카 대위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무런 사전 예고도 없이 뛰어 들어온 에리카 대위의 행동에 다들 놀랐지만, 에리카 대위를 질책하지는 못했다. 그녀는 얼굴에 홍조를 띄운 채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고풍스러운 사파이어 가문의 사복은 헝클어져 있었다. 평소에 품행이 단정한 에리카 대위라면 이런 복장을 하지는 않는다. 무슨 급한일이라도 있는건가?
  “부단장님.”
  “응?”
  “나탈리 중위가……”
  나탈리?
  “나탈리가 뭐?”
  “나탈리 중위가……..비행 갑판에서……… 자살………”
  나탈리가…….. 비행 갑판에서…….. 자살했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이성을 잃었다. 숨을 헐떡이면서 말을 잇지 못하는 에리카 대위를 옆으로 밀친 다음 나는 밖으로 달려나가 비행 갑판으로 향하는 계단을 향해 달렸다. 내 뒤로 사냐 공주가 소리치며 달려왔지만, 나는 그런건 상관하지 않고 일단 달렸다. 나탈리가 죽었다고? 그녀석이 자살을? 말도 안되는 소리다. 그럴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에리카 대위의 말을 끝까지 못들었다.
 
  졸업식 이후로 처음으로 해본 구보에 숨이 헐떡였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비행 갑판에 도착해있었다. 강한 바람이 갑판을 강타하고, 출격 대기중인 전투기들이 엔진에 시동을 걸고 예열울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보다 나탈리를 찾고 있었다. 에리카 대위가 해준 말을 곱씹으면서 말이다. 비행 갑판에서. 자살.
  “부단장님.”
  유나 중위였다. 내 어깨에 손을 올린 유나 중위는 군의관 두명의 부축을 받으면서 서있었다.
  “오셨네요.”
  “나탈리는?”
  “저기요.”
  그러고 보니 나탈리는 블랙캣 전투기 앞에 서있었다. 다가오려는 헌병들을 권총으로 위협하면서, 총구를 자신의 관자놀이에 댄 채 말이다. 응? 자살한거 아니었어?
  “말을 하면 좀 끝까지 들어주세요, 창민경.”
  “저는 자살 소동을 벌이고 있다고 했는데 숨이 차서 미처 전하지 못했습니다. 제 책임도 있지만 좀 말은 끝까지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부단장님.”
  “…………….”
  깜짝 놀랐잖아. 하지만 농담 따먹기나 하고 있을 상황은 확실히 아니었다. 나탈리의 표정은 어느때와 다름없이 진지했으니까.
  “오지마! 오지말라고! 오면 쏜다?”
  “창민경…….”
  “내가 해결하고 올게.”
  나는 나를 걱정하는 사냐 공주를 떼어두고 나탈리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헌병들이 나를 흘깃 처다보면서 길을 열어주었지만, 내가 현장에 도착하자 분위기가 더 험악해졌다. 나탈리는 방아쇠에 걸어놓은 검지 손가락을 더더욱 강하게 당기면서 우리를 위협했다.
  “나탈리.”
  “오지마. 오면 쏠거야.”
  “나탈리.”
  “오지 말라니까!”
  한발짝 걸어갈 때 마다, 나탈리의 손의 떨림이 심해졌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한발짝씩 천천히 걸어갔다. 나탈리의 손의 떨림이 심해지면, 분명 저렇게 영거리 사격을 해도 빗나갈 수 있을테니까. 한번 더. 한번더.
  “창민아. 마지막 경고야. 오지마.”
  한번 더.
  탕
  총소리와 함께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 내 몸에 아픈 곳은 아무 곳도 없다. 멀쩡하다. 나탈리는? 고통에 조금 일그러진 얼굴만 하고 있을 뿐, 땅바닥에 주저 앉아있다. 권총의 총구가 향한 곳은 머리가 아니라 다리였다. 나탈리는, 협박을 위해, 자기 다리를 쏴버린거다. 나탈리의 선홍빛 피가 줄줄 흘러나와 나무 갑판을 적셨다. 피냄새와 화약 냄새가 섞여서 사방으로 진동한다.
  “오지 말라고. 한걸음만 더 오면, 그때는 내 심장이 될테니까.”
  “뭐가 문제야? 왜 자살하려고 하는건데?”
  시간을 끌자. 너무 끌면 과다 출혈 때문에 위험하지만, 어느정도 끌어서 힘을 빼놓으면 제압하기 쉬울거다. 분명. 나는 그런 목적으로 나탈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사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지금 뭐하는거냐? 나탈리? 그리고 그때와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너한테 버림 받았으니까! 나는 네 옆에만 서고 싶은데 네가 싫다고 하니까! 그렇다면 난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다고! 너만 보고 살아왔는데, 네가 나를 버리면 어떻게 살라는 말이야?”
  글쎄 너를 가진 적이 없다니까.
  “네가 내 옆에 있는게 싫다고 한적 없어. 그냥 걱정된 것 뿐이야.”
  “그러면 왜 걱정하는데? 누가 걱정해달라고 했어? 그냥, 네 옆에 있기만 하면 돼, 나는! 창민아, 내가 바라는건 그거 하나야. 네가 누구와 살든, 누구와 함께 하든. 나는, 단순히 너를 바라볼 수 있기만 하면 된다고!”
  “………..”
  “하지만 너는 한번도 나를 생각해주지 않았잖아. 단 한번도 내게 관심을 주지 않았잖아!”
  모순이다. 나탈리가 나에게 바라는 것은 모순이다. 나의 옆에만 있으면 된다고 하면서, 나에게 친구 이상의 관계를 내심 바라고 있다. 하지만 나도 변명이 있다. 나는 충분한 관심을 나탈리에게 주고 있다. 친구니까. 연인으로 보지는 않지만 내 소중한 친구니까 말이다. 자, 주장이 있으면 증거를 보여줘야지.
  “나탈리. 내가 너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해?”
  나탈리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나는 손에 끼고 있던 가죽 장갑을 벗은 다음, 왼손을 들었다.
  “기억나?”
  왼손 중지의 은색 반지가 반짝 빛났다. 맞다. 그때 나탈리가 잃어버린줄 알았던 생도 반지다.
  “그날, 네가 하도 슬퍼하길래 스토왈트 소령님 허락 받고 몰래 해변가로 돌아가서 밤새 찾은거야. 원래 바로 돌려주려고 했지만 기회를 놓쳐서 계속 갖고 있었어.”
  나탈리는 놀랐다는 듯이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3m 떨어진 나도, 그녀의 얼굴에 홍조가 들면서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지난 3년간, 나는 계속 이걸 끼고 있었어. 너에게는 물론 말하지 않았지. 하지만 항상 이게 내 손가락에 있을 때마다, 나는 너를 생각했고 걱정했어. 내게 나탈리 프로필라이넨이라는 친구는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이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너니까. 그런 네 몸이 비행으로 망가지고 있다는걸 봤을 때, 내가 얼마나 놀랐고 걱정했을거 같아?”
  나탈리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는 조용히 다가가서 나탈리 앞에 털썩 주저 앉았다. 나탈리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채 나에게 기대어왔고, 나는 아무말 없이 나탈리를 품에 안았다. 향긋한 냄새가 코 끝에서 찡하게 느껴졌고, 그녀의 금발머리가 얼굴을 간지럽혔다. 훌쩍훌쩍, 나탈리가 울기 시작하는걸 나는 말리지 않고 가만히 둔채 천천히 나탈리의 부드러운 머리를 쓸었다. 마치, 우는 여동생을 달래는 오빠처럼 말이다.
  “너를 버릴수가 없고 버릴리가 없으니까. 언제나, 내 옆에서 같이 있는거야.”
  그 말에 나탈리는 폭발해버렸다. 서럽게 울면서 지금까지 싸여있던 앙금을 다 털어낸 것 같다. 정말, 다 큰 여자애가 내 품에 안겨 울고 있다니, 조금 이상한 느낌이지만, 이건 나탈리다. 다른 제 3자가 아니라고. 나는 나탈리를 조용히 달래면서 등을 토닥였고, 그 다음 군의관들을 불러 아직도 피가 새어나오는 나탈리의 다리에 응급처치를 시켰다. 다행이 총알이 관통한건 아니라서 지혈은 금방 끝났고 말이다. 천만 다행이다. 나탈리와 대하하는 1분 1초가 내게는 피말리는 상황이었다는거, 굳이 설명 안해도 될거라고 생각한다.
 
  나탈리를 달래는데는 4분정도 더 걸렸다. 에리카 대위가 갖다준 손수건으로 눈물과 콧물을 닦아주고, 한번 더 안아준 다음, 나는 출격 준비를 시작했다.
  “대위! 슬슬 작업은 끝내고 전투 준비나 하게나!”
  아무래도 플레이크 제독이 단단히 화난것 같다.
 
  나탈리의 소동 덕분에 출격시간은 몇분 지연되지만, 어차피 예열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큰 상관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직 예열을 끝내려면 2분정도 더 기다려야 하니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난 아직도 나탈리가 항공기에 타는거에 반대다. 애 몸을 생각해야지. 하지만 나탈리는 괜찮다고 말하면서 플레이크 제독의 허가를 받아버려 내가 막을 수 있는 방법을 끊어버렸다. 결국, 나는 나탈리가 직접 조종하는게 아니라 내가 조종하는 전투기의 후방 기총사수로 탑승하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내가 급기동을 최대한 자제하면 되니까. 블랙캣 전투기는 1인승이고, 데바스테이터 뇌격기들은 전멸했다. 자, 그러면 남은 옵션은 단 하나, 돈틀리스 뿐이다. 마침 예비기가 2기나 남았길래 한대 사용할 수 있었다.
  “나탈리.”
  [응?]
  “정말 괜찮겠어?”
  [걱정 마셔. 네 뒤는 확실하게 치워놓을 테니까.]
  “나탈리. 농담하는게 아니라, 정말 괜찮겠냐고.”
  아직도 걱정된다. 내가 잘못해서 나탈리를 죽이는게 아닐까하고 말이다. 하지만 나탈리는 가볍게 부정하며 말을 이었다.
  [네 옆에 있는것 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니까, 그냥 이렇게 있게 해줘.]
  “………..”
  나는 별말을 하지 않고 관제 장교의 유도를 받아 이륙을 시작했다. 스로틀을 최대로 올리고, 플랩을 내린 다음, 정비병들이 받침목을 치움과 동시에 브레이크를 풀었다. 그대로 앞으로 튕겨나간 돈틀리스 뒤로, 에리카 대위와 사냐 공주의 블랙캣 전투기가 따라 붙었고, 우리는 속도를 조금 붙인 다음 고도를 4000피트까지 상승시켰다.
  [전 항공기는 적 공격기의 요격에 집중하라!]
  가용 전력인 31기의 에르데 제국 해군 항공기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적기는 무려 60기. 아직 육군 항공대의 작전 지역에 들어가려면 30분이나 남았다. 일단, 우리가 할수 있는건 시간을 끄는 것 뿐이다. 고도를 높힌 나는 1000발 뿐인 12.5mm 기총 2정의 조준점을 노려보았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사이로 작은 반점들이 하나 둘씩 나타났다.
  “파파가이 01입니다. 적 편대가 방위 355도에서 육안 확인되었습니다.”
  [이쪽도 확인했다. 전 편대는 적 뇌격기의 요격에 집중하라!]
  나는 엔진에 과부하를 주면서 고도를 6000피트까지 상승시켰다. 엔진 과열이 조금 심해지기 전까지 과부하를 준 나는 엔진의 출력을 조금 줄인 다음 급강하를 준비했다. 적 편대가 나를 통과하기 직전, 급강하해서 적 폭격기의 동체를 끊어버려야 한다. 기동성은 괜찮지만 순항 속도는 그저 그런 이 돈틀리스를 갖고는 그렇게 일격 일탈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
  “나탈리.”
  [응?]
  “준비 되었어?”
  [나를 걱정할 필요 없어. 그냥, 네 결정이 내 결정이니까.]
  나는 나탈리의 대답을 듣고 그대로 기체를 반전시킨 다음 다이브 플랩을 펼치고 급강하를 시작했다. 고도 200피트 아래 있는 적 공격기들이 주황색 크로스 헤어 한 가운데로 들어왔고, 나는 지체 없이 기총 방아쇠를 당겼다. 양 주익에서 한줄기의 예광탄이 뻗어나갔고, 우리의 공격을 알아챈 적기들은 황급히 산개를 시작했지만 나는 간단하게 한놈의 꽁무니를 잡았다. 물론, 너무 급격한 기동은 하지 않고 말이다. 나탈리가 뒤에 있으니까. 한번더 둔탁한 발사음이 귀에 들리고, 적의 뇌격기 하나가 불에 휩싸인채 바다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후방 7시 아래쪽에 적기! 창민아, 기수 들어!]
  나탈리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나는 조종간을 당겼다. 뒤이어 뒤쪽에서 몇발의 예광탄이 날아왔고, 후방에 장착된 7.7mm 기총 2정의 발사음이 들렸다.
  [야호! 격추! 격추!]
  한바퀴 선회한 나는 다음 희생물인 적 급강하 폭격기의 캐노피를 조준했다. 동체와 주익, 그리고 캐노피를 내가 발사한 12.5mm 기총탄이 꿰뚫었고, 적기는 그대로 불에 휩싸인채 바다로 곤두박질쳤다.
  [창민아.]
  “응.”
  쉬쉬쉭. 거대한 G4M 폭격기의 방어 기총좌의 20mm 기관포가 캐노피 바로 위를 스쳐 지나갔다. 날아오는 기관포탄들을 피하기 위해 내 몸은 거의 자동적으로 반응했고, 나는 기체를 뒤집은 다음 500피트를 하강해 속도를 붙인 다음 다시 4500피트까지 고도를 높혔다. 웬만하면 자제하려던 급기동이었지만 갑작스러운 적의 공격에 어쩔수가 없었고, 덕분에 나는 나탈리가 한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사랑해.]
 
  9
  공습의 피해는 그 규모에 비해서 작았다. 적 편대는 15기의 급강하 폭격기, 11기의 G4M 베티 수평 폭격기, 23기의 뇌격기, 18기의 호위용 제로 전투기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레이더 관제 요원들의 공중전 관제 덕분에 우리는 위험도가 높은 적 뇌격기들을 대부분 처리할 수 있었다. 베티에서 어뢰를 투하했을 때는 깜짝 놀랐지만, 다행히 호넷이 아닌 중순양함 아스토리아에 6기의 어뢰 중 1발만 맞았고, 그것도 치명타는 아니었다. 뒤이어 몰려온 에르데 제국의 육군 항공대의 지원으로 우리는 적의 급강하 폭격기들을 사냥했고, 총 15기 중 6기를 격추할 수 있었다. 구축함 하인드가 기관실에 맞아 중파되었지만, 대공 경순양함 에온이 신속하게 접근해서 부상자를 옮겨 싣고, 추가적으로 상처입은 하인드에게 접근하는 급강하 폭격기들을 저지해 격침은 피할 수 있었다. 적의 공격대는 무려 40여기에 달하는 항공기를 잃어버린채 후퇴할 수 있었고, TF 38의 상처 입은 함선들은 오랜만에 보는 EU-37의 호위 아래 빅토리아 항에 입항할 수 있었다. 우리 기사단, 그러니까 나와 나탈리, 사냐 공주, 그리고 에리카 대위의 세 기체는 무려 13기의 적기를 격추시켰고, TF 38은 총 13기의 항공기를 상실했다. 이번 전투, 그러니까 코랄해 전투에서 나는 단독으로 11기의 전투기를 격추시켰고, 새로 수령한 블랙캣 전투기의 러더에는 이제 33개의 검은 핀이 그려졌다. 나탈리는 6기를, 사냐 공주는 4기를 추가로 격추에 에이스라는 타이틀을 받았고 말이다. 뭐, 교전 결과는 아무래도 좋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어깨에 기대있는 나탈리의 머리에서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고, 나탈리의 머리카락이 내 얼굴을 간지럽혔다. 상처입은 호넷은 수리를 위해 즉시 사파이어만으로 끌려가게 되었고, 가용 전력이 8명에서 3명으로 줄어들어버린 우리 44 기사단도 휴식 및 재정비를 위해 호넷과 함께 사파이어만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와 나탈리는 지금 플레이크 제독의 허락 덕분에 단 둘이서, 마스트 위에서 노을을 바라볼 수 있었다. 우리 머리 위를 지나가는 44 기사단 마크를 단 전투기 2대가 날개를 흔들었고, 나도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에 피비릿내나는 전장에서 벗어나서 겪어보는, 정말 소중한 추억이었다. 이순간은 언젠가는 끝난다. 우리는 언젠가는 반드시 전장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러니까, 지금 이순간을 나는 충분히 즐기고 싶었다.
  아, 나탈리의 반지? 그거 아직도 내가 갖고 있다. 이제는 지금처럼 숨길 필요는 없어서 군번줄에 달았다. 원래대로라면 나탈리에게 돌려주려고 했지만, 나탈리는 내가 갖고 있어 달라고 부탁했고, 나도 쉽게 받아들였다. 나탈리의 반지 정도는 우리 사이의 우정의 증표로 갖고 있어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그렇지 나탈리?”
  “쿨-”
  .......뭐, 근 3일간 여러가지 일이 있었으니까. 나는 조용히 나탈리의 머리를 허벅지로 내려 무릎 배게를 해준 다음 수평선을 응시했다. 북쪽에서 기다리고 있을, 우리의 새로운 적들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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