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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어둠 연구소(구. 사회적 어둠)


당초 금요일까지 개재 예정이었으나 예상보다 일정이 증가하여 이틀 늦은 일요일에 첫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기다려주신 분들께 정말로 죄송합니다.
다음 연재일은 예정과 동일하게 금요일입니다.


프롤로그 1: 민수


“얼마 전 어느 집회에서 유명 뉴스 프로그램 A 모 앵커에게 돌아오라며 보도 행태를 비판한 것과 관련, 해당 방송국 소속 기자들이 ‘A 앵커가 뭔데 우리를 대표하나’라며 발언하여 논란이 일었습니다…….”

그저 성실하게, 포기하지 않고 성적 하나만을 보고 달려 좋은 대학과 좋은 회사에 들어간 사람들. 민수도 도중까지는 그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낮.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일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민수는 이미 대학도 졸업한 상태였기에 완벽한 백수였다. 정규직이 아니어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취업 준비조차 하지 않아서 취업 준비생이라고 둘러댈 수도 없었다.

이미 계급장을 달아 사회에서 소위 ‘엘리트’로 불리며 자신들의 특권에 취한 또래를 볼 때마다, 민수는 이름 모를 부끄러움을 느끼곤 했다. 그들은 초봉이 적은 탓에 고위 관료와의 잦은 만남으로 권력을 누리는 데 집중했고, 그렇게 시민들을 대표하겠다던 언론들은 기울거나 철저히 변질되어 고위 관료의 입맛에 맞는 매체가 되어있었다. 끝끝내 살아남은 양심 있는 언론인이란, 그래서 대부분 사회 문제를 파헤치다 신문사나 방송사에서 해고당했거나 회사와 방향이 맞지 않아 사표를 쓰고 자발적으로 독립 언론인이 된 경우에나 볼 수 있었다. 그나마 과거에 비하면 매체가 다양화되면서 자칫 묻히기 쉬웠던 독립 언론인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민수가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텔레비전은 아직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그러나 보도하는 이들도 다른 언론사여도 언론인이라 그런지 그들의 태도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들에게 비판받았던 언론사조차 그랬다. 비판할 자격이 안 됨을 아는 것인지, 아니면 보도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단순 감싸기에 불과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더는 볼 가치가 없었다.

이내 텔레비전을 끄고 방을 한 번 둘러보았다. 부모님 소유의 집이라 월세는 낼 필요가 없다. 원룸이긴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주거인 거다. 흙수저들이 보기에는 차고 넘칠 만큼 금수저인 조건이니까.

흔한 백수 이미지가 그렇듯, 이 방도 그렇게 깨끗하진 않았다. 시궁창 수준은 아니더라도 옷이 여기저기 흩어져있었다.

“민(旻)에 수(水)라…….”

하늘만큼 맑고 푸르른 물. 대충 그런 뜻으로 볼 수 있는 이름이다. 이 한자가 이름에 적합한지는 고민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이름을 민수의 아버지가 지었고 그 뜻은 청렴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름에 걸맞지 못하게 방은 깨끗하지 않았고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부러 취업하지 않는 등 성격조차 꼬여 있었다.

다행히 민수는 정직하긴 했다. 어떤 금수저처럼 온갖 컨설팅과 족집게 과외 선생님을 붙여 대학에 붙은 건 아니라는 뜻이다. 촌지라 불리는 뇌물을 제공하거나 선생님에게 잘 보이기 위한 행동도 그닥 하지 않았다. 아니,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민수는 과거부터 최소한 영재로 불리며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래서 영재고에 가지 않은 게 소소한 이야깃거리가 될 정도였다. 충분히 갈 만한 성적인데 왜 일반고를 왔느냐며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화제가 되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수행평가, 대회, 발표 정도만 신경 써도 충분히 튼실한 생활기록부를 만들 수 있었다.

덕분에 어릴 때는 민수에게 이름에 맞게 행동하라고 종종 말하곤 했던 가족들도 중학교를 입학할 무렵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특히 더 자주 이야기했던 외가 쪽이 체감적으로 더했다. 대신 애가 음침하고 의욕도 없다며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했고, 이에 상처를 받으신 어머니께서는 외가에 자주 들르지 않게 되었다. 그 말에 나는 별 감흥이 없었지만 어머니께선 그렇게 느끼지 않으셨던 모양이었다. 그 후 외가에 방문하지 않는 것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집안에서 아무도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름이란 건 무시무시했다. 어느 소설이 말하는 이름의 위력과 같이 이름에는 사람을 속박하는 힘이 있었다. 별명도 이름과 다를 바 없었다. 이름이 가진 힘을 별명도 고스란히 갖고 있었다. 심지어 이름은 바라는 점이지만 별명은 현실을 뜻하는 말이었다. 결국, 별명은 지워질 때까지 자신을 속박하는 굴레 내지 낙인 같은 것이었다. 낙인은 지워지지 않으니 굴레가 더 맞을 수도 있다. 아무튼, 그런 중요함과는 상관없이 명(名)이 붙은 모든 것은 그런 힘이 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바꾸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보통은 그 이름이 자신을 괴롭히고 낙인찍듯 힘들게 하였기 때문이었다. 동명이인이 저지른 일이 끔찍할 때 주로 그러하였다. 예를 들면 조두순과 같은 거다. 혹은 동명이인이 유명해서 놀림의 대상이 될 때도 신청하였다. 김연아, 박지성 같은 이름은 그럴 만한 이름이다. 아이들은 순진함을 변명이자 무기로 동명이인이 한 모든 행동을 다른 아이에게 붙여넣기를 하듯 적용한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면서 동명이인을 마구 놀린다. 때로는 정의구현이고 어떨 때는 단순히 놀리는 거였다. 그들의 명분은 다양했다. 덤으로 왜 자기 또래의 동명이인은 왜 저 멋진, 혹은 못된 동명이인 같지 않은지 끊임없이 물고 늘어진다. 민수는 그런 일이 없었지만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민수는 그 끔찍함을 알고 있어서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고 자신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민수는 너무 깊이 들어갔음을 깨닫고 잠시 쉬기로 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서 학원비도 들지 않았다. 가끔 자격증을 딸 생각이 들면 그때그때 구닥다리 노트북으로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시중 교재를 풀면 될 일이다. 그 정도는 대부분 문제집과 강의로 해결할 수 있었다. 애초에 따려고 했던 자격증 대부분은 신체 능력보다 머리가 우선이었다. 거기다, 지금은 자격증도 딸 만한 건 전부 따 놓았기에 쉬어도 좋았다. 다만 빨리 취업하라는 부모님의 잔소리만이 민수를 방해하므로 휴대폰을 꺼두면 사실상 완벽하게 자유였다.

베란다에 나가 잠깐 쉬면서도 자꾸만 다른 생각이 밀려들어 오기에, 민수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것 때문에 배웠던 명상은 별 쓸모가 없어서 차라리 간단한 생각만을 하기로 했다. 아무짝에도 쓸 데가 없는 생각을 치우기 위해 이따 무엇을 먹을지나 생각해놓기로 했다.

생각에 잠겨버린 지 오래인 민수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휴식이란 그런 것뿐이었다. 그래서 민수는 생각이란 존재가 두려웠다. 그렇다고 생각이 아닌 본능만으로 살아가는 동물이 될 수는 없었기에, 이렇게 밖을 쳐다보는 것으로 최대한 부글거리는 늪을 진정시키고 눈을 치켜세웠다.

이제 민수가 할 수 있는 남은 건 무얼까.

아직 취업 준비만은 하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처럼 중소기업 같은 곳에는 취직하기 싫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아르바이트를 비롯해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지나치게 앞만 보고 달려온 탓일까, 의욕은 동난 지 오래였다.

1, 2년 내로 분명 부모님께서 방을 빼라고 하실 것이다. 아직은 취업에 실패한 지 1년 남짓 되었으니 스펙을 쌓는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이 집은 부모님 집이지 민수 집이 아니므로 취업도 하지 않는다면 여기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다.

아무리 지금까지 취업도 못 하고 1년을 보냈다지만 민수도 나름의 낯짝은 있어서 1년을 또 그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래서 태평하게 낮잠이나 잘 수는 없다. 최소한 또 다른 자격증 공부라도 해야 뭔가 하는 느낌이라도 들기 마련이다.

이럴 때 민수는 자신의 머리를 탓하곤 했다. 좀 배우는 데 오래 걸린다면 그만큼 시간을 벌 수 있을 텐데, 그게 되질 않았다. 가족도 선생님도 내가 그 정도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느긋하게 따고 싶어도 연락이 자주 오는 통에 불가능했다. 아마 지인들이 민수의 속마음을 읽을 줄 안다면 배부른 소리 또 한다며 고개를 젓겠지만, 최대한 시간을 벌고 싶은 민수로서는 나름대로 진지한 이야기이다. 그만큼 직장 생활을 하기는 싫었다.

사실, 민수도 처음부터 직장 생활을 희망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바로 시작한 직장이 있었고, 민수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잘 적응해서 업무로도 군말 안 듣고 잘 지내고 있었다. 월급이 밀리거나 직장 상사가 갑질하는 일도 없었으니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은 아니었지만 보기 드물게 작지만 알찬 기업이었다.

하지만 건실한 줄 알았던 회사가 회사 경영진 중 누군가의 횡령 하나에 돌아오는 어음 하나 못 막는 처지가 될 거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언론도, 민수도, 심지어는 원청업체에서도 워낙에 갑작스러운 일이라 당혹스러워할 정도였다. 인수 합병을 알아보기도 했던 모양이지만 워낙에 이 바닥이 작은 시장이어서 그런지 선뜻 나서는 곳이 없었다. 당연히 민수도 이직이 결정 나기도 전에 해고당했다. 회사가 사라졌으니 당연한 처사였다.

설상가상으로 이직을 지원한 곳도 민수를 받아주지 않기로 최종 결정 나면서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나앉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의욕을 잃어버렸던 것은 아니었다. 그 정도로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면 회사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취직 준비를 하던 중 블랙 기업에 입사해본 것도 아니니 흔히 말하는 갑질이 원인은 아니었다.

단지, 민수는 갑작스럽게 흥미를 잃었다. 모 만화에 나오는 스물일곱 살 무직자처럼 먼저 회사에 취직한 친구들의 푸념에, 그리고 은근히 으스대는 녀석들의 카톡에 조금 질린 면도 있었다. 그러나 왜 자신이 이토록 자신이 없어졌으며, 자격증이나 따러 다니면서 무직을 자처하고 있는지는 아직도 몰랐다. 이유는 모르더라도 극복하지 않는다면 현실 도피밖에 되지 않으리란 건 잘 알고 있었다. 그저 노력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은 한심하지만 당장 의욕이 들지 않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뿐이다.

다시 베란다에서 돌아온 민수는 창문을 닫고 커튼을 쳤다. 밝을 때는 잘 수 없다는 자신만의 틀에 갇혀 안절부절못한 끝에 내린 합의점이었다. 그렇다고 아주 틀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어서 집안일은 모두 마친 후에 자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그런고로 민수가 잠자리에 든 시점은 실질적으로 해가 진 후였다. 설거지도, 방 청소도, 주변 정리도 모두 마치고 나서 이부자리까지 깔았더니 이미 모 방송국의 저녁 뉴스가 시작되고 있을 시간이었다.

단지, 저녁을 거르고 일찍 잔 것뿐이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점이 민수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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