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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ta


03.잔잔한 폭풍전야.

03.잔잔한 폭풍전야.


03.잔잔한 폭풍전야.

03.

주륵 주륵, 눈도 비도 아닌 진눈깨비가 요란스레 내리는 밤.

할 것도 없는 나는 피시방에서 하던 게임을 멈춘뒤 집으로 갈 채비를 하곤 밖으로
나섯다.

문득, 게임에 정신팔려서는 점심시간에 빵만 먹은것빼곤 오늘 아무것도 못먹었던것이
몸이 깨우친듯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내 배에서 울러퍼졌고 집 근처에 자주 들리는
편의점이 열려있었다.

저기라도 가볼까, 요리는 솔직히말해서 집에 재료도 없으니.

딸랑,딸랑 하고 조금 따스한느낌의 편의점 실내에 들어간다, 이시간에는 사람들도 없는것인지 중학생같은 키의 여자애가 편의점 알바인듯 조용히 나를 슬쩍 응시할 뿐.

문제는 저 여자, 뭔가 작은 다람쥐 같은게 안아주고싶은듯한 모습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살짝 빛을 받아서인지 조금 빛나는듯한 보라색 눈, 긴 흑발의 머리가 평범할법싶지만 나의 마음에는 쏙 들어버린 여자아이.

여태보았던 화장진하고 매캐한 담배연기만 입에 흘리고 오빠 오빠 거리며 온갖 가식적 모습을 보이던 여자들과는 달리, 이 여자아이는 입에 흘리는 담배연기도 달달할거같은 기분 이였다.

그래도 번호를 딴다던가 할것은 아니다. 어차피 알바인듯한데 가끔은 자주 마주칠 일이 있겠지.

적당한 편의점 도시락과 사은품으로 딸려오는 콜라를 계산대에 툭 둔다.

그리고는 비록 교복차림이지만 거의 받아줬던 곳이니까, 입을 천천히 열어서 그 알바한테 말을 건내었다.


"말보로 레드 주세요."


음악소리 하나 나오지 않는 조용한 이 공간에서 조그마한 그녀의 모습, 보랏빛 눈이
마음에 든다. 아니 모든것이 끔찍히도 아름다웠다.

그 조그마한 입술에서 옅게 한숨이 나왔다. 그 한숨조차 공기를 달짝지근하게 만들어
버리는것같아서 심장이 두근거렸다.


"미성년자에게는 담배 안팝니다. 다른곳 알아보세요."


하, 하고 내 입에서는 한숨과 동시에 짜증스럽다는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런 알바는 없었다, 있었다해도 이리저리 눈치보다가 챙겨주기도 했어서인지 이런
알바는 도통 본적이 없다.

적당히 구슬려서 팔게 할까, 그게 제일 좋을것만 같았다.


"괜찮아요, 다른 알바들도 다 줬어요. 당신만 처벌받는다는 생각은 하지마요."


"그래도 주면 안돼죠. 미성년자에게 담배를 파는것은 엄연한 불법입니다. 저 벌금
물어요."


아, 슬슬 짜증이 밀려온다, 마음같아서는 온갖 쌍욕을 하고싶지만 그래도 참자, 내가
마음에 드는 여자이니까. 어찌저찌해서 잘될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러는 당신도 ​미​성​년​자​인​거​같​은​데​.​ 한 중학교 2학년정도는 됐나? 동생?"


"뭔 중학교 2학년 꼬맹이라는거에요. 나 너랑 같은 학교거든?"


조금스레 짜증을 내는 그녀의 찌푸린 눈썹과 욕짓거리를 중얼거리는 입술이 참 곱다.
그보다 같은학교라니, 이 무슨 말도 안돼는일이.


"....너 몇학년 몇반이야."


나지막히 무표정으로 물어보는 나를 본듯 그녀의 작은 몸집이 움찔, 하고 떨린다.

흡사 길가에 피어난 들꽃을 보는듯하여서 쾌감이 들었다, 정확히는 들꽃과도 같은
그녀를 내 손으로 악착같이 뜯어버리고 싶었다.


"....2학년 3반. 정..하민."


그 이름을 듣는순간, 숨이 멎을뻔 했다, 정확힌 숨을 순간 내 힘으로 멈춰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사람 인생은 자기 의지대로 안됀다더니, 이런 일이 일어날수도 있구나.

이 여자와 나는 인연인것같다.

그것도 아주 질긴인연.

끊을수도 내팽개칠수도 없는 인연말이다.

그녀는 아무말 안하고 있는 내가 수상하다고 생각한듯 지긋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에는 내가 한심스럽다고 생각하게된듯 주섬주섬 말보로 레드 한갑을
꺼내주었다.


"여기, 내가 어제 하나 샀던거야. 공짜로 줄게. 몇개 피우고 질려서 말이야."


"여자가 담배도 피우는건가, 어울리지도 않는 외모에 그런다니 세상 참 말세다."


"그냥 주는대로 받아. 그리고 언젠가 학교에서 만나면 아는척이라도 해줘."



그래, 만나는정도가 아니겠지. 넌 내가 가질거니까.

대충 그녀가 계산한 도시락과 그녀가 건내준 담배를 받곤 그녀에게 짧게나마 안녕
하고는 밖을 나선다.

나가려는 순간 그녀의 조용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나의 귓가에 울려퍼지었다,
귀 고막까지 때리는듯한 느낌에 움찔하곤 뒤를 돌아서 다시 카운터 앞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저기, 이것도 인연인데 번호, 알려줄래?"


"여자에게 번호 따이는건 처음인데. 여기."


의외라는듯한 눈을 하는 그녀와 번호 교환을 한다, 아무 생각없이 들어간 편의점이
이렇게나 인연의 끈 역할을 할지는 아마 아침의 나는 까마득히 몰랐을 것이다.


"나 이제 간다. 나중에 보자."


"그래. 잘 가."


천천히 발걸음을 문을 지나 집으로 옮긴다.

아마 그녀는 모를것이다, 자기자신을 벼랑끝으로 몰아세우는 행동을 하게 된것을.

나를 무시하는편이 그나마 자기 처신에 좋았을거란것을 말이다.

난 이제부터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나 다름없게 될거니까.



훗날이 기대되는, 폭풍전야와도 같은 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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