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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어둠 연구소(구. 사회적 어둠)


오늘도 시간이 다소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노트북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겨서 예정보다 약 하루 정도 늦춰졌습니다.


시작 (1)


민수가 일에 흥미를 잃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늘 텔레비전만 보며 백수 생활을 즐기는 것은 아니었다.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동네 마트에 나가 장을 보기도 했고, 아웃렛이나 백화점에 가서 헌 옷을 대신할 옷을 새로 사 오기도 했다. 자격증을 따는 것도 인강만 듣거나 자격증에 따라 맨 처음 시험만 인터넷으로 볼 수 있는 그런 식의 '흉내'를 내고자 한 것이 아니라 1급까지 따는 것을 항상 목표로 했기 때문에 시험장에 가기 위해서라도 외출은 안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보통 시험장이 집 가까운 데로 지정되어 멀리 나가지 않기 마련인데, 오늘은 좀 멀었다. 머리가 좋은 탓에 겨우 1년의 시간 동안 나름 알아준다는 자격증은 거의 다 딴 탓에, 남아있는 국가 공인 자격증이 많지 않아서 이런 상황이 생긴 것이다. 그만큼 민수의 전공학과를 생각하면 쓸모없는 자격증도 있고, 둘을 같이 따는 것이 무슨 의민가 싶을 정도로 유사한 자격증을 굳이 1급까지 따 놓은 일도 있었다.

과거 민수가 다니던 회사는 지금 집보다 조금 먼 곳에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오늘 볼 자격증 시험의 응시 장소와 가까웠다. 그러니 평소 일어나던 시각보다는 조금 더 일찍 일어나, 마치 회사에 출근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전날 짐을 다 챙겨둔 것도 그렇고, 자격증 시험을 위한 준비물이 들어있다는 점을 빼면 정말 모든 것이 판박이다.

얇은 빗방울이 차근차근 내리는 아침, 어제 사이 부쩍 많아진 미세먼지가 아직 다 씻겨 내려가지 않은 탓에 미세먼지 마스크를 끼고 시험장으로 향했다. 출근 시간 아니랄까 봐 사람으로 가득 찬 버스를 겨우 타고, 스무 정거장이 넘는 거리를 지나쳤다.

당장 오는 버스를 잡아타야만 늦지 않는 것도 아닌데 왜 굳이 빙빙 도는 버스를 택했을까. 첫 출근 때야 아무것도 모르고 이 버스를 잡아탔지만 이미 어떤 버스가 가장 빠른지 아는 지금에 와서는 조금만 더 기다리면 더 빠르게 갈 수 있단 걸 안다. 취업 시장에 발 디디기를 포기한 민수니까, 어쩌면 마음속 어드매 깊은 곳에 마음을 다잡고 새로이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매서운 바람을 막아줄 긴 패딩과 목도리, 얼굴이 보이지 않을 만큼 뒤집어쓴 패딩에 딸린 모자와 이중으로 꼭꼭 잠근 지퍼. 민수는 마치 세상 모든 검은색에 뒤덮인 듯했다. 심지어 비를 피해줄 우산마저 시꺼먼 검은색이었으니, 누가 보면 저승사자인 줄 알고 놀라 자빠질지도 모를 어두운 느낌이었다.

한참을 골목골목 지나 가까스로 제시간에 맞춰 시험장 앞에 도착한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 또 밀치고 밀려 나온 탓에, 미처 교통카드를 태그하고 내린다는 걸 깜빡하고 말았다. 분명 다음번 버스비가 뼈아프겠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고 굳이 이 버스를 택한 민수의 잘못이니 누굴 탓할까. 그래도 지각한 것은 아니라서 터벅터벅 시험장 안으로 들어가 차분히 자기 자리에 앉았다.

시험 시작, 5분 전이었다.

 

한편, 평소보다 일찍 잠들었던 민아에게도 시련의 아침이 찾아왔다. 어젯밤 일이 잠든다고 잊힐 리 없다. 꿈이라면 잊힌다는 희망이라도 품겠지만, 누가 그러듯 자기 전 생각한 내용이 역시나 기억에도 잘 남았다. 차라리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되는 몽롱한 상태였으면 좋았을 뻔했다.

오늘 학교생활은 또 어찌하라고, 부모님께서 다행히 일찍 잠든 것에 대해 별달리 묻지 않으셨지만 8시간이나 부딪혀야 하는 학교를 앞두니 마음이 막막할 수밖에 없다. 다른 일이라면 모를까 불과 얼마 전 학교에서 겪은 일이니, 오늘 당장 겪지 않더라도 비슷한 책상을 보며 떠오르고야 말 것이다.

“엄마, 오늘은 나 학교 가기 싫은데…….”

난생처음 학교가 가기 싫다고 했다. 휘둥그레하실 것도 이미 예상 안이다. 무슨 일이냐며 물어볼 것이 뻔했지만 솔직히 민아는 가해자가 되어 단두대에 섰을 때보다도 지금이 더 가기 싫었다. 그만큼 민아의 기억은 조금씩 뒤죽박죽이 되어 자신이 겪은 일보다 더한 고통으로 돌아와 옭아매고 있었다.

그러나 부모님께서는 별달리 말씀이 없으셨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저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시고 회사에 가셨다. 다만 적잖이 당황한 눈치는 있었다. 아마도 퇴근 후에 다시 물어보시리라. 어차피 출근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해주실 말씀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민아가 할 수 있는 것은 학교에 가는 것밖에 없었다. 빠지는 것을 허락받은 처지도 아니었고, 허락도 없이 빠질 배짱같은 게 있었다면 진작에 빠져야 했다. 오늘은 좀 급하게 가자, 그게 민아가 내린 최선의 결론이었다. 늦었다는 생각에 예전 트라우마 같은 건 떠오르지도 않게 하자는 생각이다. 엊그제만 해도 부모님께서 가신 뒤 5분 정도 뒤에 가는 게 적당했다. 오늘은 10분 정도 뒤에 가서 아슬아슬한 시간에 도착하는 게 민아의 목표다.

그렇다고 아까운 시간을 허비했다간 조삼모사나 다름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어제같이 방심할 틈을 만들어 줬다간 분명 다시 떠올라 학교에 가다가도 외길로 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질 것이다. 실패한 방법을 굳이 쓸 필요는 없으니 오랜만에 먹은 것을 설거지하기로 했다. 신경을 다른 곳에 두면 혹시나 그릇을 깨 먹을 수도 있으니 안성맞춤이다.

한두 번 해본 솜씨라면 모를까 어릴 때는 공부도 공부지만 집안일을 많이 도와왔다. 누가 시켜서 했다면 모를까 원해서 한 것이니 집안에 아무도 나무라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불을 쓰는 요리도 아니고 설거지를 하는 자식에게 나무랄 부모가 있을지부터 의문이긴 하지만 아무튼 공부에 열중하기로 하기 전까지는 일주일에 두 번 민아가 설거지를 도맡아 했다.

처음에는 자기 것만 설거지하겠다고 나섰는데, 어느새 모든 설거짓거리를 다 해두었다. 그러니 당연히 5분이라는 작은 시간 안에 다하지는 못했고, 어느새 15분이 더 흘러있었다. 무념무상으로 온 힘을 다해 뛰어야 간신히 학교에 닿을까 말까 한 시간이었다. 뒤늦게 시간을 알게 된 민아는 당황하며 빠르게 뛰어 학교에 달려갔다.

그런데 민아가 한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민아의 부모님은 일이 바쁘신 관계로 종종 토요일에도 가족과의 시간을 반납하고 직장에 나가실 때가 있다. 더군다나 정신없이 잔 탓에 잊어버리긴 했지만 담임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민아의 학교는 자격증 시험을 보는 응시 장소다. 애초부터 자격증 시험의 대부분이 주말에 보는 관계로 등교할 필요도 없는 날이고, 거기다 응시 장소이니 가도 교문이 열려있을 뿐 들어갈 수도 없었다. 단순히 학교 자습실에 공부하러 간다고 둘러대는 것도 무리라는 얘기다.

그걸 눈치채지 못했으니, 겨우 교문에 도달하고 나서야 붙은 자격증 응시 장소라는 표식을 보며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시간으로만 보면 이미 지각한 시간이니 주변에 교복을 입은 사람이 한 명도 없어도 그리 이상하지는 않다. 물론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으니 한두 명 정도는 날짜를 착각하고 교복을 입고 올 수도 있겠지만 불행하게도 오늘 날짜를 착각한 사람은 민아 혼자뿐이었다.

“아, 오늘은 토요일이지.”

시험장 앞에서 닫힌 교문을 보며 통곡하는 지각한 수험생들 사이를 멍하니 빠져나왔다. 교복 차림으로 토요일에 교문 앞까지 나온 것이 비록 짧은 거리지만 창피했다. 동네 이웃분들이라도 오늘 왜 교복을 입었냐며 물어보면 좀 좋아, 싶었지만 그런 말을 건네고 싶어도 워낙에 급하게 뛰어온 탓에 말할 분위기가 되지 않는 게 당연하니 뭐라고 신경질을 낼 수도 없다.

다시 힘 빠진 채 걸어서 집으로 돌아온 민아는 도로 침대에 누웠다. 이틀 연속으로 공부가 되지 않는다니, 민아 인생 역대 최고 기록이다. 평소 같으면 공부가 좀 안 될 것 같아도 독서실에 가면 잘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가서 책을 펴고 있을 시간에, 침대에 누워서 싱숭생숭한 느낌을 어떻게 하질 못하고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고 하고 있었다.

‘띵-동’

토요일에도 택배 올 때가 가끔 있다. 오늘같이 부모님께서 주말을 반납하고 일하시면 보통 장을 보러 가지 못하시기 때문에 택배로 동네 마트에서 장을 보곤 하셨다. 근래에는 공부한다고 독서실에서 온종일 보내서 겪지 않았지만, 오늘은 침대에 누워 있었으니 오랜만에 나가서 택배를 받아놓게 되었다.

하필 쌀이 다 떨어져서 새로 쌀을 주문하신 건지 상자가 제법 무거웠다. 이 무거운 상자를 옮겨서 여기까지 올라오신 택배 기사님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간신히 문턱으로 끌어와 상자를 뜯고 하나씩 냉장고로 날랐는데, 역시나 아니나 다를까 상자 안 내용물 중에는 쌀도 있어서 다용도실 문을 열고 창고에 두어야 했다.

겨우 정리를 마치고 민아는 옷을 갈아입었다. 쌀을 옮기기 전 진작에 갈아입었어야 할 교복이지만 그나마 안의 내용물을 옮겼다고 해서 교복이 그리 더러워지지는 않아서 월요일에 다시 입기로 했다. 아마 이따가 부모님께서 퇴근하시고 나면 분명 뭐라고 하시겠지만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옷걸이를 따로 두기로 했다. 영 찜찜하지만 안되면 자신이 직접 세탁기를 돌리겠다는 생각에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

햇살이 좋아서 그런지, 그래도 민아 방 창문에 빛이 드리울 무렵에는 책도 잘 읽혔다. 교과서는 아니고 독서 포트폴리오에 올릴 과학책이었지만, 그래도 오늘은 글씨가 읽힌다는 게 민아에게 더 소중했다. 이 상태라면 세 시 경에는 독서실에 가서 공부를 시도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역시, 학교 가기 싫은 날 가장 좋은 처방법은 학교가 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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