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이토모리 마을은 빠른 속도로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이전과 같은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폐허가 되지 않은 곳을 중심으로 조금씩 재개발 및 보전을 해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아버지와 다른 사람들이 시와 현을 상대로 이토모리의 운석 낙하를 관광 상품화해서 판매할 계획을 제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할 말을 잃을 뻔도 했다. 다친 사람들이 없기에 망정이지, 정말 빠른 속도로 현실감을 되찾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요츠바는 지체 없이 주변의 다른 소학교 친구들과 함께 인근의 히다시의 소학교로 전학을 했다. 나도 아마 도쿄로 간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다른 아이들 역시 빠른 속도로 본래의 삶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사야찡은 마을 사무소가 해체되며 이토모리 정역소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대거 히다 시청으로 옮김에 따라 일자리를 옮기게 된 언니를 따라 히다시 쪽으로 가게 되었다. 어차피 그다지 먼 거리도 아니었고 나 또한 곧 이토모리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딱히 아쉬움 같은 것은 없었다. 거기다가, 조금 있다가 이야기하겠지만 사야찡은 어쨌든 결국 도쿄 쪽으로 향하기로 마음을 굳힌 것 같았다. 그 이유를 말하고자 한다면.
텟시의 집은 이번 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 중 하나였는데, 그나마 다행인건 보상을 많이 받았다는 것과 더불어 이토모리의 재개발에 부활한 테시가와라 건설이 그 주 임무를 맡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텟시는 이번 일로 자기 아버지와 한바탕 한 모양이었다. 분명 가업을 잇고 언제까지나 이토모리에 살겠다고 했던 그였지만.
“나 당분간은 여기에 있을 것 같지만 말이야.”
어느 날, 밤늦게 텟시가 찾아와 불러내더니 그런 말을 했다.
“아마 조만간 나도 도쿄로 갈 거 같아.”
“그래?”
어째서, 라는 물음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그의 생각에 어떤 이변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구태여 그것이 나와 관계된 일이라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미츠하, 나 사실 말이지.”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연애경험이 없는 이 몸이라곤 하지만 그런 표정을 지으며 머뭇거리는 남자아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난 속으로 끙 하고 신음을 흘린 후 지끈거리는 이마를 부여잡고 텟시의 말을 끊고자 손을 들려고 했다.
“저기, 텟시.”
“사야카한텐 미안하지만, 얼마 전부터 네가 참 좋은 녀석이라고 생각했어.”
“…….”
저기, 테시가와라씨?
뭐라고 대답해야하지? 아니, 이, 이건.
“텟시, 나는.”
“미츠하. 나는 너를.”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만다.
최악이다. 아니, 절대 이런 일이 있지 않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를 대비해 최대한 그와는 분명한 선을 두려고 노력했었는데!
그야 이유는 물론 텟시는, 텟시는 사야찡꺼니까.
이게, 다 그 녀석 때문에…….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텟시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내 생각에 동조해주고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미안! 네 마음을 받아줄 순 없어!”
순간적으로 내지른 한마디에,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가.
텟시가 앙? 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뭔 소리야?”
“…어, 뭐라고?”
이번에는 내 쪽에서 벙찐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더니 시선을 돌리곤 뒤통수를 긁적이며,
“뭐, 물론 내가 너에게 호감을 전혀 가지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그는 흠 하고 헛기침을 몇 번 한 후 말을 이었다.
“널 친구 이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어.”
“…….”
아,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
아니, 애초에 내가 왜 이런 착각을 한 거지?
정말 어딘가 뇌가 이상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사이 텟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츠하. 최근에 네가 물어왔던 거. 그러니까, 네가 말하는 「그 사람」이라는 녀석 말이야.”
텟시의 말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내가 자신에게 집중하길 기다린 후 다시 말을 이었다.
“분명 좋은 녀석이라고 생각해. 어떤 녀석인지는 모르지만, 나, 뭐… 사실은 옛날엔 널 좋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거든. 하지만 최근 들어 그런 생각이 없어지고 있었는데.”
그는 거기서 과장되게 웃어보였다.
아마도 말의 무게감을 줄이고자 하는 행동인 것처럼 보였다.
“최근의 너는 뭔가 색달랐다고 할까? 그래서 한번 확실하게 내 마음을 정리하고자 하는 생각도 있었던 거야. 오늘 너를 불러낸 건.”
“…….”
뭐, 뭐야 그게?
졸지에 차인 듯한 느낌이 들어 은근슬쩍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이 녀석이 지금!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텟시는 계속해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언젠가 그 녀석이 그러더라고. 이토모리의 마을 풍경을 보면서 참 아름다운 마을이라고. 솔직히 넌 언제고 이 마을을 떠나고 싶어 하니까, 그런 감상이 나올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거든. 물론 이젠 그게 네가 아니라 「그 사람」이 한말이구나 하고 깨달아버렸지만.”
그 사람 그런 말을 했었구나.
분명 나는 이 마을에 대한 염증을 가지고 있었다.
인생에 대한 염증 또한, 무녀라는. 미야미즈라는 커다란 짊을 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염증을 느끼고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
물론 내색은 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했지만.
“나도 솔직히 말하면 이 마을이 싫어. 부패의 냄새가 난달까, 확 모든 걸 다 부숴버리고 전부 경작지로 만든 다음 다시 개간하고 싶다는. 그런 생각도 든 적이 있었거든. 이대로 뒀다간 이 마을 전부 썩어버릴 것 같았으니까.”
“텟시.”
네가 위험한 녀석일 줄은 알고 있었지만.
“어찌되었든 결과적으로 하고 싶었던 건 이 마을을 바꾸는 거였어. 하지만, 그런 거. 평범한 고등학생에게는 무리니까 말이야.”
“…….”
“그래서 사실, 나 그때 네가 혜성이 떨어진다고 할 때 왠지 모를 기대를 했었는지도 몰라. 혜성이 떨어지고 모든 게 다 부서져 버렸잖아?”
“…….”
만약 혜성이 없었다면 이토모리는 이 녀석에 의해 폭파되어버렸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텟시가 혼자서 낄낄하고 웃으며 말했다.
“이제 다시 시작이야. 그리고 난 그걸 준비하기 위해 좀 더 큰 세상을 견학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그래서?”
“고등학교까진 여기서 마쳐야겠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도쿄에 있는 대학을 가려고 해. 그리고 건축학을 전공하려고.”
“허어.”
“물론 그런 거 배우지 않아도 가업을 잇는 데에는 충분히 자신이 있지만 그걸로 이토모리를 더욱 멋진 마을로 만들 수 있을까 해서 말이야.”
“그러냐?”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고 있자니, 녀석은 신이 나서 자신의 일대계획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아 춥다. 10월의 날씨도 어느덧 많이 쌀쌀해졌다. 나는 으슬으슬 떨려오는 몸을 안은 체 언제 이 녀석의 말이 끝날지 기다렸다. 평소 같았다면 핀잔을 주고 쫓아내 버렸을 텐데.
그럼에도 내가 텟시의 말을 멈추지 않은 것은 그가 간간이 내놓는 「그 사람」에 대한 단서들 때문이었다.
“너, 아니… 그 녀석인가? 언젠가 그 녀석이 자기가 그려준 이토모리의 풍경을 보여준 적이 있거든. 그때 갑자기 불타올라서 건축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어. 물론 난 전문지식이 부족해서 이야기를 잘 못했었지만. 그거, 아마도 그 녀석 맞지?”
“그렇겠지.”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평범한 촌의 여고생일 뿐이다.
멋진 카페에 대해서라면 몰라도, 건축물 같은 것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다.
“그때 네가, 아니 녀석이 해주었던 말들이 잊히질 않아. 그래서 난 공부를 더 하기로 결심했어.”
“그래.”
그렇게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고 있자니, 그제야 내 상태를 인식한 듯 텟시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왔다.
“어이쿠, 날씨가 꽤 춥지. 미안해.”
잘 아네. 라는 말을 굳이 꺼내진 않았다.
이 녀석, 사람을 불러다놓고 긴장을 태우더니 결국 하는 이야기가.
물론 녀석의 이야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니, 분명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하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그 사람」.
아마도 내 손바닥에 「좋아해.」라는 글을 남겨준.
그러니까, 좋아해군?
어쨌든 텟시는 늦은 밤 불러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이 말을 꼭 너에게 해주고 싶었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그로부터 며칠 후 텟시가 사야찡에게 고백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사야찡이 나중에 도쿄로 오는 것도 아마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일이겠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스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
며칠 후 아버지로부터 도쿄에서 살 곳이 마련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도쿄도 신주쿠의 요츠야라는 곳에 위치한 작은 맨션이라고 들었다. 첫날은 아버지가 동행해 집을 봐주겠지만 당분간은 아마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쪽의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아버지도 도쿄 쪽에서 일을―아버지는 다시 학자 쪽의 일을 알아보고 계신 듯 했다. 나는 거기서 아버지가 이전에 교수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찾으신 후 가족 전체가 이쪽으로 옮기신다는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모두가 다시 같이 살게 되는 거다.
나는 속으로 아버지와 할머니가 화해한 것이 가장 큰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를 버리고 떠난 아버지에 대한 응어리는 어느 사이 사라져있었다.
아버지에게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후, 요츠바에게 마음에도 없는 ‘언니, 도쿄 가니 참 좋겠네.’라는 소리를 듣고. 나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마루에 앉아 별을 바라보다가. 방으로 들어가 잠자리에 들었다.
물론 쉽게 잠이 오지는 않는다.
도쿄로 간다고 해서 막연히 그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째선지 도쿄에 간다면 그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도 들었다.
정말, 뭘까?
나는 슬쩍 오른 손을 들어 손바닥을 펴보았다.
이미 그때의 그 낙서는 지워진지 오래다. 하지만 아직도 무언가 희미하게 그곳에 남아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째서일까, 그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파온다.
무엇일까, 이 감정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도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다.
오로지 상실감뿐이다.
요즘도 아침에 눈을 뜨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울고 있던 때가 가끔 있다.
분명 보았을 꿈은 언제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그저 무언가 사라졌다는 감각만이 눈을 떠도 한참동안 남아있을 뿐이다.
계속 무언가를, 누군가를 찾고 있다. 그런 기분에 감싸인 것은 아마도 그 날부터.
그 날.
별이 떨어진 날,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확실한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좋아해.」
나는 아마도,
이 낙서를 남겨준 「그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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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키!”
아버지의 부름에 나는 작게 신음소리를 흘리며 일어났다.
폰을 확인해보니, 이른 아침.
주말.
학교도 가지 않는 날.
이런 이른 시간에 아버지가 날 깨울 이유가 있었던가?
잠깐 고민해보았지만 평소의 아버지라면 푹 쉬도록 내버려두었을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건 무언가 착오가 있었던 거겠지.
특히 오늘은 내가 아침밥 당번도 아니고.
어머니가 집을 떠난 후,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이후로 아버지는 묘하게 나에게 약한 모습을 많이 보였다. 그것은 처음에는 굉장히 부담되었지만, 지금에 있어서는.
“타키!”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다시 한 번 아버지의 외침이 들려왔다.
슬쩍 시선을 들어보니.
아버지가 화가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버지는 몇 번 혀를 차고 나서는,
“어제 분명히 오늘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한다고 말하지 않았냐?”
“…….”
아버지의 말에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는 뇌를 조금 굴려보니.
…분명 그런 말을 했던 것 같은 기분이.
나는 슬쩍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는 언짢은 표정을 지었지만 더는 그에 대해서 왈가왈부 하지 않으셨다.
“아빠의 은사와도 같은 분의 딸이 오늘 이 주변으로 이사 온다고 말했잖니? 짐 나르는 것 정도는 도와줄 수 있겠지.”
“…음.”
그렇게 말해도 말이죠.
나는 어쨌든 정신을 차렸다고 대답하고는 부리나케 침대에서 벗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까놓고 말해서 누가 이사 오든 그건 내 알바가 아니지만. 아버지께서 저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마냥 무시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고 있자니, 아버지가 다시 한 번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타키! 서둘러 준비 마치고 나오 거라!”
“예!”
하.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얼굴을 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