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국
그날
인터하이 단체전이 끝난 그날.
하나의 무명 고등학교가 전국의 강호들을 물리치고 우승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어디의 신진 강호도 아니었다. 간신히 부원 6명으로만 이뤄진 약세 동아리. 그 동아리가 해낸 것이다.
수많은 매체는 이들을 주목했다.
아니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뉴스들이 그녀들을 취재했고, 수많은 기자들이 그녀들을 취재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나는.
어느때보다 빛나고 있는 그녀들을 보고 있던 나는.
한점 의혹도 없이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 목표를 해낸 그녀들을 본 나는.
한 가지 깨달았다.
‘나도.....나를 마주보지 않으면 안된다.’
아주 오래전부터 외면 하고 있던 나의 문제를...
사람들이 길을 걷는 이유는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서 이다.
그 목적지에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그곳에 뭐가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길을 걷는다.
하지만 그러다 문득 그 길에 의문이 생기면 어찌될까.
잘 나아가다, 자신이 걷고 있는 그 길이 제대로 된 길인지 의문이 생길 때.
사람들은 어찌 될까.
혹자는 그럼에도 앞으로 걸어나갈것이고
혹자는 다른 길을 모색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스가 쿄타로가 선택한 것은 이도 저도 아니었다.
8월.그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어느덧 9월.
키요스미 고등학교는 개교 이후 처음으로 전국재패라는 성과를 내고 한껏 들떠 있었다.
진학률도 평범.
동아리 활동도 평범.
그리고 재학중인 학생들도 어딘가 평범한 키요스미로써는 흔치 않은 자랑거리였다.
학교의 성과는 곧 학교장의 성과가 되니, 지금껏 얼굴한번 비추지 않은 교장과 교감은 직접 찾아와서 마작부를 칭찬할 정도였고,
선생님들도 마작부원들을 보면 그때 인터하이 경기를 잘봤다며 안부를 전할정도였다.
당분간 키요스미는 마작부로 인해 들떠 있을거 같다.
“그러고보면 우리는 의외로 스가군에 대해서 아는게 없지 않아?”
슬슬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시기지만, 아직 햇살이 무척이나 따가운 계절.
작탁에 축 늘어져 있던 히사가 문득 말했다. 그녀의 말에 한순간 모두의 시선이 모인다.
덧붙여 모여 있는건 여자맴버들뿐. 유일한 남자이자, 이야기의 주인공은 볼일이 있다며 교무실에 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마코가 그녀를 힐끔 보며 물었다.
그러면서 작탁에 엎어져 있는 그녀를 보며 빨리 일어나라고 재촉했다.
“새삼 깨달았거든, 우리 스가 군에 대해서 아는거 거의 없잖아. 다른 부원들이라면 다들 어느정도 사정을 알고 있는데 말야.”
노도카와 그녀의 아버지의 갈등.
사키와 테루의 갈등.
마코도, 유키의 사정들도 다들 어느정도 다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사정도 부원들도 어느정도 알고 있다.
하지만, 스가 쿄타로는?
우리가 아는 쿄타로라면-.
거유와 미소녀를 좋아하는 소년
입 다물고 있으면 미소년
가사의 실력도 좋고, 매니저 업무도 이상할정도로 잘해낸 소년.
가끔 여자력으로써 지고 있는게 아닐까 싶은 소년.
“그러고보면, 제가 오기 전 부터 스가군은 마작부에 소속되어 있었죠?”
보던 패보에서 시선을 때며 노도카가 말했다.
학교에서 도는 소문에 의하면 마작부 남자 부원인 스가 쿄타로는 학교 제일의 미소녀이자, 인터미들의 챔피언 하라무라 노도카를 쫓아 마작부에 들어간것처럼 알려져 있다. 본인도 그다지 부정을 하지 않은지라 다들 그게 사실인줄 알고 있지만, 실상은 쿄타로가 노도카와 유키보다 먼저 마작부에 소속되어 있었다.
“응, 츠치이 선생님의 부탁이었거든.”
“츠치이 선생님이라면 저희 고문 선생님이었죠?”
츠치이 키미히로.
1학년, 2학년을 맡은 국어 선생님. 부드러운 인상을 지닌 호청년이었다.
동아리라고 하면 이름뿐이라고 할지라도 고문은 필요한 법. 그는 마작은 할줄은 모르지만, 여러 가지로 아이들을 챙겨주려고 노력해주고, 여자 부원 5명이 모여 단체전에 나갈수 있게 되자 마자, 자금으로 부족하지 않게 후원회를 연결해준 사람이었다.
그 후원회는 츠치이 선생님의 지인이라는 말만 알려줄뿐, 누군지 정확히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그 선하디 선한 선생님이 한 일이다. 학교의 승인도 난 걸 보면 불법적인 자금은 아니었다.
어쨌든 히사에게 있어서는 그는 은인이었다.
“그러고보면, 항상 궁금했던건데, 츠치이 선생님이 어디서 쿄타로를 데려온거야?”
“글쎄...”
마코의 물음에 히사는 머리를 긁적이었다.
신입생들이 학교를 한번 둘러보던 기간. 그 기간에 고문 츠치이 선생님은 한 소년을 데리고 마작부에 나타났다.
츠치이 선생님은 말했다.
그를 이 동아리에 넣어달라고.
처음에는 그가 엄청난 실력자인줄 알았다.
하지만, 실상 소년은 마작의 룰도 모르는 초심자.
그래도, 히사는 소년을 부원을 받아들였다.
아니 애초에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당장 신입생이 없다면, 이 이름뿐인 부서가 폐부될지도 몰랐다.
소년은 그렇게 입부했고, 노도카와 유키가 입부했다.
그리고 소년은 어디선가 사키를 데려왔다.
그리고.....
그리고..
“정말 아는게 없구나.”
“그렇게 쿄타로에 대해서 궁금하면 사키쨩에게 물어보면 되지 않냐규!”
“....”
유키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사키를 향한다.
어린 시절부터 같이 지내온 소꿉친구라면 적어도 우리보다 많은걸 알고 있으리라.
“그래봤자, 시답지 않은 개의 인생이겠지만, 그래도 사키쨩, 한번 말해보라규!!”
“그, 그건....”
지금껏 잠자코 있던 소녀는 당황했다. 그러다 이내 오히려 히사에게 물었다.
“저, 부장 아니 타케이 선배는 왜 갑자기 쿄쨩에 대해서 묻는건가요?”
“왜라니-. 그야...”
그야...
문득 소년과의 첫만남이 떠올랐다.
황혼으로 물든 교사.
그때 히사는 고민하고 있었다. 인터하이에 나갈수 있을까. 전국재패가 가능할것인가.
그녀의 명석한 두뇌는 말하고 있었다. 100% 실패라고. 자신과 마코는 어느정도 실력이 된다.
하지만 앞으로 들어올 신입생들에게 자신과 같은 실력을 바라는 것은 무리다.
애초에 마작을 제대로 하고 싶으면 류몬부치나 카제코시로 가면된다.
키요스미에 올 필요가 없다.
전국 이전에 부원이나 제대로 모집할수 있을까.
그런도중, 고문 선생님은 한 소년을 자신에게 맡겼다.
은인이나 다름없는 선생님이었다.히사는 거절할수 없었다.
선생님이 맡긴 소년은 무척이나 어른 스러운 소년이었다.
아니 소년이 입고 있던 교복이 아니었더라면, 소녀는 자신보다 연상이라고 그리 믿었을 것이다.
황혼빛과 비슷한 금발.
진지한 얼굴이 무척이나 듬직해서, 자신도 모르게 두근 거렸다.
소년과의 대화 이후, 소년은 마작부에 입부했다.
그리고 그때의 만남은 꿈이었던 것처럼, 신입생으로써 온 소년은 어느 또래의 소년과 다름없었다.
장난에 쉽게 당황하고, 또래의 이성에 관심이 많고, 어딘가 연하의 남자아이라는 느낌의 소년.
하지만, 히사는 가끔 생각한다.
그때 입학식 이전에 보았던 소년의 모습이야 말로 진짜 그의 모습이 아닐까 하고.
“그냥...이라고 할까, 가끔 스가군을 보고 있으면,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
“그냥인가, 하긴 나도 가끔 그럴때가 있지.”
히사의 말에 마코가 말을 받았다.
"무슨 말이냐규?"
"쿄타로를 보면, 우리에게 아무렇지도 않아."
"??"
마코의 말에 유키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니까, 바라는게 없달까...?"
"아..."
순간, 탄식과 같은 침음이 노도카에게서 흘러나온다. 명석한 소녀라면 마코의 말을 어느정도 눈치 채고 있으리라.
“바라는게 없다규?”
“유키, 만약 너라면 말이야. 자신만 혼자 아무것도 못하면 어떤 느낌이 들거 같아? 그리고서 말하는거야. 너는 아무것도 못하니까, 우리를 돕기나 해-.라고.”
“그건....”
“그래, 대부분 사람들은 말야, 그게 어쩔수 없다는걸 알면서도 불만이 생기기 마련이야. 특히 청소년기의 소년이라면 더욱더 말야. 그런데 쿄타로는 그런게 없어.”
어쩌면 희생이라고도 할수 있을 행위.
그 희생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건, 세 가지중 하나다.
뒤에서 우리를 따라오며 동경하는 후배라던가.
엄청나게 마음이 넓은 사람 이라던가.
아니면, 아예 저 멀리 앞서 나가서 우리를 귀여운 후배를 보는 느낌이라던가.
처음에는 전자라고 생각했다.
마작에 갓 입문했고, 인터하이까지 나간 우리를 동경해서, 쿄타로는 우리를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코는 생각했다. 인터하이가 끝나면 우리를 동경한 이 후배에 대해서 열심히 지도 해주겠다고,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게 아니었다.
쿄타로는 마작부에 소속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전국에 뜻이 있거나, 남들보다 잘하고 싶어하는 향상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키요스미의 대부분 학생들이 그렇듯 대회보다는 친구들과 가볍게 즐길수 있을 정도의 수준만을 원하고 있었다.
그래서, 두 번째라고 생각했다.
평소에도, 어려운 사람을 지나치지 못하는 이 소년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히사가 쿄타로의 첫만남에서 그의 이상함을 느끼듯, 소녀또한 어딘가 석연치 않음을 느꼈다.
인터하이에서도 첫 경기에 떨고 있는 자신들을 위로할때의 소년의 말투는 이미 이런 경기는 충분히 익숙한 듯 보였다.
그의 말은, 흡사 경험이 많은 감독이나, 선배가 우리에게 하는 말과 비슷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소녀는 아니 소녀들은 소년의 말에 이상할 정도로 듬직함을 느꼈다.
“가끔 쿄타로는 우리를 위에서 보고 있는거 같아. 마치 자기가 지나온 길을 걸어오는 후배를 보는거 같은 느낌?”
선배가 돼서 무슨소리를 하는지를 모르겠다.
연하의 후배에게서 이런 느낌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소녀는 그렇게 느꼈다.
“그런 오컬트 있을수 없습니다.”
“그렇다규!! 개가 사실은 우리보다 강하다니 그런 오컬트 있을수 없다규!!”
“아니, 아니, 굳이 마작이 아니라, 느낌이 그렇다고.”
일학년 두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마코의 말에 반박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유키야 어쨌든 그 냉정 침착한 노도카마저 저렇게 흥분하다니.
“그래서, 사키. 스가군은 과거에 뭔가 했니?”
히사가 시선을 사키를 향하며 물었다.
“말해보라규. 어차피 시시한 개의 일생이겠지만, 시간 때우기는 될거라규!”
“유키, 말이 심해요.”
유키를 탓하면서도, 노도카는 은근히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는 눈치였다.
“사키쨩. 빨리 말해보라규! 사키쨩이 말을 못 할 정도라면 혹시 엄청난 흑역사가 있냐규!!”
“말해보렴, 사키. 스가군은 우리의 사정을 어느정도 알고 있는데, 우리는 스가군의 사정을 모른다는건 조금 비겁하잖니?”
“....해요”
소녀가, 조용히 중얼 거리듯 말했다. 제대로 듣지 못한지라 모두가 그녀를 쳐다본다. 그리고 이내.
“....말 못해요!!”
“응?”
마치, 무언가를 억누르듯, 하지만 완전히는 못 억누른듯한 목소리가, 소녀에게서 흘러나왔다.
“쿄쨩의 과거따위 아무래도 좋은거잖아요!”
“사키...?”
모두의 시선이 소녀를 향한다. 소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그대로 터트리듯 외쳐버렸다.
“왜냐면 중요한건 지금이니까. 쿄쨩은 우리곁에 있고, 우리는 쿄쨩 곁에 있어요. 그거면 충분한거잖아요!”
그러면서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듯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러다 밖에서 누구와 마주쳤는지, ‘어어?!’ 거리는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던 마작부 일원들은 소년이 들어오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듯 소년을 봤다.
“사키 뭔 일 있어요? 쟤 왜 갑자기.”
“스가군.”
“예?”
“당장 사키 쫓아가.”
“에?”
“잔말 말고 빨리!!”
“아, 예...”
히사의 말에 쿄타로는 부실에 들어오자마자 소녀를 쫓아 밖으로 나섰다. 그러고나서야, 천천히 마코가 입을 열었다.
“...쿄타로에게 뭔 과거가 있긴 있나보네.”
“그 사키가 저렇게 울면서 나갈 정도니. 우리가 알고 있는것보다 더 큰 비밀일지도 모르겠어.”
사키의 태도를 보며 알았다.
스가 쿄타로.
마작부를 묵묵히 돕던, 남자 부원. 언제나 밝은 성격을 지닌 키요스미의 일원.
누구보다 키요스미 마작부에 가까이 있다고 생각되었던 소년은, 어쩌면 어느 누구보다 제일 먼곳에서 마작부에 있을지도 모른다.
뭔가 씁쓸해진다. 아니, 서운해진다.
‘그건, 저 아이들도 그리 느끼겠지.’
이번 인터하이를 통해서 1학년들 사이에서의 유대감은 어느 무엇보다 두껍게 형성되었다.
은연중에 이 사람에 대해서 잘알고 있는건 나야! 라는 생각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도 여자아이들 사이에서는 그러했다.
그리고 쿄타로도 그런줄 알았다.
그녀들이 잘 알고 편하게 지낸 스가 쿄타로는 마작 초심자 이자 또래의 남자아이처럼 이성에 관심이 많은 소년이었다.
하지만 히사의 말로써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쿄타로는 그저 만들어낸 모습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녀들은 인정하기 싫었던것이다.
“...스가군의 이야기는 이걸로 끝.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는거니까. 우리도 스가군이 말해줄때까지 기다리자.”
히사의 말에, 노도카와 유키는, 그대로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날
인터하이 단체전이 끝난 그날.
하나의 무명 고등학교가 전국의 강호들을 물리치고 우승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어디의 신진 강호도 아니었다. 간신히 부원 6명으로만 이뤄진 약세 동아리. 그 동아리가 해낸 것이다.
수많은 매체는 이들을 주목했다.
아니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뉴스들이 그녀들을 취재했고, 수많은 기자들이 그녀들을 취재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나는.
어느때보다 빛나고 있는 그녀들을 보고 있던 나는.
한점 의혹도 없이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 목표를 해낸 그녀들을 본 나는.
한 가지 깨달았다.
‘나도.....나를 마주보지 않으면 안된다.’
아주 오래전부터 외면 하고 있던 나의 문제를...
제1국 Hello Mr My Yesterday
사람들이 길을 걷는 이유는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서 이다.
그 목적지에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그곳에 뭐가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길을 걷는다.
하지만 그러다 문득 그 길에 의문이 생기면 어찌될까.
잘 나아가다, 자신이 걷고 있는 그 길이 제대로 된 길인지 의문이 생길 때.
사람들은 어찌 될까.
혹자는 그럼에도 앞으로 걸어나갈것이고
혹자는 다른 길을 모색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스가 쿄타로가 선택한 것은 이도 저도 아니었다.
8월.그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어느덧 9월.
키요스미 고등학교는 개교 이후 처음으로 전국재패라는 성과를 내고 한껏 들떠 있었다.
진학률도 평범.
동아리 활동도 평범.
그리고 재학중인 학생들도 어딘가 평범한 키요스미로써는 흔치 않은 자랑거리였다.
학교의 성과는 곧 학교장의 성과가 되니, 지금껏 얼굴한번 비추지 않은 교장과 교감은 직접 찾아와서 마작부를 칭찬할 정도였고,
선생님들도 마작부원들을 보면 그때 인터하이 경기를 잘봤다며 안부를 전할정도였다.
당분간 키요스미는 마작부로 인해 들떠 있을거 같다.
“그러고보면 우리는 의외로 스가군에 대해서 아는게 없지 않아?”
슬슬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시기지만, 아직 햇살이 무척이나 따가운 계절.
작탁에 축 늘어져 있던 히사가 문득 말했다. 그녀의 말에 한순간 모두의 시선이 모인다.
덧붙여 모여 있는건 여자맴버들뿐. 유일한 남자이자, 이야기의 주인공은 볼일이 있다며 교무실에 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마코가 그녀를 힐끔 보며 물었다.
그러면서 작탁에 엎어져 있는 그녀를 보며 빨리 일어나라고 재촉했다.
“새삼 깨달았거든, 우리 스가 군에 대해서 아는거 거의 없잖아. 다른 부원들이라면 다들 어느정도 사정을 알고 있는데 말야.”
노도카와 그녀의 아버지의 갈등.
사키와 테루의 갈등.
마코도, 유키의 사정들도 다들 어느정도 다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사정도 부원들도 어느정도 알고 있다.
하지만, 스가 쿄타로는?
우리가 아는 쿄타로라면-.
거유와 미소녀를 좋아하는 소년
입 다물고 있으면 미소년
가사의 실력도 좋고, 매니저 업무도 이상할정도로 잘해낸 소년.
가끔 여자력으로써 지고 있는게 아닐까 싶은 소년.
“그러고보면, 제가 오기 전 부터 스가군은 마작부에 소속되어 있었죠?”
보던 패보에서 시선을 때며 노도카가 말했다.
학교에서 도는 소문에 의하면 마작부 남자 부원인 스가 쿄타로는 학교 제일의 미소녀이자, 인터미들의 챔피언 하라무라 노도카를 쫓아 마작부에 들어간것처럼 알려져 있다. 본인도 그다지 부정을 하지 않은지라 다들 그게 사실인줄 알고 있지만, 실상은 쿄타로가 노도카와 유키보다 먼저 마작부에 소속되어 있었다.
“응, 츠치이 선생님의 부탁이었거든.”
“츠치이 선생님이라면 저희 고문 선생님이었죠?”
츠치이 키미히로.
1학년, 2학년을 맡은 국어 선생님. 부드러운 인상을 지닌 호청년이었다.
동아리라고 하면 이름뿐이라고 할지라도 고문은 필요한 법. 그는 마작은 할줄은 모르지만, 여러 가지로 아이들을 챙겨주려고 노력해주고, 여자 부원 5명이 모여 단체전에 나갈수 있게 되자 마자, 자금으로 부족하지 않게 후원회를 연결해준 사람이었다.
그 후원회는 츠치이 선생님의 지인이라는 말만 알려줄뿐, 누군지 정확히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그 선하디 선한 선생님이 한 일이다. 학교의 승인도 난 걸 보면 불법적인 자금은 아니었다.
어쨌든 히사에게 있어서는 그는 은인이었다.
“그러고보면, 항상 궁금했던건데, 츠치이 선생님이 어디서 쿄타로를 데려온거야?”
“글쎄...”
마코의 물음에 히사는 머리를 긁적이었다.
신입생들이 학교를 한번 둘러보던 기간. 그 기간에 고문 츠치이 선생님은 한 소년을 데리고 마작부에 나타났다.
츠치이 선생님은 말했다.
그를 이 동아리에 넣어달라고.
처음에는 그가 엄청난 실력자인줄 알았다.
하지만, 실상 소년은 마작의 룰도 모르는 초심자.
그래도, 히사는 소년을 부원을 받아들였다.
아니 애초에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당장 신입생이 없다면, 이 이름뿐인 부서가 폐부될지도 몰랐다.
소년은 그렇게 입부했고, 노도카와 유키가 입부했다.
그리고 소년은 어디선가 사키를 데려왔다.
그리고.....
그리고..
“정말 아는게 없구나.”
“그렇게 쿄타로에 대해서 궁금하면 사키쨩에게 물어보면 되지 않냐규!”
“....”
유키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사키를 향한다.
어린 시절부터 같이 지내온 소꿉친구라면 적어도 우리보다 많은걸 알고 있으리라.
“그래봤자, 시답지 않은 개의 인생이겠지만, 그래도 사키쨩, 한번 말해보라규!!”
“그, 그건....”
지금껏 잠자코 있던 소녀는 당황했다. 그러다 이내 오히려 히사에게 물었다.
“저, 부장 아니 타케이 선배는 왜 갑자기 쿄쨩에 대해서 묻는건가요?”
“왜라니-. 그야...”
그야...
문득 소년과의 첫만남이 떠올랐다.
황혼으로 물든 교사.
그때 히사는 고민하고 있었다. 인터하이에 나갈수 있을까. 전국재패가 가능할것인가.
그녀의 명석한 두뇌는 말하고 있었다. 100% 실패라고. 자신과 마코는 어느정도 실력이 된다.
하지만 앞으로 들어올 신입생들에게 자신과 같은 실력을 바라는 것은 무리다.
애초에 마작을 제대로 하고 싶으면 류몬부치나 카제코시로 가면된다.
키요스미에 올 필요가 없다.
전국 이전에 부원이나 제대로 모집할수 있을까.
그런도중, 고문 선생님은 한 소년을 자신에게 맡겼다.
은인이나 다름없는 선생님이었다.히사는 거절할수 없었다.
선생님이 맡긴 소년은 무척이나 어른 스러운 소년이었다.
아니 소년이 입고 있던 교복이 아니었더라면, 소녀는 자신보다 연상이라고 그리 믿었을 것이다.
황혼빛과 비슷한 금발.
진지한 얼굴이 무척이나 듬직해서, 자신도 모르게 두근 거렸다.
소년과의 대화 이후, 소년은 마작부에 입부했다.
그리고 그때의 만남은 꿈이었던 것처럼, 신입생으로써 온 소년은 어느 또래의 소년과 다름없었다.
장난에 쉽게 당황하고, 또래의 이성에 관심이 많고, 어딘가 연하의 남자아이라는 느낌의 소년.
하지만, 히사는 가끔 생각한다.
그때 입학식 이전에 보았던 소년의 모습이야 말로 진짜 그의 모습이 아닐까 하고.
“그냥...이라고 할까, 가끔 스가군을 보고 있으면,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
“그냥인가, 하긴 나도 가끔 그럴때가 있지.”
히사의 말에 마코가 말을 받았다.
"무슨 말이냐규?"
"쿄타로를 보면, 우리에게 아무렇지도 않아."
"??"
마코의 말에 유키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니까, 바라는게 없달까...?"
"아..."
순간, 탄식과 같은 침음이 노도카에게서 흘러나온다. 명석한 소녀라면 마코의 말을 어느정도 눈치 채고 있으리라.
“바라는게 없다규?”
“유키, 만약 너라면 말이야. 자신만 혼자 아무것도 못하면 어떤 느낌이 들거 같아? 그리고서 말하는거야. 너는 아무것도 못하니까, 우리를 돕기나 해-.라고.”
“그건....”
“그래, 대부분 사람들은 말야, 그게 어쩔수 없다는걸 알면서도 불만이 생기기 마련이야. 특히 청소년기의 소년이라면 더욱더 말야. 그런데 쿄타로는 그런게 없어.”
어쩌면 희생이라고도 할수 있을 행위.
그 희생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건, 세 가지중 하나다.
뒤에서 우리를 따라오며 동경하는 후배라던가.
엄청나게 마음이 넓은 사람 이라던가.
아니면, 아예 저 멀리 앞서 나가서 우리를 귀여운 후배를 보는 느낌이라던가.
처음에는 전자라고 생각했다.
마작에 갓 입문했고, 인터하이까지 나간 우리를 동경해서, 쿄타로는 우리를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코는 생각했다. 인터하이가 끝나면 우리를 동경한 이 후배에 대해서 열심히 지도 해주겠다고,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게 아니었다.
쿄타로는 마작부에 소속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전국에 뜻이 있거나, 남들보다 잘하고 싶어하는 향상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키요스미의 대부분 학생들이 그렇듯 대회보다는 친구들과 가볍게 즐길수 있을 정도의 수준만을 원하고 있었다.
그래서, 두 번째라고 생각했다.
평소에도, 어려운 사람을 지나치지 못하는 이 소년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히사가 쿄타로의 첫만남에서 그의 이상함을 느끼듯, 소녀또한 어딘가 석연치 않음을 느꼈다.
인터하이에서도 첫 경기에 떨고 있는 자신들을 위로할때의 소년의 말투는 이미 이런 경기는 충분히 익숙한 듯 보였다.
그의 말은, 흡사 경험이 많은 감독이나, 선배가 우리에게 하는 말과 비슷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소녀는 아니 소녀들은 소년의 말에 이상할 정도로 듬직함을 느꼈다.
“가끔 쿄타로는 우리를 위에서 보고 있는거 같아. 마치 자기가 지나온 길을 걸어오는 후배를 보는거 같은 느낌?”
선배가 돼서 무슨소리를 하는지를 모르겠다.
연하의 후배에게서 이런 느낌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소녀는 그렇게 느꼈다.
“그런 오컬트 있을수 없습니다.”
“그렇다규!! 개가 사실은 우리보다 강하다니 그런 오컬트 있을수 없다규!!”
“아니, 아니, 굳이 마작이 아니라, 느낌이 그렇다고.”
일학년 두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마코의 말에 반박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유키야 어쨌든 그 냉정 침착한 노도카마저 저렇게 흥분하다니.
“그래서, 사키. 스가군은 과거에 뭔가 했니?”
히사가 시선을 사키를 향하며 물었다.
“말해보라규. 어차피 시시한 개의 일생이겠지만, 시간 때우기는 될거라규!”
“유키, 말이 심해요.”
유키를 탓하면서도, 노도카는 은근히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는 눈치였다.
“사키쨩. 빨리 말해보라규! 사키쨩이 말을 못 할 정도라면 혹시 엄청난 흑역사가 있냐규!!”
“말해보렴, 사키. 스가군은 우리의 사정을 어느정도 알고 있는데, 우리는 스가군의 사정을 모른다는건 조금 비겁하잖니?”
“....해요”
소녀가, 조용히 중얼 거리듯 말했다. 제대로 듣지 못한지라 모두가 그녀를 쳐다본다. 그리고 이내.
“....말 못해요!!”
“응?”
마치, 무언가를 억누르듯, 하지만 완전히는 못 억누른듯한 목소리가, 소녀에게서 흘러나왔다.
“쿄쨩의 과거따위 아무래도 좋은거잖아요!”
“사키...?”
모두의 시선이 소녀를 향한다. 소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그대로 터트리듯 외쳐버렸다.
“왜냐면 중요한건 지금이니까. 쿄쨩은 우리곁에 있고, 우리는 쿄쨩 곁에 있어요. 그거면 충분한거잖아요!”
그러면서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치듯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러다 밖에서 누구와 마주쳤는지, ‘어어?!’ 거리는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던 마작부 일원들은 소년이 들어오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듯 소년을 봤다.
“사키 뭔 일 있어요? 쟤 왜 갑자기.”
“스가군.”
“예?”
“당장 사키 쫓아가.”
“에?”
“잔말 말고 빨리!!”
“아, 예...”
히사의 말에 쿄타로는 부실에 들어오자마자 소녀를 쫓아 밖으로 나섰다. 그러고나서야, 천천히 마코가 입을 열었다.
“...쿄타로에게 뭔 과거가 있긴 있나보네.”
“그 사키가 저렇게 울면서 나갈 정도니. 우리가 알고 있는것보다 더 큰 비밀일지도 모르겠어.”
사키의 태도를 보며 알았다.
스가 쿄타로.
마작부를 묵묵히 돕던, 남자 부원. 언제나 밝은 성격을 지닌 키요스미의 일원.
누구보다 키요스미 마작부에 가까이 있다고 생각되었던 소년은, 어쩌면 어느 누구보다 제일 먼곳에서 마작부에 있을지도 모른다.
뭔가 씁쓸해진다. 아니, 서운해진다.
‘그건, 저 아이들도 그리 느끼겠지.’
이번 인터하이를 통해서 1학년들 사이에서의 유대감은 어느 무엇보다 두껍게 형성되었다.
은연중에 이 사람에 대해서 잘알고 있는건 나야! 라는 생각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도 여자아이들 사이에서는 그러했다.
그리고 쿄타로도 그런줄 알았다.
그녀들이 잘 알고 편하게 지낸 스가 쿄타로는 마작 초심자 이자 또래의 남자아이처럼 이성에 관심이 많은 소년이었다.
하지만 히사의 말로써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쿄타로는 그저 만들어낸 모습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녀들은 인정하기 싫었던것이다.
“...스가군의 이야기는 이걸로 끝.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는거니까. 우리도 스가군이 말해줄때까지 기다리자.”
히사의 말에, 노도카와 유키는, 그대로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