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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의 주인님


투고 | V노블






          


프롤로그 
1-1. 지하세계의 벽돌 굼벵이
1-2. 쓰레기장의 궁전
1-3. 그녀가 부탁했던 길
에필로그
외전-찌예 이야기




1-1. 지하세계의 벽돌 굼벵이 (2)


똥에 머리를 박고 있는 이 기막힌 현상에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들었다. 인생무상을 느끼는 현자 같은 사고를 이어가고 있었지만 실상 내 처지는 아주 비참했다.

이 거대한 똥에 빠진 몸을 어떻게 빼낼 방도가 없었기에. 

망할. 똥 덩어리의 점성이 너무 좋아. 육체의 힘이 거의 떨어진 상태라 헤어 나올 수 없는 진창에 빠진 듯 벗어나질 못하겠다.

그나마 코가 없어서 다행이다. 그 점에 대해서 나는 진정으로, 진심으로, 전심으로 안도했다.

벽돌 굼벵이는 눈꺼풀도 없지만, 코도 없다. 벽을 갉아먹고 벽돌을 만드는 일 외의 기관은 없는, 실로 단순하고 절제된 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역시 벽돌 굼벵이는 생물이 아니라 부품이 맞는 듯하다. 아니라면 이렇게 가성비를 고려한 디자인일 리가 없다.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생물은 작은 곤충이라도 몸에 필요한 기관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벽돌 굼벵이에게는 그런 신체 기관들이 거세된 것처럼 없었다.

처음에 똥에 떨어졌을 때, 냄새에 발버둥을 쳤지만 그게 착각임을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냥 반사적으로 냄새가 지독하다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난 코가 없었다.

“끄으으으.”

입에서 신음을 흘리며 무료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처음의 놀람, 격한 슬픔도 이미 다 없어진 지 오래다.

그저 주변에 터지고 부서져 죽은 동료들을 부럽다는 시선으로 살펴보았다.

낙하에서 살아남은 자는 오직 나뿐이다. 

기막힌 우연으로 이 몸만 똥 덩어리에 안착했고 나머지는 단단한 물체나 맨땅에 헤딩을 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이 아찔한 상황에 경악했다. 그리고는 밀려드는 슬픔에 몸을 떨었다. 아무런 교류도 없었다고는 하나 몇 달이나 같이 지낸 동료들이다. 같은 곳에서 일하고, 같은 동굴 구석에서 잠들었다. 그러니 저리 비참하게 산산이 조각난 시신들을 보자 마음이 아플 수밖에.

하지만 결국 이 감정은 얄팍했다.

조금 지난 뒤에는, 돌가루가 된 동료의 시체를 무심하게 바라보며 그냥 여기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 똥 속에 박혀 있는 건 아무래도 처지가 좀 너무하지 않는가.

내가 무슨 소화가 안 돼서 그대로 나온 콩인가?

이런 변 덩어리에 튀는 모습으로 박혀 있게.

아아, 표현이 좀 심했던 것 같다.

어쩐지 토가 쏠려 벽돌을 한 가득 토하고 싶은 기분이다.

나 참, 벽돌도 만날 토하다 안 하니 그것도 섭섭하네.



나는 그 뒤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며 서서히 죽어갔다.

처음에 활발하게 불만을 제기하던 것도 잠시. 그대로 하루가 지나자 기력이 많이 떨어졌다. 

벽돌 굼벵이들도 당연히 밥을 먹는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저질스러운 식사라, 먹는다는 표현보다 고문당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긴 했지만. 어쨌든 입에 뭘 넣고 에너지를 얻는 행위를 하긴 한다.

그런데 죽음을 앞둔 쇠약한 상태에서 식사가 끊기자 몸의 상태는 급격히 나빠졌다.

종국이다.

정말 이제는 마지막이다.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앞쪽에서 아주 듣기 안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늙은 남자의 카랑카랑한 음색이었는데 마치 쇠를 긁는 것처럼 신경질적이었다.

“에이! 에잉! 다 죽었구먼! 쓸모없는 녀석들! 오늘 쓰레기장에는 별로 수확이 없어. 어서 키메라 연구를 끝내야 하는데 말이야. 낄낄낄.”

곧 눈앞에 나타난 노인을 본 순간 머릿속으로 딱 하나밖에 떠올릴 수 없었다.

미친 과학자.

매드 사이언티스트.

정말 그린 듯한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나타난 것이다. 온 몸에 실험 장비를 꽂고 길고 지저분한 머리칼과 턱수염을 늘어뜨린 채로 말이다.

머리 위에는 여러 렌즈가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 렌즈 하나하나가 매우 정밀하고 비싸 보였다. 필요할 때 렌즈들을 여러 개 겹쳐 원하는 배율을 만들어 내는 듯하다.

어렵쇼, 백의까지 입었네?

게다가 그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마족이었다.

사실 마족의 구분은 별 거 없다. 머리 위에 뿔? 날개? 

아니다. 마족의 특징은 다양해서 그런 외형적인 분류로 간편히 분류해 버리긴 무리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느냐?

간단히 대답하면, 보면 그냥 안다가 답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아냐고 반문해도, 역시 그냥이라고 밖에 대답할 말이 없다.

마족에게는 그들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 있다. 마력이라고 불러도 좋으리라. 임의로 붙인말이지만, 마족이란 명칭 자체도 내가 붙인 거니 별 상관없겠지.

마족들은 자신들이 가진 마력을 이용해 초능력인지, 마법인지 알 수 없는 ​초​상​능​력​(​超​常​能​力​)​을​ 발휘했다.

강제 노역을 하던 시절, 관리에 소홀했던 좀비 감독관이 마족의 일격에 구워지는 걸 본 적이 있다. 번쩍! 하더니 오만한 좀비 감독관이 시커멓게 타서 그대로 재가 되었다. 그 광경에 얼마나 떨었는지 모른다.

아직 그 힘이 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점은 그 힘을 통해 마족이 지하세계에서 군림한다는 것이다.

일단 정리하겠다.

마족, 마력, 마법.

마마마. 이렇게 지칭하니 간단해서 좋군.

현재, 이 지하세계에서는 <마족이라는 군림자들이 마력으로 마법을 부려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는 것.

내가 해놓고도 꽤 깔끔한 정의라고 생각한다. 똥에 박혀 있는 작금의 추태만 아니었으면 교단에 서도 좋을 텐데.

다음 생에는 임용고시를 쳐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아직 날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니, 발견했어도 관심이 없을지도.

누가 죽어가는 벽돌 굼벵이에게 눈길을 돌릴까.

“에잉~! 오늘은 참 수확이 없어. 요새 계속 이러니 위대한 연구에 차질이 생기잖아. 정말이지, 세상이 날 도와주지 않는구나!”

늙은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계속 혼자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궁시렁거렸다. 혼잣말이 많은 스타일 같았다.

불편한데, 저런 부류.

그나저나 슬슬 눈이 감겨 온다. 몸에 힘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뭐, 아직은 괜찮으니 저 늙은 양반의 행태나 지켜볼까?

매드 사이언티스는 주변을 종횡하더니 곧 근처로 왔다. 정확히는 부서진 동료의 잔해 위이다. 그는 막대기로 동료들의 시체를 휘휘 젓더니 작고 투박한 돌멩이 한 개를 주워들었다.

“역시 굼벵이들 영혼석은 조잡하기 짝이 없군. 이런 저질 영혼석에도 영혼이 들어간다는 사실이 재밌어. 그렇지만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들이지. 전혀 연마도 안 된 폐기처분급의 영혼석이니.”

혼잣말이 많은 그의 버릇 덕에 나는 한 가지 정보를 알게 되었다.

영혼석.

그렇다, 영혼석!

놀랍게도 동료들의 몸에는 비슷비슷한 영혼석이 들어가 있었다. 추측이긴 했지만, 이름에 비추어 볼 때 저건 영혼이 들어가는 중심핵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폐기처분급이라고 했으니 보다 상급의 영혼석도 있는 게 틀림없었다. 

아마 더 상위의 존재에게는 좋은 영혼석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뒤로 이어진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계속된 말로 제법 많은 정보를 얻었다.

일단 이 지하세계의 존재 대부분은 영혼석이라고 불리는 영혼이 들어가는 기관이 있다.

영혼석이 없는 부류는 그 영혼을 지킬 수 없다고 해서 '경계 밖의 자'라고 불린다. 실제로 영혼에 직접 영향을 주는 마법에 취약하거나 쉽게 휘둘리는 모양이었다.

또한 영혼석이란 시스템을 동원해 쉽고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듯했다. 이건 과거에 있었던 대전쟁 시기에 탄생한 시스템이라고 한다.

그리고 영혼석이란 것은 종류에 따라서 상당히 돈이 되는 듯했다. 이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영혼석 뿐만이 아닌여타 다른 대박도 노리고 쓰레기장을 뒤지는 모양이었다.

가난하구먼.

실험에 너무 돈을 많이 써서 그런 건가. 저렇게 가난하면 세계 정복은 요원할 텐데. 그리고 어차피 백날 연구해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애들은 따로 있잖아.

로봇 만화를 봐도 김박사는 언제나 조연이다. 전면에 나서는 파일럿이 사랑을 받지. 아, 물론 김박사, 남박사, 윤박사 등 여타 정의의 박사님들이 매드 사이언티스트란 건 아니고. 혹시 어딘가에 팬클럽이 있다면 사죄하고 싶다.



“음? 저건?”

그때 매드 사이언티스트와 정면으로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곧 광소를 터뜨렸다.

“캬캬캬캭! 아아 그렇구먼. 저 녀석은 똥 덩어리에 떨어져서 살아남은 건가! 억세게 운이 좋아. 낄낄낄. 저런 녀석은 데려가서 그 운이 내게 전염되게 만들어야 해. 뭐, 하인으로 부려도 쓸모가 있을 것 같고.”

아니, 이 양반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여보세요.

싫다는 듯 몸을 흔들었지만 그게 오히려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주위를 더 끄는 모양이었다. 늙은 그의 눈에는 가학심이 가득 차 있었다.

“요즘 일손이 부족한데 잘 되었구먼. 아니면 개조를 좀 해 볼까? 원판이 너무 밑바닥인데 개조가 되려나? 아니지, 아니야. 저런 최하급 벌레를 개조해 전투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도 나름 괜찮지 않은가! 낄낄낄. 그래도 굼벵이는 너무 답이 없으니, 좀비 정도로 만들어 주면 적당하겠어. 녀석이 동굴 오거를 이긴다면 그야말로…. 우낄낄낄!”

뭐가 재밌는지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나는 아무래도 생체 마루타가 될 모양이다.

거절할 권리는…… 역시 없으려나?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말든 그는 앞으로 다가오더니 손바닥에 침을 탁 뱉고는 슥슥 비볐다.

“냄새가 정말 지독해. 어차피 다 죽어가는 천한 몸뚱이 따위는 쓸 곳이 없지. 영혼석만 쏙 빼가서 이식하면 되겠군. 아무리 벽돌 굼벵이라도 목숨이 붙어 있는 존재의 영혼석은 나름 쓸모가 있기 마련이니.”

이 세계에서 육체는 하드웨어고 영혼석은 소프트웨어쯤 되는 모양이었다. 눈앞의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죽어버린 동료의 영혼석을 쓱 보더니 던져버렸는데,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나의 영혼석은 가져가려 한다.

귀한 것은 아닌지 탐을 내는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꽤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는 정도일까? 마치 내가 집에 가는 길에 들른 천원샵 같은 곳에서, 염가 제품을 바라보는 시선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개똥도 약에 쓴다고 하지 않는가?

응? 그 속담이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지이잉!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이상한 광선이 뿜어져 나오는 도구로 내 몸을 가르고, 영혼석을 재주 좋게 빼냄과 동시에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났을 때 나는 이상한 액체에 잠겨 실험 기구 안에 둥둥 떠 있었다.



좋아. 정말 본격적이잖아.

꽤 충격적이긴 했지만 이 정도는 만화에서 많이 봤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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