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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어둠 연구소(구. 사회적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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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 민수


“어제 교육부 직원 A씨가 국민을 개돼지라 칭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아무리 술자리에 그런 것이라곤 해도 정부에서 국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며 분노하는 시민들이 집회를 ​개​최​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개와 돼지를 가축(家畜)으로 키웠다는 사회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결국, 가축이란 건 인간의 관점에서 사고팔 수 있는 물건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필요에 의해서라는 점과 이들이 인간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무엇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민수한테는 그랬다. 한참을 고민하고 나니 그게 ‘노예’라는 사실을 알았다. 민수에게 그 하찮은 텔레비전 뉴스 속 얘기는 정부가 국민을 자기들 노예로 안다는 소리로만 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나 비슷해서 구분할 이유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인간이란 종의 동물이냐, 아니냐로 구분하거나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의사소통이 되느냐 정도로만 차이가 있을 뿐 별 차이는 없었다. 누구는 이 생각이 너무 극단적이라고 지적하는 모양이지만 그걸 신경 쓰고 싶지 않은 것이 민수의 속마음이었다.

텔레비전은 아직도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채널을 돌려도 제각기 하고 싶은 얘기를 할 뿐이다. 자기는 성향이 어쩐대 저 행동은 어떻다느니, 하는 나름 뭔가 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만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들도 조금 계급이 높은 노예일 뿐 주인의 맘에 들지 않는다면 금방 쫓겨날 작자들이었다. 이들 중 극소수는 자신이 주인이 되기 위해 대선이란 주인 선정 위원회에 출사표를 던지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아직 주인이 아니므로 주인 행세를 했다간 같은 계급의 다른 노예는 물론이고 다른 계급의 하급 노예들에게도 두들겨 맞을 것이 뻔했다.

현대사회이기 때문에 노예라는 말은 금기시될 수밖에 없고, 폭력 또한 평화로운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어선 안 되는 것이기에 이렇게 노골적이고 참혹한 발상은 입 밖으로 꺼내선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민수는 여전히 다른 이들이 두려워하는 이 생각이 계속해서 귓가에 맴돌았다. 지긋지긋한 생활을 이어와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민수는 지금 현실에서 도피하고 있는 도중이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런 걸 눈치챌 만큼 민수는 성숙하지 않다.

그래서 민수는 자신의 생각이 도피의 일종인지 검증하지 않은 채 더 깊숙이 내려갔다. 하면 안 되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싶은 부분이 있을 때까지 내려갔다. 너무 어두운 생각을 하나 싶었던 모양이지만 이내 그런 기우는 버리자고 생각했는지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민(旻)에 수(水)라…….”

하늘만큼 맑고 푸르른 물. 대충 그런 뜻으로 볼 수 있는 이름이다. 이 한자가 이름에 적합한지는 고민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이름을 민수의 아버지가 지었고 그 뜻은 청렴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민수는 아버지가 말씀해주신 그런 뜻이 아니라, 다른 뜻으로 해석했다. 세상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발버둥 쳐라, 그런 의미로 받아들였다.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던 순진함을 잃지 말란 뜻으로 붙인 이름일 수도 있지만 민수는 그렇게 해석하는 게 싫었다. 이 사회에서 순진한 사람이란 결국 호구를 뜻하는 말이다. 민수는 호구가 되기 싫었다. 지금도 이미 충분히 순진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름에 담긴 뜻은 이제 다른 의미로 덮어 쓰여도 괜찮으리라. 이젠 본뜻에 관한 관심도 저 멀리 치워버릴 수 있는 때가 되었다. 무슨 뜻으로 바뀌어도 한자에 맞게 납득만 할 수 있다면 굳이 본뜻이 아니어도 괜찮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적어도 민수의 가족들은 본뜻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민수에게 이름대로 행동하라고 종종 말하곤 했다. 특히 외가 쪽이 그랬다. 이름을 지을 때 아버지가 지은 이름이긴 하지만 어머니도 지을 때 관여했기 때문이라는 이상한 논리를 들이밀며 이름값을 못 하고 애가 음침하단 소리를 자주 했다. 그 말에 나는 별 감흥이 없었지만 어머니는 상처를 심하게 받았던 모양이었다. 열 대번 정도 이 일이 반복되자 어머니는 더이상 외가에 들르지 않았다. 아버지도 외가에 들르지 않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았다. 이건 민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름이란 건 무시무시했다. 어느 소설이 말하는 이름의 위력과 같이 이름에는 사람을 속박하는 힘이 있었다. 별명도 이름과 다를 바 없었다. 이름이 가진 힘을 별명도 고스란히 갖고 있었다. 심지어 이름은 바라는 점이지만 별명은 현실을 뜻하는 말이었다. 결국, 별명은 지워질 때까지 자신을 속박하는 굴레 내지 낙인 같은 것이었다. 낙인은 지워지지 않으니 굴레가 더 맞을 수도 있다. 아무튼, 그런 중요함과는 상관없이 명(名)이 붙은 모든 것은 그런 힘이 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바꾸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보통은 그 이름이 자신을 괴롭히고 낙인찍듯 힘들게 하였기 때문이었다. 동명이인이 저지른 일이 끔찍할 때 주로 그러하였다. 예를 들면 조두순과 같은 거다. 혹은 동명이인이 유명해서 놀림의 대상이 될 때도 신청하였다. 김연아, 박지성 같은 이름은 그럴 만한 이름이다. 아이들은 순진함을 변명이자 무기로 동명이인이 한 모든 행동을 다른 아이에게 붙여넣기를 하듯 적용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면서 동명이인을 마구 놀린다. 때로는 정의구현이고 어떨 때는 단순히 놀리는 거였다. 그들의 명분은 다양했다. 덤으로 왜 자기 또래의 동명이인은 왜 저 멋진, 혹은 못된 동명이인 같지 않은지 끊임없이 물고 늘어진다. 민수는 그런 일이 없었지만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민수는 그 끔찍함을 알고 있어서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고 자신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민수는 너무 깊이 들어갔음을 깨닫고 잠시 쉬기로 했다. 백수, 아니 ‘취업 준비생’ 신분이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지만 쉬는 것은 자유다. 집세가 밀리지도 않았다. 집세가 가장 싼 오래된 집이고 알바로 해결할 수 있는 정도의 월세라 민수는 쉴 자유가 있는 취준생이다. 보증금이 비쌌지만, 부모님께서 대주셨다. 공무원 시험 같은 걸 준비하는 게 아니라서 학원비도 들지 않았다. 가끔 자격증을 딸 생각이 들면 그때그때 구닥다리 노트북으로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시중 교재를 풀면 될 일이다. 민수는 예전부터 똑똑하단 얘기를 많이 들어왔고 실제로도 성적이 높은 편이어서 그 정도는 대부분 문제집과 강의로 해결할 수 있었다. 애초에 따려는 자격증이 전부 신체 능력을 아는 머리로 해결되는 것들이었다. 아무튼, 지금은 자격증도 딸 만한 건 전부 따 놓았기에 쉬어도 좋았다. 다만 빨리 취업하라는 부모님의 잔소리만이 민수를 방해하므로 휴대폰을 꺼두면 사실상 완벽하게 자유였다.

베란다에 나가 잠깐 쉬면서도 자꾸만 다른 생각이 밀려들어 오기에, 민수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것 때문에 배웠던 명상은 별 쓸모가 없어서 차라리 간단한 생각만을 하기로 했다. 아무짝에도 쓸 데가 없는 생각을 치우기 위해 이따 무엇을 먹을지나 생각해놓기로 했다.

생각에 잠겨버린 지 오래인 민수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휴식이란 그런 것뿐이었다. 그래서 민수는 생각이란 존재가 두려웠다. 그렇다고 생각이 아닌 본능만으로 살아가는 동물이 될 수는 없었기에, 이렇게 밖을 쳐다보는 것으로 최대한 부글거리는 늪을 진정시키고 눈을 치켜세웠다.

이제 텔레비전에서 다른 내용이 나오기 시작했다. 덕분에 민수는 텔레비전을 끄고 잠이 들었다.
[작가후기]
반갑습니다. 첫 인사드립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처음 써보는 소설은 아니지만, 여러분께 각오하고 보여드리는 것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아직 많은 점이 부족해 여기저기 이해가 가지 않으시거나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이 소설의 내용과 제목, 주제에 관해서는 저도 썩 좋은 소재나 내용이라고 자신할 수 없네요.
다음편, 프롤로그 2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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