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마토 사쿠라
바빠졌다고, 그녀는 문득 느꼈다.
작년의 일으로부터 2년 후, 그녀의 선배와 언니는 졸업했다. 그리고 그녀는 고교 3학년. 그녀의 오빠 역시도 졸업했고, 공부는 그럭저럭 했기에 후유키 시외 대학으로 진학했다. 선배와 언니는, 해외 유학- 아마 런던의 시계탑이라고 했을 것이다. 금발의, 조각된 듯한 미소녀와 셋이서.
슬슬 다가오는 수험의 압박에 찌뿌둥한 몸을 푼 그녀는 주변을 슥 둘러보았다. 예년과 다름없는 궁도부였다. 후지무라 선생님과 후배들은 여전히 열심히 하고있고, 모든게 예년과 같다.
다만, 선배와 언니는 학교에서 보이지 않는다. 당연한 것임에도 그녀는 그것에 대해서 자주, 가벼운 상실감을 느꼈다. 그 상실감은 진득하게 그녀의 등 뒤에 들러붙어 있었다. 마치 저주같이, 소성배와의 연결 패스와도 같이.
「사쿠라쨩?」
핫, 하자 후지무라 선생이 그녀의 앞에 있었다. 상념에 빠져 다가오는걸 몰랐던 걸까.
「네?」
「괜찮아?」
「에, 으응, 그게」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말해줘?」
「저, 그럼 잠깐 조퇴해도 될까요?」
「헤에, 사쿠라쨩이 방과후에 조퇴라, 별일이네. 뭐, 상관 없는걸」
후지무라 선생은 상쾌하게 웃었다. 그녀는 문득 그 상쾌한 웃음이 선생의 트레이드마크인 듯 싶다고 생각했다. 곧장 그녀는 짐을 챙겨 처음으로 하교 시간 외에 궁도부를 나섰다.
다른 바람, 다른 공기. 예전과 같은 것일텐데, 중간에 빠졌다고 해서 세상은 조그마한 일탈에도 그 모습을 그녀의 눈 앞에서 바뀐 것 같았다. 조금 기분이 풀어지고, 상실감이 잦아들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기 보다, 일정을 앞당겨서 지금은 아무도 없는 선배의 집에 들리기로 했다.
선배가 그녀의 언니와 함께 시계탑으로 간 이후 그녀는 몰래 예전에 받은 에미야 가의 스페어 키로 일주일에 한 번, 선배의 집을 청소했다. 예년과 같게, 거실과 주방을 청소하고, 선배가 있었던 방을 청소했다. 그러면 그녀 안에 있던 상실감이 조금은 날아갔다.
익숙한, 미야미 쵸의 등굣길을 다시 걸어 내려간다.
아직 하교 시간이 아니기에, 길가에는 그녀 뿐이었다. 꽤나 새로운 경험. 하교 시간에 분명 시끌벅적할 도로가 푸른 삼월의 낮은 추위를 감싸고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이따금 지나가는 차가 도로를 울릴 뿐이었다. 사거리를 지나 비탈길을 올라가서 옆으로 틀면, 사람 둘 셋 정도가 간신히 지나가는 골목이 나왔다. 옆에는 돌로 쌓아올린 벽과 가옥의 벽이였다. 그녀는 잠시 추억에 젖은 채로 돌벽을 쓰다듬으며 천천히 걸어갔다. 과거는 멀고도 가까웠다. 기억할 수 있는건 많았지만, 뚜렷한건 선배의 등이었다.
도착해서 잠긴 문을 스페어 키로 열고 들어선다. 매마른 잔디가 광야廣野한 마당에 심어져 있었다. 언제 봐도 넓다. 마토 가와는 또 다른 느낌. 역시나 잠긴 본가의 문을 열고 들어서며 그녀는 습관적으로 읊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차가운, 사람의 인기척이 없는 복도에 구두를 벗고 실내화를 꺼내 신고 거실로 들어갔다. 늘 항상 같은 루트. 에미야 가에는 볕이 잘 들어오기 때문에, 고요함과 적막함을 끌어안은 집임에 불구하고 쓸쓸하지 않았다. 처마가 받아들이는 볕은 날카롭지 않았고 창가 마루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그녀는 천천히, 고요한 에미야 가의 침묵을 깨지 않으려 조심히 마루를 걸었다. 문득 마당을 보니, 누군가 마당에 서서 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어두운 피부, 검은 갑주甲胄와 바지. 하얗게 서리내린 듯한 백발. 다만 어떻게 된 것인지, 갖추고 있던 상의의 붉은 성해포는 없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마토 사쿠라인가.」
「아, 네, 안녕하세요, 아처 씨.」
「아직 일과 시간일텐데, 어떻게 여길?」
「그게, 컨디션이 나빠서」
「음... 그렇군, 그런가.」
얼머부리려는 그녀는 이미 들켰다고 생각했다. 앞의 그는 날카로운 사람이었다. 이런 질 낮은 거짓말은 들켰겠지. 하지만 역시 상냥한 사람이기에, 그는 그걸 알고서도 그녀를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입가에 옅은 웃음을 띌 뿐. 그녀는 내심 그의 상냥한 배려에 감사를 느끼면서 거실로 향했다.
거실의 불을 키고, 켜켜히 일주일동안 쌓인 먼지들을 손으로 가볍게 쓸어내고 손을 씻은 그녀는 준비해온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머릴 묶어 올렸다. 응, 준비 완료. 내심 그녀는 기분이 고양되는게 좋았다. 걸레를 준비해서 적신 다음, 주방부터 거실을, 복도와 그의 방을 닦았다. 꽤 시간이 오래 걸렸기에, 높게 뜬 해는 어느새 가라앉아 있었다.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여섯시였다. 좀 늦어도 상관 없으려나. 그녀는 라이더에게 늦는다는 연락은 취하지 않았지만, 분명 라이더라면 여기 있을거라 생각해줄거라 여겼다.
어두워진 마당에, 그는 아직도 서 있었다. 세 시간, 그 이상일까. 추울텐데.
「저, 아처 씨?」
「왜 그렇지?」
「춥지 않으신가요? 저녁 먹을 건데, 같이 드실레요?」
그는 대답 대신 끄덕이는 걸로 대신했다. 왠지 모르게 그녀는 그의 모습에서 그의 선배를 겹쳐보였다. 순수하게 닮은 그 둘은 놀라울 정도로 흡사해서, 그녀도 내심 놀라고 있었다. 영령인 그와 인간인 그녀의 선배는, 어느 관계이기에 그렇게 닮아있는 걸까-.
그녀가 부엌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그가「요리는 내가」라며 그녀를 저지하고는 직접 에이프런을 걸치더니 그녀에게 저녁은 일식이니, 괜찮냐고 물었다. 그녀로선 선택권이 없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연유로, 그녀는 오랜만에 식탁에 앉아서 멍하니 시계를 보고있었다. 6:44. 라이더에겐 기본적인 음식 조리 정도는 가르쳐줬으니, 알아서 해결하겠지. 그보다, 부엌에서는 그가「칫, 에미야 녀석. 나가더라도 기초적 식재료 정도는 넣어두고 가란 말이다」라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왠지 모르게 그의 그런 불평에서 안식을 찾았다. 몇 번의 투덜거림, 달그락거리고 지지는 소리. 음식을 만드는 소리는 그녀에게 익숙함을 안겨주었다. 곧 소리가 멎고, 그가 앞치마를 입은 채로 음식을 들고 나왔다. 조린 고기내음이 거실에 가득 풍겼다. 니쿠쟈카? 거기다 일인분 양밖에 없다.
「니쿠쟈카인가요?」
「아아, 남은게 쇠고기밖에 없어서 말이다... 겨우 1인분 남아있었고.」
「응, 그래도 좋은 향이네요. 그런데 아처 씨는?」
「난 영령이니 먹지 않아도 된다.」
「아처 씨는 선배와 비슷하게 일식파인가요?」
「그런 미숙한 놈과 비교하지 마라. 이래뵈도 가사 전반이 특기니ㄲ... 아, 아니다.」
반대편에 앉은 그가 당황하며 얼머부렸다. 보기 드문 모습이다. 그녀는 오랜만에, 편안히 웃으며 수저를 들었다.
「으~응, 역시 선배보다 한 수 위라는게 확실할 정도로 정교해...」
「응? 뭔가 말했나?」
「아, 아뇨! 아무것도.」
적절하게 버무려진 간장과 설탕의 궁합에 그녀는 흥미롭게 맛을 봤다. 보통 니쿠쟈카는 맛있지만, 그가 조리한 니쿠쟈카는 뭔가 깊은 감칠맛이 났다. 고스킬이야, 선배 이상의- 그리고, 묘하게 그와 있으면 선배와 함께 식사하는 것 같아.
「아, 린이 영국에서 보내온 편지다.」
그가 밥을 먹고나서 입을 닦는 그녀에게 밀봉된 편지를 건냈다. 새하얀 편지지를 여닫는 부분에는 붉은 촛농으로 밀봉해놓았고, 밀봉 마크는 토오사카 가의 문양이었다. 그녀는 그가 건낸 편지를 품에 집어넣고 그에게 물었다.
「이거...?」
「토오사카 저택 앞으로 온거다. 앞에 네 이름이 있더군. 그래서 갖다주려고 온 것이다만.」
「보통 마토 가로 오지 않나요...? 그 우편도 그렇고」
「보다 말이지, 마토 가로 가면 라이더가 은근히 배척해서. 거기에다 그쪽에서 마토 가의 주소는 잊은 것 같아보인다.」
「상처네요...」
「과연 그럴지도.」
그는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긍정했다. 그 긍정에 그녀는 그 안에서 왠지 모를 안도감이 느껴졌다.
「정말이지, 잘 먹었습니다.」
「고맙군. 평가는 없는건가?」
「으~음, 니쿠쟈카의 간, 어떻게 맞춘건가요? 역시 소스?」
「데미글라스 소스와 약간의 간장. 꽤 예리했다.」
「데미글라스 소스인가요... 아, 모처럼이니 편지, 열어볼까요?」
「지금 말인가? 좀 나중에 여는게 좋겠지. 사적인 내용이 있을지도 모르고.」
「아처 씨는 늘 상냥하시네요.」
「그렇게 생각하나? 음, 최근들어 물러진 느낌이긴 하지만 말이야.」
그러면서 그는 빙긋 웃었다.
확실한건, 그가 짓는 모든 웃음과 행동에서 어딘지 모르게 그녀의 선배의 모습이 진하게 묻어있었다. 사람이 가지는 무의식적 부분에서 그 모습은 나타났다. 그녀는 기분이 조금 혼란스러워지는걸 느꼈다. 영령 에미야 시로- 설마, 아처가 그럴 일은 없었다. 그 증거로 선배에게 향하는 모든 적의가 곧 과거의 자신에게로 향한다는 것인데, 그 정도로 자기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그녀는 이해하질 못했다. 곧장 품에 넣어둔 편지를 꺼내들고 아처가 말릴 세도 없이 마토 사쿠라는 편지의 밀봉을 거침없이 뜯었다. 안의 편지지에 씌인 필체는 그녀의 언니가 틀림 없었다. 반듯하고 곧고 올바른 글자의 모습은 흑발을 묶어올린 언니를 연상시키기 충분했다. 그녀는 빠르게 내용을 읽어내렸고, 단 몇 초만에 탁자에 편지를 탁 하고 내려놓았다. 반대편의 그는 어느새 녹차를 타 마시고 있었다.
「사적인 편지의 내용을 묻는건 상당히 결례가 된 다는건 알고 있지만, 내용은?」
「내일, 언니와 선배가 도착해요.」
조금 굳은 얼굴로 그녀는 말했고, 온기가 남아있는 녹차를 들이마시는 그는 표정이 변하지 않고, 다만 조용하게 그런가, 라며 중얼거렸다. 그는 컵과 남은 따뜻한 녹차를 그녀에게 내밀었고, 그녀는 헝클어진 마음을 정돈하기 위해 한모금 들이마셨다.
이후 일은 없었다. 둘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도 없이, 자연스럽게 그가 주방으로 들어가 설거지를 시작했고 그녀는 그의 옆에서 설거지를 도왔다. 자연스럽게 이후 소등하고, 둘은 각자의 방향으로 해산했다. 그는 토오사카 저택 방향으로 벽을 넘더니 어둠 사이로 사라졌고, 그녀는 본가와 외곽 벽의 문을 잠군 후 간간히 있는 백색 가로등의 골목길을 지나며 마토 가로 향했다.
사거리에서, 그녀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삼월三月의 밤하늘은 겨울의 들숨처럼 그 깊음을 내보였고 또한 수놓은 수많은 은하의 발광으로서 깊은 어둠을 가득 채워들었다. 차가운 밤공기가 그녀의 폐에 스며들며 조금 느슨해진 정신을 깨웠다. 싫게도, 이 달의 밤공기는 예저년의 그녀의 기억을 되살렸다. 성배전쟁이라 불리는 피의 각축전은 결과론 적으로 그녀의 저주이자 구원이 되었다. 그녀의 삶을 움켜쥐었던 양할아버지를 그녀의 서번트와 함께 제거하고, 자유를 얻었지만 소성배와의 연결로 인해 주의하지 않으면 안되는 삶.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이제 그녀와 그녀의 영령밖에 없는 마토 가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선배와 언니가 내일이면 볼 수 있다는 큰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