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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 요리를 위한 레시피1 -입문편-


투고 | V노블





과거의 인연 
Prologue. 요리 예찬 
1장. 요리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지루한 세계 
2장. 반쪽짜리 마법사와 허세부리는 여관주인 
3장. 어브노말계 서버 
4장. 내 주방보조와 서버알바가 완전 수라장 
5장. 요리와 나의 어사일럼 
Epilogue. 셰프와 향신료 
작가 후기 


1장. 요리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지루한 세계 (1)


 ───그러니까, 건물들. 건물들의 모습이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게임이나 영화에서 나올 법한 그런 건물이었다. 돌을 깔아놓은 울퉁불퉁한 도로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한국에서 이런 곳은 본 적이 없었다.

“……영화 촬영장인가?”

 무심코 중얼거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름 그럴듯하다. 생전 처음 보는 풍경이 신경 쓰이긴 하지만 그것보다 일단 허기를 해결하는 것이 먼저다. 미칠 듯이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식당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주변을 살펴보는 그때 하나의 푯말이 눈에 띄었다. 처음 보는 꼬부랑 글씨가 적힌 나무 표지판.

“식당 겸 여관…?”

 처음 보는 글씨,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고 해야 하나. 뭐지? 내가 저런 글자를 알고 있었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 발은 부지런하게 식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래, 어떤 글자인지가 무슨 상관인가. 지금은 3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 배가 고프다. 배를 채우는 것이 우선이다. 끼익, 거친 소리가 나는 식당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제일 근처에 있는 의자에 앉으니 3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외국인? 파란색 눈동자, 슬슬 벗겨지기 시작했는지 아슬아슬하게 이마를 넘어간 머리카락은 분명 금색이었다. 여기 외국인가? 거기다가 입고 있는 옷은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런 의상이다.
 무슨 영화라도 촬영을 하고 있나? 캐리비안의 해적?

“식사를 하러 왔나? 아니면 여관? 그것도 아니면 둘 다?”

 외국인의 입에서 나온 언어는 생전 처음 듣는 언어였다. 한국어는 아니다. 그리고 영어도 아니다. 그렇다면 일본어? 물론 그것도 아니다. 야동이나 애니에서 듣던 일본어는 저런 것이 아니었다. 중국어일까?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다는 점에선 공통점이 있을 수 있겠군.

 그런데 어째서 난 저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거지?

 계속해서 떠오르는 의문들. 아니,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은 일단 배부터 채우는 것이 우선이다. 말이 통하는 게 무슨 문제란 말이냐.

“식사를 하고 싶은데 할 수 있을까요?”

“금방 가져다주지.”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말을 했는데 다행인지 아닌지 외국인은 나의 말을 알아들었다. 근데 메뉴 주문도 안 받나? 설마 여긴 하나의 메뉴밖에 없는 그런 식당인가? 그렇다면 꽤 기대된다. 메뉴가 하나밖에 없는 곳은 맛집일 가능성이 크니까.

 무슨 음식이 나올까 기대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휑하다. 인테리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스승님이 본다면 한숨을 내뱉을 그런 곳. 나는 그렇게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지만, 정수기가 없는 것은 조금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물수건도 가져다주지 않는 것을 보면 서비스는 좋지 않다.

“여기 음식 나왔네.”

 구경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음식이 나왔다. 음식은 미리 끓여서 준비해놓는 건가. 생각보다 빠르게 나왔다. 기대한 찬 얼굴로 외국인이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음식을 바라보았다.

“…응?”

 나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를 내뱉었다. 이게 뭐야? 음식? 나무 그릇 안에 들어있는 것은 희멀건 국물과 감자, 당근 따위가 들어가 있는 ‘스튜’ 비스무리한 액체였다. 음식의 완성은 ​플​레​이​팅​(​p​l​a​t​i​n​g​)​이​라​고​ 배운 내게 있어 앞에 있는 이 음식은 여러 가지로 충격적인 비주얼이다.

 아마 스승님이 본다면 그릇을 들어 저 외국인 얼굴에 던져버리지 않을까?

 이걸 먹어야 할까 고민하다가 나무 수저를 들었다. 일단 먹자. 지금의 난 무지하게 배가 고프고 어떻게든 허기를 채워야 하니까. 그렇게 결심한 뒤, 수저로 국물과 감자를 떠서 냄새를 맡았다. 뭐지 이 냄새는? 흙냄새? 세상에 무슨 스튜에서 흙냄새가 나. 한숨을 내뱉었다. 더 먹기 싫어지는군. 잠시 고민을 하다가 눈을 감고 수저를 입에 넣었다.

“……이게 무슨.”

 헛웃음이 터졌다.

 ───무슨 맛이지 대체? 대충 비유를 하자면 더운 여름날 점심시간에 실컷 축구를 한 남고생의 양말을 핥은 것 같은 맛? 내 어휘력으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맛이다.

 감자는 식감이 서걱서걱하니 덜 익었고 국물은 맹맹하다. 무언가 ​거​슬​리​는​-​미​끈​거​리​는​-​것​도​ 느껴지는데 이거 설마 양파인가? 대체 양파를 어떻게 조리했길래 이딴 식감이 되어버린 거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거기다가 감자에서는 껍질을 제대로 깎지 않아 흙 맛까지 느껴졌다. 세상에 감자를 캔 다음에 그대로 집어넣고 끓였나.

 제대로 데우지도 않았는지 음식의 온도는 차갑다는 느낌에 가까웠다. 한여름에 씻지 않은 사람들이 들어간 수영장 물을 마신 기분. 신선함? 그딴 게 있을 리가 없다. 차라리 남자 혼자 자취하는 방의 휴지통에 있는 휴지가 더 신선하겠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화장실로 들어가 속을 전부 비워버리고 싶은 기분이다. 여기가 어딘지, 어째서 말이 통하는지, 그런 머리를 어지럽히던 생각들이 이 충격적인 맛으로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이딴 걸 돈을 받고 판다고? 지금 당장 일어나서 저 외국인의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죄다 쥐어 뜯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헛웃음을 내뱉으며 수저로 스튜에 있는 당근을 건드려보았다. 세상에. 당근은 완전 생당근이네. 내가 인간이 아니라 토끼로 보였나? 아마 저 외국인은 요리만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시력도 좋지 않은가 보다.

 물을 마셔 입을 헹구지 않으면 계속 짜증이 날 것 같아서 물을 부탁했다. 나의 부탁에 외국인은 쇠로 대충 만든 컵을 가져다주었다.

 더는 놀랄 일이 없을 것 같은데 그것도 아니었다. 세상에, 대체 뭐야 이 컵은. 이곳에 들어와서 세상을 많이도 부르는군. 아마 지금까지 살면서 부른 세상보다 더 많이 불렀을 거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한숨을 내뱉었다.

 음식점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인테리어, 나무 식기, 이곳저곳 찌그러진 쇠로 만든 컵, 신선하지 않은 재료들, 만든 요리는 음식물 쓰레기. 거기다가 바닥이나 테이블의 상태를 보면 위생도 최악이다.

“환장하겠네.”

 이딴 건 음식점이 아니다. 요리사로서 절대 인정할 수 없다. 배가 고프지만 더는 이 엿 같은, 아니 이것을 엿에 비교하는 것은 엿에 대한 실례로군. 어쨌든 내가 아무리 배가 고파도 도저히 이 음식물 쓰레기를 먹을 수는 없다. 손을 들어 다시 한 번 외국인을 불렀다.

 “빵이라든가, 그런 건 있습니까?”

 이딴 것을 정말로 돈 받고 파냐고 화를 낼 힘조차 없었다. 분노를 넘어 헛웃음이 나오는 그런 단계. 고개를 끄덕이며 주방으로 들어간 외국인은 곧이어 차갑게 굳은 빵 2조각을 가져왔다. 어쩜 내 예상에서 벗어나질 않지? 차갑게 굳은 빵을 만져보니 겉이 굉장히 딱딱했다.
 뭐야 이건. 빵이 아니라 빵처럼 생긴 돌멩인가? 힘겹게 빵을 반으로 가른 뒤 안을 손으로 뜯어 먹었다. 푸석푸석하고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는군. 만든 지 얼마나 된 거야 대체. 예상도 가지 않는다.
 이런 것을 먹을 바에야 쿠페빵을 요구한다. 위장에 죄스러움을 느끼며 허기를 대충 채웠다.
 더는 여기에 있고 싶지 않다. 식사라고도 할 수 없는, 그저 허기를 채울 뿐인 작업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에 더 있다가는 분명 난 저 외국인의 얼굴에 그릇을 던져버릴 것이다.

“얼마죠?”
“1페니일세.”
“……페니?”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화폐였다. 어디였지? 어디서 들었더라. 머리를 쥐어짜며 떠올리다가 영국의 동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이곳은 영국인가! 발음이 약간 잘난 척 하는 게 그런 것 같긴 한데. 만약 이곳이 영국이라면 방금 먹은 그 끔찍한 음식물 쓰레기가 나름대로 이해가 간다.
 응, 그래. 영국 음식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그것보다 그렇다면 난 영국에 대체 어떻게 온 거지? 그때 그 꼬맹이를 만나 기절하고 요리 불모지 영국으로 납치당한 건가. 어째서 나를? 그런 생각들이 떠올랐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먼저 해결할 문제가 있었다.
 돈이 없다. 지갑에 있는 거라곤 만 원짜리 3장과 오천 원짜리 한 장. 그리고 이번에 발급받은 주민등록증과 교통카드가 전부다.
 ──즉, 영국 돈이 없다는 거다.

“혹시 한국 돈도 받으시나요?”
“……한국?”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까 해서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되물음이었다. 설마 한국을 모르는 건가? 자랑스러운 김연아의 오른발과 박지성의 왼발이 있는, 그리고 강남스타일이 항상 흐르는 한국을?

“Do you know Kimchi?”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군. 영지 이름인가? 어느 쪽에 있지? 혹시 에니케가 아닌 다른 왕국에 있는 건가?”

 개드립도 못 치겠군. 한숨을 내뱉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잠시 고민을 하다가 결국 나는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그, 제가 지금은 한국 돈밖에 없는데……, 혹시 괜찮을까요?”

 그렇게 말하며 지갑에서 전 재산을 꺼내 외국인에게 내밀었다. 외국인은 내가 내민 돈을 보더니 미간을 사정없이 찌푸린 뒤 말하였다.

“그러니깐 지금 자네는 돈도 없이 음식을 먹었다, 그건가?”

 음식이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죠. 그리고 돈이라면 한국 돈이 있고. 외국인의 말을 정정해 주려다가 입을 꾸욱 다물었다. 그런 소리를 해봐야 지금 내게 도움이 되는 거라고는 없다. 가만히 서서 외국인을 쳐다보았다. 외국인은 잠시 고민을 하는지 지저분하게 난 턱수염을 긁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어쩔 수 없군.”

 외국인이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뼈를 자를 때나 쓸 것 같은 거대한 식칼을 꺼내더니 쾅, 하고 휘두르며 말하였다.

“그 손을 자르도록 하지.”
“예?”
“무전취식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자, 따라오게.”

 너무나도 평범하게, 밥을 먹어야지라고 말하는 것 같은 태도에 반응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외국인이 내 손을 붙잡았다. 아파?! 아, 아니. 그것보다 잠깐! 손을 자르다니! 무슨 소리야! 절대 안 돼!

“자, 잠깐만요!”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다른 곳이 된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손은 안 된다! 손은 내 재산이다. 이 손으로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다.

“잠깐은 무슨 잠깐인가. 빨리 따라오게. 허어, 버티지 말고. 계속 그러면 다리도 분질러 버리는 수가 있다네.”

 허허허, 하고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외국인이 말했다. 미친, 싸이코 아니야. 이게 무슨 한니발도 아니고! 숲에서 벗어났더니, 이딴 곳이냐! 젠장, 어떻게 하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외국인은 착실하게 내 손을 자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안 돼! 손은 정말 안 된다. 외국인이 치켜 들은 칼을 보고 나는 최대한 크고 빠르게 소리쳤다.

“일, 차라리 일할게요! 설거지, 청소, 요리! 다 잘합니다!”

 팔을 붙잡고 있는 손에 힘이 빠졌다. 망설이는 표정. 분명 지금 이 외국인은 갈등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이 기회다!

“요리면 요리, 청소면 청소, 설거지면 설거지. 진짜 다 할 수 있어요!”

 이런 곳에서 요리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손을 잘리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외국인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의심쩍은 목소리로 말했다.

“비리비리 해 보이는데 잘할 수 있겠나?”

 팔을 놓아주며 미덥지 않다는 외국인을 향해 입꼬리를 올렸다. 비리비리 해 보인다고? 흥, 요리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엄청난 체력을 요구한다. 주방은 전쟁이다. 탐욕스러운 손님들이 1분도 쉬지 않고 요리를 요구하고 우리는 그런 손님들을 완벽하게 만족시켜야 한다.
 쉴 틈 따윈 없다. 계속해서 극한까지 몸을 몰아붙인다. 무거운 프라이팬을 휘두르고, 칼로 재료를 썰고, 요리를 하고, 접시에 플레이팅을 하고.

“말로 하는 것보다 보여드리죠.”

 주방에 서는 것은 단순하게 요리만을 잘해서는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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