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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 시리즈 레이편

マリみて 祐麒シリーズ


원작 |

역자 | 淸風

브레이킹 하트


 맑은 아침 하늘 아래, 홀로 교내의 길을 걷는다. 오늘은 동아리 아침연습이 없고, 요시노는 학급당번이라 먼저 집을 나섰으니까, 정말로 혼자다. 마리아상 앞에서 평소대로 손을 모아 기원을 하고 교실로 향하려던 참에 불려, 걸음을 멈췄다.
 레이가 돌아본 곳에는 긴장으로 몸이 딱딱 굳어있는, 1학년으로 보이는 여자가 있었다.
“저저저저저저기, 레이 님! 이, 이거, 제가 만들었어요. 입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괜찮으시면, 그, 저기.”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곤, 레이와 눈을 마주치지 않도록 몸을 숙인 채로 내민 손 위엔, 사랑스런 포장이 놓여 있었다.
​“​고​마​워​―​―​―​쿠​키​려​나​?​”​
 받아들자, 손에 느껴지는 바슬거리는 감촉.
 소녀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채로 필사적으로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인다.
“고맙게 받을게……그러고 보면 당신, 전에도 컵 케이크를 만들어 줬었지?”
“에에에엣, 기, 기억해 주셨던 건가요?!”
 놀라서 눈을 크게 뜨며,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레이는 그 소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물​론​―​―​―​당​신​같​이​ 귀여운 애에게서 받은 과자를 잊을 수 있을 리 없잖아.”
 라고 말하며, 상냥하게 웃었다.
 순식간에 여자애는 머리에 열이 올라, 더위를 먹었던 것처럼 목덜미까지 새빨개져 버렸다.

 이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레이 자신은 초등부 무렵부터 동성에게 인기가 있어, 과자같은 걸 선물 받을 때가 자주 있었다 보니, 항례행사로서 건네받은 것들은 감사히 먹기로 한 거다.

“굉장히 대어네, 레이 님.”
 교실에 들어가서 자기 자리에 짐을 놓자마자 그런 소리를 들었다. 다가오면서 손을 들고 있는 건 쿠로다 미즈나 양. 중등부부터 놀랍게도 6년간 같은 반이었던, 사치코를 빼면 제일 친한 친구.
“정말, 오늘은 어떻게 된 거지.”
 라고 말하며 책상 위에 놓은 건 교실에 올 때 까지 받은 과자들. 밸런타인 데이도 아닌데 이렇게 잔뜩 받은 건, 확실히 흔한 일은 아니다. 오늘이 내 생일이었는지를 무심코 진지하게 고민해 버릴 정도다.
 그런 레이의 모습을 보고 미즈나 양이 소리를 죽이며 웃는다. “레이 양, 3년 연속인데 모르는 거야? 지금 시기, 1학년은 요리실습에서 과자를 만들잖아.”
“아아…….”
 그 말을 듣고 납득.
 그러고 보면 1학년 때도 2학년 때도 이 시기에 어마어마한 양의 수제 과자를 선물 받았었다.
“그렇다 쳐도, 여전히 플레이보이스럽네. 오늘 아침도 대체 여자 몇 명을 뇌쇄시킨 걸까.”
“싫다 참, 그런 짓 안 했어.”
“자각 없이 한 거면 더 무섭네. 상쾌한 아이돌 스마일로 인사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닿는 스킨십을 하고. 레이 양에게 그런 걸 당해 버리면, 대부분의 여자애는 한 방이야.”
 미즈나 양은 기막히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움츠린다.
 레이는 종이봉투에 과자를 담으면서 소리 없이 웃는다. 덧불여서 이 종이봉투는 상비하고 다니다, 이런 보통 가방에 들어갈 것 같지 않은 것들을 받을 때 쓴다.
 그런데 생각보다도 받은 과자가 많았던 건지, 다 못 들어간 과자 하나가 봉투에서 흘러 떨어졌다.
 레이가 줍기도 전에 가까이 있던 미즈나 양이 주워들어 건네주었다.
“자. 안되잖아, 사랑스런 후배에게 받은 소중한 걸.”
 그런 그녀의 손을 잡고,
“그렇지. 고마워, 미즈나 양.”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미소짓는다. 머리칼에서 뺨을 따라, 어깨까지 쓸어내린다.
 언제 닿아도 그녀의 머리카락, 뺨은 부드럽다. 무심코 이런 짓을 해 버리는 건 요시노에게 익숙해져 있으니까.
 그러자, 왠지 미즈나 양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붉게 물들었다.
“읏……아, 위험해, 뭐야 이 살상력. 익숙한 나마저도 한 순간에 떨어질 뻔 했어.”
“응?”
“레, 레이 양 너, 점점 더 솜씨가 훌륭해지네. 으으, 아직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어.”
 가슴을 누르며, 붉게 물든 얼굴로 눈을 치뜨며 올려다보는 미즈나 양. 으응―, 귀엽구나아. 이런 게 여자애답다는 거구나 싶다.
“그, 그러니까 가까운 거리에서 정면으로 그런 미소는 그만둬 줘―.”
“에, 아, 미안. 그럴 셈이 아니었는데.”
“무의식이라는게 더 성가시네.”
 함부로 친밀하게 대하지 말라거나, 상대를 안 가리고 꼬셔대지 말라거나 등의 이야기는 요시노에게도 항상 듣고 있지만, 정말로 레이 자신에게 그런 자각은 없는 거다. 단지, 호의를 드러내주는 상대에게는 상냥하게 대하고 싶고, 똑같이는 못하더라도 호의로 돌려주고 싶다고 생각할 뿐.
“미스터 릴리안도 좋지만, 가끔은 ‘귀여운 레이 양’도 보고 싶을지도.”
 작은 새가 지저귀듯 미소짓곤, 미즈나 양은 몸을 떤다.
 그러니까, 그런 미즈나 양 쪽이 훨씬 귀엽다니까.
“레이 양도 사랑을 하면 귀여워지지 않으려나.”
“사랑, 이구나…….”
 머리를 박박 긁는다.
 그야 물론 레이도 사랑을 하고 싶다. 유치원 무렵부터 계속 여자의 화원인 릴리안에서 자랐다곤 해도, 남자와 사랑을 해선 안된다는 건 아니다. 미스터 릴리안이라고 불리는 레이도 그건 마찬가지.
 오히려 자신의 내면이 남들이 보는 것과는 반대로 소녀 취향인 거니까,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은 다른 사람보다 클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것도 어느정돈 알고 있다. 이 나이가 되면, 아무리 온실에서 자라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해도 만화나 소설 같은 연애가 현실에 없다는 건 이해하고 있고, 큰 기대를 안지도 않는다.
 상밴된 마음을 안고 있지만, 그런데도 올해 여름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전환점이 될지도 모르는 이벤트가 있었다.

 유키 군과의 데이트.

 태어나서 처음으로 동년배의 남자와 데이트를 했다. 그것도 벌 게임같은 종류가 아니라, 저편에서 권해 준 제대로 된 데이트였다.
 즐거웠다.
 해프닝에 얽힐 일은 있었지만, 여자애다운 사랑스런 옷을 입고 머리모양을 바꾸고, 한 명의 소녀로서 유키 군과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이제 와선, 사실 그건 현실이 아니라 꿈이었던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도 든다.
 여름날의 환상.
 왜냐면 유키 군은 “또 만나줬으면 싶다”라는 듯한 의미를 담아 말했고 레이도 동의했을 텐데, 그 이후로 그 뒤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던 거다. 그래서 레이는 역시 꿈이었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 버리는 거다.
 그래도 집에 돌아가 옷장을 열어 보면 분명히 그 날의 원피스가 있었고, 추가로 컬러 박스 안에는 붙임머리도 들어 있어서, 틀림없이 존재했던 그 날을 뇌리에 떠오르게 만들어 준다.
 그러니까, 거짓말 같은 건 아닐 텐데.
 왜 유키 군은 아무런 연락도 주지 않는 걸까. 그 때의 말은 역시 그 자리만의 이야기였던 걸까. 어차피 그렇다. 연상이고, 자기 자신보다 키가 크고, 남자애같은 외모의 여자같은 게 마음에 들 리가 없는 거다.
 어차피, 자신 따윈―――.

“……오, 오늘 레이 님, 기합 굉장하지 않아?”
“그, 그렇네, 귀기어린다고 할까.”
 도복을 입고 있던 검도부 부원이 숨을 헐떡이며 남몰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쓸데없는 잡담 하지 마! 이야기 할 기운이 있으면 괜찮겠지, 다음, 좌우로 뛰기!”
 사양없는 레이의 목소리가 날아와, 부원들은 연습에 들어간다.
 그 날 연습은 전에 없을 정도로 지독했다고, 훗날 부원들은 입을 모아 말한 거였다.

 연습을 마치고, 갈아입은 레이가 도장을 나섰을 때 밖은 밝았다. 달력상으론 가을이 되었다곤 해도, 아직 여름의 기척은 가질 것 같지 않다.
 오늘은 요시노의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아서, 동아리에는 참가하지 않고 돌아갔다보니 귀갓길은 혼자다. 단지, 학교에서 집까지는 걸어서도 금방 갈 수 있는 거리니 혼자라도 별 문제는 없다.
 옆에서 내쏘는 듯한 태양 빛을 받으며, 천천히 걷는다.
 중간에 다른 학교의 교복을 입은 남녀 커플과 엇갈렸다. 둘은 사이좋은 듯이 수다를 떨며, 웃으며 걷고 있었다. 레이의 다리가 멈춰, 뒤를 돌아 둘의 모습을 눈으로 쫓는다. 남자의 손이 여자의 어깨로 뻗어, 끌어당기는 것 같은 자세가 된다. 여자는 웃으며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발 아래로 뻗어나온 두 그림자도 본체의 움직임을 따르듯 들러붙는다.
 사귀고 있는 걸까. 사이좋게 하교하는 중인 걸까, 아니면 딴길로 새서 놀고 있는 중에 우연히 만난 것뿐일까.
 선망의 눈길로 레이는 둘이 천천히 멀어져가는 걸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아가씨 학교이자 여학교인 릴리안에도, 남자와 사귀고 있는 사람은 당연히 있다. 릴리안은 경비도 삼엄하고 주위의 눈도 많기에, 교문 앞에서 여학생의 애인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은 그리 자주 보이지 않지만,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사귀고 있는 사람과 함께 하교. 단지 그것만인데도 어째선지 공연히 부러운 마음이 든다.
 동시에, 혹시나 레이 자신에게 그런 사람이 생긴다고 해도 함께 돌아갈 수 있는 건 겨우 10분 정도라는 데까지 생각이 닿자, 웃고 싶어졌다.
 어차피 말도 안 되는 꿈.
 교문에서 자신의 하교를 기다려 주는 남자도 함께 하교해 주는 남자도 없는 거다. 불만이 있는 건 아니지만, 조금 쓸쓸한 기분도 든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멍하니 있었던 걸까.
 문득 시야를 올려 바라보자 어느샌가 커플의 모습은 사라져 있었고, 여름의 저녁 햇빛에 물든 한적한 주택가만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같은 주 일요일.
 레이는 호시미가오카 고등학교에서 나와, 고개를 가볍게 돌렸다.
 오늘은 호시미가오카 고등학교와의 연습시합이 있었던 거다. 합동연습과 단체전을 행하고, 릴리안의 승리로 끝나 귀로에 올랐지만, 돌아가는 길에 수건을 놓고온 걸 깨닫고 홀로 호시미가오카 고등학교로 돌아온 거다.
 무사히 수건을 받고 밖에 나가자, 당연하지만 호시미가오카 고등학교 학생들의 모습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공학이기에 남자도 여자도 있고, 그 중에는 사귀고 있는 듯한 남녀의 모습도 보였다.
 나쁘지 않은 연습시합에 충실감을 느끼던 마음이, 조금 식었다.
 지금까지 여러 순정만화나 순정소설을 읽으며 연애에 아련한 기대는 가지고 있었지만, 거리를 걷는 동년배 커플을 봐도 이런 마음이 든 적은 없었다. 오히려 자신과 입장을 바꿔 상상 해 보거나, 상대 남자를 이상의 사람으로 바꿔놓아 보거나 했었다. (별로 잘 떠오르지 않았기에, 소설 등장인물로 할 때도 많았다.)
 이렇게 어딘가 애달픈 기분이 드는 건, 현실의 남자와 데이트를 했어설까.
 레이의 걸음은 기분에 비례하듯 늦어져간다. 그 탓인지, 앞으로 조금만 더 가면 버스정거장이 나오는 타이밍에 버스가 레이를 지나쳐 달려갔다. 승강장에는 아무도 없었고 내리는 사람도 없었던 건지, 정류장에서 멈추는 기색도 없이 버스의 모습이 사라져간다. 레이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곤, 걷는 방향을 바꿨다.
 휴일이라곤 해도, 연습시합을 했기에 교복 차림이다. 중간에 딴데로 새는 건 원래 안 되지만, 바로 돌아갈 마음도 안 들어 번화가 쪽으로 걸음을 향한다. 기분 전환삼아 새로운 케이크에라도 도전해 볼까. 어떤 케이크를 만들지 고민하면서 여러 가지 재료를 보며 돌아다니는 건 즐겁기에, 기분 전환에 딱 좋다.
 조금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레이는 번화가에 들어섰다.

“……우와, 귀엽네―.”
 저도 모르게 풀어진 표정으로 발걸음을 멈춘다.
 유리 너머로 바라보는 동그란 눈동자. 복슬복슬하고 동그스름한 몸. 열심히 흔들고 있는 꼬리.
 펫숍 윈도우 앞에서, 레이는 허리를 굽혀 강아지를 바라보고 있다.
 그 외에도, 몸을 뭉치고 잠자고 있거나, 물을 열심히 마시는 등,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풀어지는 광경에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춰 버린 거다.
 그래서 깨닫지 못했다. 바로 옆에 서 있었었는데.
“……저기, 실례합니다.”
“예?”
 고개를 든다.
 펩숍 점원이려나 생각했던 레이는, 옆에 있는게 유키 군이라는 걸 깨닫곤 펄쩍 뛸 정도로 놀랐다.
“엣, 아, 유키 군. 어, 언제부터 거기?”
“으음―, 사실은 꽤 전부턴데요.”
“에에에, 부, 부끄러운 모습 보여 버렸네. 말 걸어주면 좋았을텐데.”
“그럴까도 ​생​각​했​었​는​데​…​…​그​,​ 너무 귀여워서, 무심코 넋을 잃어 버려서.”
“아아, 응. 확실히 그렇지. 나도 그랬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다시금 강아지들 쪽으로 눌을 향하자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이쪽을 올려다보는 모습에 아무래도 입가가 풀어져 버린다.
“아……아뇨, 그쪽이 아닌데요.”
“에, 뭐가?”
 왠지, 유키 군은 부끄러운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남자니까 넋을 잃고 강아지를 바라보는 게 부끄러운 걸지도 모른다.
“그래도, 정말로 귀엽네에.”
 케이지에 눈을 돌리고, 안의 개를 바라본다.
 미니추어 닥스훈트, 퍼그, 도이 푸들, 포메라니안, 시추 등의 개들이 기쁜 듯이 레이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계속 바라봐도 질리질 않아.”
“저, 정말, 그렇네요.”
“헤에, 유키 군, 좋아하는 구나.”
“에, 아, 저기, 예.”
 남자애도 역시 귀여운 건 좋아하는구나 싶어, 조금 기뻐진다. 싱글벙글 웃으며 레이가 옆에 선 유키 군에게 눈길을 향하자,
 왠지 유키 군은 새빨개진 채로 멈춰서 있었다.
“왜 그래, 그렇게나 빨개져서.”
 웃으려는 중에 깨달았다.
 방금 전까지 유키 군에게 조금 화가 나 있었던 사실을. 웃음을 억누르고, 아쉽긴 하지만 펫숍에서 몸을 돌린다.
“그럼 나, 돌아갈테니까.”
“에.”
 갑자기 레이가 걸음을 옮긴데 놀란 건지, 유키 군이 당황스런 듯이 쫓아와서 옆에 선다.
“저, 저기, 하세쿠라 씨. 왜 그러세요, 갑자기.”
“별로.”
 최대한 쌀쌀맞은 느낌으로 대답한다. 레이의 모습을 살피는 듯한 모습으로 옆에서 걷는 유키 군.
 무슨 일인가 싶어 당황하고 있는 게 손에 붙잡힐 것처럼 느껴지지만, 무시하고 걸음을 옮긴다.
“혹시나 아까 걸로 기분 상하셨나요?”
“그렇진 않은데.”
 슬쩍 눈만을 돌려 옆을 바라보자,
 매달리는 듯한 눈빛으로 올려다보는 유키 군의 표정이 방금까지 펫숍에 있던 강아지들과 겹쳐, 저도 모르게 가슴이 메인다.
 귀엽다고 느꼈지만, 여기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시치미뗀 표정.
“그, 그러고 보면 하세쿠라 씨는, 오늘은 이 부근에 볼일이라도?”
“연습시합이 있었으니까.”
“아아. 하세쿠라 씨의 검도복 차림, 예쁘겠죠. 다음에 봐 보고 싶네요.”
“그런 소릴 해도…….”
 저번에 데이트 했을 때 다시 권해도 괜찮냐고 말해 놓고, 그 뒤에 아무런 소식도 없었으면서. 어차피 지금 이야기도 말 뿐인게 아닌가 싶어 미심쩍은 기분이 든다.
“다음, 가을에 시합이 있죠?”
“응. 잘 알고 있네.”
“아, 네. 그 시합 날, 응원하러 가도 괜찮나요?”
“엣.”
 그 말을 듣고 동요한다.
 확실히 시합하는 애들 중에는, 남친같아 보이는 남자가 응원하러 오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본인은 안 들키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그런 건 주위에서 보면 의외로 빤히 보이는 거다. 특히 여자애라는 건 그런데 둔하다.
 혹시나 유키 군이 레이의 응원을 하러 온다면 레이는 분명히 의식할 거고, 그러면 우선 틀림없이 릴리안 검도부만이 아니라 참가하러 온 다른 학교 애들마저도 깨닫고, 관계를 의심하게 될 거다.
 그렇게 됐다간, 어떻게 될까.
 고민하다 얼굴이 새빨개질 것 같아 허둥지둥 머릿속에서 생각을 지운다.
 화내고 있었을 텐데 쓸데없는 걸 생각해서 어쩔 거냐고, 마음속으로 자신을 공격한다.
 그렇게 혼자서 멋대로 이래저래 혼란에 빠져있자, 유키 군이 마음을 굳힌 듯 입을 열었다
“저기, 하세쿠라 씨, 죄송했습니다.”
“에, 뭐, 뭐가?”
 갑자기 사과받아, 레이 쪽이 당황한다.
“그게, 그 뒤에 전혀 연락을 넣지 못해서.”
 그 말을 듣고, 자연스레 가슴이 철렁했다.
 틀림없이 저번 데이트 끝에 유키 군이 입에 담은 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잊고 있던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조금은 안심된 반면, 기억하고 있었다면 어째서 연락을 주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
“사실은, 연락을 하고 싶었는데요.”
“왜 안 한 거니?”
 말투가 조금 뾰족해진다.
 유키 군은 부끄러워하는 듯 하면서도, 그런데도 이유를 말했다.
“사실은, 그, 권하고 싶은 마음은 ​산​더​미​같​았​는​데​…​…​.​”​
 저번 데이트의 지출로, 어디 놀러 가자고 권하려 해도 자금이 없어서 권하지 못했다는 모양이다.
 얼굴이 새빨간 유키 군을 보고, 레이는 잠시 얼이 나간 뒤,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아니, 다음 순간엔 정말로 입가를 누르며 웃기 시작했다.
“하, 하세쿠라 씨?”
 웃기 시작한 레이를 보고 동요하는 유키 군.
 레이는 아직껏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싫다, 유키 군.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었어?”
“그런 거라니……제, 제게는 절실한 문제라.”
 삐친 듯한 모습을 취하는 유키 군이 사랑스럽다.
“그래도, 전화 쯤은 할 수 있었잖아.”
“예……그래도 역시, 권하지도 못할 상황에 전화만 하는 것도.”
“차암……전화로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즐거운……데.”
 말하는 중에 점점 소리가 사그라든다. 굉장히 부끄러운 이야기를 입에 담는 기분이 들었다.
“그, 그럼 다음에 전화 할게요.”
“으, 응. 기다리고 있을게.”
 왠지 부끄럽다보니 말이 없어진다.
 어느덧 저녁이 되어, 하늘은 붉은빛으로 물들고 주위 거리에도 짙은 주홍빛으로 바뀌어 있었다.
 눈을 땅으로 향하자, 길게 뻗은 그림자가 둘.
 실제 키보다 그림자가 길어졌지만, 그런데도 물론 레이의 그림자 쪽이 유키 군 그림자보다 길다.
 신경 써봐야 해결할 도리 없는 부분을 다시금 느껴, 한숨이 나올 것만 같은 생각을 어떻게든 멈춘다.
 그보다 더 신경쓰이는 게 있었으니까.
 엇갈려갔던, 교복 차림 남녀의 모습.
 지금 레이도 역시 유키 군과 나란히 서서 교복 차림으로 집을 향하고 있는 중이니, 이건 그야말로 레이가 꿈꾸던 상황이었다.
 의식한 순간 얼굴이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옆에서 걷던 유키 군의 뺨도 붉은 기가 돌기 시작했지만, 과연 레이와 비슷한 걸 생각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저녁 햇빛에 물든 건지, 딱 봐서는 구분이 가지 않는다.
“……저, 말야.”
 부끄러움과 기쁨이 뒤섞인 채로, 뺨을 손가락으로 긁적이면서 레이가 말한다.
“따, 딱히 돈을 써서 어디 나가는 게 아니라도, 나는 이렇게 함께 이야기같은 걸 하면서 돌아다니다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싫지 않은데?”
 약간 바람이 불어, 짧은 머리칼이 흔들린다.
 옆에서 나를 올려다보는 유키 군의 눈이, 조금 크게 뜨였다.
“유, 유키 군 입장에선 시시할지도 모르겠지만.”
“저도 즐거워요!”
 바로 대답을 해 온 유키 군.
 눈 앞의 횡단보도 신호가 빨간 색으로 바뀌어, 둘은 멈춰선다.
 역은 눈 앞. 일요일이기도 하기에 굉장히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둘은 말없이 나란히 서 있다.
 이윽고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어, 사람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둘도 마찬가지로 걸음을 옮긴다.
“저기, 하세쿠라 씨. 오늘 집 근처까지 바래다 드려도 괜찮을까요?”
 그 말을 들은 레이는 혹시나 요시노에게 보이면 어쩌지 하는 생각은 떠올리지도 못하고.

 다만 생긋 미소지으며.

“에, 아, 응.”

 높아진 가슴 고동을 느끼고 있었다.




 다음 월요일.
 점심시간이 되어, 레이는 미즈나 양과 책상을 붙여 점심 식사 준비를 시작한다.
 가방에서 바삐 도시락가방을 꺼내, 그 안에서 도시락통을 꺼낸다. 어제는 그 뒤에 유키 군과 역 근처 슈퍼에서 쇼핑을 같이 했는데, 그 때 오늘 도시락 반찬을 산거다.
 그런 생각을 하며 도시락을 열려고 하는 중에,
“……왠지 오늘의 레이 양, 신나 보이네.”
 비즈나 양이 약간 놀란 눈으로 레이를 보고 있다.
“에, 그래?”
“응. 저기, 무슨 좋은 일 있었어?”
 책상 위로 몸을 약간 들이대며 물어보는 미즈나 양. 레이 자신에겐 딱히 기분이 좋다는 의식이 없기에,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미즈나 양은 납득이 안 되는 듯 눈썹을 찌푸렸지만, 계속 그러고 있을 수도 없고 식욕에는 이길 수가 없는 모양이라 바로 도시락 쪽으로 의식을 돌렸다. 뚜껑을 열자 안에 보인 건 사랑스럽게 세 가지 색깔로 꾸며진 밥과, 가라아게나 미니토마토가 보여서 굉장히 맛있을 것 같았다.
 레이도 역시 자기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눈에 들어온 반찬을 보고, 어제 슈퍼에서의 대화를 떠올린다.

“에, 제가 좋아하는 음식, 말인가요?”
“응. 평소에는 어떤 걸 먹고 있니?”
“음―, 그렇네요…….”
 그리고 얼마간 입에 담은 구체적인 품명이나, 혹은 좋아하는 맛, 장르 등의 내용을 바탕으로 슬쩍 유키 군 취향에 맞을 만한 요리 재료를 산 걸, 유키 군은 깨닫지 못했던 모양이었지만.

“―――후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미소와 함께 그런 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늘 레이가 만들어 온 건 유키 군이 좋아한다는 반찬의 일부. 연습의 의미도 담아, 이래저래 시험해 보기도 했다.
“잘 먹겠습니다.”
 레이가 말하자,
“아……응, 자, 잘 먹겠습니다.”
 왠지 미즈나 양이 당황한 듯한 모습으로, 레이에게 뒤늦게 손을 맞대고 식사 인사를 했다.
 조금 신경 쓰였지만 그보다 요리의 완성도가 신경쓰인다. 물론 맛은 봤지만, 시간이 지나서 식으면 맛은 꽤 바뀌어 버릴 때도 있다. 도시락 반찬은 그런 것도 제대로 고려하고 만들어야 하는데, 과연 이번은 어땠을지.
 그런 걸 생각하며 젓가락을 뻗어, 반찬을 하나 집고 입으로 옮긴다.
“……응.”
 막 만들었을 때엔 이기지 못하지만, 여전히 맛있었다. 레이는 만족하며 홀로 미소지었는데,
 눈앞의 미즈나 양이 이상하게도 얼굴을 붉히며 레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왠지, 오늘의 레이 양, 무지 귀여워. 왜, 왠지 한 순간 돋웠어.”
“에, 싫다, 왜 그러니 미즈나 양?”
“그, 그건 내가 할 말이야. 레이 양, 무슨 일 있었지? 솔직히 가르쳐 줘.”
“에―, 아무것도 아냐.”
“거짓말―. 그치만 평소엔 굉장히 멋있는 레이 양이 무진장 귀여웠는데!”
 미즈나 양이 잘 이해가 안 가는 이야기를 하며 몸을 뒤튼다.
 잘은 모르겠지만, 레이는 웃으며 도시락을 먹었다.


 따뜻하고 상냥한 기분을 동시에 가슴에 떨구면서.




~추신~
 오랜만의 레이님입니다.
 레이 쨩은 역시 귀엽지요 절대로! 그리고, 분명 화낸다고 말해놓고 화를 못 내는 성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레이 쨩을 좋아해요.

역자의 말:
 평안하세요, 청풍입니다. 아슬아슬 세이프! 오늘 추신은 급히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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