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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어둠 연구소(구. 사회적 어둠)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최초 업데이트 2017년 12월 13일 수요일 오전00시 33분
최종 업데이트 2017년 12월 19일 화요일 오후06시 23분


프롤로그 2: 민아


같은 방송을 보고도 민아는 다른 데에 초점을 맞췄다. 민아의 관점에서 시민들의 집회란 아주 역겨운 것이었기에, 개돼지라는 발언은 귀에 들어오는 것조차 거부당했다. 그도 그럴 것이 2년 전에도, 그 이전에도 많은 사람이 시위를 열었지만 금세 다시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사람들이 집회를 여는 것은 어느 때나 있었던 일이라 새삼스럽지 않았고 끝까지 관심 갖지 않고 자신의 생활로 돌아가 외면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가진 태도는 민아가 이런 사람들의 반발을 역겹게 여기기에 충분했다.

자신과 관련되지 않을 때는 철저히 외면하고, 외면하지 않은 척하기 위해 온갖 힘을 다 쓰다가도 자신이 비슷한 일을 겪으면 거리로 나와 자신의 권익을 주장하는 것이 이기적이었다. 정치인들도 별다를 바는 없어서 여당 정치인들은 집회를 다스리려 애쓰고, 야당 정치인들은 다음 선거에서 유리한 위치를 얻기 위해 집회를 적극적으로 이용해먹는다. 그러나 그 둘이 한 공간 안에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큰 규모의 집회가 열리면 정치판은 그 어느 때보다 개판이 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변치 않는 사실이었다. 민아는 그 점이 너무나도 역겨워 이런 뉴스를 원체 잘 보지도 않았다. 그저 잠깐, 채널을 돌리다가 옆에 있던 동생이 집중하는 것 같기에 같이 봐주었을 뿐이다. 그래서 민아는 더이상 이쪽 부분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민수와는 달리 생각의 방향을 달리 잡을 수 있는 점이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민아도 생각을 완전히 멈출 수는 없었다. 애초에 인간이 생각을 잠시나마 멈추는 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 민아이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였다. 민아는 명상이란 걸 알게 된 순간부터 명상은 사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을 비우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민아의 관점에서 불가능한 일이라고 단정 지은 것이지만 적어도 민아는 멍을 때릴 때조차 인간의 머릿속에는 무의식적으로 떠오는 생각이 있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멍 때리기를 그만두었을 때 다른 생각으로 교차하는 일이 일어날 수가 없다고 민아는 속으로 생각했다.

민아도 자기 생각을 가볍게 만들고자 냉장고에서 보리차를 따라 마셨다. 보리차를 썩 좋아하진 않지만, 집에 찬물이 보리차밖에 없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역시나 어쩔 수 없는 선택은 생각을 비우는 데 방해되었다. 그래서 이번엔 방에 들어가 공부하기로 했다. 적어도 공부를 하는 동안에는 공부에 필요한 생각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공부를 잘 하게 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공부가 잘되지 않았다. 어제만 해도 이렇게 의욕을 잃지는 않았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다. 혹시 그 날인가? 싶어 확인해봤지만, 저번 주에 끝났기 때문에 그럴 리 없었다. 아까 본 TV 내용이 다시 맴돌았다. 이상하다. 이랬던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생각을 제어하는 데 실패했다. 쓸데없는 생각이 폭주했다.

공부조차 잘되지 않자 민아는 자신이 왜 공부를 이토록 신경 쓰게 되었는지 찾기로 했다. 동기를 가진 것들이 으레 그렇듯 그 동기의 회상이 연료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동기가 저 멀리서 온다는 것을 알고도 굳이 꺼내왔다. 아주 오래 걸릴 터이지만 역시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 외의 뚜렷한 방안은 떠오르지 않았다. 방안을 궁리하느니 차라리 회상이 더 빨리 끝날 것만 같았다. 아픔을 신경 쓰지 않는 둔함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궁지에 몰린 상황이었다. 그래도 민아는 둔한 편이라 그냥 생각하는 쪽을 택했다.

그 동기란 어쩌면 누군가의 눈에 별거 아닌 것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고등학생인 민아의 눈에는 그 이유, 동기란 것이 이를 갈도록 만들었다. 부모님의 죽음, 친구의 아픔, 반 아이들의 당치도 않은 행동들……. 작년 한 해 동안 있었던 온갖 불행이 그 영광스러운 자리를 대신했다. 그러나 민아는 이런 사건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아마 많은 사람이 그럴 것이고, 여기서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란 사실상 없을지도 모른다.

부모님은 지난 8월, 그 습하고 더운 날씨에 화재사고로 사망하셨다. 그래서 부모님께서 다니시던 그 직장의 모두가 그렇게 미울 수 없었다. 그러나 건축주는 물론이고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지게 할 수는 없었다. 평소의 대비책과 빠른 대피에도 불구하고, 설계 이상이나 건축 횡령도 없는데 다른 직원을 구하기 위해 다시 불 속으로 달려들어 일어난 참변이기 때문이었다. 중학교 3학년 생이었지만 의젓함은 있었고, 굳이 따지자면 제때 탈출하지 않은 직원과 사고의 원인인 전기 시공업자를 탓해야겠지만 그들 나름의 이유는 민아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민아의 동생은 자세한 사정도 모른 체 관련된 사람들은 왜 벌 받지 않냐며 민아를 다그쳤지만, 그때마다 관련된 사람들도, 부모님도 잘못한 것이 없다고 말하곤 했다. 살아남은 이 가정의 장녀, 그리고 첫째이기에, 초등학교 5학년이긴 하지만 나름의 어리광이자 응석을 받아주기에는 소녀 가장이 된 시점에서 너무나도 벅찼다. 미혼인 고모께서 도와주신다고 해도 소녀 가장 노릇을 안 할 수는 없다. 학생으로 있는 한 그런 노릇이란 집안일에 대해 보탬이나 공부를 통해 장학금을 버는 것이 가장 떳떳하다고 생각해 그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러면서 친구 관계는 점점 소원해지고, 마침내 본래도 친구가 한 명밖에 없었던 민아는 친구를 잃었다. 민아의 잘못이기도 하니 친구를 괴롭힌 급우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고, 자신은 이미 공부에 대한 집념으로 가득 차 이 일까지 겹치면 미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신 상태가 위태로웠다. 그래도 자신이 친구 관계를 소홀히 여긴 탓에 이렇게 친구가 따돌림을 당했다는 것에 대해선 책임을 물어야 했기에, 자신이 그랬다며 거짓말로 둘러대고 징계를 받았다. 소년원에 가진 않았지만, 등교 정지 2일을 받은 민아는, 등교 정지 전날 친구의 얼굴에서 마지막 희망인 듯하던 희미한 미소가 대신 맴도는 급우들의 악랄한 표정으로 덮어씌워 지는 모습을 보았다. 이미 희망을 잃은 듯한, 배신감을 느꼈단 그 표정을 두고 볼 수 없어서 민아는 오래 보지 못하고 오랜만에 나온 눈물을 훔치며 아닌 척 그냥 오래 달렸다. 그 날도 오늘처럼 공부를 못했다는 사실도 기억이 났다.

그러고 보니 등교 정지 이후 친구들의 반응은 이전보다 더 악랄해졌다. 한때 친구였던 아이는 피해자 신분으로 보호를 받기에 같은 반에 있지 않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친구들끼리의 러시안룰렛은 이전보다 규칙이 강화되었다. 더 치밀하게, 누군지 특정하지 못하도록 각종 수단을 동원했다. 물리적인 폭력만 없다뿐이지 그 분위기의 무거움으로 따지면 살벌한 살인 판이 따로 없었다. 이번엔 민아도 피해갈 수 없어서 친구처럼 이번엔 자신이 도둑이 되었다. 이런 종류의 ‘게임’이 보통 그렇듯 경찰을 빙자한 조폭은 소수, 그 외에는 선량한 시민 다수일 뿐이었다. 이것이 왜 재미있는지 민아는 지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살벌함에 친구가 민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만은 이해했다. 나중에 진실을 말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보다 성적 상승이 먼저여서 계속 성적을 올리다 보니 시간이 금세 흘러 중학교 졸업식이 다가왔고, 그 와중에 게임 서버의 운영자는 마치 소시민이라는 듯 방관만을 하다가 간혹 경찰인 척 조폭 경찰에게 순찰 업무를 맡길 뿐이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민아는 잠시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절망이 가져온 피로는 민아를 과로로 쓰러지게 했고 결국 졸업식에 참여하지 못했다. 나중에 졸업앨범을 배송받았지만, 민아의 얼굴은 다른 아이들의 얼굴보다 두 컷 정도 적었다. 반톡에선 급우들끼리 자신들의 추억을 공유하는 장면들만이 계속 올라올 뿐, 민아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 그 누구도 고인 물을 끼얹고 싶지 않은 눈치라 끼지 않기로 했다. 결국, 민아는 친구에게 사과하겠다는 목표도, 급우들에게 복수하겠다는 다짐도 이루지 못한 채 고등학교에 들어왔던 것이다. 벌써 지금이 가을이니 민아는 고등학교를 와서도 부적응자로 남아있는 것이 거의 확정이었다. 누군가는 2학년 때 변화를 겪은 사람도 있다지만 민아에게 그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도 암담한 늪까지 갔다 온 민아는 되려 의욕이 떨어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상담 센터에 방문해 무기력증에 대해 상담을 받아야 할 수준이었다. 아니, 것보다 지난날들의 일이 후회스러웠고 또 분노로 끓어올랐다. 집단 따돌림이 유행으로 번질 일인가, 사회적 약자 취급을 받는 청소년들인데 서로 협력해서 높은 천장을 부술 수는 없는 건가. 쓸데없는 듯, 혹은 조금 이상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민아는 너무나도 많은 생각으로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꼭 그때의 따돌림 사건과 비슷한 정도로 머리가 아팠다.

‘야냐, 잊어버려. 잊어야 해.’

잊으라고 외쳐도 억지로 꺼낸 고통의 대가는 강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민아는 알 길이 없었다. 결국은 이런 극단적인 충격 요법으로도 해결되지 않았다. 끔찍한 과거가 하기 싫어진 공부로부터 더 멀리 떨어뜨리기만 했다. 이런 와중에 내 마음은 모른 채 텔레비전을 보며 시시덕거리는 동생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괜스레 동생을 원망할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결국, 민아는 조여오는 듯한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 씻기만 하고 잠들기로 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 정도는 공부에서 벗어나도 괜찮다며 자신을 격려하며 빠르게 씻었다. 겨울이기도 했지만 뜨거워진 머리를 식히는 데는 아이러니하게도 따뜻한 물이 제격이어서 데일 것만 같음에도 가장 뜨거운 온도로 맞춰 틀었다. 역시 너무 뜨거워서 무리였다. 그래서 그냥 적당한 온도로 다시 맞췄다.

샤워하는 도중에도 생각이 끊이질 않자 민아는 드디어 자신을 책망했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듯 계속해서 어두운 기억들이 떠올랐다. 친구를 잃어버린 아이의 얼굴이 자꾸만 나타나 눈앞에 보였다. 이제는 미친 사람인 것처럼 환각이 보이는 듯했다. 그런 환각을 지울 수 없는 무기력한 민아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마치 유령을 보는 듯해서 입조차 뻐끔거릴 수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 몇 분 뒤 환각이 사라져 민아는 비로소 샤워를 끝마칠 수 있었다. 다행히 물이 틀어져 있지 않아서 머리도 대충 말랐다. 이제 조금만 드라이어기와 빗으로 손질해주면 끝난다. 그러나 민아는 그 두 도구가 있는 안방에 들어가는 것이 갑작스레 겁났다. 거울이 두 개나 있으니 혹여나 환각이 올까 봐 걱정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드라이어기와 빗만 갖고 잽싸게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민아의 방엔 거울이 없었기 때문에 환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물론 민아의 환각이란 거울과 거의 상관이 없지만 적어도 민아는 그렇게 믿었다. 민아는 자신의 환각을 물리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짧은 머리가 제대로 마르지 않는 것도 마다했다. 애초에 짧은 머리라 금방 마르고 머릿결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별 관리를 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지만, 민아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긴 머리일 때 관리해야 한다는 소리를 너무 많이 들어서 짧은 머리가 되고도 습관으로 꾸준히 관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하루만이라도 관리를 하지 않는다는 건 습관에 대한 도전이자 그만큼 자신의 의지가 강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였다.

그렇게 대충 말린 머리와 그나마 정성스레 빗은 머리를 놔두고 민아는 빠르게 책가방을 챙겼다. 모든 것을 빨리하지 않으면 다시금 생각에 빠져들 것 같았다. 책가방을 꼼꼼히 챙긴다는 건 생각할 수 없다. 그저 챙기기만 하면 족하는 것이다. 동생이 그제야 바보 같은 행동을 그만두고 왜 그렇게 서두르냐며 민아를 걱정하러 달려왔지만, 민아는 그런 거에 대답해줄 여유 따위 없었다. 빨리 누워야 한다. 그리고 빨리 잠들어야 내일 아침을 제대로 맞이할 수 있다, 그런 생각만이 민아가 가질 수 있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동생에게 눈치 있는 행동을 기대한 민아의 바람은 헛된 거여서 계속 민아 옆은 시끄러웠다. 어린 동생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렇게 어린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단은 초등학생이니 그렇다. 마지못해 동생의 질문에만 답하기로 했다.

“잘 거야. 공부가 잘 안되네.”

동생이 이해하지 못하겠단 표정을 지었지만 무시했다. 나가라고 외치고 불을 끄고 커튼을 친 후 침대에 누웠다. 이런다고 생각이 멈출 거란 확신은 없지만, 이거라도 해야 했다. 그래서 그런지 한동안 잠이 오질 않았다. 민아는 이제 해볼 수 있는 것이 그렇게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더욱 혼란스러워진 생각을 정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니 떠오르는 뾰족한 수도 없다. 잠이 오지 않는 거야 낮이니까 그렇다고 ​이​해​했​지​만​―​정​확​히​는​ 밤과 낮 사이 어중간한 시간이라서 낮이라고 하기도 ​모​호​했​지​만​―​자​신​에​게​ 일어난 이 변화만큼은 그만큼 둔한 사람이고, 그래서 압박이 공부하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이런 압박에 지금처럼 괴로워했겠지, 싶어 민아는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 뒤로도 계속 생각이 끊이질 않았지만, 다행히 고모가 오기 전까지는 잠들 수 있었다.
요즘 날씨가 추워져서 밖에서 써야하는 특성상 집필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본편 시작은 최대한 빨리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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