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문화 콘텐츠 사이트 삼천세계

사회 어둠 연구소(구. 사회적 어둠)


예상치 못한 일정이 생겨 업로드가 늦어졌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프롤로그2: 민아


같은 시각, 민아는 달랐다. 아직 수능이 끝나지 않은 학생이기도 했고, 최상위권 학생에게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 사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도 언론인의 악명 높은 행태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다. 사실, 언론과 사회를 공부하는 민아가 이를 모른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학교 소논문조차 관련 주제로 제출한 마당에 모른다면 그건 정말로 알지 못한다기보다는 외면에 가까웠다.

방에서 공부하는 동안, 부모님께서는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다. 이 시간대에는 늘 뉴스를 보고 계시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시험도 끝났겠다, 어제 하루 쉰 탓에 바로 공부에 돌입하기 어려웠던 민아는 교과서를 읽으며 뉴스를 한 귀로 엿듣고 있었다.

한편으로 언론이 다른 언론을 비판하는 모습은 신기했다. 보통 자신들이 언론 중 최고라는 자신감에 심취해있지 않고서야 감히 다른 언론을 욕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삼촌의 말씀에 따르면 언론계에서도 계급이 나뉘기 때문에 기득권에 속하는 언론이 아니라면 취재를 비롯한 여러 부분에서 불이익을 받는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 감히 기득권에 속하는 언론을 욕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특히 이번 뉴스에 언급된 언론은 작년까지만 해도 분명 신뢰도와 공정성에서 1위를 차지했으니, 언론계에서는 아닐지 몰라도 여론을 조성하는 데에는 탁월한 위치에 있어서 멋대로 욕하기는 어려울 터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생각이 휩쓸려 떠내려갔다는 것을 눈치챈 민아는 냉장고에서 보리차 한 잔을 꺼내 마시기로 했다. 평소보다 텔레비전 말소리에 신경을 쓴 것도 그렇고 교과서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는 상황을 정리하려면 아무래도 한 번 일어나 움직일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민아가 관련 주제로 소논문을 썼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지금이 만약 기말고사를 앞둔 시점이라도 언론과 관련된 얘기라면 귀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런데도 보통 때는 수행 평가할 때 VOD를 내려받아서라도 다시 보자는 생각을 하기 마련인데 다시 책을 들여다보지 않고 텔레비전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시간을 손해 본다는 것은, 그만큼 그에게 별난 일이기 때문이다.

막 냉장고 앞에 다다랐을 때, 어저께 보리차를 마지막으로 마시고서 새로 끓이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했다. 집에서 물 대신 보리차를 마시는 사람은 민아뿐이라 보리차가 다 떨어져도 최소한 말은 해둬야 마실 수 있는데, 늦은 새벽 보리차가 다 떨어지는 바람에 깜빡 잊고 보충하는 것도 말씀드리는 것도 잊어버린 탓이다.

그렇다고 보리차를 꼭 마셔야 하는 이유는 없었지만, 물보다는 보리차를 마셨을 때 공부가 더 잘 되는 느낌을 받아왔기에 오늘같이 공부가 잘 안되는 날에는 반드시 보리차를 끓여서라도 마셔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왠지 더 공부가 되질 않아서 결국 보리차를 찾곤 했다. 집에 있는 전기 포트를 사용하는 거라서 끓이는 게 어렵지도 않아서 손해도 아니다. 알림이 울릴 때까지 교과서를 보면서 보리차를 마시기 전 마지막으로 집중을 시도해볼 뿐이다. 그렇게 해서 교과서에 집중하게 되면 공부가 끝난 뒤에 차게 식은 보리차를 전용 물병에 넣어서 냉장고에 넣어두면 그만이고, 집중하지 못해도 따뜻한 보리차를 마시면서 다시 글자를 쫓는 데 집중하면 될 뿐이었다.

역시나 오늘은 보리차가 다 끓을 때까지 집중하지 못했다. 유난히 거슬리는 날이었다. 심지어 보리차를 한 잔 다 비워도 마찬가지였다. 전대미문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틀어져 있던 텔레비전이 꺼져있었다. 부모님께서도 어디론가 외출하신 모양인지 보이지 않았다. 분명 보리차를 한창 끓이고 있을 무렵 무언가 한마디 하신 것도 같았지만 내용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상 어딘가 다녀오겠다는 말씀이셨으리라.

그러고 보니 조부모님께선 지난 8월 말, 그 습하고 더운 날씨에 화재사고로 사망하셨다. 보는 사람마다 바꿔 드려야겠다고 할 만큼 낡디 낡은 선풍기를 밤새도록 틀다가 먼지에서 스파크가 튀어 그만 화재로 이어진 것이 문제였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금방 불을 끄거나 탈출했겠지만 잠든 채로 깨어나지 못하셨다. 지금은 8월, 한창 더울 여름이니 곧 조부모님의 기일이 다가오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아직 8월 초라 큰 관련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아마도 근처 공원에 산책하러 나가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지난해 조부모님께서 돌아가신 것이 오늘 민아의 심리 상태에 영향을 주지 않았느냐 한다면 전혀 아니라곤 할 수 없었다. 근처 공원에 산책하러 가신 것보다 조부모님의 사망이 먼저 떠오른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한 여름밤의 참변’이라는 제목으로 보도된 조부모님의 사망이 민아가 소논문을 쓰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가정이라도 가끔 뉴스에 안타까운 사고로 보도될 때가 있는데, 민아네가 딱 그랬다. 그런데 사고 소식만 짤막이 다뤄도 될 것을 언론은 주변 이웃들의 인터뷰를 싣고 확대 재생산했다. 그래서 사건 보도가 공부를 잘하는 민아를 시기하는 내용의 인터뷰로 인해 순식간에 민아를 공격하는 방송이 되었다.

학교에서 퍼진 헛된 소문은 마침내 본래도 친구가 한 명밖에 없었던 친구를 잃어버리게 했다. 공부에 집중하느라 해명은 뒷전으로 둔 사이 하나뿐인 친구가 모든 내용을 해명해주다 자신까지 얽혀서 피해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심지어 위원회가 개최될 무렵에는 그 헛소문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민아가 친구를 상대로 금품을 갈취하고 폭행까지 했다는 얘기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같이 피해자가 된 친구는 민아로부터 손해를 메꾸기 위해 다른 친구를 같은 방식으로 괴롭힌 게 되어있었다.

그래도 자신이 친구 관계를 소홀히 여긴 탓에 이렇게 친구가 따돌림을 당했다는 것에 대해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신이 모두 시킨 것이고 협박까지 했다며 거짓말로 둘러대고 징계를 받았다. 소년원에 가진 않았지만, 등교 정지 7일을 받은 민아는, 등교 정지 전날 친구의 얼굴에서 마지막 희망이었던 듯하던 희미한 미소가 대신 맴도는 급우들의 악랄한 표정으로 묻히는 모습을 보았다. 이미 희망을 잃은 듯한, 배신감을 느꼈단 그 표정을 두고 볼 수 없어서 민아는 오래 보지 못하고 오랜만에 나온 눈물을 훔치며 아닌 척 그냥 오래 달렸다. 그날도 오늘처럼 공부를 못했다는 사실도 기억이 났다.

그러고 보니 등교 정지 이후 친구들의 반응은 이전보다 더 악랄해졌다. 한때 친구였던 아이는 피해자 신분으로 보호를 받기에 같은 반에 있지 않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친구들끼리의 러시안룰렛은 이전보다 규칙이 강화되었다. 더 치밀하게, 누군지 특정하지 못하도록 각종 수단을 동원했다. 물리적인 폭력만 없다뿐이지 그 분위기의 무거움으로 따지면 살벌한 살인 판이 따로 없었다. 이번엔 민아도 피해갈 수 없어서 친구처럼 이번엔 자신이 도둑이 되었다. 이런 종류의 ‘게임’이 보통 그렇듯 경찰을 빙자한 조폭은 소수, 그 외에는 선량한 시민 다수일 뿐이었다. 이것이 왜 재미있는지 민아는 지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살벌함에 친구가 민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만은 이해했다. 나중에 진실을 말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보다 성적 상승이 먼저여서 계속 성적을 올리다 보니 시간이 금세 흘러 중학교 졸업식이 다가왔고, 그 와중에 게임 서버의 운영자는 마치 소시민이라는 듯 방관만을 하다가 간혹 경찰인 척 조폭 경찰에게 순찰 업무를 맡길 뿐이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민아는 잠시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절망이 가져온 피로는 민아를 과로로 쓰러지게 했고 결국 졸업식에 참여하지 못했다. 나중에 졸업앨범을 배송받았지만, 민아의 얼굴은 다른 아이들의 얼굴보다 두 컷 정도 적었다. 반톡에선 급우들끼리 자신들의 추억을 공유하는 장면들만이 계속 올라올 뿐, 민아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 그 누구도 고인 물을 끼얹고 싶지 않은 눈치라 끼지 않기로 했다.

결국, 민아는 친구에게 사과하겠다는 목표도, 급우들에게 복수하겠다는 다짐도 이루지 못한 채 고등학교에 들어온 것이다. 벌써 적응할 시기는 다 지났으니 민아는 고등학교를 와서도 부적응자로 남아있는 것이 거의 확정이었다. 누군가는 2학년 때 변화를 겪은 사람도 있다지만 민아에게 그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도 암담한 늪까지 갔다 온 민아는 부모님이 어디로 외출하셨는지가 궁금해서 시작된 생각에 오히려 의욕이 떨어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상담 센터에 방문해 무기력증에 대해 상담을 받아야 할 수준이었다. 아니, 것보다 지난날들의 일이 후회스러웠고 또 분노로 끓어올랐다. 집단 따돌림이 유행으로 번질 일인가, 사회적 약자 취급을 받는 청소년들인데 서로 협력해서 높은 천장을 부술 수는 없는 건가. 쓸데없는 듯, 혹은 조금 이상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민아는 너무나도 많은 생각으로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꼭 그때의 따돌림 사건과 비슷한 정도로 머리가 아팠다.

‘야냐, 잊어버려. 잊어야 해.’

잊으라고 외쳐도 억지로 꺼낸 고통의 대가는 강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민아는 알 길이 없었다. 결국은 이런 극단적인 충격 요법으로도 해결되지 않았다. 끔찍한 과거가 하기 싫어진 공부로부터 더 멀리 떨어뜨리기만 했다.

결국, 민아는 조여오는 듯한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 씻기만 하고 잠들기로 했다. 하루 정도는 공부에서 벗어나도 괜찮다며 자신을 격려하며 빠르게 씻었다. 겨울이기도 했지만 뜨거워진 머리를 식히는 데는 아이러니하게도 따뜻한 물이 제격이어서 데일 것만 같음에도 가장 뜨거운 온도로 맞춰 틀었다. 역시 너무 뜨거워서 무리였다. 그래서 그냥 적당한 온도로 다시 맞췄다.

샤워하는 도중에도 생각이 끊이질 않자 민아는 드디어 자신을 책망했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듯 계속해서 어두운 기억들이 떠올랐다. 친구를 잃어버린 아이의 얼굴이 자꾸만 나타나 눈앞에 보였다. 이제는 미친 사람인 것처럼 환각이 보이는 듯했다. 그런 환각을 지울 수 없는 무기력한 민아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마치 유령을 보는 듯해서 입조차 뻐끔거릴 수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 몇 분 뒤 환각이 사라져 민아는 비로소 샤워를 끝마칠 수 있었다. 다행히 물이 틀어져 있지 않아서 머리도 대충 말랐다. 이제 조금만 드라이어기와 빗으로 손질해주면 끝난다.

그러나 민아는 그 두 도구가 있는 안방에 들어가는 것이 갑작스레 겁났다. 거울이 두 개나 있으니 혹여나 환각이 올까 봐 걱정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드라이어기와 빗만 갖고 잽싸게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민아의 방엔 거울이 없었기 때문에 환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물론 민아의 환각이란 거울과 거의 상관이 없지만 적어도 민아는 그렇게 믿었다. 민아는 자신의 환각을 물리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짧은 머리가 제대로 마르지 않는 것도 마다했다. 애초에 짧은 머리라 금방 마르고 머릿결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별 관리를 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지만, 민아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긴 머리일 때 관리해야 한다는 소리를 너무 많이 들어서 짧은 머리가 되고도 습관으로 꾸준히 관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하루만이라도 관리를 하지 않는다는 건 습관에 대한 도전이자 그만큼 자신의 의지가 강함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였다.

그렇게 대충 말린 머리와 그나마 정성스레 빗은 머리를 놔두고 민아는 빠르게 책가방을 챙겼다. 모든 것을 빨리하지 않으면 다시금 생각에 빠져들 것 같았다. 책가방을 꼼꼼히 챙긴다는 건 생각할 수 없다. 그저 챙기기만 하면 족하다. 빨리 누워야 한다. 그리고 빨리 잠들어야 내일 아침을 제대로 맞이할 수 있다, 그런 생각만이 민아가 가질 수 있는 생각이었다. 불을 끄고 커튼을 친 후 침대에 누웠다.

그 뒤로도 계속 생각이 끊이질 않았지만, 다행히 부모님께서 오시기 전까지는 잠들 수 있었다.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