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늦은 밤.
겨우 업무에서 벗어난 토시키는 한밤중의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차로 다니면 편하겠지만, 이곳은 차로도 오기 힘든 곳 중 하나다.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산을 오르던 그는 이윽고, 목표했던 장소에 도착했다.
…다행이다.
올라오면서도 어느 정도 예측은 했지만.
이곳은 다행히 혜성의 낙하피해지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라 피해가 없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조금 더 발걸음을 옮겼다.
목적했던 곳은 산속에 자리 잡은 작은 공동묘지. 이토모리 주민들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곳이다.
그리고 그 한편에 위치한 것이,
미야미즈 후타바(1970.10.03. ~ 2009.5.27.)
토시키는 조금 머뭇거리면서 아내, 후타바의 묘비 앞까지 걸어갔다.
종종 바쁘지 않을 때마다 이곳을 찾기는 했지만, 그때마다 그녀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더불어 이토모리의 미야미즈 신앙에 대한 분노로 인해 제대로 예를 갖추지 못했었다는 기억이 떠오른다. 그는 준비해온 향을 피우고는 가볍게 그 앞에 꿇어앉아 합장을 했다.
“당신이 그때, 했던 말. 그때 이해하지 못해줘서 미안해.”
지금도 눈을 감으면 아련히 떠오르는 후타바의 모습이.
‘모든 것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야 해요.’
아직도 후타바의 목소리가 귀에 아른거렸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준비해온 술을 묘비 앞에 놓았다.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지금에야 얼마 전 일어난 기적과도 같은 일에 의해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미츠하는… 요츠하는 당신과 같이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 아이들이 살아가야할 이 마을을, 당신을 떠나보낸 이 마을을 좀 더 좋은 마을로 만들고 싶어서.
나는,
“오늘 미츠하가 말이지. 도쿄로 가고 싶다고 하더군.”
그는 그렇게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것도 어머니께서 말씀하시던 ‘맺음(무스비)’라는 걸까?”
보수적인 성향이자, 신사를 지켜야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던 어머니, 히토하도 이번 일로 무언가 깨달은 것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대로 흘러가는 것 또한 그녀가 말하는 신의 맺음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미츠하의 도쿄 행에 대해서도, 더 이상 미야미즈의 신사를 잇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별 다른 말씀은 하지 않았다.
필요하다면 어머니와 담판을 지을 생각도 있었던 토시키의 입장에서 그것은 환영할만한 일이었다. 어찌되었건.
모두가, 모두가 행복하게 되었다.
토시키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을 제외하고는,
“나는, 나는 당신을 떠나보내고.”
이토모리에 애정 같은 건 남아있지 않았지만, 오로지 후타바를 품었던 땅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딸들을 품고 있는 땅이라는 이유로 이곳에 남았던 그다. 하지만,
“조금만 더 당신과 함께할 시간은 있겠지만.”
토시키는 마지막 술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당분간은 안녕이네. 후타바. 하지만 너의 말대로,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겠지?”
대답은 당연히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일어서서 등을 돌려 발걸음을 옮기는 토시키의 모습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
“미츠하. 도쿄로 갈 거라고?”
다음날, 이야기를 들은 텟시와 사야찡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어왔다.
나는 머뭇거리며 그 대답에 그렇다고 대답해주었다. 그러자 둘은 굉장히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둘이 같이 팔짱을 끼고는,
“…역시, 도쿄에 숨겨둔 남친이 있었던 게.”
“…으이그. 남자는 항상 뭐든 연애랑 관련해서 생각하지.”
사야찡의 핀잔에 텟시가 헛웃음을 들이킨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물었다.
“그거 말인데.”
“응?”
이번에도 타이밍 좋게 함께 이쪽을 바라보며 물어오는 그들을 보며, 속으로 ‘역시 사이좋네. 얘들.’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담고 있던 물음을 그들에게 건넸다.
“전에 이야기 했던 거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주지 않을래?”
“전에 이야기했던 거?”
“‘그 사람’이란 거 말이야?”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둘은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끙끙 앓으며,
“그렇게 물어봐도 말이지.”
“난 요츠하쨩에게 들은 거 밖에 없어서. 언니가 최근에 이상해~ 시리즈부터 해서, 가…….”
거기까지 말하던 사야찡이 어째선지 얼굴을 붉히고는 텟시를 흘겨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텟시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마주보다가,
“나도 너에게 그때 이야기를 들었던 것 밖에 없어.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던가, 하는. 그거.”
“…….”
조금이라도 더 많은 단서를 찾기 위해, 나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기억을 맞추어보기로 했다. 그 결과 어째서인지 지난 한달 간 많은 시간들이 희미한 기억 속에 기억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어, 그러니까. 너 그 카페… 만든 거 전혀 기억이 안 난단 말이야?”
“카페?”
내가 의아하단 표정을 짓자, 사야찡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판기 옆에서, 텟시와 네가 만든 그거 있잖아.”
“음…. 전혀 기억에 없는 걸.”
“그렇다면 그 머리는? 머리 자른 건?”
이번에는 텟시의 물음이었다. 텟시의 물음에 나는 슬쩍 손을 들어 짧아진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까진 길지 않았나? 아니, 분명 무슨 이유가 있어서 잘랐다는 기억은 가지고 있다. 애초에 할머니에게 부탁해 머리를 짧게 한 것은 나였으니까.
그런데, 도대체 내가 왜 머리를 잘랐던 거지?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그 날은 분명 갑자기 누군가를 만나러 간다며, 정확히는 누군가의 데이트를 보러간다며 도쿄로 가서는.
저녁 늦게 돌아와서 머리를 자르고.
“음…?”
아무리 생각해봐도 집히는 것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내 손가락에 닿는 것이 있었다.
머리끈. 매듭으로 만들어진 빨간색 머리끈. 항상 머리에 하고 다니던 그것은 그러고 보니,
“나 이거 언제부터 이렇게 하고 다녔더라?”
“어?”
내 물음에 텟시와 사야찡은 둘이 마주보며 생각하다가,
“그러고 보니… 그날 아침에는 머리끈 같은 거 하지 않고 있었던 것 같은.”
“음. 저녁에 다시 만났을 땐 또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잠깐, 잠깐 기다려봐. 라면서 자신의 기억을 되살리려 노력하는 텟시의 말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그들에게 대강 전해 들었던 어제의 정황.
학교에 와서는 갑자기 혜성이 떨어져 모두가 죽을 거라고 하고, 지갑을 털어 사야찡을 납득시킨 후 작전회의를 하고, 텟시와 변전소를 폭파하고 방송으로 피난을 유도할 계획을 하고, 그러다가 무언가에 낙담했는지 이상한 모습을 보이다가.
“텟시한테 자전거 빌려달라고 했을 때만 해도 미츠하 머리 묶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이건 사야찡.
“그리고 다시 돌아 왔을 때에는 머리 묶고 있었지. 너 그때 그러고 보니 어디 갔었던 거야? 내 자전거도 부숴먹고 잃어버리고 오고.”
“아… 그때 일은 미안.”
물론 다시 그때의 일들을 들어도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신님에게 쓰였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떠들어대는 텟시를 살짝 무시하고 나는 머리끈을 만지작거리며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무언가에 대한 상실감이 그때부터 내 마음 한편에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었다.
무언가,
무언가 잊어서는 안 될.
잊어서는 안 될 무언가를 잊은 그런 느낌.
무엇이었을까?
누구였을까?
그건.
「좋아해.」
그 의문에 대한 종착점은 결국 그 날 손바닥에 쓰여 있던 그 문장으로 향한다.
누구였을까,
그 말을 남긴 사람은.
누구일까?
그 말을 남긴 너의 이름은.
또 다시 며칠 후, 나는 폐허가 된 신사에서 물건들을 정리하던 중, 중간부분이 텅 빈 노트 하나를 발견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불탄 부분이나 손상을 입은 부분이 적었던 그 노트는 그러나, 중간에 이유모를 대량의 공백이 존재하고 있었다.
어째서?
평소 성격을 빗대어 볼 때, 나는 절대 이렇게 공책에 공백을 남기고 다음 장에 필기하는 경우가 없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기분과 더불어, 어떤 알 수 없는 이끌림에 공책을 계속해서 넘겨보던 나는.
이윽고 공책 한바닥에 통째로 쓰여 있는 어떤 문자에서 시선을 땔 수 없었다.
「누구야, 너?」
거친 남자아이의 글씨체.
이건, 도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