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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어둠 연구소(구. 사회적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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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 (1)


민수는 그 옛날의 영광에 힘입어 대학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과외 선생으로써의 명성이 조금 있었다. 당시 성적으로는 SKY나 카이스트를 갈 수 있을 정도였는데, 민수 본인이 학력 지상주의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던 시기가 바로 원서를 접수하던 시기여서 원서 자체를 접수하지 않았었다. 아니, 정확히는 부모님의 강력한 추천으로 넣기는 하였으나 민수가 갖고있는 의지가 없어 면접을 보는 즉시 계속해서 탈락하기만 하였다. 애초에 전부 면접을 보는 전형만 골라 지원하여서 대학에 붙는 일은 없었다. 만약 붙었다고 하였어도 민수는 입학처에 전화해 대학에 진학하지 않겠다고 통보할 셈이었다. 부모님께서 그런 사실을 모르신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면접 하나는 성실하게 봤을 거라 믿으셔서, 면접관만을 탓하며 왜 붙지 않았을까 걱정만 하셨다. 민수는 그 모습을 보고 새삼 마음이 저렸지만, 그것뿐, 오히려 이렇게 대학에 가지 않게 된 것이 좋았다. 그 마음은 지금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어서, 민수는 지금도 대학을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전문 대학은 물론이고, 사이버 대학교에 들어가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굳이 듣고 싶은 강좌가 있다면 유튜브같은 동영상 사이트에 가서 대학교 무료 강의 등을 듣고 알아서 공부하면 끝이었다. 물론 이런 거로 학위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민수는 여전히 학위 인정에 대해서는 전혀 욕심이 없었다. 따라서 그런 민수에게 학점 관리도, 정기 고사도 없는 청강은 최적의 조건이었다. 심지어 인터넷 회선 비용과 전기세만 내면 공짜로 들을 수 있는 점이 민수가 강의를 더 많이 듣게 하는 동기가 되었으니, 어쩌면 처음부터 검정고시만 보고 집에서 공부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렇게 벌은 시간을 갖고 어딘가에서 벌써 일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니, 민수 입장에선 여간 아까운 게 아니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고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민수의 생각보다 적어서, 자신의 훌륭했던 성적이 담긴 고등학교 생활기록부가 빛을 발하는 일이 적었으니 또 이렇게 고등학교 생활이나마 잘 보낸 것이 결과적으론 좋았던 일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미 몇 번이고 기업에 들어갔다 나왔던 민수였다. 단순히 민수 본인의 부정적인 태도 때문에 얼마 버티지 못하고 또다시 취업 시장에 문을 두드렸을 뿐이다.

민수는 이렇게 현실을 꾸준히 부정했다. 앞선 쓸데없는 고민조차 현실 부정의 일종이었으며, 사실은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지금 이 상황에 답답함을 느끼는 민수였다. 민수의 과거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모두 기우와 허세로 가득 찬 ‘빈수레’라고 불렀다. 사회를 탓하는 민수의 모습은 신세 한탄으로만 들렸다. 이는 겨우 취업한 곳의 직장 동료와 민수의 과외를 받던 학생도 예외가 아니어서, 한동안은 민수의 말을 들어주다가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거나 따돌리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러다 보니 민수는 따돌림을 견디다 못해 일을 그만두거나, 과외를 받고자 하는 학생이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민수의 탓이 전적으로 컸기에 민수는 아무런 원망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부모님의 걱정만은 피해야 해서 취업 준비생인 척 부모님과 민수 자신 둘 다를 속였다. 기껏해야 편의점 알바를 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감춰야만 하면서 휴식 시간도 거의 없는 콜센터 알바를 할 뿐이었다. 이마저도 민수가 먼저 지쳐 한 두 달만에 그만두는 게 일상이 되었고, 계속해서 이런 일이 반복되자 편의점 점주들과 콜센터 하청업체 사장님들에게도 소문이 퍼져서 알바를 구하기가 꽤나 힘들어졌다. 그래서 소문을 알기 어려운 멀리까지 나가지 않으면 아르바이트는커녕 건설현장 막노동이나 택배 승하차 아르바이트 같은 3D 업종 일자리조차 구하기 어려웠다.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가끔은 멀리서 와도 유명한 그 소년이라며 채용을 해주지 않는 경우도 점차 빈번해졌다. 그러면 민수는 더 멀리, 혹은 더 외진 곳에서 알바를 하게 되는 것이다. 저임금이든 비리가 많은 곳이든 그 어떤 조건도 민수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알바라도 할 수 있으면 되었다. 이런 쳇바퀴같은 일상이 계속되니 교육부 직원의 개돼지 발언이 민수 입장에서는 국민은 노예다, 라고 말하는 것으로 들렸을 만도 하였다.

민아도 사회생활이 아닌 학교생활일 뿐 고단한 것은 비슷했다.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도 이미 소문이 나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간혹 그런 소문을 해치고 나와 민아에게 말을 걸거나 친해지고 싶어 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대개 그런 친구들은 단순히 인맥 망을 늘리고 싶어서 접근한 경우가 많았고 그 때문에 다른 친구들의 ‘여론’에 짓눌려 도로 외면하기 일쑤였다. 왕따라는 건 민아의 처음 생각과 달리 꽤 깊숙한 곳에 박힌 굴레였다. 처음부터 왕따를 당한 이유가 있으니 당한 거라며 단정짓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접근하면 안 된다고 학교 교육이나 영어 외부지문에서는 얘기하는 모양이지만 애초에 애들은 그런 거에 관심이 없었다. 학교에선 주어진 수업 시수를 채우면 그만이었고, 학생들은 외부지문으로 그런 내용이 나와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일이 없었다. 어디서 주워들은 내용이지만 어떤 외부지문은 검증되지 못한 자료라서 외부지문 자체를 신용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와서 그런지도 몰랐다. 그러나 민아는 그렇다 하여도 친구들이 그런 곳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민아는 민수를 몰랐지만 적어도 민수처럼 ‘빈수레’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 소문만 없다면 언제든지 다시 일어설 수도 있고, 잃어버린 옛 친구도 되찾는 데 어려움이 적으리라고 민아는 믿었다.

그렇다고 민수가 다시 일어서는 게 불가능하냐면 그건 또 아니고, 그렇게까지 속이 빈 건 아니었다. 웬만한 자격증도 다 있고 고등학교 성적도 좋았는데 단지 그것만으로는 취업이 되질 않는 것이다. 여러 번에 걸친 취업과 퇴사의 반복으로 그 어느 회사에서도 받아주질 않는 걸 민수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그러나 민수가 취업을 전혀 못 할 만큼 희망이 없느냐 하면 그건 아니라서, 자신의 신세 한탄만 없어진다면 과외 정도는 어떻게든 해볼 수 있고, 지난 세월 동안의 퇴사 이력 이후 꾸준한 과외 경력이 쌓인다면 나중에 학원 선생님이나 교원 자격증 획득을 위해 여기저기 알아볼 수는 있었다. 그래서 민수는 인터넷에 이렇게 안 좋은 소문이 퍼져도 실력만은 좋다는 소리를 들었기에 약간의 숨구멍이 있었다. 실제로 지금 과외를 하기엔 염치도 없고 실제 과외를 해 주러 가도 학생의 반대가 심해 금방 그만둬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기 일쑤라 안 했던 것뿐이지 민수는 당장 과외로 먹고살 수 있는 길이 열려있었다.

그러나 민아에게도 다른 점은 분명 존재했다. 자신은 빈 수레가 아니니 빈 수레인 어른들보다 훨씬 낫다고 자부했지만, 사실은 그놈의 소문이 큰 영향을 미치는 또래들에겐 소용없는 아우성이었다. 소문이 민아의 모든 것을 흔들어 놓았다. 아니, 민아를 꼼짝 못하게 묶어두었다. 자업자득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많은 헛소문이 자리했다. 과장된 소문에 힘입어 퍼진 것인데, 그 수가 너무 많고 말도 안되는 것이라서 정말로 그런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피하게 될 거란 생각이 들 정도였던 모양이다. 민아는 몇 차례 그 소문을 해명해보고자 말을 걸어보았으나, 입을 열 때마다 들려오는 차가운 소리들이 민아의 입을 다시 다물게 했다. 선생님들조차 헛 소문을 믿고 민아에게 발표를 시키는 일이 거의 없었다. 수행평가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민아의 발표를 보는 일은 없었고, 설렁 수행평가 때문에 민아가 발표한다고 해도 박수치는 친구는 없었다. 조용해서 발표하는 게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지나친 띄워주기도 부담감을 주지만, 침묵하는 것도 부담감을 주었다. 그동안 박수와 함성에 익숙했던 민아는 당연히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젠 아무것도 민아 곁에 없었다. 어른이 되면 ‘어쩌면’ 바뀔 지도 모르지만, 그러려면 최대한 빨리 회사에 들어가야 하고 들어가서도 같은 중학교, 고등학교 출신을 조심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도 민아에게 지난 일들은 단순한 문제가 아닌 족쇄였다. 그러나 민아는 그것을 가볍게 여기려 애썼기에 간신히 자기 위안으로 자신은 사회의 백수들보단 나은 처지에 놓여있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민아 입장에서는 한계였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현실을 깨닫게 되겠지만, 바쁜 고모 대신 집안 일을 해야하는 민아는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었다. 꿈도 희망도 없는 삶을 무엇하러 사나? 간신히 버티고 있는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그렇기에 더욱 필사적이라 그런 희망없는 생각을 하는 건 결국 삶의 포기를 의미했다. 어쩌면 민아는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학교에 가서도 학교폭력 방관자로써의 책임이 무거울 것이다. 학교폭력을 당한 것이 자신의 친구이기에 다른 방관자보다 크게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고 대신 처벌을 받았으니, 그 기록때문이라도 대학교에 입학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민아는 민수와는 달리 고졸이 생각보다 취업하기 어렵다는 걸 알았기에, 처벌을 받는 도중에 내내 후회하였다. 등교 정지는 방관자치고는 심한 처벌이었을 뿐더러 중학교에서 가장 높은 강도의 처벌 중 하나였다. 친구가 신뢰를 잃은 눈빛을 보였던 것도 마음에 걸렸다. ‘실망이다. 네가 그랬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그렇게 말하는 듯 했었다. 실제로도 ‘그런’ 일을 한 것은 아니었기에 지금까지도 간혹 그 눈빛이 민아를 흔들어 놓았다. 지금은 잘 지내고 있을까, 피해자라는 프레임이 씌어져서 어디선가 고생하고 있진 않을까. 평범하게 친구라면 해볼 수 있는 고민을 했다. 지금도 자신을 원망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런 선택을 한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런 걱정들을 최대한 눈 밖으로 밀어보내고 묵묵히 공부하는 것이 민아의 평소 행동이었기에, 여태껏 쌓여온 수많은 생각이 한꺼번에 터져나왔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어쨌든 둘 다 모두 지금 이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일을 겪는 것이 처음이라 어려웠다. 그래서 잠도 설쳤고, 겨우겨우 일어나고 나서도 한동안 정신줄을 놓고 방황했다. 다행히 일요일이라 뒤늦게 각자의 일정이 오후 즈음 있었다. 민아는 점심 이후에 공부 관련된 약속이 있었고, 민수는 그 시간 즈음에 편의점 알바가 있었다. 민수의 경우 집에서 10km나 떨어진 지점이고 사람도 별로 없는 외진 편의점이라 조건은 여러모로 열악했다. 민아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돈을 아끼기 위해서 추운 겨울임에도 난방조차 없는 환경에서 중학생을 가르쳐야 했다. 일종의 알바인 셈인데, 그 학생도 추운 것에 불만이 많았지만 가난하긴 마찬가지라 이렇게라도 해야하는 처지였다. 그렇다고 편의점에 가기엔 눈치보이고, 별다방은 돈이 들어가니 그 학생의 집에서 하는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고모에게 이 일은 비밀이었으니, 이렇게 밖엔 할 수 없었다. 고모가 집에 있었고, 친구를 가르친다고만 말을 했고 돈을 받는다곤 말을 하지 않았기에 민아의 집은 안 되었다. 어쩌면 민수보다 모든 것이 열악했다. 청소년이기 때문에 더욱 무시당하고 이용당하는 측면도 없지는 않았지만, 민아는 그런 일은 애저녁에 그만둔 참이었다.

그러다보니 궁핍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어떻게든 환경을 개선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래도 그런 일을 하는 도중엔 한가한 편이었기에, 사이사이 그런 생각을 할 틈도 있었다. 애초에 널널한 것이 궁핍함을 가져오는 것일 수도 있다. 그걸 간과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널널하지 않은 일과 널널한 일 사이에 위치한 일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 처한 당사자에게 발언권은 없었다. 그래서 아침부터 이렇게 한탄하면서도 바꿀 수 없는 것은 없었다.

이후 민아는 자신의 집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서 간단히 점심을 때웠다. 원래는 고모네 집에서 먹어야 했지만, 집에 계실 예정이셨던 고모에게 일이 생겨서 집에 아무도 없었고 그렇다고 집에 먹을 음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민아는 귀찮음을 해결할 겸 밖으로 나갔다. 가장 간단한 해결 방법이었고, 그 중에서 편의점 식사가 가장 저렴했다. 매운 걸 먹을까 생각해봤지만 스트레스는 풀리는 반면 오히려 얼얼함이 남으니 과외를 잘 못해줄 것 같아 삼각 김밥 2개로 때웠다. 한창 먹을 나이었지만 기껏해야 이 정도였다. 혹시라도 그 아이도 점심을 못 먹었을 까봐 삼각 김밥을 두 개 더 샀다. 적게 먹으니 더 배고픔이 느껴졌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추가로 산 두 개는 그 아이가 먹지 않아야만 자신이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삼각 김밥 값을 청구하진 않지만 그 아이를 위해서 산 건데 자신이 먹기에는 죄책감이 따랐다. 삼각 김밥을 사고 시간이 꽤나 남아 집에 들어가서 쉬기로 했다.

민수도 슬슬 점심을 먹기 시작했는데, 편의점 알바인 만큼 먼저 가도 상관이 없었겠지만 돈은 민아보다 많아서 차라리 별다방에 가기로 했다. 브런치 가격이 저렴하지 않지만, 그래도 편의점에서 2000원짜리 샌드위치를 먹느니 4600원어치 하는 별다방 크로크무슈가 더 맛있었다. 매번 그걸 먹다 보니 별다방에 가면 크로크무슈 드실거죠? 라고 질문을 받을 정도였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같은 질문을 받았고, 이번에는 특별히 아메리카노를 추가해 먹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너무 생각이 많아질 때에는 카페인이 사실상 약이었다. 한 번 먹고나면 졸린 걸 없애줄 뿐만 아니라 살짝 머릿속이 텅 빈 느낌을 주곤 했기 때문이었다. 편의점 알바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지만 먹고 출발해도 늦지는 않는 시간이었다. 눈이나 비가 내리는 것도 아니라 버스가 늦게 갈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다. 흔하디 흔한 동네 편의점이라 외지긴 했어도 교통 자체는 그렇게 불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천천히 식사하다가, 다시 또 느릿느릿 카페를 나왔다.

생각을 겨우 비운 채,

민아는, 민수는

각자의 알바를 하기 위해 출발했다.

늦었지만 반갑습니다. 종이상자입니다.
날이 추우니 저처럼 다치지 마시고 조심히 잘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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