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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들판





3-3


무지막지한 희생 끝에 독일군은 영국군의 참호를 점령할 수 있었다.

  이 승리를 위해 너무나도 많은 병사들이 소모되었다. 돌격대에 동원된 병사들 중 3분의 1만이 살아남았다.

  종아리에 구멍이 난 뮐러는 헤켈의 부축을 받아 아군 참호로 이동했다. 움베와 에커만은 적의 피와 뇌수로 범벅이 된 몽둥이를 옆구리에 차고 노획한 적의 기관총을 짊어진 채 터벅터벅 행진했다.

  휴너 중위는 발을 옮길 때마다 침을 뱉었다. 공격에 동원된 전우 대다수가 적진에 잠들어있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극소수였다.

  독일군은 언제나 그러하듯 아군 시체들은 적진에 그대로 남겨두고, 노획품만 챙겨서 후퇴했다. 이럴 것이면 왜 공격을 계획했는지 의문이었다. 어쩌면 사단장은 실질적인 이득보다 보고서에 올릴 승리라는 단어 하나를 위해 공격을 명령한 것은 아닐까? 헤켈의 의문을 풀어줄 뮐러는 부상으로 정신을 잃었고 나머지는 말을 걸어도 듣지 않았다. 묵묵히 발걸음만 옮겼다.


  뮐러를 진찰한 군의관은 위생병에게 주사를 하나 놔주라고 말하곤 몸을 돌려 가버렸다. 무작정 그가 비정하다가 탓할 수는 없었다. 이미 하루에도 수십 번이 넘는 죽음들을 보는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군의관도 죽음에 익숙해진 터였다. 그는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하는 노당자처럼 기계적으로 움직이며 부상병들을 돌보고 치료하고 죽음을 지켜보았다.


  뮐러는 끝내 후송되기로 결정되었다. 그의 이름은 부상병 열차를 탈 승객들 명단에 올려졌다.

  에커만으로부터 씹는 담배를 받아 입을 우물거리던 뮐러는 더러워진 바닥에 까만 침을 뱉으면서 한동안 침묵하다가, 10분 뒤 부상병들을 태울 트럭이 도착한다는 말에 입을 열었다.


  "내 언젠가 이렇게 될 줄 알았지."


  "좋으시겠습니다, 뮐러 병장님."


  헤켈은 일부로 시셈하는 말투로 말했다. 뮐러는 그를 비웃듯이 말을 꺼냈다.


  "난 이제부터 안락한 병원의 침대에서 지내게 될 거라고. 그런데 너희는..."


  말을 하다가 씹는 담배 일부가 목구멍으로 들어간 뮐러는 심하게 콜럭거리며 괴로워했다. 그를 둘러싼 헤켈과 에커만, 움베는 즐거운 눈빛으로 점잖게 구경했다.

  기침을 멈추고, 부상병은 잔뜩 쉰 목소리로 남은 말을 했다.


  "너희 그 빌어먹을 똥통에서 지내겠지. 이거 불쌍해서 어쩌냐?"


  "지금 여기서 남들이 안 볼 때 당신을 죽여버릴 수도 있습니다."


  움베가 품에서 총검을 꺼내며 그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뮐러는 낄낄 소리를 내며 웃었다.


  "솔직히, 부상을 입어서 되려 기뻐. 완전히 회복될 까지 죽을 걱정도 없고, 따듯한 음식도 먹을 수 있으니깐."


  "예, 그거 참 부럽습니다."


  트럭들이 도착하자 부상병들을 모두 밖으로 나르란 명령이 있었다. 헤켈이 뮐러의 상체를 잡고 움베가 하체를 잡았다. 에커만은 그의 허리를 받쳤다. 밖으로 나가는 동안 뮐러는 살살 좀 다루라고 소리쳤다.

  이미 서로 연락처는 다 교환해두었기에 나중에 찾고 싶어도 찾지 못할 염려는 없었다. 뮐러는 그래도 불안한지 자신의 연락처를 받았는지 계속해서 물었다. 헤켈은 당연한 걸 계속 물을 필요는 없다며 가볍게 쓴소리했다.

  트럭이 출발하기 전, 뮐러는 마지막으로 세 동료들을 향해 절박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너희들, 나 없다고 멋대로 죽으면 안된다고."


  "그럴 걱정은 말고 댁 건강이나 챙기쇼."


  운전병이 트럭에 시동을 걸었다. 트럭이 서서히 앞으로 움직이면서 천천히 멀어졌다. 3명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같은 자리에 서서 손만 흔들었다.


  "꼭 살아남아야 해!"


  그것이 그들이 들은 뮐러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와 다른 부상병들을 태운 트럭은 쏜살같이 사라졌다. 헤켈은 트럭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가버렸군. 사라진 트럭이 남긴 타이어 자국을 멍하니 쳐다보던 헤켈이 생각했다. 결국 가버렸어. 그들의 행동대장이자 소대 최고의 고참이었던 뮐러가 말이다.

  한편으론 다행이기도 했다. 계속 전선에 남아있는 것보다 안락한 후방에서 지내는 것이 훨씬 낫다. 게다가 후방에 있다면 죽을 걱정도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 좋은 쪽으로.


  "우린 언제쯤 저렇게 되려나."


  움베가 푸념을 늘어놓으며 슬슬 걸음을 옮겼다.


  "아직 10년은 이르다고."


  에커만은 호주머니에서 씹는 담배를 뒤지다가, 남은 것을 전부 뮐러에게 주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곤 인상을 썼다. 쳇. 하필이면 이럴 때 다 떨어지다니.


  "우리들 중 한 명이 부상을 입는 일이 먼저일까? 아니면 전쟁이 끝나는 것이 먼저일까?"


  산등성이 사이로 저무는 태양을 보던 헤켈이 중얼거렸다. 둘은 그의 말을 작어서 못 들었는지 관심이 없는 것인지 대답하지 않았다.



  오늘도 오늘의 태양이 저물었다. 태양이 저물고 밤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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