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문화 콘텐츠 사이트 삼천세계

사회 어둠 연구소(구. 사회적 어둠)


방과 후 (2)


며칠이 지난 후, 드디어 민수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날이 찾아왔다. 민수에게는 그냥 평소와 다름없는 아르바이트였으나, 점장에게만큼은 평범하지 않은 날이었다. 민수에게 다음 달로 더이상 나오면 안 된다고 말해야 하는 날인 것이다. 이번에도 미루게 되면 다음 달이 되기에 다다음 달까지 봐야한다.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점장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점장님, 일 끝났습니다.”
결국 한참을 머뭇거리다 일이 끝나는 시간이 왔다. 그제야 입을 연 점장은 민수에게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 그 목소리는 여태껏 민수가 들어본 적 없는 불안한 목소리였기에, 민수는 차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마 이렇게까지 본인을 생각해주는 사람은 앞으로도 거의 없으리라. 그런 생각이 드는 민수였다. 그나마 민수는 방과 후 학교 건과 연관 지어 이 부분이 예정되어 있었음을 깨달았기에 원망 같은 것은 덜했다. 그래도 아쉬움은 여전하였지만, 그렇다고 누굴 원망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애초에 이 편의점은 사람이 많이 오지 않기에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벌이가 줄어드는 것은 아쉬웠으나 곧 있으면 방과 후 학교 수업을 진행하므로 민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휴…….”
민수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점장은 안도했다. 혹시라도 민수가 화내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했던 것이다. 다행히 민수가 그런 성격은 아니라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점장은 계산대 앞을 다시 본인이 맡게 된 후 손님이 오지 않았기에 앞으로 이 편의점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 내용은 지난번에 한 것과 거의 유사했다. 단지 민수의 해고와 관련된 내용이 해결되어 그 부분이 빠졌을 뿐이다.
한편, 민아는 수업 정리에 바빴다. 이번엔 과외수업해주는 아이의 것이 아닌 민아 본인의 것이었다. 아마 방과 후 수업이 시작해도 그곳에서 수업 정리를 어느 정도 하겠지만, 그래도 완전히 따로 시간을 내는 것과는 다르기에 이번에는 미리 교과서 내용을 적어두기로 했다. 어차피 선생님께서는 교과서 내용을 크게 벗어난 부분을 수업하지 않으신다. 특히 영어 교과 선생님께서는 교과서를 읽는 것으로 유명하셔서 더더욱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 선생님께서 교과서 밖의 문제를 낸 적도 없을뿐더러, 있어도 모의고사 지문 정도였다. 그런데 굳이 앞서서 모든 것을 섭렵할 필요는 없었다.
“이 정도면 되겠지.”
민아에게 피곤이 몰려왔다.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답을 알고 있다. 기껏해야 대학원까지다. 그런데 굳이 이런 생각을 해봤자 도움될 리 없다. 그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에 아무런 불평 없이 다음 공부로 들어갔다. 방과 후 학교 수업 내용을 예습하는 거였다.
민수는 이번에 수학 방과 후 학교 교사가 되기로 했다. 지난번에는 국어였지만, 이번엔 수학이었던 것은 그가 이과생이었고 수학에서 굉장히 높은 성적을 유지해왔기 때문이었다. 애초 점장이 추천해준 것은 지난번과 같은 국어였으나, 매번 국어만 하기에는 본인이 수학만큼 높은 성적을 유지한 과목이 아니라서 껄끄러운 면이 있었다. 특히, 그동안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를 하면 항상 수학학원에서 수학 문제 첨삭 쪽으로 했기에 경력을 살릴 수 있어서 그만큼 좋았다.
“이 부분은, 이렇게 나가고, 이건 이렇게 해야겠지.”
평소 생각이 많은 만큼 혼잣말도 많았다. 지금 그는 이미 짜인 수업 과정에서 어떻게 강의를 해야 할 지 정리하는 중이었다. 이미 학교 진도가 어떻게 나갈지, 수강자는 누가 있는지 파악이 끝난 상태였다. 편의점 알바 외에는 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여유가 있어서 민아처럼 예전에 배웠던 과목에 관한 복습을 하는 것도 끝이 난 상태였다. 어른이 되고 나면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로 공부하기 어려워진다곤 하는데, 번듯한 직장 하나 없는 민수에게는 그게 해당 사항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예전의 그 집중력으로 공부하니 문제집 하나 끝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오랜만에 푸는 거라 쉽지는 않았지만 여러 번 풀 시간은 있었다. 시중에서 고난도 문제집이라고 하는 것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을 기준으로 이미 3번을 풀었다. 학교 측에서 권장하는 교재를 가지고 수업을 하기 때문에 이번에 민수가 푼 것과는 수업 내용이 조금 다르고 난도도 내려가지만, 혹시라도 공부 잘하는 학생이 어려운 문제를 물어보면 대답해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그때 전화가 왔다. 민수에게 전화가 오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잘 지내냐?”
할머니의 목소리였다. 어머니가 아닌 할머니가 걸었다는 것 자체가 신선했다.
“너 요즘 저기 뭐냐, 회사도 안 나가고 백수처럼 뒹굴거린다면서. 지금 안 바쁘지?”
여전히 일방적인 부분이 있었다. 저런 묻는 것은 형식에 가까웠다. 바쁘든 안 바쁘든 사정을 알고 있으니 바쁜 여부와 상관없이 시킬 일이 있다는 뜻이었다.
“집에 김치 있으니까 가져가라.”
할머니 집은 여기서 조금 멀었다. 하지만 이렇게 말씀하신 이상 가야 했다.
“네. 알겠어요. 할머니.”
할머니께서는 다른 말씀도 하고 싶으셨던 느낌이었지만 그런 말씀들은 가서 들으면 되기 때문에 그냥 전화를 끊었다. 어차피 왕복 3시간이다. 지금 가도 저녁 시간이니 운이 좋으면 저녁을 먹고 가라고 하실지도 몰랐다.
옷을 다시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이럴 때 전철역이나 버스 정류장이 가까우면 얼마나 좋을까. 집세가 저렴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안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아 이런 일이 났다. 걸어서 20분 거리에 큰 길이 나오고, 거기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그쪽 정류장으로 가면 많은 버스가 할머니 집 근처의 큰 정류장에 정차한다. 조금 빨리 가야 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달려서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그동안 많이 안 움직여서 그런지 뛰어도 15분이나 걸렸다. 걷는 것이 더 나을 듯한 느낌이었다. 나중에 가서야 안 거지만, 많이 안 움직인 탓에 걷는 데에는 20분이 아니라 30분 가까이 걸렸다. 그 사실을 알자 살짝 충격이었다. 편의점 알바보다 더 부지런히 나가야 하는데, 저질 체력이 되어서 못 버티는 거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광역 좌석 버스를 타고 약 1시간, 할머니 집 근처의 큰 정류장에 도착했다. 일반 초록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 비용도 저렴하고 속도도 비슷했겠지만, 초록 버스는 그쪽으로 가는 게 적고 배차 간격도 넓어 타기 부적합했다. 그래서 알면서도 하는 수 없이 빨간 버스를 탄 것이다.
도착한 정류장에서는 5분만 걸으면 할머니께서 거주하고 계신 아파트 단지가 나왔다. 할머니 세대까지는 그럭저럭 잘 살았기 때문에 이런 집을 갖고 계셨다. 아파트 자체도 오래되지 않아서 동 안에 들어가려고 하면 할머니를 먼저 호출해야 했다.
“할머니, 저에요.”
“오냐, 들어와라.”
곧이어 문이 열리고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엘리베이터는 일반적인 빌딩과 다를 바 없어서 굳이 할머니께 부탁하거나 할 필요가 없었다.
할머니 집에 간신히 도착하고 나서도 초인종을 눌러야 했다. 지문 인식 센서가 있지만, 그곳에는 내가 등록되어 있지 않았다.
“할머니, 저에요.”
같은 말을 반복했다. 할머니도 똑같이 들어오라고 하셨다. 이윽고 아까처럼 문이 열리고 할머니께서 맞아주셨다. 같이 사는 가족도 있기에 거실에 가니 친척들이 있었다.
“민수 형, 안녕~!”
사촌 동생의 혀 짧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어린애라 존댓말을 잘 몰랐다. 그래도 어린애라 모든 것이 용서될 나이였다. 모든 것을 용서하기에는 훌쩍 커버린 민수와는 달랐다. 고모부께서는 민수를 탐탁지 않은 얼굴로 바라보셨다. 민수는 그것을 감내해야 했다. 집안의 유일한 백수였다. 그러니 집안의 수치이고 당연히 좋은 취급은 받을 수 없었다.
“고모부, 저 다음 주부터 방과 후 학교 강사를 하기로 했어요.”
계약직이라도 일단 직장이긴 했기 때문에 말을 꺼냈다. 좋은 소리는 못 들을 것을 각오하고 뱉은 말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되돌아오는 반응도 싸늘했다.
“그런 계약직 같은 게 뭐가 자랑이라고, 쯧.”
“얘, 그만해라. 이놈도 곧 있으면 번듯한 직장을 찾겠지.”
고모부는 할머니와 나를 번갈아가면서 째려보다가 이내 한숨을 쉬고 다시 TV를 보기 시작했다. 이걸 지켜보던 고모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으나, 약간은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집안싸움으로 번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르바이트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할 때마다 집안싸움이 났던 것이다. 집기를 집어 던지거나 하진 않았지만, 옆집에 민폐가 될 만큼 큰 소리가 오고 가곤 했기 때문에 사촌 동생도 힘들어했다. 이번에는 아르바이트보다는 겉으로나마 조금 진보한 형태였기 때문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TV를 보는 것으로 감정을 썩히시기로 하신 듯하여 다행이었다.
할머니는 나에게 김치나 각종 반찬을 담아주며 이것저것 잔소리를 하셨다. 집안 정리는 잘하고 사냐, 밥은 잘 먹느냐. 혹은 다음 직장은 어떻게 할 거냐, 같은 얘기들이었다. 이미 지겹도록 들었지만, 직장만 빼고 민수가 잘 해나가고 있는 부분이었기에 민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않았다.
예정은 이번에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완전히 비정기 연재 형태로 전환을 ​고​려​해​봐​야​겠​습​니​다​.​ 최근 아파서 조금 늦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오전 11시 46분: 일부 오타 및 맞춤법을 수정했습니다. 맞춤법을 검토하지 않고 올려버렸네요.

이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좋아하시는 다른 책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